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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무신론자가 말하는 성지도性指導《침대위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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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TV프로그램《자기야》를 보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에 하는 프로였고 모두 중년을 훨씬 넘어선 분들이 출연자였었는데 이날의 주제가 바로 '부부의 성'이었습니다. 모두 손주 손녀를 보고도 남는 나이들이라 그런지 공중파임에도 너무 솔직히 性(성)에 대한 담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많이 놀라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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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TV프로그램《자기야》를 보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에 하는 프로였고 모두 중년을 훨씬 넘어선 분들이 출연자였었는데 이날의 주제가 바로 '부부의 성'이었습니다. 모두 손주 손녀를 보고도 남는 나이들이라 그런지 공중파임에도 너무 솔직히 性(성)에 대한 담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많이 놀라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들어 성에 대한 과감한 접근을 본의아니게 많이 접하고 있긴 합니다. 새삼스럽게 '성'이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더라구요. 그만큼 성에 대한 사고가 자유로와 졌다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한편으로는 은밀한 성욕이 이제는 본능의 일부라는 것을 사회구성원들이 자각해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근본주의자로 자랐지만, 지금은 근본주의가 싫어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근본주의라 하면 사람들이 어렵게 받아들이거나 뜻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쉽게 말해 교리 중심주의를 근본주의라 합니다. 오로지 교리, 성경중심이라는 것이죠. 교회사람들은 교리중심이 왜 나쁘냐고 하지만, 교리중심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교리만 강조한 나머지 성경외의 다른 것은 모두 나쁜 것으로 배척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를 향한 수많은 비판과 논란의 중심에는 이 뿌리깊은 근본주의가 있습니다.  

 

이 책 《침대위의 신》의 저자 대럴 W. 레이는 이 책을 통해 종교가 억압하는 성性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째 성보다는 종교비판의 목소리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목사가 되는 것을 운명으로 알았다는 저자가 이러한 연구를 하게 된 경위는 다름아닌  교회 지도자들의 수많은 성적 비행을 보게 되면서라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성적기행'이  교회지도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가진 사람’들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었답니다.  이후 저자는 무신론자로 커밍아웃하면서 종교가 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부제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성을 왜곡하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중요한 논조는 종교가 ‘인간의 성‘을 어떻게 억압하고 통제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심 논조이고 부차적으로는 종교와 성(섹스)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입니다. 가장 첫 번째로 저자는 종교가 사람들의 성행동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믿음의 요인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이 세 가지  '내세에 대한 믿음과 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신이 내세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으로 모든 성행동을 배제한다'믿음은 모두 함께 공존할 때 성이 주는 쾌락보다 종교가 주는 믿음이 더 강해지게 한다고 하는데요. 이 믿음은 '섹스는 훌륭하지만 천국은 그보다 더 훌륭하다'는 믿음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믿음들-내세,신,성행동-의 조합이야말로 이슬람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들을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됩니다. 이 요인을 통해 저자는 종교를 널리 퍼뜨리는데 성적인 억압이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죠. 저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종교가 주는 억압적인 성이 아닌, 성 자체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거듭 강조를 하고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물학, 심리학, 역사, 인류학에서 말하는 성을 알아야 하며 여러 시대와 다양한 문화속의 성도 살펴보아야 하고  인간의 성性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그려주고 있는 성지도처럼요.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허나,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시종일관 불편함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예수의 정체성 역시도 어불성설 같구요. 성경이 주장하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박논리 또한 성경의 팩트가 아닌 추측으로 일부분만을 발췌하여 반박하는 것에 불과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종교가 성을 억압하는 경우의 예는 극단적인 예일뿐 통념이라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이야기들이 다수였습니다. 저자는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에 억압적인 성향을 띠며 죄책감과 수치심 가운데 살아간다고 하지만, 저희 집안을 보더라도 아니 저를 보더라도 전혀 그런 부분, 성적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각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이 공동담론으로 떠오르는 현상은 성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것에 대한 저항과 스트레스가 강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우리나라를 보아도  참여정부 시절에 성매매특별법으로 집장촌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성범죄가 가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은 억압하면 할수록 저항이 강렬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공교롭게도 최근 불거진 유명 목사의 불륜으로 또 한번 교회지도자들의 성적기행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종교가 결코 성욕을 누르지는 못하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터부시 되었던 성性을 조금은 자유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접근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종교에 대한 관점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시대 착오적이지 않나하는 부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부일처제가 종교의 왜곡된 성이 고착되어진 사회적 제도라는 주장은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과 싸우며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것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종교에 왜곡되어져 그릇된 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누군가가 바른 길로 가게 인도해줄 수 있는 것도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과정중의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사라 해서 억압된 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목사이기 전 인간이기 때문에 성에 대한 억압을 지닌 것이라는 것이죠. 저자가 무신론자의 시각으로 유신론자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협적이라는 비판은 면치 못할 듯 합니다.  접근법이 종교에 국한되어 있고 비판적인 시각이 불편함으로 남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성지도性指導를 그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3.11.21. 신고 공감 9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종교와 성에 관한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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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했고, 미국출신의 작가 ‘로버트 M.퍼시그’는 “한 사람이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면 ‘정신이상’이라고 부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면 ‘종교’라고 한다.”고 했다. 거기에 더하여 이 책의 저자 ‘대럴 W.레이’는 그의 전작에서 “종교는 바이러스다”라고 말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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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마르크스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했고, 미국출신의 작가 로버트 M.퍼시그한 사람이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면 정신이상이라고 부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면 종교라고 한다.”고 했다. 거기에 더하여 이 책의 저자 대럴 W.레이는 그의 전작에서 종교는 바이러스다라고 말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표현하게 만들었을까? 나 역시 마음속에 신을 가지고는 있지만, 종교적인 신의 존재는 부정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한 말에 대해 이야기 할 것도 많지만,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논란에 휩싸일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바라보고 읽어야 할까?

