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가파르바트는 K2와 함께 히말라야에서 등반하기에 가장 어려운 고봉으로 손꼽힌다. 1895년 영국의 등반가 머메리가 최초로 등정을 시도했다가 실종되었고, 1934년 독일이 나치정부의 지원으로 대규모 원정대를 꾸렸으나 거의 대부분의 대원이 조난당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드디어 1953년 헤르만 불에 의해 낭가파르바트 초등이 이루어졌으며 헤르만 불은 『8000미터 위와 아래』http://blog.yes24.com/document/7748117 라는 책으로 그 위대한 도전의 기록을 남겼다. 1970년 라인홀트와 귄터 메스너 형제는 4,500미터에 이르는 루팔 직벽을 초등하는데 성공했으나 하산길에 동생 귄터는 눈사태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했고, 라인홀트는 무리한 등반계획과 동생을 구하지 못한데 대해 비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 두 번의 등정 실패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1978년 드디어 낭가파르바트 완전 단독 등반과 새로운 루트로 하산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By fair means"로 등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반인이 듣기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메스너에 의하면 헬기를 이용해서 베이스캠프까지 물자를 운송하고, 셰르파를 대동하여 산소통을 사용하며 현대의 과학기술을 이용한다면 지구상에 가지 못할 곳이 없다고 한다. 막대한 돈을 내면 상업등반대에 참여해서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다. 메스너는 베이스 캠프에 의대여학생 우즐라와 파키스탄 군인 만을 데려갔고 셰르파없이 15Kg짜리 배낭을 스스로 매고 혼자 낭가파르바트 정상공격에 나섰다. 그는 이미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고, 그의 무모한 도전에 대해 이상주의자, 정신병자, 귀신들린 자 등 끝없는 비난과 질투에 시달려왔다. 그런 그가 단독등정을 시도한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홀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 될 뿐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져야하는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정상에서 내려와서 첫날 밤 비박을 한 이후 계속해서 날씨가 좋아지지 않자 텐트, 침낭, 버너 등을 모두 버리고 하루만에 하산하는 엄청난 일을 벌였다. 하루만에 내려오지 못한다면 어차피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각오로 내려왔고, 더구나 그가 등반하던 중 발생했던 파키스탄 지진으로 산사태가 나서 완전히 새로운 루트로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고산의 얼음벽에 기대어 비박을 하며 그는 끝없는 대화를 나눈다. 왜 그를 귀신들린 자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환청이라 해도 좋지만, 자신의 영혼, 아니면 산에서 돌아오지 못한 위대한 산악인들의 영혼과 만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는 그곳에서 진정으로 고독과 불안을 극복했다.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다는 슬픔 따위의 감정이 들어설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숭고한 고산에서 절대자연과 하나가 되고, 삶과 죽음도 뛰어넘는 의식의 고양을 경험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 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165쪽) 고독과 불안에 진다면 그것은 검은 고독이 되고, 고독 속에서 새로운 힘을 발견한다면 흰 고독이 된다.
메스너는 이런 놀라운 체험과 사색을 글로 남겨, 고산은 커녕 베이스캠프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훌륭한 작가이기도 하다. 메스너 말고도 많은 산악인들이 그 절박한 환경에서도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일기를 남겼다. 메스너도 이들의 책을 수없이 읽었고, 눈보라치는 고산의 텐트에서 잠못 이루는 밤에 이 글들을 떠올리며 선배 산악인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곤했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인생은 따로 또 같이 결국은 홀로이다. 고독하고 슬픈 이들 모두 고산에 홀로 섰던 메스너를 생각하며 자신의 고독을 흰 고독으로 승화시키길...
|
|
" 운명의 산 "이라 불리우는 8,000미터의 고봉 낭가파르트를 단독 등정한 산악인 라인홀트 매스너의 등정기. 그는 왜 산을 오르는가 ? 같이 등반하던 동생을 잃은 그는 " 검은 고독" 속에 갇히게 된다. 그가 다시 산에 오른 것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말한다 ." 인간 대 산, 즉 한 인간과8,000미터의 봉이 서로 조우하는 것이다."
인간 대 산으로 마주한다는 것 본래대로의 등산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고봉을 단독등정한 위대한 성공기가 아닌 고독한 한 인간이 산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감정의 흐름에 대한 기록이다.
기억하고 싶은 그의 말을 소개한다.
"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 그 대산 산으로 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답을 기대한다. 산은 모든 사람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는 매일 새로운 해답이 있다."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
|
운명의 산 '낭가파르바트' 인류 최초로 무산소 등반에 성공한 메스너. 1970년 낭가파르바트 측면 4천미터에서 동생 귄터를 잃고 반죽음의 상태로 내려온 산 사나이. 그 후 1978년 5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한 후 3개월만에 낭가파르바트 도전한 불굴의 산악인. 그것도 등정 파트너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8천미터 고봉을 오르는 단독 등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과 홀대, 이혼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에게 보여 주고 싶어' 낭가파르바트로 떠난다. 나는 앞으로 그 누구도 따르지 않을 작정이다. 나 자신에게도 절대 꺽이지 않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갈 수 는 없다. 그것은 자신의 파괴를 뜻한다. 그러므로 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내 길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나는 강해진다. 파키스탄의 육군 소령 테리와 의대생 우즐라만이 유일한 등반 지원대이다. 그는 베이스캠프에서 6,600미터의 가날로 피크까지 올라가 보며 고도 적응은 물론 불안과 공포의 내면을 다스린다. 그는 철저히 알파니즘의 극한을 보여준다. 'by fair means'즉 보조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등반하는 방식을 택한다. 볼트 하켄이나 산소마스크도 없이 등정하는 오직 인간의 육체만이 유일한 도구이다. 그는 8월 6일 '티케'를 중얼거리며 드디어 출반한다. 지옥의 문인 크레바스를 건너고 정상을 가로 막고 있는 수천미터의 빙벽을 오르며 변화무상한 눈보라를 뚫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리고 비부아크에서 지친 몸을 눕히고 높이 오른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위대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죽음과 같은 공포를 느낀다.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철저히 고립된 낭가파르바트의 매스너. 그는 고독을 즐기는 진정한 수도자였다.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준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중략)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그는 8월 9일 16시 정상에 오른다. 고요한 우주 속에서 신이 된 듯한 느낌. 오직 이곳에서 인간은 자신 밖에 없다는 위대한 고독감. 그는 별이 되고 싶었고 눈이 되고 싶었다. 자기를 극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승자의 기쁨이었다. 오직 고독 속에서 철저히 자신을 응시하며 꿈을 이룬 한 산악인의 도전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