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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가 읽어보라며 선물로 보내왔다.아마도 편식(?)하지 말라는 뜻일게다.사실 그림의 세계란 것이 얼마나 무궁무진 하겠는가? 종교와 예술의 관계 역시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일터.그렇지만 비종교인 입장에서 쉬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종교를 알지 못하고,그림을 바라 본다는 것은 자칫 불편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고,성경을 이해하지 못해,그림이 더 난해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 책장을 펼치니 그것은 기우였다. 소개된 그림들은 스치듯이라도 한 번은 만났을 그림이였고,그림을 소개하기에 앞서 성서에 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명화와 성경의 비율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지 않은 느낌이랄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로 시작된 그림은 다시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심판'으로 마무리 된다.그러나 내 눈에 가장 크게 들어 온 작품은 루벤스의 '하프를 켜는 다윗 왕' 과 반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이였다.
루벤스의 그림을 보면 감동 보다는 왠지 모를 부담스러움이 있었다. 화려함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취향이 한몫 했을 것이다.그런데 '하프를 켜는 다윗 왕'을 보는 순간,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말았다.실제로 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그런데 이렇게 울렁거리게 된 것은 다윗 왕에 대한 간략한 성서의 줄거리를 들을수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겠고,노년의 나이에 이르러 루벤스가 그렸다는 사실에서 주는 메세지가 무엇이였을까?를 가늠해 보며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흐가 성서까지 그렸을까? 라는 생각이 미치는 순간,한때 그가 전도사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그렇다고는 해도 성서가 바탕이 된 직접적인 그림은 자주 보질 못했기에 유독 눈에 들어 온 그림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조금은 불편하게 보일수 도 있는 그림이지만,성서를 충분히 이했했다면,굉장히 부끄러워해야 할 그림 가운데 한 점이 아닐까 싶다. 왼편 멀리 제사장과 레위인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까지 담아낸 고흐,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자살을 했다는 설명을 읽고 나니,왠지 더 착잡하게 다가 오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자신 스스스로 강도에 맞아 도움 받지 못하는 인물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가설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알지만...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종종 '시'가 내게는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반성하게도 하지만,때로는 위로를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에는 괘변처럼 들릴수 있겠지만..그렇다. 이런점에서 본다면 '명화로 만나는 성경' 역시 고마운 책이 될 것 같다. 분명 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그래서 때로는 지나치게 착한(?)이야기만 가득한 것 같지만 그림이란 것이,완충 역활이 되어준다. 화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성서를 그렸을까? 때로는 종교 그 자체로 다가간 그림도 있었지만,고흐나 루벤스,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브뤼헐의 '바벨탑' 과 같은 그림을 볼 때는 또 느낌이 다르다. '성경'이란 주제가 자칫 종교색을 드러내는 책이다 싶어 망설이는 이들도 있을듯 하다.그런데 역설적으로 딱딱한 성서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친절한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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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문득 이 성경책 한 권이 참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는구나, 그러면서도 참 신기한 건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착각(!)했다가 내 삶이 어떤 형편과 생각에 처했느냐에 따라 그 말씀이 또 다르게 와닿는다는 사실에 또 감동받고 눈물 흘리면서 힘 내어 살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진리는 영원하리라~ ㅎㅎ 올해는 설교 시간에 잡생각부터 안 하기로 노력해야겠지요^^;
성경도 많이 읽어야겠지만 또 간식도 필요하지 싶어 고른 책, 명화를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림으로 어떻게 성경을 풀이했나 궁금했는데 <명화로 만나는 성경> 보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화가의 손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그림들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림의 숨은 비밀에 감탄도 나오고~ 명화를 통해 만나보는 성경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무엇보다 저자가 밝힌, 성화에 대해 두 가지 의미. 1. 중세처럼 성경이 보급되지 않던 시절, 문자를 대신하는 소통의 통로로 교과서 역할을 했다는군요. 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하며 기뻐하는 미적 감성을 주셨음을 깨닫게 되지요. 이 의미를 되새기며 그림을 보고 또 저자의 묵상을 읽으니 성경이 새롭게 다가와요.
