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말을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다" 김지숙의 <종말주의자 고희망>을 읽고
"결국 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가올 먼 미래의 종말을 상상하며 펼쳐지는 우리 삶 이야기-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과 전 세계에서 보이는 이상기후 현상에 종말론이 고개를 든다. 이러다 정말 우리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인구 중 6억 명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보면서,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인구 감소가 일어나고 점점 종말로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정말 종말이 올지 안 올지 그것은 알 수는 없지만, 지구에 위기에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상기후와 생물의 다양성 감소, 전염병의 출현 등 그런 종말의 징후가 보여서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이 책 『종말주의자 고희망』도 인간이 종말하는 세상을 글로 쓰고 종말을 믿고 상상하는 종말주의자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은 중학생 '고희망'이야기이다.
중학생인 희망이는 세상이 언젠가는 멸망할 거라 믿으며 종말에 대한 소설을 쓴다. 그러나 사실은 희망이가 종말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오지 않았으면,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이런 자신의 삶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나갔으면 하는 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희망이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노느라고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것을 소홀히 했고, 그 결과 동생이 트럭에 치여 죽었다는 그런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이 동생의 사고를 막았더라면 하는 죄책감으로 우울하게 살아가고 부모님도 희망이에게 마음의 문을 닫으며 무관심하게 행동한다. 희망은 그렇게 우울하고 힘들 때마다 사람들이 죽어서 인류가 멸망하는 종말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랜다. 희망이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모두 다 죽이면서 인류는 멸망하고 인간이 아닌 동물이 지구의 주인이 되는 발상을 가지고 있다. 희망이는 정말로 왜 사람들을 왜 모두다 죽이는 것일까. 살아남은 주인공 마저도 말이다.
이렇게 힘든 희망이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삼촌 요한은 그런 희망이의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희망이의 편이 되어준다. 그런 삼촌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이 폭로되어 모두가 삼촌을 비난하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이만큼은 삼촌을 이해하고 지지해준다. 희망이 곁에는 희망이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있다. 희망이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고,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도하가 있다. 도하와 희망이는 서로 좋아하지만, 도하의 고백에 희망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도화와 친구관계를 유지한다. 지수는 희망이가 쓴 소설에 대해 댓글도 달아주고, 희망이가 악플에 시달릴 때도 그녀를 지지해주고 보호해준다. 그런데 서로의 오해로 지수와 희망이가 서로 싸우고 사이가 틀어져버리게 된다. 자신의 유일한 편이었고 지지자였던 지수마저 등을 돌린 상황 속에서 희망이는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독을 겪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이의 죽음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지금까지 사랑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미안함 때문에 항상 희망이는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힘든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소망아, 누나 왔어. 사실은 계속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왔어. 미안."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널 만날거야. 나도 언젠가는 죽을 거니까. 그리고 늙어서 죽기 전에 지구에 종말이 올 수도 있고. 그럼 널 더 빨리 볼 수 있겠지." -p. 170~171
희망이가 종말을 믿은 것은, 종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것은 사랑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종말이 오면 죽을 테니깐, 그러면 사랑이를 좀 더 빨리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희망이는 결국 깨닫게 된다. 자신이 종말에 관심이 많다고, 종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살고 싶다는 생각의 반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희망이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임을,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램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나는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p. 215
어쩌면 종말은 먼 미래에 다가올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더 소중히 하고 살아야 함을 우리는 희망이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된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이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희망적일지 모른다.