 

이 책 [침대위의 신]은 사실 제목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에게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책의 내용을 떠나서 감히 사람들 앞에 꺼내놓고 읽기도 민망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은밀함, 불온, 그리고 뭔가 숨겨야 한다는 관념과 동일하게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던, 안 하던 간에 이미 성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도덕의 잣대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인간의 성을 종교가 어떻게 억압하고 통제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침대라는 단어가 불온하게 상상을 하게 만들었지만, 내용은 성과 종교라는 거대 담론이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서, 가치관에 따라서, 그리고 종교에 따라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종교가 사람들의 품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보다는, 오히려 나쁜 짓의 핑계거리로 이용될 때가 많다고 말한다. 게다가 교회 안에서의 경제적인 문제는 반응이라도 있지만, 성적인 문제는 언제나 무시나 은폐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한다. 그는 또한 종교와 관계가 없는 곳에서는 성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편하게 이루어지는데 반하여, 교회 안에서의 성적인 이야기는 그것이 의학적이던, 어쩌든 간에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서, 종교가 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호기심에서 연구를 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성을 자기들이 믿는 신이 엄격하게 다스리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성적인 표현을 억제하려 애쓰는 데는 자기들의 교조적인 교리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렵채집사회의 성은 여성우위였고, 농경문화 초기의 성은 남성우위였지만, 성에대한 제약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생겨난 종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활발하게 벌였고, 창시자들을 무성적인 존재로 만들어 갔다고 한다. 그러기에 창시자와 관련된 여성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삭제되면서, 성 또한 왜곡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성한 행동과 신성하지 않은 행동, 정결한 행동과 부정한 행동을 규정해 놓고 인간의 성 행동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은 조직을 갖춘 대부분의 종교의 1차적인 포교 도구로써 인간들을 점점 더 종교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 죄책감과 수치심은 모두 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성적인 억압으로 쌓인 에너지와 죄책감을 종교의 성장과 권력유지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처음 성에 눈을 뜨게 되는 사춘기시절, 성에 대한 호기심은 바로 종교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자위, 동성애, 혼전 성애, 그리고 제한된 성 관습 이외의 것은 모두 부정한 것이 되고, 신은 항상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의 침실을 엿보는 신, 그는 분명 관음증 환자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문화인류학적으로 인간의 성지도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서 종교가 인간의 성지도를 어떻게 왜곡하고, 인간들에게 강요하는지를 비판하고 있다. 1세기에 기독교가 등장하고, 7세기에 이슬람교가 등장하면서 보편적인 종교는 서구문화에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들 종교가 단 한 명의 신이, 단 한가지 성적 취향을 가진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을 인간들에게 주지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충동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둘러싸기 위해 고안된 성적인 인식과 관습으로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종교와 질병은 항상 협조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질병은 신의 뜻을 어긴 죄책감이나 수치심의 결과이며, 종교는 기도를 통해 질병의 치유를 약속한다. 혹시 기도가 질병에 패배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종교는 대신 천국을 약속하면 그만이다. , 내세라는 개념을 통해 종교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간들을 감염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종교의 목적은 교육을 통한 예방이 아니라, 종교의 번창을 위한 죄책감과 수치심의 유도를 위하여 성지도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에서 신도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성범죄는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기사 우리사회 에서도 종교인들의 성추문이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종교의 성적 왜곡과 억압에 맞서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성지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신이 없다면 인간 모두는 정상이라는 것이다. 종교에서 배우는 당위는 인간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결코 알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그는, 성의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으로 숨은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며, 그리고 자신이 정상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성적인 생물로서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여 종교적인 주장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을 자유롭게 즐기라고 말한다.