맨 먼저 나온 그림은 바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언제 한 번 딸냄이 보는 어린이 그림책 보니까 천지창조 보여주고 나서 뒷장에 질문... 아담이 뻗은 손은 오른손일까요? 왼손일까요? (으미~ 모르겠다ㅡ.ㅡ;)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넘겼다가 그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든 적이 있어요. ㅋㅋ이 그림 보니까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미켈란젤로 이전의 화가들이 누워있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손을 댐으로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형식을 그려냈다면, 미켈란젤로는 이 창조의 순간을 손가락과 손가락의 만남이 갖는 역동성으로 담아냈다는 사실~ 똑같은 성경 속 같은 이야기인데 화가의 성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상황.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하는 장면에서도 카라바조, 렘브란트,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에선 이삭이 묶여있지만 티치아노는 묶어두지 않았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어머나~ 정말 그렇네, 하는 감탄이 나오네요. 그 장면... 그저 목사님 설교나 어린이 성경의 삽화로 나온 걸로 머릿속으로만 그랬으려니 넘기고 상세하게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이 사건을 한 순간으로 표현해야 할 화가의 입장에선 아브라함의 믿음과 견주어 이삭의 자세 또한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었구나 새삼 봐져요. 그 어떤 그림보다 제가 놀랐던 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세례요한>. 험한 광야에서 살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분 같지 않게, 여자 같은... 그래서 저자께서도 부드럽고 신비스럽기까지한 아름다운 인체로 요한을 묘사한 레오나르도의 또다른 천재성을 이야기해 주시네요. 행동과 색의 절제, 미소와 눈빛으로 교감하는 표정, 하늘을 가리켜 암시하는 손가락. 화가의 천재성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우주 한 부분 같아요. 세상에! 반 고흐 이야기도 나오십니다. 노랑 좋아하고 반미치광이로 살다가 자살한 화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버지가 목사셨고 반 고흐도 전도사로 광산에서 복음을 전한 시절이 있었군요.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모작한, 반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 그림만 봤으면 사마리아인이 피해자를 도와주고 있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을, 설명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면서 고흐 그림의 왼편 멀리에 제사장, 더 가까이에서 레위인이 걸어가고 있는 걸 다시 확인했어요. 이래서 그림 관람하는데 도슨트가 꼭 필요한 것이어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이외에도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 여럿 구경할 수 있어서 재밌네요. 화가 자신을 같이 그려넣기도 하고, 수비대형에 따라 이름만 배치해 놓기도 하고, 벤 빌리켄스처럼 공간 전체를 텅 비우고 어떤 인물도 그려넣지 않은 그림도 있어요. 예수님의 못박혀 돌아가심, 이 명화들에 대해선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영화로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졌었죠, 그래서 오히려 보기 더 불편한 진실ㅜ.ㅜ 십자가 형벌,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당하셨던 고난과 역경에 감사하며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그 언젠가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이 한 해도 그 은혜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싶어요. 명화와 함께 한 성경 이야기, 미술관 둘러보고 온 느낌이에요^^ 다음에 기회가 되시면 그대도 한 번 떠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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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라는 책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최장수 베스트셀러 책이다. 기독교의 경전이기도 한 성경은 서양의 정신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기도 하다. 성경은 일반적인 철학서나 인문서보다 일독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천지창조때부터 예수탄생 그리고 제자들의 복음전파와 요한계시록까지 엄청난 분량의 기록과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책으로 기록한 것이기에 분량이 방대하다.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는 성경은 기독교 교인들에게도 읽기가 그리 쉽지 않아 오죽하면 성경통독 수련회나 통독피정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니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히 다가가기 어려운 책이 틀림없다.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의 내용은 천지창조로 시작하는데 이 책에서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린 미켈란젤로의 작품 <아담의 창조>가 첫 부분에 소개되고 있다. 스케일도 엄청나게 큰 이 천정화는 4년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인 아담을 만드신 후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을 손가락과 손가락의 만남으로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표현되었다. 이전부터 봐왔던 작품인데, 성경 말씀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고'를 이렇게 해석했다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작가의 설명이 돋보였던 부분이었다. 작품을 볼때는 배경지식과 더불어 예술가의 해석까지 상상해보는게 필요할 것 같다.
출애굽의 스타인 모세, 죄를 많이 짓기도 하고 은혜도 많이 입은 다윗, 예수님을 잉태하신 모후 마리아, 예수님이 오실것을 전한 세례요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선한 사마리아인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 등 거장들은 많은 작품을 통해 성경의 사건들을 기술한다. 과거 그 시대를 대표했던 예술계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전해지는 성경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그리고 성경 속의 동일한 사건을 화가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려낸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색다른 관점을 가지게 해준다.
