에피 21호: 과학, 지구를 품다 (이음)
나는 학문적으로는 과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과학에 매우 관심이 많다. 에피는 그런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나오면 찾아 구매해서 읽는 잡지이다. 내 과학잡지 역사는 꽤 오래되었는데 이번 기회로 다시 떠올려보니 어릴 적부터 읽던 과학동아, Newton이나 스켑틱 그리고 에피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과학잡지를 읽어왔더라. 그중 과학동아를 제외하고 사서 읽은 잡지는 에피뿐이었는데 그건 다 이유가 있다!
우선 과학 잡지라고 하면 전문 지식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비전공자인 나는 조금만 내용이 어려워져도 두세 번씩 읽게 된다. 그래서 보통은 날을 잡고 앉아 공부하듯 읽는데, 에피는 다양한 집필진을 통해 과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 21호에도 순수 과학에만 한정된 집필진이 아니라 역사학자부터 사회과학자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에세이, 소설까지 실어 과학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순수하게 과학적 지식만을 얻어가길 바라는 분들께는 아쉬울 수 있지만, 나같이 ‘과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려운 건 곤란해' 정도의 독자에게는 정말 딱 맞는 잡지다. 또한 판형이 작아 이동하며 읽기 딱 좋은 사이즈고, 짧은 글이 모여있어 내용도 이동하며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이번 에피 21호는 '지구'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기후 위기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는데 한 번이라도 이런 책을 읽었다면 에피 21호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꼭지들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지구의 기후변화를 치료하려는 지오엔지니어링 기술(강호정)', '기후와 나(조천호)', '어쩌다 남극에 가게 된 사회과학자의 현장 연구(김준수)'이다.
간단하게 무엇이 흥미로웠는지 소개하자면 [지구의 기후변화를 치료하려는 지오엔지니어링 기술]에서는 '지구공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단어지만 잘 알지도 못했고 그래서 '당연히 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 지구공학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다양한 이해관계까지 얽혀있어 일반적인 공학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매우 더디게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에세이는 「아무튼 메모」의 저자 정혜윤 작가님의 글이다. 짧지만 지구와 지구 지리학에 대한 필자의 정의가 너무 좋았다. '오늘 나의 가벼움의 지구 지리학은 무엇일까?'(p.145) 나는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기억하고 싶다. 숨 쉴 틈 없이 바쁜 일상에도 잠깐의 쉼과 여유를 주는 단어들을 소중히 기억해야지.
서평을 마무리하며 이번 호도 역시 '지구'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너무 학문적인 내용만 담은 것이 아니라 문학도 함께 넣어두어 훨씬 더 읽기 편한 잡지인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주제를 다뤄준다면 꾸준히 찾아 읽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도서전에서 부스 직원분들이 너무 친절하고 책 소개도 잘해주셔서 기억에 남는데, 오늘부로 나 이음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
함께 읽기 좋을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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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9월호의 주제는 과학, 지구를 품다 이다. 현 국내에서는 화두가 덜하기는 한 것 같지만 세계는 연일 인류세의 도래를 언급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구호가 짙게 퍼지고 있단다. 그 흐름에 발맞추어 연관된 기획 도서 또한 줄줄이 출간되고 있지만 그에 따르는 관심은 매스컴에서 조명하는 것에 비해 어쩐지 덜하다. 그도 그럴것이 당장 이 한 몸 건사하는 것 조차 버거운 시대여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때마다 인류를 드리우는 곤경은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 안팍으로 드밀었다. 이러한 다난을 겪고 배우고 극복하는 데에 과학은 늘 우리에게 더 나은 다음을 선사했다. 따라서 이번 에픽의 주제처럼, 인류가 과학을 품는다는 모양새보다는 도리어 과학이 인류를 품는다는 말이 훨씬 적절한 것 같다. 코로나 시기를 지내고 전례없던 이상 기후 현상으로 세계가 이앓이를 하고 있는 현재, 1987년 이래 생겨난 용어 '지속가능발전(SDGs)'이 함축하는 시사 역시 이제는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상생의 길을 거듭 모색해야할 때임에 틀림없다. 개인만의 힘으로 어찌할 바 없는 천재지변이라고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미 불거진 논란에 불을 지필 것인지, 그 시기를 늦추거나 확률을 줄여나갈 것에 일조할 것인지에 따르는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나같은 경우 그 일환으로 인문서를 곁에 두는 편이고 조금이나마 덜 어렵게 쓰인 글들을 찾아 읽으며 옳고그름에 대한 계책을 마련해보는 따름이다. 에피는 과학잡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그 구성은 일전의 과학지와는 사뭇 다르다. 학계 이슈와 에피소드, 칼럼 및 인터뷰를 집대성한 것은 물론이고, 문학의 성격을 띠는 에세이, 소설 등 타장르에서 과학과 접점이 있을만한 구석을 포착해 한 데 엮어 놓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 이번호 과학, 지구를 품다에서는 "(...) 심원한 역사 동안 진화해오고 생존해온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과 맥을 같이 하는 "21세기 과학과 지구의 미래 모습(에피 편집위원 이두갑)(22)"을 소개 하고자, 지오 엔지니어링 기술과 구글어스의 변천, 리튬이온 이후 차세대 배터리, 녹색 계급과 이상기후, 남극에 간 사회학자 등의 이슈를 한데 담았다. 여기에 더해 현대미술과 역사 칼럼, 에세이와 소설을 적재에 배치해 과학 정보만의 나열이었다면 다소 뻐근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일반 독자들의 긴장을 이완시켜 준다. 다른 한 편으로 훌륭한 사공이 많다보니 자칫하면 산으로 갈 수도 있을 이 시도를 21번째 잇고 있는 이음의 노고에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포스트를 남겨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