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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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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톨스토이의 사상을 담고 있는 11편의 중단편들을 모은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현대지성의 책을 이북으로 접하고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결국 책으로도 구매하게 되었다. 작가의 종교적 윤리관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지만 단지 종교적으로만 이 책을 받아들이거나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에게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단으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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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톨스토이의 사상을 담고 있는 11편의 중단편들을 모은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현대지성의 책을 이북으로 접하고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결국 책으로도 구매하게 되었다.

작가의 종교적 윤리관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지만 단지 종교적으로만 이 책을 받아들이거나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에게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단으로 인식한다면 이 책은 현대적인 의미의 자기계발서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도덕적 의식과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인생의 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책의 제목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사유을 통해 무언가 느끼는 점이 단 한가지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한번쯤 꼭 읽어봐야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4*****5 2023.1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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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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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음집은 청년 시절의 전쟁 기록인 '12월의 세바스토폴'부터 노년의 영적 통찰이 담긴 '알료샤 고르쇼크'까지, 톨스토이 철학의 변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하늘의 법을 어겨 지상으로 유배된 천사 미하일이 세 가지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다룹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묜의 가족과 함께 지내며 미하일은 인간의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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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음집은 청년 시절의 전쟁 기록인 '12월의 세바스토폴'부터 노년의 영적 통찰이 담긴 '알료샤 고르쇼크'까지, 톨스토이 철학의 변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하늘의 법을 어겨 지상으로 유배된 천사 미하일이 세 가지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다룹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묜의 가족과 함께 지내며 미하일은 인간의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사랑),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자신의 필요를 아는 것),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톨스토이는 천사의 입을 빌려,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선포하며 기독교적 박애주의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반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서늘한 시선으로 인간의 종말을 응시합니다. 성공한 법관으로서 평생을 '품위 있고 적절하게' 살아온 이반 일리치는 불치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자신이 집착했던 사회적 지위와 화려한 거실, 가식적인 인간관계가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습니다. 가족조차 자신의 고통을 성가셔하는 고립 속에서, 그는 유일하게 진실한 태도를 보이는 하인 게라심을 통해 위안을 얻습니다. 결국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야 이기적이었던 과거를 회개하고,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영적인 빛과 평온을 발견합니다. 이 두 작품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랑이라는 동력과 죽음이라는 경고등을 동시에 제시합니다.


