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한국 작가 소설들을 읽었다. 또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도 간간히 읽었다.
문득, 미지의, 새로운 시인을 만나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만난 책. 김학중 시인. 이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2009년에 등단해서 계속 시를 써 왔고, 이 책에 수십편의 신작을 담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제목이 팍 와닿아서 선뜻 선택했다.
얼마전에 ‘기형도’ 시를 읽은 여파일까. 괜히 기형도 비슷한 구절을 만나면 반가웠다.
제목과 동일한 시가 있나 해서 가장 먼저 찾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시를 한편씩 읽어가는데 그 속에 이 단어들이 자주 나왔다. ‘바닥’. ‘소리’.
「아름다움은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도착하는 것이다」 라는 구절에 캬 감탄한다.
또, 우리는 「견뎌 온 세계로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며, 우리는 서로를 일으키는 무게, 라는 구절에 감동했다.
누군가의 ‘등 뒤가 되어주는’ 것, ‘바닥’에서 기다림을 성숙시킨다, 라는 의미가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
흔히 ‘바닥’이란 말은 안 좋은 의미로 쓰이는데 김학중의 시에선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대였다.
밤에는 바닥을 더 선명히 느끼게 된다. 바닥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그것을 딛고,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참 가치있는 일이 된다.
알 듯 모를듯한 점도 있지만, 그게 시 작품을 감상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런 작품을 찾았는데, 만나서 참 반갑고 기뻤다. 두 편 전문을 발췌해본다. Aslan
나의 밤은 오랫동안 불면이라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은 밤이다 아름다움은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도착하는 것이다 지나쳐 가는 스침이여 나를 흔들지 못하느니 이 긴 밤이 내게 이미 삶이었듯이 먼저 당신에게 눈먼 나의 삶이 밤이었듯이 기다림이 더듬어 닿은 땅의 신호들을 따라 나는 다만 걷고 걸어 걸음 속에 잠들었네 그대를 보았다는 말이 들려도 멈추지 않았네 이 걸음들 속으로 그대의 곁이 깃들도록 그렇게 나의 밤은 오랫동안 불면이라 그대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네 다만 음성으로 오는 순례의 신호들이여 소리는 견뎌 온 세계로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니 밤이여 우리가 서로를 일으키는 무게였구나 그때에는 밤의 길을 따라 걸으며 모르고 있었구나 우리 스스로 깃들었네 길들의 바닥이여 이렇게 밤은 우리의 몸을 얻었구나 여기에서 우리가 시작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도착하는 질문이 흔드는 데로 우리는 불안을 다 맡겼으니 그대 곁에서 숨 쉬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삶이었으므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사랑하였으니 밤이여 따듯하여라 나의 밤은 오랫동안 불면의 노래였으니 너의 곁에서 노래는 늘 깨어 와서 너를 안을 것이다 밤이여 모든 것을 몸으로 마주하게 하는 나의 영원한 당신이여 내가 끌어안은 그대의 곁이여.
밤은 누군가의 역
밤은 누군가의 역 순진하게 내려와 앉으며 정차하고는 지나간 이름들이 자라 나와 내리는 모든 바닥들 바닥에 시간이 뿌려 두고 간 낱알들이 살이 올라 바람 부는 쪽으로 아무렇게나 서걱거려도 좋은 시간 바닥에 앉아야 기다림이 익지 아무 곳이고 역이 되지 나지막이 다들 내려 주고 남는 바닥이야 잠드는 역을 떠나는 막차들은 불을 끄고 천천히 떠나가고 이제 남은 바닥은 흐릿하게 /순진한 깊이 /마감이 임박한 오늘에게 시간만이 데려다줄 수 있는 안식을 주는 깊이 아직 그날인 누군가 그대 그대로 붙잡아도 어둡기만 한 대답들이 충만해지는 가만히 내려앉아 등 뒤가 되어주는 누군가의 역 등으로 다가가는 일이 밤이라니 그대가 그대로 이날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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