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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을 평생 관통했던 unquiet... 그리고 죽음과 애도
"그들의 삶을 평생 관통했던 unquiet... 그리고 죽음과 애도" 내용보기
제1부 함마르스 프렐류드 섬의 지도   그가 길잡이로 삼아야만 했던 유일한 지도와 해도는 기억이나 상상에 의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히 명료했다. - 존 치버, 『헤엄치는 사람』   함마르스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40년 동안 살며 작업했던 곳으로 스웨덴 포뢰 섬에 있다. '함마르스는 아버지의 장소'였다. (p.14)  주인공인 '나'는 지금 자신이 태어난 해의
"그들의 삶을 평생 관통했던 unquiet... 그리고 죽음과 애도" 내용보기

제1부 함마르스 프렐류드

섬의 지도

 

그가 길잡이로 삼아야만 했던 유일한 지도와 해도는

기억이나 상상에 의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히 명료했다.

- 존 치버, 『헤엄치는 사람』

 

함마르스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40년 동안 살며 작업했던 곳으로 스웨덴 포뢰 섬에 있다. '함마르스는 아버지의 장소'였다. (p.14) 

주인공인 '나'는 지금 자신이 태어난 해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인 마흔여덟이 되었다. 

아빠는 시간관념이 아주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영화를 같이 볼 시간에 늦었을 때, 그것은 아버지가 이 세상에 머물 시간이 일 년이 채 남지 않았다는 전조적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마흔일곱이던 1965년에 함마르스에 와 그곳에 집을 짓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 섬에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어머니와 사랑에 빠진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스무살도 더 어렸다. 그렇게 '나'는 '혼외 자식'으로 태어난다. 1966년의 일이다.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자 어머니의 자식이었지만 두 분의 자식이 아니었다. 우리는 결코 셋이었던 적이 없다. 그래서 내 책상에 늘어놓은 사진들을 죽 살펴보면 우리 세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내가 있을 뿐이다. (p.13)

 

엄마도 첫 남편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아홉 번째 자식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년 동안 함께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마르스에서 보냈다. 

여자아이는 오슬로 외곽의 스트룀멘에 있는 커다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산다. 어머니는 항상 남들의 시선과 생각을 의식하는 사람이었고, 여자아이는 매우 신경질적이고 갈비뼈가 만져질 정도로 말라깽이였다. '아이는 언제나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머니와 한방에 같이 있을 지라도 말이다.' (p.38)

부모가 헤어지고도 여자 아이는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를 들고 여름마다 함마르스에 와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는 갖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여자 아이는 그 규칙을 잘 안다. 가령, 수영을 잘했던 아이가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으면, 아이가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 걸 걱정한 아버지는 작업을 중단하고 나와서 얼른 나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매일 들어가 글을 쓰는 서재가 있었는데, 저녁이 되면 사무실은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글을 쓰는 동안엔 어떤 이유로도 방해하면 안 됐다. 어머니에 의하면 아버지는 '성깔이 있기' 때문이다. 

 

1978년 아버지의 예순 생일에 아버지는 함마르스로 자신의 아홉 아이들을 모두 불러 생일파티를 열었다. 여자 아이가 12살이 된 여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주 인용하는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가 썼듯이 모름지기 좋은 생각이다 싶은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 좋은 생각에 너무 빠져들어 그 밖의 다른 것을 못 보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마당을 채워나갔고, 이들은 작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비오는 여름날을 제일 좋아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여자아이도 즐겨 목록을 만들고 수를 헤아렸다. 그래서 누군가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집이 네 채, 자동차가 두 대, 아내가 다섯 명, 수영장이 하나, 아이들이 아홉, 영화관이 한 채 있어요. (p.61)

 

여자아이는 한동안 미국에 살다가 조국인 노르웨이로 돌아갔고,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올라브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다들 올라로 불렀다. 매년 여름 그녀는 엥엔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자는 첫 남편과 이혼하고 일년 후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 아버지는 그 남자가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잘 생겼고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 딸이 태어났고 딸의 이름을 에바라고 지었다. 여름이면 그녀의 가족은 함마르스로 와 엥엔에서 지냈다.

 

제2부

스풀들

 

회고록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녹음기는 써보셨나요?

- 사무엘 베케트가 토마스 맥그리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숄더백에 소지품을 모두 다 집어넣고 다니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목 아래쪽에서 고관절까지 척추가 비틀려 있다. 