|
|
이 책의 주인공 고 희망. 희망이는 자신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글을 쓰고 있다. 항상 쓰는 글마다 인간의 종말 그리고 인간이 사라진 지구를 지배하는 다른 동식물들. 살아남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은 몇 번의 위기를 거친 다음에야 인류 중 가장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는다. 희망이가 쓴 모든 소설 속에 있는 것은 절망뿐. 희망이가 이번에 쓰고 있는 소설의 결말은 앞에 썼던 이야기들과는 다를지... 희망이는 자신의 이름과는 다르게 그리 희망찬 삶을 살고 있지않다. 또 언젠가는 반드시 종말이 올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런 희망이에게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인 소망이가 있었는데 원래 신도시에 살던 희망이네 가족은 소망이가 차사고로 목숨을 잃고 세상과 일찍이 작별하자 할머니의 권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된다. 희망이는 삼촌이 있었는데 나이가 40이 넘어가며 탈모까지 온 자신의 아빠와는 다르게 이제 30살이 된 사람이다. 삼촌은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해서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기업까지 들어간 인재이다. 또 잘생기기까지해서 말 그대로 정말 완벽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삼촌에게도 문제가 있었는데 소개팅을 많이 해도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아 할머니가 걱정하신다. 그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금방 답이 나오니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또 희망이에게는 매우 친한 소꿉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이 도하이다. 사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매우 친했던 둘의 사이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조금 많이 어색해지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바로 그 일이란 화이트데이 때 도하가 희망이에게 선물을 주며 고백한 일을 말하는데 여기서 둘의 사이가 어색해진 이유는 희망이가 도하의 떨리던 고백을 "야, 무슨 개소리야!"라며 아주 시원하게 걷어차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이가 도하를 이성으로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희망이도 도하의 갑작스러운 "사귀자"에 속으로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바로 도망와 버린다. 그 후 학교에서 가장 예쁜 세연이가 도하와 학원 엘리베이터에 같이 갇히면서 도하에게 반했다는 이야기를 친한 친구인 지수에게 듣게 된다. 또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게되는데 둘에게 서로 좋아하는게 뭔지 희망이에게 묻는 바람에 희망이는 많이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자신이 도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 지금은 도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까지 말이다. 희망이가 쓰는 소설 속에서는 H가 주인공이고, D가 도하로 추측되고 있다. 앞으로 희망이와 도하의 사이는 어떻게 될지, 희망이의 삼촌은 도대체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또 희망이의 이번 소설에서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될지 희망이의 선택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
|
그냥 알았어. 일종의 혀 말기 같은 거야. 학교에서 혀 말기에 대해 배운 적 있어? 누구한테는 당연히 말리는 게 누구한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잖아. 나한테는 그랬어. 명확했어.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P.45)
'종말주의자 고희망'.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건물주이자 잘 되는 국밥집의 손녀지만, 내면은 먼저 죽은 동생으로 가족들과 데면데면함을 유지한테 살아가는 딱한 중2. '갑작스레 찾아온 불편한 침묵'으로 표현되는 가족의 아픔은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성장시키고, 말하지 않는 아이로 키운다. 유일하게 믿고 지내는 삼촌은 삼촌대로 자신만의 사춘기를 겪는다. (사춘기가 뭐 별건가.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 사춘기지) 그러나 '종말주의자'라는 수식어와 달리 희망이도 삼촌도, 부지런히 성장한다. 그 시간을 희망은 소설을 쓰며, 삼촌은 자신을 꺼내 보이는 것으로 이겨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결국, 종말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이야기의 전반에 널리 깔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단단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종말”은 어쩌면 졸업 같은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졸업은 헤어짐의 개념도 있으나,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성장의 개념도 가지지 않나. 작가의 종말은 내면의 성장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줍잖은 감상문이 책의 깊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 오히려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그 희망이 결코 멀리 있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잘 살아내게 하는 '국밥' 같은 힘이다. (희망이네! 가게가 왜 하필 국밥집이었는지, 아빠가 왜 국밥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깔려있는지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힘든 날,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따뜻한 밥을 내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책은 독자들에게 그렇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든든히 내어주는 것 같다.
