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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우선 그를 생각하면 [죄와 벌],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떠 오른다. 어렸을 때, 남들이 다 읽는다고 하기에 읽었다는 기억이 흐릿하다. 하도 오래 되었기에 내용은 가물가물하고 그저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만이 기억 속에 있을 뿐이다. 소냐가 기억나는걸 보면 [죄와 벌]은 읽은 것 같기도 한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아마 두꺼운 분량에 질려서 읽다가 중간에 관둔 것 같기도 하다. 막상 다시 읽을라치면 부담부터 가는 책들이었기에, 생각밖에 놓고 있었는데, [우스운 자의 꿈]은 그의 중편이라기에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그렇지만 중편이라고, 분량이 얇은 책이라고 해서 결코 쉬운 책, 아니 쉽게 읽혀지리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알기에는 그다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책에는 도스토옙스키의 두개의 중편이 실려있다. [백야]와 [우스운 자의 꿈]이 그것인데, [백야]는 그의 초기작품이고, [우스운 자의 꿈]은 말기작품이라고 한다. 두작품 모두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드는 작품으로 몽상 혹은 꿈으로 연결되어 있다. 쉽게 읽혀지지 않는 이유가 인간의 내면세계, 아니 삶에대한 탐구이기 때문인것 같다. 어찌보면 순수한 인간을 통해서, 삭막하기 그지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연민을 가지라고 말하는것 같다. [백야]에서 화자는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에서 몽상의 나날을 보낸다. 거리를 산책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부딪히는 모든 것 들에게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생활한다.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신에 대해 절망스러워 하면서도, 언젠가는 자신이 그리는 사랑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어느 날, 한 호숫가에서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자신도 모르게 그 여인을 뒤쫓던 화자는, 그 여자가 취객에게 봉변을 당하려는 순간 나타나서 구해준다. 그리고 사흘간 매일 저녁 만나서, 그 여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스텐카라는 그 여자는 자신과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 세 들어 살던 남자가 1년 후에 돌아와서 결혼을 하기로 하고 떠났지만, 돌아오지 않자 절망에 빠져 있다. 그런 그녀를 위해 화자는 조언도 해주고, 연인을 만날 수 있도록 돕지만, 사내는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는 용기를 내어 나스텐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는 그가 자기 할머니 집에 들어와 살도록 허락한다. 기쁨에 들뜬 화자는 그녀와 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걷는다. 그가 몽상을 하며 걸었던 그 거리를 이제는 그녀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몽상이 현실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갑자기 나스텐카의 옛 연인이 나타나고,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안긴다. 화자는 짧은 사흘간의 행복을 떠 올리며 슬퍼하지만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우스운 자의 꿈]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우스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화자는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관심도 두지 않고 항상 자살을 꿈꾸며 살아간다. 어느 날 화자는 길거리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한 어린 소녀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제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날 밤, 잠이 든 화자는 꿈 속에서 자살을 하고, 또 다른 행성에로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 행성은 태초에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제2의 지구였다. 그러나 화자는 너무도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지구에서 사용하는 과학과 이성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이윽고 그곳 사람들도 과학과 이성에 빠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다를 바 없게 된다. 화자는 사람들에게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지만, 그들은 과학과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떠 받든다. 그러다 다시 우리의 지구로 돌아온 화자는 잠이 깬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과학과 이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자신이 외면했던 어린 소녀를 찾아 화자는 거리로 나선다. 19세기 중반, 지금부터 100년도 훨씬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현대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과학이나 이성 혹은 인간에 대한 사랑 중 어느 것에 더 크나큰 가치를 두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많은 연민과 사랑을 주고 있는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우스운 자는 작품 속 화자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리뷰어다"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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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하면 떠오르는 소설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이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약간의 우스개 소리를 덧붙여, 가장 짧은 기간을 묘사한 것 중 가장 긴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퀴즈가 있었다. 