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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비싸지는 도시의 월세에 집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집을 찾아 지방으로 순례를 떠난다는 이야기. 돈 없는 젊은이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이라는 소재는 <죄와 벌>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문학적 주제로 탐구해온 주제. 저자의 말에 따르면, 10년 전에 쓴 이야기라는데 여전히 현재 대한민국에 유효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나 부어족이 밤에 이동한다는 설정으로 작품 전체 분위기는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집을 향한 작가님의 깊은 사유, 여러 개성 있는 인물의 등장, 예상하지 못한 전개와 반전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장편소설이다.
고시원에서 자고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풍경을 건조하게 묘사한 대목이나, 집을 잃은 '미로' 상태를 정부에 신고하면 보조금이 나온다는 설정,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지방의 빈 집을 찾아 떠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매끄럽게 전개된다. 대강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주인공인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살아간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지만 안 됐고, 밀린 고시원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다. 그에게 기댈 가족은 없다. 엄마, 아빠, 누나가 있지만 모두 연락 두절. 사촌 민기를 찾아가보는데, 민기는 부어족 순례에 동참해보라고 권한다. 부어족은 집이 없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지방을 돌아다니며 살 집을 구하는 집단인데, 순례하며 루마니아 로마족 강제 퇴거를 알리는 캠페인도 동시에 진행한다. 부어족에 합류하며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는다. 부어족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노년의 주거와 노동을 다룬 『노마드랜드』, 『가난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부어스』는 열악한 청년의 주거에 주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최근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이런 부동산 대세 상승장에서 월세 시장 역시 가만 있지 않았을 테다. 월세가 치솟았을 테고, 공급에 대한 해결로 재개발이 떠오르는데 도시에서 재개발이란 고층 아파트로 매끈하게 바뀌는 과정을 일컫는다. 가난한 청년이 대도시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축소될 수 있다는 의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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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이라는 건 집 주소가 미로가 되지 않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미로. 입안에서 중얼거려 보았다. 차가 부드럽게 굴러가다가 급정거하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급정거할 줄은 몰랐다. 문지방을 넘어서 세상으로 나가자마자 '집 주소가 미로가 되었다'라고 동사무소에 신고해야 했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있는 주소 변경란에 이사 간 새 주소가 아니라 '미로(迷路)'라고 적히는 것이다. (8쪽)
넓고 넓은 세상에서, 매일같이 허물어지는 집만큼 새로운 집들이 세워지는 나라에서 미로의 집을 가지게 되다니. 허탈했따. 집이 무너지는 길은 너무나 똑바르고 분명한데 집이 생기는 길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는 것조차 모르게 미아가 된 꼴이었다. (27쪽)
한국에 있는 고시원은 '계란판 집'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았다. 계란 크기에 맞춘 구멍들이 일정하게 늘어서 있는 계란판처럼 몸에 꽉 끼는 방들이 붙어 있으니 말이다. 몸을 부리고 나면 남는 공간이 하나도 없어서 집을 입고 산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 계란판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었다가 깨진 거나 다름없었다. 깨진 계란은 계란판에서 나온다고 해도 쓸모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32쪽) "그 말은 여기서 금기다, 짜샤. 부어족에게 왜 부어족이 되었냐고 묻는 건, 가난한 사람에게 왜 가난하냐고 묻는 거랑 똑같단 말이다.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너도 마찬가지고." (57쪽)
여기서도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어디에서든 베돌이 같았다. 세상에는 술래잡기가 너무나 많았다. (112쪽)
순례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이 한 말이 덥다는 말보다 배고프다는 말이었다. 더운 건 짜증 났지만 배고프면 서러웠다. 더운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배고픈 건 똑같이 어쩔 수 없으면서도, 어쩔 수 없음에 무기력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는 점이 달랐다. 한마디로 더운 건 내 탓이 아니었지만 배고픈 건 내 탓 같았다. (207쪽)
집은 보통 명사가 아닌 고유 명사였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집을 가질 수 없었다. 고유한 사람만 집을 가졌다. 동시에 집은 구체 명사가 아닌 추상 명사이기도 했다. 아무리 현실로 구체화하고 싶어도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인 목표이기만 했다. 내 등에 얹혀 있는 집을 제외한 모든 집은 성역이었다. (24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