이 단편선은 톨스토이라는 거장이 평생에 걸쳐 고민한 '인간 구원'의 지도와 같습니다. 동화적 필치로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설파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삶의 가식을 처절하게 비추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특히 이반 일리치의 절규는 현대인들에게도 유효한 충격을 줍니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삶'을 사느라 정작 자신의 '진짜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탐욕('사람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과 욕망('악마', '크로이처 소나타')을 경계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이해임을 강조합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명확하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적 무게는 독자의 영혼을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시대를 초월해 읽어야 할 삶의 지침서 같은 작품들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1 2026.02.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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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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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전 다른 출판사의 같은 제목의 책들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까칠교수님의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구성이라는 것인지...이반일리치의 죽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등 다른 출판사에서는 한 권 짜리로 출간되고 있는 것들을 단편과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번역도 잘 되서 잘 읽히고 이 한 권으로 든든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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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전 다른 출판사의 같은 제목의 책들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까칠교수님의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구성이라는 것인지...
이반일리치의 죽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등 
다른 출판사에서는 한 권 짜리로 출간되고 있는 것들을 단편과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번역도 잘 되서 잘 읽히고 이 한 권으로 든든해졌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1 2026.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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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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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추리소설 위주로 책을 구매하고 읽다가 이번에는 세계문학소설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유명한 러시아의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입니다. 톨스토이는 금수저로 태어나 죽기전까지 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워낙에 많아 이 작품은 조금 묻힌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또한 명작이며  외에 다른 10작품이 더 있어 톨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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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추리소설 위주로 책을 구매하고 읽다가 이번에는 세계문학소설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유명한 러시아의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입니다. 톨스토이는 금수저로 태어나 죽기전까지 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워낙에 많아 이 작품은 조금 묻힌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또한 명작이며  외에 다른 10작품이 더 있어 톨스토이의 중단편 작품을 책 한권에 같이 만나볼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추천합니다.
w*****2 2025.07.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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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취미를 들이고 어느순간부터 문학장르에 빠져들게 됬고 점점 작품 이전에 작가 자체에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밀란 쿤데라부터 시작해서 쿤데라의 에세이 소설의기술을 통해 카프카,프루스트,조이스,무질,브로흐,세르반테스 등 위대한 작가들을 알아가며 그들이 궁금해졌고 그러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까지 이르렀다. 톨스토이의 가장 많은 작품이 담겨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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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취미를 들이고 어느순간부터 문학장르에 빠져들게 됬고 점점 작품 이전에 작가 자체에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부터 시작해서 쿤데라의 에세이 소설의기술을 통해 카프카,프루스트,조이스,무질,브로흐,세르반테스 등 위대한 작가들을 알아가며 그들이 궁금해졌고 그러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까지 이르렀다. 
톨스토이의 가장 많은 작품이 담겨있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 출간한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들을 다 구입해놨다. 앞으로의 독서가 기대되고 설렌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h 2024.1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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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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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로맨스 소설만 읽다가 주변에서 읽을만한 소설이라고 권해주셔서 편중된 책읽기 습관도 고칠 겸 구매했는데, 역시나 쉬운 소설만 읽다가 순수 소설 읽으려니까 힘드네요. 평소에 순수문학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많이 들어본 이름인 톨스토이의 소설을 실제로 읽은건 몇편 안되는데, 문체부터가 화려하고 단어들도 실생활에서 잘 안 쓰는 단어들 많이 보여서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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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로맨스 소설만 읽다가 주변에서 읽을만한 소설이라고 권해주셔서 편중된 책읽기 습관도 고칠 겸 구매했는데, 역시나 쉬운 소설만 읽다가 순수 소설 읽으려니까 힘드네요. 평소에 순수문학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많이 들어본 이름인 톨스토이의 소설을 실제로 읽은건 몇편 안되는데, 문체부터가 화려하고 단어들도 실생활에서 잘 안 쓰는 단어들 많이 보여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책 좀 자주 읽어야겠네요

h******4 2023.03.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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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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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떠올리곤 하는 것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다. 아마 『부활』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상상 속의 남자는 네흘류도프와는 다르게 환희에 젖어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용서를 구하고 있고 그게 진심이라는 건 알지만 정확히 무엇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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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떠올리곤 하는 것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다. 아마 『부활』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상상 속의 남자는 네흘류도프와는 다르게 환희에 젖어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용서를 구하고 있고 그게 진심이라는 건 알지만 정확히 무엇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는 단지 낮은 곳에 무릎을 꿇고 있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거기서 느끼는 감정은 성스러움이 아니라 안쓰러움이다. 죄를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인간은 설령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있지만 내 상상 속의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연민이다. 그는 자기를 지킬 거라곤 손톱도, 발톱도, 심지어 치아조차 없는 갓난아이처럼 보인다. 그런 상태로 자기를 둘러싼 모든 위험 앞에 자기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꺼내놓은 것이다.