 

오랫동안 나는 가방에 내 아버지 아니 아버지의 잔재를 넣어 다녔다. 아버지는 2007년 여름에 돌아가셨고 그 후로 몇 년 동안 아버지는 다른 잡동사니와 함께 내 가방에 들어 있었다. 

내가 가진 아버지의 잔재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봄에 한 녹음 테이프 여섯 개였다. 아버지의 음성. 그리고 침묵. 그리고 내 목소리. (p.79)

 

책을 쓰자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아버지는 여든 일곱이었다. 때때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거나 혼동했지만 기억력은 '나'보다 좋았다. '나'와 아버지는 늙어가는 일에 대해 책을 쓰기로 한다. '나'는 아버지가, 늙어가는 것은 고역이며 매일 아침 앓고 있는 질병들의 목록을 작성하는데, 항목이 여덟 개를 넘지 않으면 침대에서 일어난다고 한 아버지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2007년 봄, 아버지에게 경미 뇌경색이 연속으로 왔고 나는 새로 산 녹음기를 가지고 함마르스로 간다. 아버지는 단편적인 단어뿐아니라 어휘의 절반을 잃어버렸다. 한쪽 눈의 시력까지 나빠졌다. 그리고 그 둘은 '늙어감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한 인터뷰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7월 말 새벽 4시에 돌아가셨는데, '나'와 아버지는 5월에 인터뷰를 녹음했다. 그 녹음기가 내 가방에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피부는 달걀처럼 연해서 마이크를 옷깃에 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녹음기를 이용했는데, 기계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누가봐도 명백한 나의 불찰로 음질이 형편없는 녹음 테이프 여섯 개만 남았다. 

 

먼저 아버지를 땅에 묻고 애도하고 그 다음에-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면-테이프를 들어보자. (p.112)

 

그러나 이사후 오랫동안 나는 그 녹음기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칠년 후 다락에 올려둔 상자에서 우연히 그 녹음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인터뷰한 녹음 테이프를 듣는다. 

 

여섯 개의 녹음.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말을 멈춘 부분에 대해서 물었을 것이다. 침묵. 텅 빈 공간.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p.118)

 

이후의 부분에선 테이프를 들으며 녹취한 내용과 그와 관련된 '나'의 상념,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나열된다.

 

우리는 언제나 도착보다 출발을 더 잘 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났을 때도 그리 젊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인 마흔 여덟 살이었고, 나보다 항상 마흔 여덟 살이 더 많다. (p.129)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도 꺼낸다. 어머니와 외할머니 난나, 그리고 외가와 관련된 이야기들과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된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함께 듣던 아버지가 전축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남자 생기가 넘쳐. 그 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생명력이 몸으로 주입되는 것 같지. 상황에 따라, 가령 서재에 혼자 있으면 울음이 터져. 나는 눈물이 흔한 남자가 아니지 않니. 너도 알다시피. 결코 아니야. 하지만 이곳에 홀로 앉아서 내 음반들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차오르는 거야. 살아 있다는 느낌이 한껏 고양되는 거지. 내 말뜻을 알겠니? (pp.156-157)

 

아버지의 부모,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할머니의 이름은 카린이었고, 전문간호사였는데, 목사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할머니는 삼십 년 동안 매일 일기를 썼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한다.

 

내 이야기는 점점 온 가족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p.161)

 

부모는 여자아이에게 카린 베아테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름으로 아이를 부르지 않는다.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자 이중 이름은 마치 고상한 식기라도 되듯 결혼이나 이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쓴다. 그 외의 날에 그녀는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p.163)

 

남자 나는 인생의 어떤 부분들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 견딜 수 없는 부분들-아니면 전에는 참을 수 없다고 규정했던 것들-이 나를 쥐고 있던 손아귀에 슬슬 힘이 빠져서 물 먹은 누더기처럼 가라앉고 가라앉다가 끝내 녹아버리는 거야.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예전에 자신을 괴롭혔던 이런저런 속박에서 풀려나게 돼. 한편으로는 그만큼 놓쳐버리는 것도 많아. 그건 확실해. 나는 내게서 떠나 버린 것들을 무엇보다 애달파 할 줄 알았어. 그런데 그렇지  않아. 한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내게서 떠나버린 것들을 나는 애달파 하지 않아. (p.168)

 

나이가 들면서 한때는 중요다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아버지는 고백한다. 그러나 '늙어가는 건 아주 힘들고 사람을 녹초로 만들고 긴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아름답지 않은 일'(p.177)같다고 생각한다. 신에 대한 의심도 사라졌다. 그런 시간은 지나갔다. '불신과 의심, 그런 것들에 대해서 떠들어댈 기력이 남김없이 사라졌'(p.189)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일과 관련하여 자신의 삶의 상당 부분이 여자를 향한 어마어마한 애정을 축으로 돌아갔음을 인정한다. 