네가 잘못한 건 아니지. 넌 그런 애니까. 하지만 그런 점이 주변을 외롭게 만들수도 있다는 거야. 같이 있어도 혼자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거야. (p.154) |
|
지구에 종말이 와 모두가 죽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소녀 고희망...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것 같아 속앓이를 하며 변화된 가족들의 삶 속에서 힘겹게 버티며 살아간다. 가족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던 삼촌 요한... 삼촌에게도 비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희망이는 삼촌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와 동성애자인 삼촌의 이야기, 또 친한 친구와 있었던 오해와 갈등의 이야기가 쉼없이 펼쳐진다. 화가 날 때마다 주인공 희망이는 사람들이 '펑' 터지며 사라지는 상상을 하며 소설을 써내려간다. 희망이의 소설 속 공통점은 언제나 인류가 멸종한다는 것!!! 소설 속 이야기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낸 듯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소설속에서 털어내며 마음의 위안을 받는 것 같다. 소설속에서만 그럴게 아니라 진작에 가족들과 속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 했더라면 어땠을까?? 청소년 소설은 읽을 때마다 항상 나를 웃게 하고 울리기도 하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끌림이 있다!~ 내가 소설 속 고희망이 된 것처럼 현실감 있게 다가온 [종말주의자 고희망] 잘 읽었습니다!~^^ 본 서평은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
|
<종말주의자 고희망>은 종말을 꿈꾸는 중학생이 여러 가지 사건들을 계기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청소년 대상 성장소설이다.
저자는 직장 생활 중 쓴 단편소설 <스미스>로 2009년 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이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던 시기 청소년기를 이야기하고 싶어 청소년 소설을 쓴다고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지구의 종말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 '고희망'을 중심으로 동성애 삼촌, 9살 때 교통사고로 동생을 잃은 아픔 그리고 이 책의 감초가 된 동네 친구 '도하'와의 로맨스를 담았다.
"아무리 소중해도, 어려도, 건강해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잖아. 그런 얘길 하고 싶은 거야." - 158p 청소년인 주인공이 '왜 종말주의자일까' 라는 물음을 가지고 소설을 읽었는데, 이유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어렸을 적 잃었던 동생 때문에 그렇다고 스스로 유추해 볼 뿐이다. 결말엔 종말을 생각하는 것과 비례하여 삶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공감 가고 와닿았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명언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조금은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종말주의자 고희망'이라는 모순적인 제목에 흥미를 느껴 읽은 책이다. 다소 무게감 있는 소재(#종말 #동성애 #환경주의자 #교통사고 )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호쾌한 필치가 인상적이었다. 소설을 읽어주는 한 줌의 사람들을 한줌단이라고 부르는 것, "희망이가 절망에 대해서 쓰네. 그래도 희망은 남겨 놔야 하는 거 아니야?", "누가 오밤중에 희망을 찾아!" 와 같은 문장이 글에 리듬감이 살아있어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책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을 하나 더 이야기해 본다. "인간이 아니라 고양이나 바퀴벌레가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거지." - 46p 인간이 아니라 다른 동식물들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하게 된 문장이다. 인간이 항상 모든 상황에 있어서 주인공인 줄 알았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인간중심주의의 존재감을 느끼며 새삼 스스로 놀랐다.
항상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땐 의심이 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지만 결국 어른이 '청소년은 이런 고민이 있겠지'하며 생각하며 쓴다는게 이상하다. 아득히 멀어진 나의 중학생 시절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순했고, 주관이 뚜렸하지 않아 잘 흔들렸는데, 고희망에게선 다소 어른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요즘 중학생에게 필요한 책인지 궁금하다.