 

사실 성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놓고 즐기는 것은 거시기하지만, 그렇다고 감추거나 은밀한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정부분 도덕의 규범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따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종교가 실은 우리의 성을 억압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수긍이 가기도 한다. ‘가서 신이 없는 섹스를 즐겨라는 저자의 주장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성과 종교라는 담론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k*****1 2013.11.19. 신고 공감 6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신이 없는 섹스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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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는 종교경찰이 있다. 이들은 종교적 복장 규정이나 행동규정을 어긴 사람들을 체포한다. 공공장소에서 두 사람이 키스를 한다면 종교경찰이 이들을 체포해 기소할 수 있고 기소된 본인과 가족들 모두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공동체가 개인과 가족 모두에게 성적 행동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도록 만드는 사회적 통제수단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리 머리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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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는 종교경찰이 있다. 이들은 종교적 복장 규정이나 행동규정을 어긴 사람들을 체포한다. 공공장소에서 두 사람이 키스를 한다면 종교경찰이 이들을 체포해 기소할 수 있고 기소된 본인과 가족들 모두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공동체가 개인과 가족 모두에게 성적 행동에 대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도록 만드는 사회적 통제수단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리 머리속에도 종교경찰이 있다. 이 때 종교경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종교적 가르침이다. 모든 종교에는 금지된 일이나 죄로 간주되는 일이 있다. 동성애, 욕정, 자위행위, 포르노 같은 것들이 죄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문제는 이러한 가르침이 생물학, 문화인류학, 진화심리학적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는 점이다. 결국 종교는 일반인들이 지킬수 없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이를 어긴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과 수치심, 불안감을 들게 교육을 시킴으로써 회개하고 반성하고 복종하는 종교적 인간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사람들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성적인 자신감과 즐거움을 무너뜨린다.  다시 말해 종교는 죄책감과 수치심이라는 메커니즘을 활용해 자신의 성장과 권력유지에 이용한다. 하지만  종교가 우리들의 침실까지 들어와 엿보면서, 정상적인 성행동이 무엇인지 가르칠 권리가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죄책감이나 수치심 없는 섹스를 즐기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이런 모습이 수천년간 살아온 인간의 본연적 모습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한다. 종교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성적인 일탈 사례만 보더라도 이러한 종교적 요구가 인간본성과 위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종교의 가르침이 강화되면서 이런 남녀간의 성관계에 대한  본격적 왜곡이 시작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어느 문화에서나 쉽게 입에 오르내리기 어려운 성의 문제를 당당하게 해부한 책이다. 신의 시각이 아니라 과학과 이성의 눈으로 성의 문제를 보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가치관에 전제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보다 올바른 가치관과 인간다움을 강조하는 종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어쩌면 금서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성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생리적인 몸의 지시와 "그렇게 하면 지옥에 떨어질 것" 이라는 종교적 가르침과의 딜레마에서 갈등하는 우리 인간들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길은 무엇일까? 끝장토론을 한다고 결론 날 문제는 아니다. 이에 관한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더라도 결국 이것은 개인이나 사회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어느 한 극단이 아니라 적절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부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이 종교적 가르침이 우리의 침대생활까지 지나치게 속박하는 점은 없는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리뷰는 예스 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c******4 2013.11.13. 신고 공감 5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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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성에서 올바른 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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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고 학창시절에 배웠다. 이중 식욕과 수면욕은 생명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욕구이다. 하지만 성욕은 생명연장에 관여된 욕망은 아니다. 인류 문명의 시작이래로 가장 극단적인 절제를 요구받은 욕망이 바로 성욕일 것이다. 학창시절 인간의 성욕은 종족보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한사람의 성인이 평생 하는 성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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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고 학창시절에 배웠다. 이중 식욕과 수면욕은 생명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욕구이다. 하지만 성욕은 생명연장에 관여된 욕망은 아니다. 인류 문명의 시작이래로 가장 극단적인 절제를 요구받은 욕망이 바로 성욕일 것이다. 학창시절 인간의 성욕은 종족보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한사람의 성인이 평생 하는 성행위는 1~1만 회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성욕이 단순히 종족보존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현대인들은 자손이 많아야 1~2명을 두고, 우리의 부모세대의 경우는 많아야 10명을 넘지 않았다. 평생을 걸쳐 하는 성행위의 횟수와 비교하면 종족보존을 위한 성욕이라기보다는 종족보전은 성행위로 위한 우연의 결과물로 봐야할 것이다.