 

아버지는 인터뷰집의 제목으로 '총잡이 호색한의 죽음'을 제안한다. 언젠가 그런 제목의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하면서. 

 

제3부

뮌헨으로

 

...풍경이 아니라 감정을 찾아서.

-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봐리』

 

3부는 이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함마르스와 아버지의 추억이 여름에 한정된 것이었다면, 그밖의 모든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3부는 그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오슬로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배우인 엄마가 자주 집을 비워 보모들이 맡아 키웠다. 할머니네 집에 가거나 할머니가 집에 와서 돌보기도 했다. '나'는 보모들이 사라지면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보모들을 괴롭혀 그들이 일을 그만두게 만든다. 엄마와 할머니, 나와 할머니, 나와 엄마 사이엔 미묘한 긴장과 경계가 있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나를 '나의 작은 중국인'이라고 불렀다. 중국 여자들이 늘 미소짓고 예의바르게 행복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p.216) 그래서 엄마가 그 별명을 알았다면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엄마는 나를 마우스라고 불렀다. 

세금 문제로 구설수에 휘말린 아버지는 다섯 번째 부인이었던 잉그리드와 스웨덴을 떠나 뮌헨에 집을 장만한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엄마의 전화를 나는 매일 기다린다. 엄마가 약속한 시간에 전화를 안 하면 나는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렇지만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다시 엄마가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나에게는 하이디라는 친구가 있는데, 하이디의 아버지는 전쟁에 관한 악몽을 꾼다.

 

꿈이 폭주하는 어른 남자.

아버지도 저런 꿈을 꿀까? 아니면 어머니는? (p.234)

 

나는 영화를 찍는 엄마를 따라 종종 미국에서 산다. 내가 처음 미국에서 산 건 다섯 살 때였다. 엄마에겐 항상 추파를 던지고 구애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열 살 때 두번째로 미국에서 살았는데 그때 엄마는 러시아 남자와 사귀었다.

엄마는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라 엄마가 잘 때는 절대 깨우면 안 됐다. 나는 종종 엄마를 찾는 꿈을 꾸곤 했다. 

 

열두 살에 다시 미국에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발레수업을 계속 하고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국제전화는 너무 비싸 하이디와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엄마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아이들은 우유를 마셔야 한다.

2. 아이들은 나무 근처에 살아야 한다. (p.250)

 

그래서 나는 뉴욕에서 차로도 두 시간이나 떨어진 작은 마을의 노란집에서 살게 된다. 엄마는 뉴욕에서 지내고 나는 나무들과 함께 산다. '나는 미국이 밉다. 나는 어머니가 밉다.' (p.251)

 

엄마는 천 달러나 주고, 고양이 번식업자에게서 고양이를 사주었다. 나는 수지 졸리라고 고양이의 이름을 짓는다. 엄마는 미리 정한 시간에 전화를 걸겠다는 약속만 빼고 다른 약속은 모두 지켰다. 그런 엄마에게 일말의 존경심을 담아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진실한 거짓말쟁이야.' (p.258)

 

나는 어린 시절이 조금 더 빠르게 흐르면 좋겠다. 내가 아이라서 싫다. 다른 아이들도 싫다. 그들이 나를 보는 표정도, 수군거리는 것도, 예쁜 머리카락도, 비밀도 다 싫다. (p.260)

 

노란집에서는 두 명의 보모가 나를 돌본다. 그해는 1978년이고 어머니는 곧 마흔이 된다. 

어머니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규칙들의 목록에 하나를 덧붙인다.

