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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으로 마주하는 비극의 공감. 『기쁘지 아니한家』
"민낯으로 마주하는 비극의 공감. 『기쁘지 아니한家』" 내용보기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지 않는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여러 모습에서 이 말이 맞음을 종종 느끼곤 하는데 특히 가족문제에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타인인 내 시선에서 마냥 행복해 보이는 다른 가족의 모습에 부럽기도 하고 자학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왜 저런 모습일 수 없는가 하는 해답 없는 푸념이 들기에 그렇다
"민낯으로 마주하는 비극의 공감. 『기쁘지 아니한家』" 내용보기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지 않는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여러 모습에서 이 말이 맞음을 종종 느끼곤 하는데 특히 가족문제에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타인인 내 시선에서 마냥 행복해 보이는 다른 가족의 모습에 부럽기도 하고 자학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왜 저런 모습일 수 없는가 하는 해답 없는 푸념이 들기에 그렇다. 막상 껍질을 벗겨보면 그들 역시 불행으로 비극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면 놀란다.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남들이 보이게 나와 우리 집 역시 멀리서 본 희극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직접 보여주지 않는 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그게 내가 바라보는 타인의 가족이다. 남들이 보는 우리 가족이다.

 

그런 가족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목소리가 있다. 이 책의 부제처럼 '가족끼리 할 수 없는 가족 이야기'를 누군가 말하고 있다. 그렇다. 가족끼리 할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 들어달라고 말하는 거다.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체증이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해결책이 아니라, 말하는 그 순간 조금은 낮아지는 감정의 무게에 이 이야기의 목적이 있다고 본다. 답답한 속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두드리기만 한 그들의 얘기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제껏 누군가에게 말할 적이 없었음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 '어머? 이거 우리 집 얘기 아냐?'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요즘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저 혼자 제2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남편,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딸내미. 이제 이 집 안에 내 자리는 없는 것 같다. 돌아보니 고민을 호소할 친구 하나 없다. 나는 무얼 위해 살았나. 빈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82페이지)

 

남들에게 더 없는 부러움을 선사하는 잉꼬부부인데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남남이다. 거래하듯 유지되는 쇼윈도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들의 자녀가 사랑을 믿지 못하고 결혼에 회의적이 되는 건 당연하다. 바로 앞에서 보는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이 자신이 꾸리고 싶은 가정의 모습은 아닐 게 분명하니까.

십수 년이 지난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엄마의 한 마디는 딸의 상처를 곪게 한다. 자신의 입장이 우선이라 아무런 생각 없이 딸에게 뱉어버린 말을, 지금 엄마는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인제 와서 화해가 가능하다 해도 상처는 상처로 남게 된다.

돈 버느라 바쁘다고 밖으로만 돌던 남편, 아버지는 어느 날 사라진 자신의 자리를 보게 된다. 집 안에서 자신만 왕따. 서로의 입장만 세우다가 가족 간의 벽은 점점 높아진다.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질 벽도 아니다. 상처를 덧발라 더욱 견고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종교 갈등을 얘기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넘치도록 공감한다. 나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듯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강요해서 안 될 게 참 많겠지만, 그중에서 당연히 으뜸은 종교다. '가족이니까 다 같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이해 못 할 해석으로 갈등을 만드는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암담하다. 나도 이미 겪어본 그 일에 대해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한다. 종교 문제는 내가 만나고 싶은 배우자의 조건마저 바꿔놓았다.

시댁과 너무 가까운 거리. 아들 내외의 허락도 없이 아들 집에 비밀번호 누르고 수시로 드나드는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시월드의 지나친 간섭이 두려워 고아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여자는 또 어떻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간섭을 관심이라 착각하지 말지어다.

이 시대의 유행 같은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에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고 싶어진다. '착한' 사람이어야 하는 수식어로 평생을 살아온 여자의 분노에서 화병을 본다. 가난 때문에, 가족 때문에 뒤늦게 꿈을 이어가고 싶을 열정이 있지만, 그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아 서글픈 드리머. 아내의 산후우울증을 이기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인지한 남편은 뒤늦게나마 그 순간의 심각성을 알아차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저당 잡은 부모의 병과 병구완, 경제적 부담은 미소 한 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아픈 일이다.