 

인간의 성교가 지닌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기능이 무엇이든 잉태는 확실히 그 기능이 아니다. 잉태는 다만 가끔 발생하는 부산물일 뿐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189)

 

  대부분의 동물은 발정기가 따로 있다. 특정한 기간에만 종족보존을 위한 교미를 한다. 이는 대부분의 포유류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기간에만 성욕을 느끼며, 그 때의 교합은 종족보존을 위한 행위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발정기가 따로 없으며 서로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성행위를 할 수 있는 특이한 존재이다. 인간과 유전자가 많이 유사한 일부 포유류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언제든 그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성욕은 문명이 발달한 이래로 가장 많은 제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현재처럼 발달하기 이전 원시사회에서의 성욕도 이처럼 강한 재제를 받았을까? 이 책 침대위의 신에서는 아직도 원시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종족의 생활상을 빌어 인류 문명이 정착되기 이전에는 자유로운 성이 가능했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남녀간의 성기의 구조와 인간과 다른 포유류와의 비교를 통해 인류가 오랜 역사동안 모계사회에 근거를 둔 자유로운 성을 구사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성은 가장 대표적인 억압의 수단이고 절제의 수단이었다. 이 책 침대위의 신은 이렇듯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중세의 암흑시대를 지나 유일신의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모르몬교, 불교, 힌두교 등 거의 모든 종교)가 강조되면서 얼마나 왜곡되고 억압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화를 보면 그 시대에는 많은 신이 존재했다. 인간의 사상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은 인간과 똑같이 성욕을 느끼고, 신과 신, 신과 인간과의 다양한 성행위들이 가능했다. 신들의 성에 대한 다양함은 그대로 인간세계에도 반영되어 그에 맞추어 다채로운 성생활이 가능했고, 다양한 성문화를 인정했다. 하지만 다양한 신들의 세계를 벗어나 유일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인간의 성욕도 억압받기 시작했다. 유일신의 대두는 성을 위한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신을 닮기 위한 절대 금욕만이 최고의 선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유일신이기 때문에 그 유일신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처럼 다른 신과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런 신을 닮기 위해 성직자들에게 성은 절제의 대상이며 절대 악이었다.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결혼 전의 혼전순결(자위행위를 포함한 모든 성적인 행위)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인정되고 일부일처제(평생을 한사람과 섹스를 해야 하는 것)의 사상이 주류로 발전했다. 이러한 사고의 영향으로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절제해야 하는 대상이며, 억압되어야 하며, 죄악시 되었다. 종족보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 침대위의 신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처럼 종교적인 교리나 가르침이 인간의 기본적인 성 욕구를 통제하지는 못했다. 신앙을 갖던, 신앙을 갖지 않던, 누구나 성에 대한 욕망은 동일했다. 억눌려버린 성욕으로 인해 믿는 자들의 성행위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혼전섹스나 자위행위를 하는 비율은 대동하다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 자들은 신앙으로 성욕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이유로 기본적으로 느끼는 성충동에 대한 죄책감만 심어주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성관계를 갖지 못하는 부부나 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정상적인 인간의 욕구인 성에 대한 모든 것들이 왜곡되고 편협된 사고에 갇혀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갖는 욕망은 죄악으로 인지되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성생활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성 트러블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아졌다. 거기에 더불어 사회적인 성의 왜곡으로 인해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성 정보를 얻지 못하고 그로 인해 특히나 종교적인 청소년들이 정확한 정보를 배우지 못해서 남들보다 더 위험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 결과 가장 종교적인 청소년들에게서 원하지 않는 임신, 성병, 낙태비울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렇듯 종교는 자연스러운 감정, 심리적 과정, 생물학적 과정을 이용해서 우리의 성을 왜곡한다. 모든 종교는 자기만의 독특한 왜곡 패턴을 갖고 있다. 이 패턴은 신도들의 역사적, 종족적 뿌리와 결합해서 자기들만의 성지도(sexual map)을 만들어낸다. 이 지도에는 죄책감, 수치심, 불안감을 이끌어내는 갈등들이 가득하다. 이 모든 감정들은 사람들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성적인 자신감과 즐거움을 무너뜨린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종교가 사람들을 통제할 때 사용하는 핵심적인 도구로써 종교의 성장과 권력 유지에 이용되었다고 한다.