 

3. 어머니는 딸과 친구가 되어서도, 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아서도 안 된다. 어머니는 누가 어머니고 누가 딸인지, 누가 성인이고 누가 아이인지 명심해야 한다. (p.266)

 

그러나 여자아이가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자 위로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노란집에 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엄마는 전화를 걸 때마다 나에게 착하게 굴라고 말한다. 엄마는 내가 늘 착하게 군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끔찍할 정도로 서툰 사람이었고, 사랑스럽고 위태로운 용기를 지녔고 상처받기 수운 연약함과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거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에게는 겉으로 드러는 모습이 중요했다. '어머니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존재했다.'(p.283)

 

어머니가 나를 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여자아이는 궁금하다)? (p.283)

 

어머니는 아버지의 뮤즈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에게 구혼을 받았다. 어머니의 구혼자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남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천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독특한 시선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말했다. 나는 뮤즈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표현에 대해 어머니가 불쾌해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정말 바이올린이 되고 싶었을까? (p.288)

 

엄마는 또다시 장기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이번엔 아빠가 있는 뮌헨에도 들릴 예정이다. 엄마는 자신이 전화를 안 한다면 '그것은 전반적인 국제 상황 때문이라고 했다. 냉전과 공산주의 때문이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이다'. (p.305)

나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릴 능력이 없다. 과민반응을 하고, 겁을 먹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손 쓸 도리가 없게 된다. (p.305)

나는 또 보모들에게 상처를 주고 못 살게 괴롭힌다. 노란집에서도 보모가 떠났다.

 

제4부

나를 긍휼히 여기사

 

그는 스스로 단어들을 주조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리하여 한 손에 고통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순수한 소리 덩어리를 

쥐고(바벨의 사람들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있었는데,

그 두 가지를 충돌시켜

비로소 새로운 단어가 튀오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 버지니아 울프, 『아픈 것에 대하여』

 

아버지와 인터뷰를 하며 나는 아버지에게 목사였던 할아버지에 대해 묻고 아버지는 목사였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대답한다. 

 

남자 (...) 아버지에게는 늘 규칙, 규칙뿐이었어..... (p.331)

 

아버지는 그걸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지만, 아버지 역시 규칙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것에는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단 한 번도 물 잔을 주방에서 거실로 가지고 가지 않았다.' (p.350)

아버지는 건강을 잃기 전까지만해도 침실용 탁자나 벽, 서재와 거실의 탁자 등에 글을 썼다. 멀리서 보면 탁자의 표면들이 달의 지도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죽으면 다섯번째 부인이었던 잉그리드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아버지는 쪼글쪼글해지고, 존재감도 희미해지고, 눈은 어느새 흐릿해졌지만 두 볼만큼은 장미꽃처럼 발그레했다.

 

앤 카슨이 어딘가에 쓴 이 문장을 나는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 "왜 우리는 죽기 전에 홍조가 들까?" (p.346)

 

아버지는 어떤 날은 나를 알아보고 어떤 날은 그러지 못했다. '죽음에는 시간이 걸렸다. 죽음은 지속적인 과업이었다.' (p.347)

 

아버지의 영화와 연극, 그리고 글엔 항상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캐릭터들이 있었다. 어디에나 죽음이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해 아버지에 묻고, 아버지는 자신은 온당한 수준에서만 죽음에 사로잡혔던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죽음을 미리 정해놓았다. 나는 조약돌 해변과 옹이진 소나무들, 바다, 쉴새 없이 변하는 빛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내 집의 내 침대에서 죽을 것이다. (p.357) 나는 빌어먹을 양로원에는 들어가지 않을 거야. 나는 무기력하게 내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을 거야. 나는 격해진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을 거야. (p.358)

 

늙어가는 건 일이다. 한마디로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일이다. 아빠는 "한편으로는 잉그리드를 다시 만날 거라고 믿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죽는다는 건 촛불을 훅 불어 꺼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p.363)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장서가 수천 권이었고, 항상 글을 읽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잉그리드가 죽고나자 아버지는 내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꽉 맞잡은 우리의 손 마디마디는 밤새 희어지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나는 일흔네 살이야."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 하필 지금 신이 나를 이 세상에서 쫓아내기로 마음을 먹었어." (p.368)

 

제5부 

당신의 밤의 형제

 

우리가 헨리 포터에 대해서 확실하게 아는 사실은

그의 이름이 헨리 포터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 밥 딜런/ 샘 셰퍼드

 

"자서전은 홀로 있다는 감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존 버거는 이렇게 썼다. (p.373)

 

나는 조지아 오키프의 사진을 마주친 순간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게는 녹음을 해둔 아버지와의 대화가 여섯 개 있지만 그 녹음을 할 즈음 아버지는 이미 너무 연로해 아버지의 역사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든 역사도 대부분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p.374)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침실용 탁자의 사진을 찍어 휴대폰에 저장했다. 나는 그 탁자 표면을 확대해 탁자에 쓰여진 글들을 읽는다. 아버지가 쓴 글 들 중에는 '겁에 질렸다'가 가장 많다.