이 책에선 오랜만에 '종말'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종말이 세상의 종말이 아닌 인간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그 공간에서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 그리고 다른 살아있는 모든 동식물들을 둘러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
|
줄거리 이 책의 주인공 이름은 고희망이다. 희망이는 15살 아이로 인류가 멸종하는 소설을 쓰는 종말주의자이다. 부모님과 할머니는 나주 국밥 식당을 운영하시는데, 희망이는 가족 중에 삼촌과 가장 친하다. 엄마, 아빠에겐 사소한 것들을 얘기하지 않는데, 삼촌과는 사소한 대화들을 잘한다. 희망이는 어렸을 때 소망이라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인해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 이후로, 가족들과는 소망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소망이의 생일날이면 매년 함께 먹어 소망이가 좋아했던 음식을 해서 먹곤 했는데, 그날조차 소망이에 대한 언급은 서로 꺼내지 못했다. 그런 문제로 인해 희망이는 가족들에게 상처가 있었다. 희망이는 지수라는 친구와 학교에서 가장 친한 사이이다. 지수는 희망의 소설을 항상 챙겨 보며 현실적인 평가를 콕 집어 말해 주는 친구였다. 또 다른 친구 도하라는 남사친은 어느 날 희망이에게 고백을 하는 바람에 그를 피하게 된다. 그러다 다른 사람과 사귄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감정이 찌르르함을 느낀다. 그러다 연재하는 인터넷 소설에 D를 도하라고 쓰고 도하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고백하며 자신의 감정을 인정한다. 하지만 사귀지는 않고 소울메이트로 지내기로 서로 약속한다. 어느 날, 삼촌이 게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는데, 희망은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삼촌은 삼촌이기에 그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서로의 비밀 하나씩 공유하는 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삼촌은 그의 연인과 함께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뿌려져 신상이 다 털리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둔다. 큰 상처를 입은 삼촌의 모습을 보고 희망은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삼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여행을 다녀온 후, 퀴어 페스티벌에 가게 된다. 희망 또한 그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따라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삼촌이 발언대에서 울먹이며 말하는 모습을 본다. 삼촌을 지지하고자 희망은 '고요한 파이팅! 삼촌 파이팅!'이라고 외친다. 그 페스티벌에서 사진이 찍힌 삼촌은 인터넷 기사가 유포되어 가족들이 모두 알게 된다. 할머니는 엄청 충격을 받으셨고, 아빠와 엄마는 희망에게 왜 그런 곳에 갔냐며 어린애들일이 아니라고 혼을 냈다. 그러다 감정이 폭발해 희망은 엄마 아빠에게 소망이에 대한 말까지 하게 된다. 자신이 소망이랑 노는 것이 귀찮아서 쫓아내는 바람에 도로 위로 갑자기 뛰어나가 소망이가 죽게 된 것이라고,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며 집을 나가게 된다. 소망이가 죽게 된 마녀의 숲으로 무작정 간 희망은 그곳에서 소망이에게 말은 건다. 그땐 정말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이렇게 말하고 울다 늦은 밤 무서움이 엄습해 온자 희망은 결국 삼촌을 부른다. 삼촌과 함께 집에 돌아온 그녀는 가족들과 화해를 하게 된다. 엄마는 울며 그동안 희망이 소망이의 즉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줄 몰랐다며 너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한 이후 가족들과 소망이를 추억하며 주어진 삶은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뜻이 난다. 느낀 점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볼 때 제목의 단어 2개가 대조적인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종말주의자인데 이름은 희망이라니. 아이러니함을 느끼며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희망이에 종말에 대해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언제 종말을 맞이하고 떠날지 모른다. 정말 친했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떠난 수 있는 것이고, 나도 언제 어디서 갑자기 종말을 맞이할지 모르는 일이다. 작가님은 웰다잉(Well-dying) 프로그램을 통해 유서를 작성해 보았다고 했다. 유서를 써 본다거나 관 속에 직접 들어가 보는 체험인데, 그 취지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한 삶의 의미 찾기였다. 당장 유서를 써보게 되면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과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지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일 거 같아 보였다. 이 책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내용 또한 다루고 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도 나오는데, 나 또한 모태신앙이긴 하지만 사실 동성애 또한 사랑이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단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죄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극 중 삼촌의 모습을 보는 희망이가 나와 비슷한 것 같았다. 희망이 삼촌가 나눈 대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희망: "삼촌은 가족이 그렇게 중요해?" 삼촌 : "중요하지" 희망: "자기 자신을 포기할 만큼 중요하냐고." 이 대화가 정말 가슴을 띵하고 울렸다. 가족은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하지 않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가족도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내일 종말이 온다 했을 때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면 사과나무보단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웃으며 시간을 보낼 거 같다. 이 책을 읽고서 나에게도 종말이 언젠가 오겠지만 하루하루를 찬란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종말주의자 고희망』이란 반어적 표현의 제목을 보고 누군가는 종말에 머물고 누군가는 희망에 머물 것이다. 종말에 시선이 닿았더라도 종말을 원하기보다는 희망을 바라는 게 진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주인공 희망이 어쩌다 종말주의자가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희망은 인터넷 플랫폼에 소설을 쓰는 중학생 작가다. 10대들이 좋아할 달달한 로맨스나 판타지 같은 건 쓰지 않는다. 희망의 소설 속 주인공은 항상 죽는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모두가 사라진 종말의 세계에 남겨진 아이들 H, J, D가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종말주의자 고희망』는 액자소설이다. 중학생 고희망의 일상과 희망이 그려낸 종말에 대한 이야기.
