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구병모 작가의 『네 이웃의 식탁』이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시골에 살고 있지만 버스여행도 감수할 생각으로 유명한 소모임 어플을 다운받았다. 그러나 '여자 환영', '인싸 모임', '기혼자X'와 같은 문구들에 아득해져 버렸다. 결국 내가 만들기로 했다. 나와 가장 자주 만나는 S를 꼬드겼고 그다음엔 비밀이 없는 H를 꼬드겼다. 우리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수상화 독서모임'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제1회 수상화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아모스 오즈의 『친구 사이』였다. 박경리 문학상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2011년 최인훈 작가를 시작으로 2018년 미국의 리처드 포드 작가까지 벌써 8회 수상자가 나왔다고 했다. 아모스 오즈가 박경리 문학상의 5회 수상자라는 것도, 『친구 사이』가 키부츠를 배경으로 하는 연작소설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키부츠는 사회주의와 시오니즘이 결합한 농업이민 운동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의 이상향을 실현하고자 하는 공동체다. 내가 만 스무 살에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스무 살 그 시절엔 자본주의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공동소유, 공동육아, 공동식사,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지닌 키부츠란 곳이 존재하며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개월 배낭여행에서 기꺼이 두 달을 키부츠 봉사자로 참여했다. 다른 세계를 꿈꾸고 떠난 그곳에서 겪은 두 달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날들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친구 사이』의 등장인물들처럼 '사회에 알맞은 구성원이 될 때의 안락함'와 '마음대로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욕망' 사이에 충돌하는 갈등이 있었다.
키부츠에서는 한 마을이 한 가족처럼 살아간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자식이 자식의 역할을 하듯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이 주어진다. 다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해볼 기회, '능력을 뛰어넘는 일'에 도전할 여지가 없을 뿐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차례가 있으며 키부츠 총회에서는 투표를 통해 그 사람에게 맞는 전공 학과를 권고한다. 우리 모두의 행복과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는 키부츠의 원칙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차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친구 사이』에서 요압은 말한다. "원칙적으로 우리 모두 친구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친구가 무척 드물잖아요."(p. 168)
내가 지낸 키부츠에는 젊은이들이 없었다. 어른들이 허허벌판을 개척하여 완성한 집도 공짜 헬스장도 공짜 수영장도 공짜 밥도 공짜인 이 곳을 벗어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젊은이들이 안락하지 않은 곳, 불확실한 곳, 도전해야만 하는 곳으로 떠나고 남은 자리에 각국의 봉사자들이 채워졌다. 짧은 육체 노동이 끝나면 야외수영장의 선베드에 누워서 낮잠 자는 게 일상이었다. 부의 상징처럼 까매졌다. 그런데 여유로움이 익숙해지자 갑갑해졌다. 웃기게도 나는 나의 삶을 실시간으로 개척해야 하는 미완성된 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자본주의의 세계로 돌아왔다. 여전히 자본주의에는 눈살 찌푸려지는 것이 많고, 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안락함'이 가장 높은 가치가 아님은 알게 되었다. '자아실현 욕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9년이 지났다.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답까지는 아니라도 작은 힌트나마 발견할 수 있길 바라며 두 번째 선정도서를 읽기 시작했다. |
|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에 소개된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작품이다.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별 기대없이 책을 펼쳐들었는데 묘한 느낌이었다. 요즘은 무슨책을 펼치든간에 엄청난 스케일과 자극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소설만 읽다가 잔잔하고 서정적인 문체의 소설을 읽다보니 코끝이 찡한 감동이 있었다. 단편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짧은 내용이 많고 그래서인지 단편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수필에 가깝다. 그렇지만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다보면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내용에 반하게 되었다. 내용은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사는 이들의 삶이 옴니버스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소설들이다. 키부츠에서 사는 주민들의 우직한 삶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평범하지만 따뜻한 일화들.. 특히 표제작인 <친구 사이>는 무력한 아버지의 시선에서 딸의 삶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온전히 따뜻하게 전해져서 먹먹한 감동이 남는 소설이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소박하지만 긴 여운이 남는 책을 원한다면 단연 추천한다. |