 

'나'는 오슬로 TV를 틀었다가 중년의 아버지가 인터뷰한 방송을 보게 된다.

 

아버지의 소지품은 모두 경매에 팔렸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모든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밝혔다. (p.380) 유언장엔 '나는 내갈색 코듀로이 바지와 붉은색 체크무늬 셔츠, 적갈색 니트조끼를 입힌 채 묻히고 싶다.'(p.380)라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감정적인 호들갑을 드러내는 행동을 어떤 상황에서도 용인해서는 안 되는'(p.380) 사람이었다. 자녀들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념으로 오천 크로네 이하의 값어치를 지니는 유품을 하나씩 가질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나는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를 찍은 사진을 고른다.

 

아버지의 집을 구입한 사람이 아버지의 유품도 모두 사들여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유품은 전부 스톡홀름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함마르스 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고 사방이 고요했다.

 

서 있고 걸으면서 보는 세상은 누워서 보는 세상과 다르다. 똑바로 누워서 천장을 본다고 하자. 이를 테면 지금의 나나 베케트의 『컴퍼니』에 나오는 이름없는 늙은 남자나 울프가 병에 대해서 쓴 에세이에 나오는 이름 없는 환자처럼 누워 보면 평소와 다른 것에 주의가 쏠리기 시작한다. 얼룩이나 파리, 페인트 얼룩, 벽지의 가장자리 창문, 하늘,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구름. 울프가 쓴 "텅 빈 집을 향해 영원히 상영되는 거대한 영화"처럼. (p.386)

 

'나'의 집엔 사람 네 명과 개 한 마리가 산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바닥에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뭔가에 부딪히거나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매번 누군가 사고를 치면 나머지 세 명은 뭘 하고 있건 하던 일을 멈추고 '거기, 무슨 일이야? 문제 없어? 괜찮아?'하고 소리친다. 그러면 금세 이런 대답이 들린다. 그럼 아무 문제 없어. (pp.387-388)

 

나는 1969년 8월 17일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는다. 거기엔 "당신의 밤의 형제"라는 서명이 있다. 나는 부모님이 주고받은 편지의 사본을 전부 가지고 있다. 이 다음 부분에서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나'는 1969년에 대해 서술한다.

 

1969년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났다. 아이도 데려 갔다. 봄이였고 여자아이는 그해 여름에 세 살이 될 터였다. 아버지는 함마르스에 남았다. (p.391)

 

부모님은 옷을 다리거나 바닥을 닦는 일만 모르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법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크면서 깨달았다. 자식을 향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분명 사랑하셨다. 내 말은 양육에 대해서 몰랐다는 뜻이다. 가정을 이루어 가족을 꾸린 후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p.396)

 

'1969년의 봄은 온화하지만 얼음장 같은 바람이 불'(p.401)었고, '엄마의 얼굴에는 빛이 지닌 모든 뉘앙스가 살아 있고 너무 젊어서 내 딸처럼 보일 지경'(p.401)이다.

 

나는 밤마다 글을 읽어주던 아빠에 대해 생각한다. 

 

이하에서는 꽤 유명했던 사진작가와 함께 파리로 사진을 찍으러 갔던 일화가 기술되어 있다. 처음에 이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던 엄마는 압박감 때문에 결국 허락하고 만다. 거기서 두 사람은 관계를 맺는다. (참고로 그때 저자는 미성년자였다.)

 

그리고 시간을 건너 뛰어 엄마가 된 후 딸 에바와의 일상들에 대해 서술한다. 

 

'나'의 가족은 개 한 마리를 키운다. 아버지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개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사는 동안 닥스훈트 한 마리를 키웠다. 두 분이 갈라섰을 때 엄마는 나를 맡고, 그 닥스훈트는 아버지가 맡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빠와 내가 함께 쓰기로 한 책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뿐만 아니라 돌아가시고 몇 년이 흐른 뒤에도 내가 아버지를 애도하는 방법이 틀린 것 같다고 생각한다. 

