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 나라를 떠났겠어.”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며 엄마는 한숨을 쉬셨다. 제 뿌리를 부정하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삶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넌 이들의 이야기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한민족이라는 단어가 공허하게 들린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국경이 나에게 공감할 능력을 앗아간 모양이다. 허나 백여 년만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서 태어났더라면 나 또한 디아스포라가 될 운명에 놓였을지 모른다. 나라는 더 이상 국민을 보호치 못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스스로가 책임져야만 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 국경선을 넘었던 사람들은 연해주 일대에 정착했다. 비록 합법적인 국적을 취득한 건 아니었으나 그 수가 워낙 많아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도 남았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대로다. 일제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면서 아시아인을 대하는 시선이 차가워졌다. 한인들이 일제에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고, 혹독한 강제이주가 자행됐다. 현재까지도 중앙아시아 곳곳에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으로 지칭한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이는 물론, 언어라고는 러시아 어밖에 할 줄 모르는 이들조차도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 설명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직접 발로 뛴 이들의 후손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정당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대한민국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아무리 갖추어진 게 없고 이방인 취급을 당할지라도 그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이 그들의 삶터다. 갑자기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조국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으로 향할 순 없다. 1953년에 카자흐스탄에서 출생한 저자의 이름은 김 게르만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고려인이다. 운이 좋게도 그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고, 덕분에 그는 소련 내 한민족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그의 연구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일은 러시아인보다 고려인들이 많은 곳에서 성장한 그에게도 각별한 일이다. ‘고려인’이라는 정의 자체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같았더라면 많은 이들이 같은 민족과의 혼인을 택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민족에 대한 고려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러시아인 혹은 카자흐인과의 결합에 대해 열린 태도로 응하고 있다. 혼혈이 보편적이 되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한국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 높은 교육열을 지닌 고려인들은 교육에 몰두했고, 그 결과 대다수가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했다. 소련이 건재했을 시절엔 러시아어면 만사가 통했지만 이젠 아니다. 새로이 독립한 국가들이 제 모국어를 되찾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입장에서 러시아어는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혈연에, 언어에 의존해 고려인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따라서 점점 더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젊은 고려인들은 스스로를 디아스포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외려 대한민국이 낯선 곳이고, 한국어가 외국어이니 말이다. 이런 추세라면 몇 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고려인이라는 구분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을 말하는 건 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가난을 피해 이주를 감행했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강제이주까지 당했음에도 그들은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념의 대립이 여전히 심각한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역사의 잊혀진 부분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념보다도 앞선 것은 그들의 믿음이었으니, 자신들의 행동이 곧 조국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그 결과가 강제이주였고, 총살이었으며, 조국의 불인정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념의 틀에 갇혀 살아야 한단 말인가. 꽉 막힌 사고가 한계를 낳는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카자흐스탄에서 북한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치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이 성장하는 나라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정부 또한 최근에는 활발히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허나 그 곳으로 강제이주한 이들의 뿌리가 오늘날의 북한 지역이라는 사실은 부인해선 안 되는 바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에, 중앙아시아 각국에 존재하는 고려인들이 그나마 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 북한의 역할이 컸음 역시 인정해야만 한다.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하여 이를 영구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