 

여기에 다 옮길 수 없는 사람들의 사연이 아프고 눈물 난다. 답답하다. 그럼에도 나와 상관없으니 듣기 싫다며 멀리 밀어둘 수 있는 내용도 아니다. 우리 집의 이야기고, 친구네 집의 이야기였다. 이 책을 펼치고 고개를 끄덕일 누군가의 이야기다. 정말 며칠 전에 들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닮아 있는 사연들이어서 놀랐다. 그것도 차마 가족에게 할 수 없어서 정말 친한 친구에게나 털어놓을 법한 이야기가 줄줄 풀려나온다. 정작 그 말을 하고 싶은 대상은 가족인데, 가족에게 할 수 없어서 타인에게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짐작이나 되나...

 

평생 엄마 뒷바라지만 해온 아버지에게 남은 건 이제 달랑 집 한 채 뿐이다. 이제 와 새삼 부모님 사이에 새로운 정이 싹틀 것 같지도 않다. 가끔은 부모님에게 묻고 싶어진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하지만 그 말도 맘속에만 묻어둔다. 3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묻는다고 달라질 게 뭐 있을까. 물어봐야 도리어 상처만 도드라질 것 같다. (187페이지)

 

알 것 같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정말 어쩌다 한 번 이런 이야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한다. 작정하고 하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말하게 되는 경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게 되는 말들이다. 말하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긴장하며 나 스스로 점검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가끔 괜찮다며 다독인다. 저자가 이런 사연을 신문지상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이유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누가 대신 해결해줄 수도 없고, 쉽게 해결될 내용도 아님을 안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르기도 한 그 많은 문제를 소통하며 풀어야 할 대상은 가족이다. 얼굴 마주하고 풀어내야 한다. 그게 쉽지 않으니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경우일 테지만, 저자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들어주는 거다. 말이라도 하고 나니 속 시원하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는 개선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한때 오해하고 미워하고 버려뒀던 관계를 노력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남편, 아내, 자식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선을 그려놓고 설명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내 마음을 이런 것이니 조심해주면 좋겠다, 하는 제품사용설명서처럼 미리 언질 해준다. 관계 회복을 위해 자존심은 잠깐 내려놓아도 된다는 섹스리스 부부의 예는 솔직한 게 가장 좋은 문제 해결 방법임을 시사한다. 노력하고 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음을 알아달라는 화물차 기사가 자녀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자식들과 아내 위에 군림하려는 가장은 가족에게 존중받지 못함을 깨닫는다. 가족이란 관계, 문제의 시발점, 회복으로 가는 길을 위해 서로가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직접 들려주는 이들의 목소리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이 책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삶에서 가족과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는지 직접 보게 한다.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당연하지. 그 답이 있었다면 지금쯤 그렇게 많은 가족문제로 힘들어할 사람 없을 거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여기서 두드러진다. 내가 본 드라마 대부분은 화해로 그 끝을 맺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에서 화해가 일어나는 경우는 기적에 가깝다. 상처 입은 마음이 그리 쉽게 회복될 수가 없다. 완전한 이해와 화해가 아닌 관계 회복과 유지에 기울일 노력이 있을 뿐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이라는 수식어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말고 때로는 이기적이고, 욕심에 눈이 멀고, 차별하는 관계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게 가장 가까운 방법이 아닐까 한다.

 

분노로 써내려간 글들을 읽고, 순화하기를 거듭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글을 쓰고, 다듬는 동안 상처가 상당히 아무는 걸 느꼈다. 어느새 나 말고는 기댈 곳이 없어진 엄마에게 이런 한풀이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 굳이 누군가-특히 엄마가- 들어주지 않아도 난 괜찮을 것 같다. (33페이지)

 

어떤 문제 해결의 방법론이 아니라 들려주는 것 자체의 목적을 둔 이야기다. 말하는 이에게 개운함을 선사했을 것 같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비슷한 고민에 귀 기울이게 한다. 그거면 됐다. 충분히 공감했으니까.

 

 

n******i 2014.09.23. 신고 공감 10 댓글 22
리뷰 총점 종이책
다양한 얼굴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나를 비운다.
"다양한 얼굴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나를 비운다." 내용보기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우던 전통 시대의 공동체 생활과는 달리 핵가족화로 부부가 중심이 되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자식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신은 부부에게 자식들을 보냈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에 부부의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가족 면 기사를 읽으며 목울대가
"다양한 얼굴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나를 비운다." 내용보기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우던 전통 시대의 공동체 생활과는 달리 핵가족화로 부부가 중심이 되어 자식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자식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신은 부부에게 자식들을 보냈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에 부부의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가족 면 기사를 읽으며 목울대가 시큰해져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기쁘지 아니한家>>에 실린 가족의 모습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에 회의를 드러내며 한탄하던 일상의 맨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일상이 속살을 드러낸 가정의 음울한 이야기와 겹쳐져 무게가 실렸다.