1910년 톨스토이는 자신이 죽기 며칠 전 아내인 소피아에게 "나는 내 나이의 늙은 남자들이 으레 하는 일을 할 것이오. 고독과 고요함 속에서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기 위해 이 세속을 떠나는 것이오."라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아버지의 서재 벽에서 노란색 포스트잇 두 장을 발견한다. 왼쪽 포스트잇에는

살아있는 신의 손아귀로 굴러 떨어지는 일은 두렵다. 그러나 사람은 그때서야 비로소 속죄할 수 있다. (p.432)

라고 적혀 있었고, 오른 쪽에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죽음 앞에서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 평생을 기울여 찾는 것,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슬픔, 이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 (p.433)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이 걸을 수도 없고 눈도 안 보인다는 걸 한탄했다. '허벅지에 양손을 툭 떨어뜨리고 한동안 입을 열지 않'(p.444)았다.

 

남자 너는 내 말을 안 듣고 있는 거냐? 너와 나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고.... 너는 네 어머니의 방식으로 봐.... 너에게는 나의.... 내게 있는.... 그게 뭔지 나도 모르겠구나. (p.445)

 

제6부

지그

 

그걸 다 두고 가야 한다면

필시 몹시 따분할 거야.

- 스완의 마지막 말 가운데

 

상여꾼들은 평생 그 섬에서 살았다. 그들은 포뢰구베르-섬에서 오래 산 사람들-다. 아버지도 포뢰구베르로 불리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그 사람들을 한 사람씩 찾아가 묻는다. 내가 죽으면 내 관을 무덤까지 운구해 주실 거요? (p.451)

 

여든 살에 아버지는 영원히 함마르스로 옮겨온다. 아빠는 살이 너무 빠져서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끈을 하나 구해 허리에 묶었다.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끈으로 허리를 동여매야 해." 아버지가 전화로 말한다. "그래도 적어도 내 손으로 끈을 묶어." (p.460)

 

아버지는 여든여섯이 되고 여름에 여든일곱이 된다. 가끔 아버지는 고독이란 것이 과대평가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아버지는 자신의 지프를 타고 슬리테에 있는 오랜 친구인 목수를 찾아가 자신을 위한 관을 제작한다. 신문에서 오린 교황의 관을 보여 주면서 단순한 나무상자처럼 만들어주길 요구한다.

 

아버지가 휠체어를 이용하게 되면서 함마르스 집에는 계단이 없어졌다. 마지막엔 문턱도 사라졌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백묵처럼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해변을 산책하거나 숲에서 자전거를 타던 시절이 그리웠다.' (p.463)

 

7년이 지난 후 나는 테이프를 들으면서 녹취를 하고 있다. 스웨덴어를 노르웨이어로 번역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아마 번역으로 이 목소리들의 소유권을 갖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끔 아버지는아침이 되어도 일어날 수 없었고 그러면 나는 아버지의 침대 곁을 지키곤 했다. 

안개가 슬금슬금 함마르스로 밀려와 그곳을 오고 간 사람들 모두를 휘감아 버렸다. (p.486)  

 

아버지에게는 상대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휠체어에 갇힌 마네킹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어도, 아버지는 이 능력만은 잃지 않았다. 나와 함께 있어요. 나를 버리지 말아요. 당신은 내가 곁에 가까이 둔 유일한 사람이에요.' (p.487)

 

아버지의 글쓰기 방에 넘치는 침묵은 온전히 상냥하지만은 않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아버지가 묻는다. '내가 내 언어를 잃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슨일이? 이내 파편들 외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p.491)

 

늙어가는 건 아주 힘들고 사람을 녹초로 만들고 긴 시간에 거쳐 벌어지는 아름답지 않은 일 같아. (p.492)

 

지금 불평을 하려는 게 아니야. 나는 여든넷이야. 징징거리려는 게 아니라네. 다만 조금 놀랐을 뿐이야. 뭐랄까, 음- 내가 고루한 노인네가 되어가고 있잖아. 내게 벌어지는 일들이 좀 우스워. 통 말을 안 듣는 몸뚱이, 질병들. 다양한 형태의 놀라움이 있어. (p.493)

 

아버지는 할머니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엔 아버지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려고 했으나 나중엔 자신도 아버지와 함께 보롬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연극팀과 함께 그리스에 갔던 일을 회상한다. 아버지는 그당시 스톡홀름 왕립드라마극장에서 에우리피데스의 <바커스의 시녀들>을 연출중이었다.