책의 말미에 나오는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를 직접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성 베드로 성당이 밝은 조명이 아닌 조금 어두운 상태에서 봤었는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슬픔과 함께 숭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져 눈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과 함께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성경의 마지막이자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작품의 주제별로 나뉘어진 마지막 부분에 오늘의 성화 묵상 부분이 나온다. 그 곳에서 작가의 신앙고백을 엿볼 수 있다. 작품과 성경말씀을 통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고 묵상하면서 고요한 시간을 가지기에 좋은 부분이다. 구약, 신약 전체를 통틀어 주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해주니 책이라기 보다는 작가들의 작품집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성경의 내용을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으로 접하게 되니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약간 아쉽다면 더 많은 성경의 사건을 다루었으면 하는 바램이 남는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이 책이 내 신앙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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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읽노라면 그 책을 손에 들기까지의 책에 대한 끌림이 있어야 한다. <명화로 만나는 성경>이라 하여 성경을 늘 가까이에 놓는 나에게는 더없는 끌림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본론을 이야기하기전의 저자의 책에 대한 이야기 앞에서 넋을 놓기는 내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피카소는 "아름다움은 찾아 나서야 만나는 대상이 아니고 주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전문가는 아니지만 수준있는 문화생활도 자유롭게 누리고 싶다는 바램만 있었는데 주변 어디에나 아름다움은 존재한다고... 바삐사느라 눈을 열어 주변의 아름다움을 그들이 들려주는 참 소리를 듣지 못했음을 깨닫고 발걸음을 멈춘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을까.. ![]() 저자는 자신이 길어올린 명화속에서의 성경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 준다. 그 이야기를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 1490~1576 는 르네상스기의 베니치아 미술을 정상급 미술로 이끌어 올린 거장으로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였다. p.59 반 고흐에 대해 그의 광기나, 저주받은 화가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지식인으로서의 면모, 더구나 그의 삶 속의 지속된 축이었으며 자기 존재 의미의 근거였던 믿음과 신앙은 소홀히 다뤄진 아쉬움이 있다. p.156 화가들에 대한 소개로 인해 감사했고, 흔히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도록 그 부분을 이야기해주고 계셨다. 나는 이 그림에서 반 고흐 그림의 역동적인 힘과 빛나는 사랑뿐 아니라 동시에 성령의 비둘기가 화면에 가득 차게 날아오르는 듯한 기쁨 또한 맛보았다. p.162 명화 앞에서 겸허히 자신을 비춰보고 진정 하나님을 만난 자신의 깨달음을 여실히 기록해 주고 계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례 요한>은 지난 주 설교 말씀에 비춰볼 때 와닿는다. '소명' 그는 아버지의 사제직을 받을 수 있는데도 그 기득권을 버리고 세상의 속된 삶을 일찍이 등졌다. 시정에서 입던 옷도 벗어던진 채, 낙타털만 걸치고, 음식도 기름지고 잘 요리된 것은 먹지 않는다. 요한은 들판의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사는 무공해 금욕의 인간이었다. p.116 그저 부르심을 받고 그길을 갔다고만 생각했던 세례 요한에 대한 좀더 세부적인 조명 앞에 그는 정녕 소명을 아는 삶이었으며 그길을 갔기에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이 작품을 그린 레오 나르도 다빈치가 인체 연구를 하면 할 수록 신에게 경탄하고 신에게 더 가까이 갔으리라는 부분은 다빈치의 생애를 좀더 이해하게 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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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난 늘 편치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성경속의 이야기를 우리 인류는 오랜 세월 받아들이고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켜내기도 했는데..난 너무 이성적인가!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이석우박사는 역사 전공자이자 미술관 관장(겸재 정선 기념관)이다. 이 책 <명화로 만나는 성경>에는 오랜 세월 서양 역사를 가르친 전문지식이 담겨있고, 직접 미술관을 방문해 명화를 감상한 느낌과, 자신의 신앙의 눈으로 성화를 묵상한 글을 실었다.
이 명화는 [의심하는 도마]로 카라바조의 작품이다. 400년도 더 된 그림으로 예수님이 왼손으로 도마의 손을 붙잡아 손가락을 상처 안에 넣어보도록 도와주고 있다. 도마는 늘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던 가까운 제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이적과 기적을 가까이서 보았고,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에도 손끝으로 만져보고서야 믿었다. 이런 도마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임을 시인하지 않을수 없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때론 이성적으로,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믿기 어려운 것도 많다. 그러나 믿음은 추론과 생각을 넘어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림을 통한 저자의 묵상이 나에게도 깨달음을 준다.
기독교와 함께 자란 서양 미술은 미술 그 자체가 곧 성경이다. 위 그림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인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이다. 성경 일독이 도저히 실현불가능한 나에게 이 책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시작으로 [최후의 심판]으로 성경 전체를 명화로 감동스럽게 만나보게 해주었다. 문맹이 대부분이던 시절 성화가 문자의 역할을 해주었다고한다. 글이 아니라 눈으로 볼수 있는 성경인거다.