 

  성은 인간이라는 종의 성공적인 적응과 진화를 수십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짝짓기 전략과 유대감 전략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는 이 과정을 왜곡한 후, 우리더러 정상적인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종교는 더 이상 우리들의 침실에 들어와 엿보면서, 정상적인 성행동(sexual behavior)이 무엇인지 가르칠 권리가 없다. 이에 이 책의 저자 대럴 w. 레이는 "가서 죄책감이나 수치심 없는 섹스를 즐기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우리의 경우를 돌아보자. 우리의 전통 판소리 중 춘향가나 변강쇠전의 원본을 보면 그 원본 속에 담겨있는 성애에 대한 묘사는 속된말로 요즘의 웬만한 포르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농밀하고 유쾌한 내용과 풍자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적인 통념의 기준으로 야만적이고 문학적이지 않다고 걸쭉한 입담과 생동감을 싹 없앴다. 춘향이는 열녀이고 심청이는 효녀라고 고정되면서 이념적으로 거세된 것이다. 판소리를 보면 옛날에는 다 이렇게 말하고 듣고 살았다. 노골적인 에로틱이 창궐했지만 삭제된 부분으로 인해 왜곡된 내용들도 많다. 그 원본 속에 성애에 대한 묘사를 보면 우리의 선조들이 성에 대한 담론들이 무성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위에 열거한 논리로 삭제되고 왜곡되고 철거되었다.

 

  춘향가를 보면 이팔청춘 때 성의 에로스가 얼마나 펼쳐지는지 증명해 준다. 토벌가의 완판본에는 별주부 아내가 토끼에게 수청을 들고 나서 그 맛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대목이 나온다. 옹녀는 생계형 성이고. 옹녀의 삶은 섹스와 분리가 되지 않았다. 판소리는 저작거리에서 모두가 즐기는 놀이였다. 이렇듯 마당놀이를 통해 성적인 담론들이 활개 쳤고 그 시절 언어가 그것을 대변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대사회로 오면서 왜곡되고 변형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감춘다고 감춰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성의 이중 잣대는 수많은 사회적인 폐단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종교적인 논리와 유교에 근거한 사회적인 논리에 의해 왜곡된 성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아야 한다. 성은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이다. 그 권리를 신의 논리와 세상적인 논리로 재단하여 죄악시 하고, 침대위에 신을 불러다 놓지 말자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출장 중 이동하는 교통편 안에서 이 책을 보는 일이 잦았다. 한데 이 책을 보기 위해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 순간 옆자리에 앉은 이의 왠지 모를 부담스러운 눈길을 감내해야 했다. 책을 슬쩍 보고 난 다음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이 책의 선정적인 빨간색과 표지에 언급된 침대’ ‘’ ‘섹스라는 단어가 이 책의 내용을 떠나 속물 같은 느낌을 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사회는 성이라는 단어를 공적인 자리에서 꺼내는 것 자체가 죄악시 된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성은 은밀하고 왜곡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 대럴 W. 레이가 진정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어 그 단어자체가 죄악시 되는 그런 성문화가 아니라, 담론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바란 것은 아닐까 한다. 그럼으로 은밀하게 감쳐진 숨겨진 욕망의 그림자에 허덕일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양지로 이끌어 내어 기본적인 욕망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하는 성이 오히려 이 사회를 밝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건전한 성의식이 사회 통념화 되었을 때 이와 유사한 책을 공공장소에서 보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부담스러워 할 일은 없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 24의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h*****o 2013.11.20. 신고 공감 4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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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화가 나서 도중에 던져버릴 것 같다. 이슬람교도나 불교신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여자를 성적으로 억압하는데 익숙한 종교인들은 이 책에서 저자가 짚어내는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밝혀주는 -대목을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저자는 완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운명이라 믿으며 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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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화가 나서 도중에 던져버릴 것 같다. 이슬람교도나 불교신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여자를 성적으로 억압하는데 익숙한 종교인들은 이 책에서 저자가 짚어내는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밝혀주는 -대목을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저자는 완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운명이라 믿으며 목사가 되려고 신학공부를 하다가 상담심리학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40세가 되자 무신론자가 되면서 현재는 종교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한 단체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이 그 종교를 벗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35년간 심리학자로 지내오면서 종교적인 모임과 비종교적인 모임의 분위기에 많은 차이가 있으며 특히 종교적인 모임에서는 성을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고 대한다는 걸 보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갈등의 속내에는 성적인 문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저자는 만약 성에서 종교를 배제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조사를 한 끝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침실을 신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성적인 행동을 하고 난 후에는 일반인들보다 더 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행동을 하고 난 후에는 그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인해 관계가 깨어지기도 하는데 어릴 때부터 종교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는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가 다르다면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종교는 억압을 통해 사람들을 지배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은 보통사람들과 다르지 않으므로 보통의 종교인들이 신앙으로 인해 받는 많은 억압들이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저자가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다보면 신앙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성은 부정적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종교의 역할 때문이다.