나는 십대였고아버지는 네 늙은 아비였다. (p.499)

아버지는 그곳에서

"내 말은 말이지. 그 당시 사람들이 신들이 바로 근처에 있다고 생각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거야."(p.507)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네번째 부인인 셰비가 뎀바에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그곳에 가 셰비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후 아주 긴 문장으로 또렷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아버지가 다시 말문을 연다.

"이제 늦었어요. 이 늙은이는 집으로 가고 싶구려." (p.517)

 

아버지가 돌아가신 여름은 쌀쌀했다. 

우리 중 맏이인 잉마리에가 꽃집마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오로지 붉은 색의 꽃으로 관 주위와 위를 장식할 것이라는 희망사항을 똑똑히 전달했다. 누군가 노란색이나 분홍색 꽃을 급히 보내고 싶어한다면 꽃집에서 책임지고 설득해 단념시켜야 했다. 

아버지의 전 부인들은 모두 죽어, 네번째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셰비와 내 어머니만 참석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아내였던 잉그리드는 원래 묻혔던 곳에서 아버지 옆으로 곧 옮겨올 터였다.

 

'늙어 이제는 세상을 등진 아버지를 묻기 위해'(p.527) 교회에 가면서 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터뷰를 떠올린다.

 

여자 무슨 뜻이에요, 아버지나 저나 마찬가지라니?

남자 오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게 늘 질문만 퍼붓는구나.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너도 알잖니. 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p.528)

 

천 가지나 되는 소음이 교회와 묘지를 매우고 있다.

 

교회의 종들이 울리고, 카메라가 찰칵거리고, 한 줄기 바람에 치맛자락과 바짓단, 실크 스카프, 양복의 깃, 남자들의 넥타이, 목사의 상아색 가운이 펄럭거린다.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빙그르르 돈다. (p.533)

 

YES마니아 : 로얄 c*****g 2023.06.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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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quiet,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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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문제적 작품이랄까. '보편적 정서'를 계속 비껴가며 이야기가 전개되어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 '불안'이라는 책의 제목은 페소아의 『불안의 책』에서 가져왔는데, 소설 중에서 딸과 아버지가 함께 만드는 아버지의 회고록 제목이기도 하다. 페소아도 그렇지만 꽤 많은 작가들이 호명되어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그런 부분에서 충족되는 즐거움이 꽤 크다.   이야기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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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문제적 작품이랄까. '보편적 정서'를 계속 비껴가며 이야기가 전개되어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

'불안'이라는 책의 제목은 페소아의 『불안의 책』에서 가져왔는데, 소설 중에서 딸과 아버지가 함께 만드는 아버지의 회고록 제목이기도 하다. 페소아도 그렇지만 꽤 많은 작가들이 호명되어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그런 부분에서 충족되는 즐거움이 꽤 크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처음엔 여자 아이와 아빠의 이야기다. 아빠가 마흔여덟에 태어난 아이. 그래서 소녀와 아버지 사이엔 늘 48년이란 시간의 갭이 존재한다. 아버지는 매우 유명한 영화감독인데 배우인 엄마와 영화를 찍다 사랑에 빠졌다. 소녀는 둘의 사랑의 결실이지만 '혼외자'다. 아버지는 다섯 명의 부인과 아홉 명의 자녀가 있는데 소녀가 아홉 번째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 이 무슨 막장 드라마급 이야기인가.' 싶으면서 이후에 전개될 이야기에 대해 지레짐작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아주 담백하게 흘러간다.

부인들 사이, 혹은 남편과 아내 사이, 혹은 자식들 간의 갈등이나 싸움은 전혀 없다. 자신의 평범하지 않은 출생에 대한 신세한탄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왜 책 제목이 '불안'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평화로운 '회고담'이 이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이야기가 점프 해서 소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혼을 한다. 그리고 재혼을 한다.

그 사이 아버지는 늙고, 기억력이 점점 희미해지고, 언어를 잃는다. 이젠 성인이 된 딸이 아버지와 함께 책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섯 개의 인터뷰 테이프를 남기고 죽는다.