|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일행에게 혹시나, 시간이 허락해서 서점에 들를 수 있다면 아모스 오즈 책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메모지에 저자의 이름을 스펠링으로 써주고 당부하면서 한권이라도 나에게 오길 바랐다. 그러나 단체로 떠난 일정이라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었고 서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해 책을 구입하지 못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내심 아쉬웠지만 언젠가 원서를 살 수 있는 날이 있겠지 싶어 열심히 번역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모스 오즈의 번역서는 띄엄띄엄 출간되었다. 온라인 서점에 지정해 놓은 출간 소식 문자가 오면 바로 구입할 정도로 아모스 오즈는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설명을 할 순 없어도 잔잔한 삶의 흐름을 드러내는 섬세한 문장이 좋다고 말 할 수는 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을 모두 읽어보았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다 좋다고는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완성도에서 오는 호감을 뛰어넘은 익숙함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정도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책장을 덮으며 외국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욕망만 앞서고 얼마나 공부해야 원서를 막힘없이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모스 오즈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늘 드는 생각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런 갈망이 일고 말았다. 과연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음 번역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조바심이 부른 앞선 욕심이다. 국내에 막 출간된『친구 사이』를 아껴서 읽었음에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품을 향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집단농장의 한 형태인 키부츠를 배경으로 한 8편의 단편을 만나면서도 온통 저자 생각뿐이었다. 30여 년간 키부츠에서 생활한 저자이기에 무엇보다 그곳의 생활을 잘 알고 있을 테고 작품 속 어딘가에 저자가 머무르고 있다 생각하고 구석구석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공동체로 이뤄지는 집단농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썩 행복하지는 않았으나 왜 사람들은 스스로 그곳에 머무르면서도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끝내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 개인의 자유와 소유욕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남편이 이별을 통보하고 다른 여자의 숙소로 들어간 후 어떠한 분노도 드러내지 않은 여자 오스낫과 키부츠란 공간을 답답해하면서도 삼촌이 모든 학비를 대주겠다며 이탈리아로 오라는 요청에도 우유부단하게 머뭇거리는 요탐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색채를 잃어버린,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키부츠에 속하지 않은 바깥세상에서도 또렷한 의지를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키부츠라는 공간이, 그곳에서 지켜야 하는 모든 규칙과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이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의지박약인 내가 저런 공동체 생활에 속한다고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한 공간의 이야기이기에 8편의 이야기는 끊겨져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었다. 등장인물이 얽히고 있었고 주인공이 아닌 배경인물로 등장할 때 새로운 면모를 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반가움이 일었고 어떤 소식이 들려오는지 주시하게 되었다. 병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소년 모시의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했고 후에 에스페란토 어를 배우로 오는 모습만 봐도 그냥 듬직했다. 하지만 하나 남은 열일곱 살의 딸이 자신의 친구와 동거를 하게 되는 이야기며, 아이도 공동체로 키우는 규칙에 따라 부모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아들이 탁아소에서 왕따를 당하자 가해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키부츠라는 공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평등하게 배분되고 기회가 주어지는 그곳이 낙원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나, 늘 불평등에 시달리면서 세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는 나에게는 그곳이 갑갑하게만 느껴진다. 무엇을 또렷이 잘할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에 충실 하는 것만이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단일화되기 딱 좋은 곳으로 보여졌다.
그럼에도 그곳을 오로지 다른 세상 보듯 무관심 할 수 없었다. 그곳이 갑갑하게 느껴졌던 배경에는 이미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경험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의무교육을 통해 단체생활을 불편함, 차별, 불평등, 분출할 줄 모르는 열등감과 불합리화들을 이미 겪었다. 그래서 그곳이 더 갑갑하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로지 공동체 공간이라는 사실에만 얽매여 있으면 저자가 그려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놓칠 수 있다. 어느 곳이나 사회가 아닌 곳이 없듯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대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15~16쪽)
우리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문학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