또 지금 일반적인 사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말한다. 생물학적으로 희소한 일부일처제는 인간의 삶을 왜곡하고 있으며 관계발전을 방해할 뿐이라는 것을 많은 자료를 통해 말하고있다. 이렇게 일부일처제나 종교를 통해 성적인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는데 그 대상으로 자기 주변에 있는 가장 약한 자들에게 신체적, 언어적, 성적 학대를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종교인들이 성적으로 억압되었기 때문에 저질러지는 사회적인 나쁜 행동들이 종교를 벗어났을 때 훨씬 더 건전하게 표출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만약 침실의 일에 종교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나은 생활을 찾아갈 수 있다. 많은 종교에서 다산을 장려하는 것은 미래의 종교인들을 양산하려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성향이 강한 지역일수록 포르노의 소비량이 높은데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성 에너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저자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보다 더 행복지려면 종교를 벗어나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많은 종교인들이 반박할 것이지만 저자가 인용한 많은 자료들이 아주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가 원하는 것도 종교인들이 원하는 것도 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 그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임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이 책을 하나의 참고자료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성을 인정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 현실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388p


종교는 수천 년 동안 종교의 전파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번식에만 초점을 맞추게 했다.393p


종교가 사람들을 정신적인 함정에 빠뜨려서 성에 관한 왜곡된 주장을 가르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 덕분에 성에 대한 왜곡이 줄어들 것이고, 우리는 성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세련된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되는 것이다.394p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t******e 2013.11.21.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나의 섹슈얼 맵에 문제의식 갖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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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이 앞서 떠올랐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1957)의 종교, 특히 종교와 성에 관한 담론과 ‘런던통신 1931-1935’(Mortals and Others)의 질투, 섹스, 결혼이 자연스레 연상될 것이다. 질투에 대해서는 선천적이니 후천적 학습의 결과라느니 다소 의견이 달라 보이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이중적 성심리학을 전제한 내용과 대럴의 전작이 ‘GOD VIRUS’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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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이 앞서 떠올랐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1957)의 종교, 특히 종교와 성에 관한 담론과 런던통신 1931-1935’(Mortals and Others)의 질투, 섹스, 결혼이 자연스레 연상될 것이다. 질투에 대해서는 선천적이니 후천적 학습의 결과라느니 다소 의견이 달라 보이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이중적 성심리학을 전제한 내용과 대럴의 전작이 ‘GOD VIRUS’라니, 종교를 병적인 공포와 인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근원으로 보았던 러셀의 태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러셀 이후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성문화는 꽤 개방적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그러나 러셀의 논리에서 사례와 통계자료가 덧붙은 대럴의 성담론 출현을 보건데 종교적 성에 있어서는 단 한치도 발전적이진 못한 모양이다.