정답은 <죄와 벌>이다. 그 이후에 도스토옙스키보다 더 심오한 어떤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쓰지 않았다면 말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를 살해하고 소냐의 설득으로 자수할 때까지 하루 남짓 동안의 이야기를 상당한 두께의 책으로 만들어냈으니 이를 필적할만한 작가가 또 있을까. 나도 학창시절 어느 방학 때 상당히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중편소설, 「백야」와 「우스운 자의 꿈」이 실려있다. 다행하게도 짧아서 미처 지루할 틈이 없다. 「백야」- 주인공은 어느 날 밤 한 여인이 불량배에게 쫓기는 위기에 순간 그녀를 구해준다. 주인공은 여자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심지어 떨기까지 하는 소심남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가난하고 누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꿈꾸는 그 순간만큼은 슬퍼하거나 후회, 번민 따위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은 환상을 통해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주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환상의 여신’은 정교한 솜씨로 어느 새 짠 황금 바탕에 기기묘묘한 삶의 무늬를 수놓으러 온다. 자신에게 묻지요. ‘네 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머리를 흔들며 대답합니다. ‘세월 참 빨리도 간다.’ 다시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래 그 동안 뭘 했는가? 자신의 황금기를 어디다 묻었는가? 살긴 산 건가?’라고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에게 말합니다. ‘참으로 각박해진 세상이다.’ (55쪽)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맘 때쯤 나 스스로에게도 묻고 싶어진다. 난 한 해 동안 무얼 했던가. 살긴 산 건가 하고. 환상의 무늬를 쫓으며 살아온 주인공은 이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 나스텐카를 만난다. 환한 밤에 그들은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녀는 그의 가녀리지만 세심하고 순수한 마음을 알아준다. 그는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있다. 나스텐카는 자신의 사랑을 주인공에게 털어놓는다. 착한 주인공은 그녀의 사랑을 찾아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녀의 사랑을 찾아주면 주인공은 다시 혼자가 되겠지만, 그녀의 행복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이 바보 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이 불행할 때 타인의 불행에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감정은 흩어지는 게 아니라 한 곳에 모이는 법이니까요…… (79쪽) 「우스운 자의 꿈」– 스스로 우스운 자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그는 어느 우울한 밤, 가스등마저 우울하게 보이는 그날 밤, 더 이상 우습게 살고 싶지 않아 권총자살을 결심한다. 거리에서 만난 한 여자아이의 도와달라는 간청도 뿌리치고, 얼른 집에 돌아가 결심을 이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는 삶이나 세상은 나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고 분명히 믿었다. 심지어는 세상이 오로지 나를 위해 창조된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세상 또한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엔 아마도 아니 정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환영처럼 즉시 빛을 잃고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이나 세상 사람들과 나는 하나니까. 그러나 사실은 나의 의식만 사라지고 말겠지. (130쪽) 집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외면했던 여자아이를 자꾸 떠올리면서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권총을 앞에 두고 그만 잠이 들어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다음의 일들이 꿈 속에 나타난다. 어떤 존재와 함께 어딘가로 날아간다. 도착한 곳은 원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곳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하여 동물들과도 평화롭게 지내고 나무들도 이해하는 존재들이다. 항상 즐겁고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주인공은 잘 지내지만, 언제부턴가 그 평화에 균열이 가고 결국 그들은 모두 타락하게 된다. 마치 현재의 모습처럼. 그는 꿈에서 놀라 깨고는 자살하려는 마음을 고쳐먹고 평생을 전도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그 여자아이를 찾으러 나간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더 이상 우스운 자라 부르지 않고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도스토옙스키는 1849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28세에 출판의 자유, 농노해방, 사법제도의 개편을 역설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사형 집행 불과 몇 분 전에 시베리아 유형 4년으로 감형 받았다고 한다. 극적이고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있었던 경험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는 인간 본성과 그 깊이를 헤아리는 심오함으로 가득 차 있다. 나도 이 참에 <죄와 벌>을 다시 꺼내어 읽어봐야겠다. 나의 내면의 깊이가 좀 더 깊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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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교훈적이다'
나는 우스운 인간이다
"나는 우스운
인간이다.
꿈
"우리의
과학은 삶이
무엇인가를 해명하고자 한다.
"왜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않는데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과학
"과학. 우리에게
과학이 있다네.
"저마다
타인보다 자신을 더없이
아꼈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이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