보스의 [최후의 심판]이다. 무시무시한 악마들이 온갖 수법을 동원해 죄 많은 영혼들을 영원히 괴롭히고 벌을 주고 있다고 미술사학자인 곰브리치는 말한다. 자세히 보면 붉은 옷을 입은 동물과 사람의 혼합체인 마귀할멈은 프라이팬에 사람을 달구고 있다. 죽은 사람들을 생선 엮듯이 통나무에 꿰어 걸고 있는데 생명이 끊어지지 않아 더욱 고통스러워 보인다고 설명해주고 있다.
보스 자신도 중세의 어느 누구처럼 사람이 사랑으로 주님의 말을 따를 수 없다면, 지옥에 대한 공포감만으로라도 인간을 자제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만이 아닌 여러사람이 같이 저지르는 일이기에, 시간이 가면 죄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죄의 실상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외면한 채 하루 하루 살아간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 책속에 많은 명화들이 있건만, 나는 인간의 죄에 관한 그림에 더욱 눈길이 간다.
그림의 일차적 임무는 감동이라고 했다. 성경속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명화로 만나면서 감동이 있었고, 믿음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털어내버리지는 못했지만 그림을 통해 나의 신앙을 되돌아 보았다.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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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출판사 문학동네의 출판그룹이라는 아트북스에서 이번에 예술 관련 신간 다섯 권을 걸고 대대적으로 리뷰어를 모집하기에 신청해서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뽑혔다. 다행히 진중권 교수님의 책은 다 읽었으니, 가장 읽고 싶은 이 책을 선택해 신청했다. 종교가 기독교라 기독교 세계관이나 성경에도 관심이 있고 미학 공부도 항상 하고 싶은 사람이니 나에게 딱 맞는 책이었다. 실제로 어디 한 군데 버릴 것 없이 책 전체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트'북스라 그런지 함께 보내주신 책갈피가 너무 예뻤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2005년에 나왔던 "명화로 만나는 성경은 새롭다"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책머리에'를 읽다가 'CCC편지'를 만나 반가웠다. 우리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 CCC를 거쳐간 사람을 다 모으면 정말 어마어마할 텐데... CCC편지가 어떻게 이 책을 쓰게 한 걸까,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오늘의 성화 묵상'도 그림 이야기 만큼이나 재미있었고, 이 부분에서 c.s. 루이스 같은 쟁쟁한 기독교 세계관 책을 쓰신 분들 이름이 자주 등장해 반가웠다.
아무튼 저자는 현재 겸재정선 기념관장이신데 '박사'라는 호칭이 참 잘 어울리는 박학다식하신 분으로 느껴졌다. 추천사에서 독수리학교 이사장 전광식님이 쓰셨듯 인문학, 특히 그림, 종교 등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셔서 성경 주제 하나를 가지고 여러 점의 그림과 지리, 역사, 종교 이야기들을 물 흐르듯 풀어내신다. 기본적으로 평생을 성실하게 공부하고,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실제로 확인하시는 삶을 사신 것 같다.
책과 인간도 인연이라는 게 있어서 지금 이 타이밍에 내게로 온 이 책과의 인연도 참 좋다고 생각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데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이 책에서 본 그림들이 이미지로 그려졌다. 아마 중세에 그렇게 많은 성화가 그려졌던 이유는 문맹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지로 좀 더 생생하게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목적도 있었겠다. 특히 예수님의 죽음을 리얼하게 그린 그림들은 진중권 교수님이 책 "춤추는 죽음"에 소개한 마카브르 그림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나의 죄악과 죽음, 예수님의 사랑을 돌아보게 했을 테다.
이 책은 천지창조에서부터 예수의 생애, 최후의 심판까지 성경 이야기 흐름을 따라 명화를 나열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작가가 살았던 당대 사회 분위기와 상식, 작가 개인적인 삶과 성향을 이해하며 그림을 읽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예수님 생애 속에서 같은 사건을 보고도 네 명의 복음사가가 약간씩 다르게 서술하고 있듯, 하나의 주제를 두고도 작가들은 꽤나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이 책의 강점은 그런 그림들을 한 군데 모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철저히 구분하고 싶어하는 권력의 의지를 파헤치기 위해 이야기하면서 인용하기 좋아했던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바보들의 배". 저자는 보스의 그림에 애정이 많은가보다. 성당에 걸려 있던 보편적인 성화들도 좋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개혁 전후로 개혁을 추구하면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자적인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던 작가들을 공을 들여 길게 소개하곤 한다. 아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유명한 그림들인데도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