 

복종이 선행되는 신앙생활에서 학습되는 교리는 매우 교조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종교에서 강조하는 삶은 개인의 가치관 성장과 고정에 매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기본적인 욕구인 성은 세속적인 부분 중에서도 신화화에 있어서 가장 불편한 진실 어디쯤의 위치일 것이다. 그래서 경전들은 있는 그대로의 성을 즐기고 존중하는 내용보다는 억압하고 죄의식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성을 배우고 체험하는 데 있어서 (저자의 언어를 빌자면) 특히 어린시절부터 언어와 함께 습득되는 종교적 개념의 결과는 왜곡된 성지도(sexual map)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개인의 성 문제가 종교적 영향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를 가진 모든 신자가 교리를 문자 그대로 성 억압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경우 종교적 영향과 성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 책에서는 신자 혹은 성직자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사회적 환경은 배제한 종교적 성을 위주로 사례제시를 하고 있음을 말해둔다.

 

일단 우리는 이 왜곡된 성지도가 낳을 수 있는 결과로 성적 차별, 학대,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 저자는 신도와 성직자의 불륜과 아동성추행 사례, 교리에 의해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경우들을 말하고 있으나 보다 정신분석학적인 범죄로까지는 나아가고 있지 않으며 부부와 연인의 혼전관계 혹은 적극적이고 다양한 취향의 섹스의 시도에서 드러난 종교적 죄책감의 사례에 지면을 더욱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와 통계연구 등을 통해 저자는 종교가 성적 충동을 비롯한 다양한 성을 무시하고 부자연스러운 교리를 강요하여 콤플렉스와 죄책감, 교조적 태도로 개개인의 성자존감 뿐 아니라 포용적인 인간관계를 망칠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종교의 성이라는 단적인 면을 통해 종교의 불필요성, 폐해를 주장하고 싶어한다. 종교의 교리가 표면적으로 성을 억압할 뿐 실제로 성적 욕구나 불륜, 자위행위, 이혼을 감소시킬 수 없으며, 이는 일부일처제 신화에게서 솔직하지 못하고 성적충동에 부자연스러운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억압과 행위의 동시발생은 그 결과로 도덕심, 준법정신, 윤리의식과는 다른 종교적 죄책감이 불가피하다. 마치 영화 다빈치 코드의 사일러스가 오푸스데이의 명령에 따라 살인하고 가시달린 채찍으로 자해하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과 같은 죄책감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다. 마치 아들을 제물로 삼으라는 계시에 아들을 제대에 묶었던 아브라함처럼, 어린 아이의 눈물이 비를 부른다는 믿음에 가뭄이면 아이들을 제물 삼은 마야의 제의처럼 교리의 합리성은 차치해버린 신념, 신앙은 사일러스에게 금기위반과 회개의 사이클을 반복하게 한다. 죄를 지었고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생긴 죄책감 사이클은 저자의 말대로 종교의 권력이자, 종교의 존재를 이어오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이는 버틀라트 러셀의 공포가 종교의 기반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이다.) 이러한 공포와 죄책감의 사이클은 위안을 주는 종교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울도 해소시키지 못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번식적 섹스에서 벗어나고 있고 결국엔 종교가 수명을 다할 것이라 예측하면서도 지금 침대에서 신을 몰아내고, 종교에서 벗어나(무신론을 의미한다) 억압되지 않은 섹스를 즐기라 말한다. 실제로 섹스에 신을 끌어들이고 있다면 죄책감 사이클을 벗어나려는 과정이 매우 더디고 힘들 것이다. 어쩌면 그 뿌리 깊은 믿음과 두려움에서 완벽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종교의 세계관을 유지하지 위해 무시되어 온 스스로의 생물학적 이해와 욕구 자체에 대한 인정, 특히 종교적이거나 억압적인 성지도에 대한 인식과 변화 시도만으로도 의미는 있어 보인다. 그 이후 이타적인 경전의 해석, 성생활을 통한 삶의 질 향상, 교리의 이율배반적 오류에서 자신만의 종교를 찾거나 혹은 종교에서 벗어나는 변화의 계기가 될 가능성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모두에게 수용자로서의 문제이다. 현실과 괴리적이거나 배타적인 경전의 포용적인 해석 등 종교계의 개혁 노력이 더해진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마저도 결과적으로는 주어지는 교리가 아닌, 우리의 선택이다. 모두에게 종교는 같을 수 없다. 같은 종교를 가지고 같은 성직자의 설교를 들어도 모두에게 종교는 각각의 의미라고 확신한다.

