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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를 그리면서 나를 잊고, 다 그리고 난 후에는 난초를 잊어라 - 어느 선승의 말
"난초를 그리면서 나를 잊고, 다 그리고 난 후에는 난초를 잊어라 - 어느 선승의 말" 내용보기
"'선문답(禪問答)'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예전 동양철학 강의를 들었을 때, 교수님이 나를 지명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얼떨결에 나는 '김종필'이라는 정치인의 이름을 댄 적이 있다. 좌중은 웃음의 도가니에 따졌고, 교수님은 '선문답'처럼 쉬운 것이 없는데 어째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대느냐면서 쓴웃음을 지으셨다. "선문답이 쉽다고...." 나 역시 반문하고 싶었
"난초를 그리면서 나를 잊고, 다 그리고 난 후에는 난초를 잊어라 - 어느 선승의 말" 내용보기
"'선문답(禪問答)'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예전 동양철학 강의를 들었을 때, 교수님이 나를 지명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얼떨결에 나는 '김종필'이라는 정치인의 이름을 댄 적이 있다. 좌중은 웃음의 도가니에 따졌고, 교수님은 '선문답'처럼 쉬운 것이 없는데 어째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대느냐면서 쓴웃음을 지으셨다. "선문답이 쉽다고...." 나 역시 반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종(禪宗)의 역사에 대해 조금 알고 나자, 선문답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 듯 말 듯한 것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생활 속에서 선문답을 해석하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선문답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를 갖고 있는 것은 '선(禪)'을 '선(禪)'으로 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참고서에서 "교외별전, 돈오점수, 정혜쌍수......." 등등의 말을 외웠던 기억은 누구나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배우면서 전수하는 불가의 가르침은 바로 '교종(敎宗)'의 가르침이었다. 하나하나 배우면서, 좀 나쁘게 표현하면 암기를 통해 지식을 늘려나감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교종의 가르침이라면, 선종의 가르침은 이와는 아주 다르다. 이 책에 근거해서 선종의 가르침을 정리한다면 견성(見性)(깨달으면 곧 부처가 된다), 돈교(頓敎)(단번에 깨침, 돈오(頓悟)) 정도로 충분하다. 자신의 본성을 직관하는 것이 바로 구도(求道)의 길이며 다른 모든 마음은 헛된 망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깨닫고 난 후에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삶 속에서의 진리 설파가 선종의 핵심 교의이다 우리는 '스님'이라고 하면 갈빗대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금식하고 고행하는 고행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선종은 그런 가르침을 부정한다. 심지어 선종에 속하는 한 스님(운문선사)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엽기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런 발언의 목적은 단 하나다. 자신의 본성을 직시하여 밝히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번역이 썩 좋지 못한 책이다. 편역하신 분이 비록 고승이기는 하지만, 일상적인 언어와는 동떨어진 불교용어로 번역해 놓아서 일반인들이 읽기에 그리 쉽지 않다. 아마 나 역시 선종에 대한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책을 읽고 소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책의 저자인(물론 책의 내용은 육조 혜능의 발언을 받아 적은 것이다.) 혜능은 일자무식이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일자무식인 사람이 알아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책은 크게 세 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책을 읽으려는 분들은 두 번째 부분을 먼저 읽기를 바란다. 그러고 나서 제 1편과 제 3편을 읽으면 책의 전체적 윤곽이 쉽게 잡힐 것으로 생각한다. 돈황본 육조단경의 원문인 제 2편은 다시 2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제 1장-제 6장)은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화상을 만나는 장면과 의법(衣法, 가사와 법문)을 전수해주는 장면이고, 두 번째 부분(제 7장-33장)은 혜능의 가르침이 들어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 2편의 두 번째 부분은 선종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좋고 좋은 말씀이기는 하지만, 후대의 가필과 첨삭, 윤문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고, 무엇보다 불교에 깊은 관심과 열정이 없이는 쉽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대신 실화가 아닌 신화(神話)에 가까운 첫 부분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특히 혜능이 지은 게송(偈頌, 시문) 두 개만 주의깊게 보아도 선종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보고 보고, 또 볼 필요는 없다. 선종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의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육조단경을 읽으며 자신을 잊고, 그 후에는 육조단경마저 잊을 수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쓴 나 역시 그런 생각은 갖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지는 못한다. 읽으시는 분들에게 깨달음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4*******i 2001.09.19.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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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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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생소한 분야의 서적이라 읽기에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우선 책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六祖라 함은 釋迦 이후 28祖인 達磨大師에 의해 梁나라 武帝 때 중국에 전해진 禪宗의 여섯 번째 祖師 慧能大師란 뜻이며, 壇經의 의미는 授戒의 壇上 설교란 뜻이다. 책 앞부분에 慧能이 六祖에 오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일화는 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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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생소한 분야의 서적이라 읽기에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우선 책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六祖라 함은 釋迦 이후 28祖인 達磨大師에 의해 梁나라 武帝 때 중국에 전해진 禪宗의 여섯 번째 祖師 慧能大師란 뜻이며, 壇經의 의미는 授戒의 壇上 설교란 뜻이다.


책 앞부분에 慧能이 六祖에 오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일화는 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秀上座 神秀의 게(揭)에는,

몸은 곧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명경대(明鏡臺)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먼지가 앉는 일이 없게 하라.

 

이에 대하여 五祖는 “다만 문 앞에까지 왔을 뿐 아직도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평가하였고,

반면에 慧能의 게(揭)에는,

 

보리(菩提)는 원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대(臺)가 없다.

불성(佛性)은 언제나 청정한데

어디에 먼지가 있겠는가.

 

또 다른 게(揭)는 말하기를

 

마음은 이 보리수요,

몸은 명경대가 된다.

명경은 본래 청정한데,

어디에 먼지가 묻으리.

 

이에 대한 五祖의 평가 결과는 慧能에게 돈오(頓悟)의 법과 가사를 전하게 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깨달음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특히 佛敎의 특징인 것 같다. 慧能大師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선지식의 시도를 얻어 견성해야 한다. 만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선지식의 힘을 빌지 않는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종교나 근본적인 가르침이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慧能大師의 “부처는 자기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또는 “사람은 성품이 원래 청정하여 모든 존재(萬法)는 자기 본성에 들어 있다.”라는 가르침은 Holy Bible에서의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라는 예수의 그것과 같은 의미 아닐까?

이 시점에서 나는 혼란스러움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종교와 철학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來世에 대한 믿음 여부에 따라 종교와 철학을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정말 그럴까? 비슷한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종교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지만, 철학은 꼭 종교를 포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하지만 양자의 공통점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또는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k******o 2011.03.19.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