 

   교사로 생활하며 20년 남짓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부부를 질투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있어 여러 제약이 따른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척도라도 되는 듯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면 호사를 누리면서 감사함을 모르고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라 치부하고 있어 말문을 닫아버릴 때가 있다. 열렬한 구애로 결혼에 이르렀지만 결혼 후 맞닥뜨린 현실은 둘이 하나 되어 이루는 협력 체제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사람을 큰 자산이라 여기며 타인의 갈증을 해소하는 일에 적극성을 띠었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아 영역을 확장해 갔다. 남편의 활동 무대가 넓어질수록 아내의 일상은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붙박이 생활로 고착화될 기미를 보여 우울해져만 갔다.

 

   결혼 생활은 서로 다르게 지내 온 둘이 한 공간에서 공동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협력하는 생활로 서로에 대한 불만을 최소화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상대의 불편함을 헤아리기보다는 욕심을 내어서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이기심이 내재하고 있어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보이는 가정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비극인 경우가 많다는 현실은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부부의 결혼 생활의 실상은 소 닭 보듯 데면데면하게 지내기 십상이라 소통은 요원해 보인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결혼 생활은 껍데기를 안고 살아가는 이지러진 모습을 투영해 준다. 자식만큼은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엄마가 사직(辭職)하고 정성을 다했던 일들이 배신감만 키워 허탈감에 젖는 중년의 아내가 안쓰러웠다.

 

   맏이라는 이유로 동생을 돌보며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숫기 없는 남동생의 보호자 격으로 얼떨결에 도시로 나와 홀로서기를 일찍부터 배웠던 일이 지금은 자력갱생의 힘을 줬지만 그 당시는 울화가 치밀어오를 때가 많았다. 혈연으로 맺어졌지만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불화하는 가족들이 많아 원수처럼 등을 지고 사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쓴웃음이 난다. 부모님 장례식을 치른 뒤 상속을 둘러싼 형제들의 다툼이 법정 소송으로 이어져 남들보다 못한 이들로 자리하다니 비움과 나눔의 가치를 혈육들이 체화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종교 강요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며느리, 장모의 지나친 간섭으로 지쳐가는 사위, 우렁 각시처럼 아들 집에 들러 반찬을 두고 가는 시어머니 때문에 힘든 며느리, 명절이 두려운 노총각 등의 일화는 가족이라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일이 절실해 보인다. 성년이 된 자식들에게 냉정한 사랑으로 독립적인 유기체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 연장자들이 먼저 고려할 일이다.

 

   자식의 유학을 위해 자식과 아내를 해외에 보낸 뒤 자신은 국내에 남아 돈을 벌어 해외로 송금하며 혼자 지내다 목숨을 끊은 기러기 아빠의 죽음은 우리나라의 과열된 교육의 부정적인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실업 상태인 장성한 아들이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여 공포에 떠는 부모, 좋은 아내와 엄마로 자리하며 사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했던 회한으로 가득한 여인의 모습은 가족들의 배신이 초래한 불행이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 병상을 지키느라 혼기를 놓치고 말았지만 틈틈이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하여 새로운 삶을 위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내디뎠다. 화가의 꿈을 위해 편입을 준비하며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여성의 힘겨운 삶은 안일하게 살아온 독자를 채찍질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찌개를 올려놓은 상에 둘러앉아 하루 보낸 이야기를 나누며 숟가락을 드는 식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시대에 부모의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따라야 하는 자녀들의 아픔은 기성세대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심어줄 때가 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은 아버지의 곁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언니(?)에게 쓴 고마움의 편지를 읽으며 사춘기 시절을 잘 견뎌 낸 딸이 일찍 철이 들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해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 부모님의 잔소리에 불만이 있던 고2 남학생의 진솔한 글은 부모로서 아이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선택의 자유를 주는 일련의 과정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치환되길 바랐다. 노파심에서 늘어놓는 말들이 아이들은 달갑지 않은 만큼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갈 때 가족들을 보는 불편함이 편안함으로 치환될 것이다.



n*****9 2014.03.14.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