강해질 때 느끼는 쾌감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동료를 제치고 먼저 승진할 때 느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았을 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약해질 때 느끼는 쾌감도 있다. 자기에게 걸려 있는 모든 안전 장치와 보호 장치를 풀고, 긴장을 내려놓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큼성큼 다가오는 불길한 위협 앞에 자신의 운명을 내려놓는 기분. 그건 아마 전래동화나 그리스 신화에 나온 제물로 바쳐진 인간이 느끼는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성경은 잘 모르지만 구절 중에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글귀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어쩌면 그건 신앙심이 깊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더 이상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톨스토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해보았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지치고 피곤한 영혼들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소설 중에 해피 엔딩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표제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캅카스의 포로> 정도가 그나마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이고 최대한 해피엔딩의 범위를 넓게 벌린다고 해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까지가 마지노선이다. <당구 점수기록원의 수기>에서 젊은 귀족은 자살하고, <크로이처 소나타>의 지주는 아내를 살해한 뒤 용서해 달라고 흐느끼고, <악마>의 젊은 지주는 자살하거나 정부를 살해한다. <무도회가 끝난 뒤>의 주인공은 포로에 대한 비인간적 행위를 보고 사랑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알료샤 고르쇼크>의 주인공은 자기 것이라고는 하나도 가져보지 못한 채 머슴으로 살다가 사고로 죽는다. 요컨대 톨스토이의 인물들이란 일부를 제외하면 자살하거나 살인을 저지르거나 사랑을 하지 못하는 몸이 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좀 서글프다. 그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크로이처 소나타>에 나오는 지주는 아무런 증거 없이 오직 의심과 질투심에 휩싸여 아내를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걸 몹쓸 짓이 아니라고 하면 대체 뭐가 몹쓸 짓인가, 라고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지주, 즉 포즈드니셰프의 주장은 이렇다. 자기에게는 자연스러운 성욕이 있었으나 사회에는 그걸 자연스럽게 해소시켜 줄 건강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창가를 다니면서도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덕분에 나중에 아내가 생겼을 무렵에는 이미 여성과 정직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는 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라고.


변명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 변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포즈드니셰프조차 그 변명으로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의 변명이 작위적이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가 아니라 그 어떤 말로도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내를 살해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인간은 비난할 수 있어도, 용서해 달라고 흐느끼는 인간은 비난하기 어렵다. 그는 자기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인간은 모두가 용서해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인간은 대개 그럴 만한 죄를 지은 인간이 아니라 납득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인간이다. 포드즈니셰프는 확실히 아내를 죽였다. 칼로 아내의 늑골을 찔렀고, 스스로 경찰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법원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므로 만약 포드즈니셰프가 단순히 질투심이 눈이 먼 광인이었다면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법원에서 용서했으므로 더 이상 용서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 자기 자신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아내를 죽였다. 그것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라면 법원이 용서하기 전에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것이 충분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용서해도 그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자신마저도 용납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말하자면 포드즈니셰프는 악인이 아니라 악행을 저지른 보통 인간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악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 그런 대사가 있었다. “자네라면 어쩔텐가? 괴물로 평생을 살겠나, 보통 사람으로 죽겠나?” 포드즈니셰프는 요컨대 자기가 괴물이라는 것을 아는 인간이다.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른 작품 속 인물들도 비슷하다. <당구 점수기록원의 수기>에서 네흘류도프는 딱히 악인이었기 때문에 몰락한 게 아니다. <악마>의 예브게니 역시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끝까지 싸웠다. <무도회가 끝난 뒤>를 읽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반이 얼마나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낭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이들의 비참한 말로는 분명 그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정말로 자기 자신 때문인가? 그 모든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온전히 통제한 결과였던가? 거기에는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


세상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물론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 안에는 분명 우리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생각보다 많은 부분은 바로 그런 부분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것이 아니었던 부분들에 의해 우리의 삶은 표류하고 우리는 끝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아마도 그런 전형의 한 극단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마음놓고 미워하거나 혐오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들이 그렇게 될 줄 몰랐듯이 우리도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지 못했다. 연민은 결국 거울이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무릎 꿇은 남자가 무엇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꼭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기도가 신에게 회신을 받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까닭은 꼭 구원이 없더라도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우리 안에 있는 게 전부 괴물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 끝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불쌍하고 비참한 톨스토이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삶의 모습으로 던지는 전언인지도 모른다.



2025년 7월 10일부터 2025년 7월 16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YES마니아 : 로얄 g*******1 2025.07.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