희망이는 모범생이다. 부모님 말도 잘 듣는 아이다. 친구는 단짝 지우와 동네 친구 도하가 있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도와 국밥집에서 일한다. 아래층에 사는 삼촌은 대기업에 다닌다. 문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상처가 있다. 5년 전 희망의 동생 소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동생을 돌보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의 죽음 이후로 할머니가 희망이네 가족을 불러들였다. 소망이의 죽음에 슬퍼서 엄마나 아빠는 희망이를 살피지 못했다. 엄마는 여전히 약을 먹고 아빠는 표정이 사라졌다. 그런 희망이를 유일하게 챙긴 사람이 요한 삼촌이다. 삼촌은 희망이를 위한 책을 골라주고 희망이는 서재에서 삼촌의 책을 읽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희망이네 집에서 소망은 금기시된다. 소망이가 떠난 날에 엄마는 소망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지만 소망이를 추억하거나 기억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희망이는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 희망이가 1등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시험이 끝난 후 맛있는 걸 먹고 후련함을 즐기는 것도 삼촌과 함께다. 우연히 삼촌이 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퀴어 축제에 참가해 삼촌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희망이네 집은 흔들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는 가게에 나오지 않았고 삼촌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희망이네 가족에게는 소망이의 사고와 삼촌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희망이는 어른들이 이상할 뿐이다. 삼촌의 일에 대해서도 부모님은 희망이에게 알려주거나 생각을 묻지 않는다. 퀴어 축제에 간 사실과 뒤늦게 기말고사 1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혼낼 뿐이다. 그런 엄마와 말다툼 끝에 희망이는 집을 나오지만 갈 곳이 없었다. 희망이가 찾아간 곳은 5년 전 살았던 동네, 소망이가 사고로 죽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희망이는 소망이한테 사과를 하고 제대로 된 이별을 한다. 소망이의 사고에 대해 희망이의 솔직한 마음을 들은 엄마는 희망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도 일을 그만두고 소망이 곁에 있었더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 자책한다고.
『종말주의자 고희망』 은 제목처럼 무겁거나 우울한 소설은 아니다. 희망이가 쓴 소설도 마찬가지다. H, J, D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희망이와 친구들이다. 청소년 소설답게 풋풋함과 발랄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지수(J), 희망이(H)와 도하(D)의 로맨스, 어긋나는 우정으로 고민하는 십 대의 모습이 싱그럽다. 거기다 희망의 소설을 읽는 재미도 남다르다. 종말의 순간에 살아남은 아이들의 공통점이 눈물이라는 점도 흥미롭고 남겨진 아이들이 서로를 지키며 종말을 기록하는 모습은 기특할 정도다. 특별한 건 종말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종말을 통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기대를 한다는 점이다. 희망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아무리 소중해도, 어려도, 건강해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잖아. 그런 애길 하고 싶은 거야.” (158쪽)
희망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종말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종말은 모양과 형태가 다양할 것이다. 종말을 두려워하는 대신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도망가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소망이의 죽음을 피하기만 했다면 희망과 엄마 사이에는 오해가 깊어졌을 것이다. ?할머니가 삼촌을 인정하기까지 일정한 거리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죽음과 종말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215쪽)
십 대의 등장인물을 내세운 청소년 소설이자 성장소설이지만 모두에게 좋은 소설이다. 가족 간의 갈등이나 말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방관한 적이 없는지 묻는다. 그랬다면 이제라도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는 걸 알려준다. 삶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
|
지구가 종말하는 소설을 쓰는 아이, 고희망. 등장인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리는 희망은 새로 시작한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낼지 고민이다. 희망을 자신의 희망이라 부르는 삼촌은 그 마음을 알까. 조카가 세상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걸. 사고로 떠난 동생이 떠오를 때면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무거운 소설을 쓴다는 걸.