아버지가 죽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딸은 아버지와 인터뷰했던 테이프를 듣는다.

여기부터는 말하자면 일종의 '녹취록'이 시작되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몇 번의 전환을 맞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은 린 울만의 '자전 소설'로 봐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아버지는 실제로 유명한 영화감독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뮤즈였으며, 작가에겐 여덟 명의 남매가 있는데 모두 영화감독 내지는 영화배우들이다. (아, 아버지의 강력한 DNA여!)

재밌는 건 소설 속에서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영화감독인 아버지는 목사의 아들이다. 그러나 부모와도 별 갈등이 없는 걸로 묘사된다. 부모는 아들의 다섯 번째 결혼식에도 참석한다.

그러나 아홉 번째 손녀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 뒤 할머니는 심장마비로 죽는다.

한국 스타일의 '막장 드라마'급 전개가 펼쳐지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소설과도 유사하지 않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가늠이 안 된다.

지금까지 읽었던 노르웨이 소설들과도 전혀 다르다. 서늘함이나 차가움도 없다.

이건 뭘까. 처음 경험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데서 오는 당혹스러움이 크다.

 

이 책은 매우 느리게 읽힌다. 536쪽이라는 꽤나 많은 분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위에서 거론한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걸 인지했을 때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나 델핀 드 비강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혹은 장 지오노의 딸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장 지오노, 나의 아빠』 등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무의식적으로라도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품에 몰입하면서, 이 작품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린 울만이라는 사람과 그의 인생을 존중하게 되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참고로 작가의 아버지도 여름에 돌아가셨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나처럼 아버지를여읜 친구가 위로했다. 임신을 했을 때와 비슷했다. 임신을 하면 어딜 가나 임신부가 보인다. 어느새 그들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눈에 띄면 말없이 인사를 건넨다. 일종의 자매애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잃으면 똑같이 아버지를 잃은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잃은 작가들의 책과 기사를 찾아 읽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돌아가신 어머니보다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쓴 작가들이 더 많이 떠오르지만 말이다.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만 아니라 돌아가시고 몇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가 아버지를 애도하는 방법이 틀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나 양친을 모두 잃은 작가의 책을 수도 없이 읽었다. 다음으로는 배우자를 잃은 작가의 책을 읽었다. 상실과 다른 형태의 애도를 다룬 책을 아무리 읽어도 충분하지 않았다. (p.429)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자였던 '나'의 아버지는 생전에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카이브와 재단이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얼굴이 들어간 우표와 지폐도 발행되었고, 아버지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겼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매우 사적이므로, 그 어느 것도 아버지를 잃은 상실을 채워줄 수는 없다. 부모를 잃는다는 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매우 사적인 경험이고, 따라서 오로지 홀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작가는 아버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아버지가 죽은지 8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그 시간을 갖게 된다.

한편, 남자는 살아 생전 다섯 번이나 결혼했지만, 그의 장례식에 온 건 네번째 부인과 작가의 어머니밖에 없다. 모두 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문득, 오래 사는 건 참 쓸쓸한 일이구나 싶어진다. (실제로 영화감독이자 무대연출가였던 작가의 아버지는 시력과 언어를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갔다고 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챕터인 6부의 제목은 '지그'인데, 바로크 시대의 역동적인  춤곡을 일컫는다. 딸이 회고하는 아버지는 규칙을 중시하고 언제나 철저히 준비하는 엄격한 사람이었는데, 심지어 아버지는 죽은 후 쓰게 될 관까지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두고, 자신의 관을 운구할 사람들까지 미리 지정해둘 정도다. 자신의 죽음까지 철저히 준비하는 인간, 그 사람의 일생동안 그 삶을 지배적으로 관통했을 '불안(unquiet)'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건 말하여진 것, 글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그러지 못한 것들이 아닐까 싶어졌다.

 

작품을 읽는 동안 이 소설의 제목이 '불안'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제목이 'Anxiety'가 아니라 'Unquiet'일까. 가령, 내가 새벽 산책을 좋아하는 건 그 시간이 완벽하게 'quiet'하기 때문인데, 그런 측면에서 'quiet'가 없는 상태를 살았던 작가 (혹은 작가의 아버지)가 가장 동경했던 게 'quiet'였던 걸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증폭되는 의문이자 질문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3.06.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