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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녀입니다. 심양의OO빈관에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접대원입니다.”
이렇게 단아한 사람이 기껏 하는 일이 외국인 접대일까? 대학고 졸업했고 집안도 괜찮다. 똑똑하다.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왜?’하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진다.
“옥녀 씨, 꼭 그 일밖에 할 일이 없나요? 아직 늦지 않았는데 더 떳떳한 일을 찾아보는 게 어때요?”
.......(생략)
“한 선생, 도대체 그 아가씨한테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설마 접대원을 우리식의 접대부로 알아들은 거야? 호텔리어 정도로 얘기해야 알아듣는 거야?”
소통 중에 언어를 매개로 한 소통은 최고의 소통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단절이 생긴다.
말은 같아도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이 달라진다. 오해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40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생각을 했어요.” “누굴요?” “누군 누구야, 애들 아빠지. 내가 스물 일곱에 혼자됐어요. 딸 셋을 두고 그렇게 허망하게 간 사람이지.” “두 분이 금슬이 좋으셨나 봐요.”
“말해 뭐해. 그 양반 살아생전에는 나를 늘 눈 속에 넣고 다녔는데.
지금두 나는 눈을 못 감어. 눈만 감으면 그 양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그 양반은 서른 살 청년이야.”
.......(생략)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매요? 이 말 좀 없애면 안 돼요? 내가 그 말 때문에 얼마나 시달린 줄 알아요?”
남겨진 사람은 서럽다. 다시는 못 올 ‘접쪽 세상’으로 떠나가는 사람이야 한 번 숨을 몰아쉬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욥쪽 세상’에 남는 사람은 끊임없는 진행형의 슬픔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나 더 괴로운 것은 남겨진 사람들끼리 괴롭히는 것이다. 같이 가지 못한 사람, 그 사람이 아내라면 시댁 식구들은 서방을 잡아먹었다는 굴레를 씌운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아픔을 며느리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토록 알뜰하게 살림을 챙기고 남편 모시던 모든 행동이 하루아침에 암탉이 운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결과는 서방을 잡은 것이 된다.

“어제 겨우 택시 타고 갔어. 그 시간에는 택시 요금이 따블이야.” “그게 모야? 따부리가 모야?” “따부리가 아니라 더블이라구.” “그니깐 더부리가 뭐냐구.”
늘 이런 식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 의외의 뭔가가 나오면 여지없이 ‘그게 모야?’ 란 말이 되돌아온다.
묻는 경미나 대답해주는 우리나 지치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모야?’란 말을 안 한다. 그 대신 눈을 반짝이며 용법을 익히는 듯하다.
“존나 오래 걸린다. 얼마나 더 가야 해?” “존나 오래 걸리긴 뭐가 존나 오래 걸려. 두 시간밖에 안 왔어.”
틀림없이 용법을 통해 ‘존나 = 매우’로 파악한 듯하다.
결국 일이 터진다. 예의 바른 경미는 정민이 어머님께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어머니, 존나 맛있어요. 존나 많이 먹었더니 존나 배불러요.”
얼마 뒤 경미가 교회에 나오지 않기 시작한다. 희준이의 말로는 밤늦게 논문을 쓰고 계신 아버님께 커피를 가져다 드리며
‘아빠, 공부 존나 열심히 한다. 커피 드세요. 존나 맛있게 끓였어요.’ 라고 한 것이 이유란다. 차라리 희준이가 지어낸 이야기이길 바란다.

“받아쓰기 헐텨? 그려 그럼 어디 써 부아 (봐).”
“몀들레, 나싕개, 뻽쟁이........” “뭐유, 할머니. 그런 글자가 어딨슈.” “뭐든지 다 받아 적는다매. 니가 다 들어본 거잖어.”
할머니는 글을 모르신다. 1900년생, 어릴 적 이름이 있으실 텐데 주민등록증상에는 그냥 ‘이씨’. 시대도, 상황도 할머니에게 글을 배울 만큼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가 받아쓰기에 재미를 붙인 손자를 골탕 먹인다. 소리는 알아도 글씨를 모르시니 부러 그러시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도대체 받아 적을 수가 없다.
.......(생략)
민들레 76, 냉이 178, 질경이 143, 참 많기도 하다. 방언자료집을 뒤져보면 이렇게 많은 방언형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 많은 방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몀들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저세상 말이 된다. 풀꽃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가고, 그 이름도 줄어든다.
떠나가는 것은 사람뿐만 아니다. 그 사람의 말도 떠나간다. 아무에서도 그 말을 남기지 않았다면 떠나가면서 그 말의 생명까지 거두어 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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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백이면, 사투리도 백 사투리에 담긴 우리 삶과 사회의 다채로운 풍경을 만나다
우리가 쓰는 언어, 말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되는. 우리의 말들. 방언?사투리. 그 속에 담긴 모든 의미들.
특히, 한글을 사랑한다면 언어에 관심이 많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노란이 빈 공간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10kim13/2214328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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