제목부터 눈길을 끈 소설이다. 종말과 희망.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닌가. 종말이 오기를 바라는 고희망이 쓰는 소설과 현실의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되어 흥미로웠다. 희망과 유대가 돈독한 삼촌이 참 멋지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어른이 곁에 있다면 절대 외롭지 않으리라 느꼈기 때문이다. 거기다 희망을 응원하는 친구들도 있으니 눈부신 시절을 제대로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가는 종말이 올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을 열심히 산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다시 오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희망의 필명이 떠오른다. 달이 사라지는 짧은 순간을 뜻하는 '삭'. 세상은 온통 검어졌다가 다시 달이 빛을 드리우는 순간 환해진다. 희망에게 '삭'의 시간이 또 올지라도 금세 지나갈 것을 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희망은 어떤 이야기를 쓸까. |
|
희망과 종말, 대비되는 단어의 사용은 더욱 내용의 깊이감을 독자들에게 주는 책이다. - 제목에서부터 확 대비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종말과 희망 멀면 먼 단어이지 가까울 수 없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생각은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거 같다. - 희망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동생의 사고를 막지 못했고 결국 동생은 세상을 뜨게 된다. 동생의 죽음은 희망이네 가족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고, 부모님은 희망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희망이는 종말에 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희망이에게도 기댈 수 있는 가족은 삼촌이었지만 삼촌의 커밍아웃으로 희망이에겐 더 이상 기댈 공간이 사라지며 더 큰 인류애 상실을 느끼게 되며 소설 속에서만 종말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까지 종말을 생각하게 된다. - 종말이라는 단어가 크게 다가왔지만 생각했던 거 만큼 책의 내용은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희망이가 종말을 바라보며 글을 쓰면서 종말의 끝을 볼 수 있었고 끝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밝은 책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힘든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너무나 힘들고 세상이 사라지길 바라는 일이 생기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떻게 이겨내는지는 정말 중요하다. 이 시기를 이겨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빛을 볼 수 있고 희망이는 이 시기에 종말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며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기에 다시 빛을 보며 이름처럼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종말과 희망은 대비되는 단어가 아닌 종말 끝에 희망을 만나게 되는 즉, 연결이 되는 관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 희망이는 빛날 수 있는 그 시기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글로 표현하며 빛날 수 있는 시기를 지켜 빛나고 희망만이 가득한 희망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빛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 반드시 빛나는 시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 본 리뷰는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가족이 죽는다거나, 인생에 큰 일이 일어나고 난다면 사람들은 그 일을 있어서는 안 될 일로 치부한다. 특히 죽은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하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한 채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소설 속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분명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임에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조차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의 대화는 점점 단절된다. 외부와의 삶 속에서 가족에게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족이 대화가 단절된 순간에는 이러한 위안을 얻기 힘들다. 직접적인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대화의 고갈은 결국 잠재적인 갈등을 만들어 나간다. [종말주의자 고희망]이라는 제목 자체가 참 모순적이다. 마치 가능할 수 없는 단어들을 합쳐서 강조 표현을 진행하는 역설법 같다. 강철로 된 무지개,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종말과 희망이 같이 놓인다는 사실은 다소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책의 내용이 흥미롭다. 희망이라는 주인공이, 희망 없는 날들을 그려나가는, 그런 글들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소설을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책의 내용 자체는 생각할 것을 많이 제공할 정도로 복잡하거나 까다롭지 않다. 오히려 삶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본인만의 속도와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생각하면서 읽기에 더 좋다. 형식적인 자기계발서보다도 보다 자기계발적인 내용이 적혀있는 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관계가 하나라도 꼬이게 된다면 그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갈등과 번뇌 속에서 하루를 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이를 읽는다면 보다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