 

저자의 종교비판에서 조금 떨어져 생각해보면 성과 종교의 연관성, 권력의 종교, 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우리 자신의 성 가치관, 자연스러운 성과 자신의 욕구에 대한 고찰, 몸과 마음을 잠식당하지 않을 맹신에 대한 경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대한 문제의식, 종교 안과 밖에서의 성차별, 성녀 어머니 창녀로서의 여성 등 여러 화두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딜레마에서 사유하는 즐거움을 얻길 바란다.

 

 

 

 

Sex & God (How Religion Distorts Sexuality), 대럴 W. 레이 IPCPress 2012.05.05

원서 표지 이미지 : 저자의 의견으로 만들어진 표지는 신GOD이라는 글자와 겹친 침대 위에 성SEX가 위치하여 주제를 기호적으로 표현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고뇌스럽게도 인물은 신과 성 사이에 샌드위치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이 위, 성이 아래였더라면 자꾸 은폐하고 모른척 하려는 인간의 욕망 위에 교리적인 종교의 군림이라는 저자의 의견을 더욱 잘 보여주었을 듯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f*****5 2013.11.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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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위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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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에는 자연적인 것과 학습적인 것에 의한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만물의 영장류로 불리는 인류는 고등동물로서 생각하고 사유하며 기록해 나가는 창조적인 존재이기에 역사이래 수많은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고 생각한다.세상을 변화시키면서 기적과 같은 문명의 발전이 겉으로 나타나는 인류의 창조물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먹고 자고 하품하며 생식의 욕구는 극히 자연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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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본능에는 자연적인 것과 학습적인 것에 의한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만물의 영장류로 불리는 인류는 고등동물로서 생각하고 사유하며 기록해 나가는 창조적인 존재이기에 역사이래 수많은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고 생각한다.세상을 변화시키면서 기적과 같은 문명의 발전이 겉으로 나타나는 인류의 창조물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먹고 자고 하품하며 생식의 욕구는 극히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한다.인간은 동물과 동일하게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생리적인 욕구에 의해 정자와 난자를 생산한다.좋아하든 원치 않든 남.녀간에 성관계에 의해 핏덩어리와 같은 아이가 태어나게 되는데 생식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누가 말릴 수도 없는 문제이지만 종교원리,교조주의의 원칙에 의해 생식 욕구를 억제되면서 갖가지 잡음과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종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성적인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기독교,천주교,이슬람교,유대교,불교,힌두교,공산주의 등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종교의 원리와 교리를 들여다 보면 문란한 성생활,동성애 등을 금지하고 있으며 일부일처제를 고수하고 있다.교인들 중에 이러한 원칙과 규율을 어기게 되면 제재가 따르게 마련이고 이들을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한다.그런데 각 종교,이념을 이끌고 있는 리더자들은 과연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 남자와 여자의 생리조건이 다르겠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하루만 지나도 수많은 정자가 만들어지고 끌리는 이성 및 애인에게 대쉬하려 성적인 욕망이 꿈틀거리게 마련이다.천주교와 불교의 경우에는 독신으로 살려고 마음 먹었기에 성의 욕구를 죽이겠지만 기독교의 목회자들은 일부일처제에 다산을 바라고 있다.그런데 2040년 경이 되면 지구의 인구는 90억 명을 육박할 전망이라고 하니 지구가 처해 있는 현실성부터 제대로 파악하여 인구감소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만 마땅하지 않겠는가.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젊은 남.녀들이 아이 낳은 것보다는 개인적인 미래 준비와 여가를 선용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직시하면 다산이라는 교리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기에 현실에 맞게 교리를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기독교 및 천주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지만 교육수준,경제적 수입이 높은 지식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서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반복적으로 세뇌시킨다 해도 겉으로는 네,네 하겠지만 비충성파인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섹스와 생식 등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해 나가리라 생각한다.내가 아는 바로는 교인 중에는 독실하게 종교생활을 하면서 교리에 맞게 흐트러짐 없는 일상을 꾸려 가는 지인도 있다.그러나 이 글을 읽어 가면서 불편하게 다가오는 점은 목회자들이 겉으로는 선량한 체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비도덕적인 문란하고 지탄 받을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만 하다.

 

 기독교의 원리와 강령을 중심으로 삼되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목회자들의 이중적인 생활자세를 비판하고 있는데 교인들의 입에서 섹스,체위,오르가슴,이성애,동성애,자위행위와 같은 자극적인 행동을 봉쇄하고 삼가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와 어긋나는 행동이 발각되면 규율에 맞게 제재를 가한다고 하지만 실상 목회자들이 진정으로 교인들을 사랑하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세상을 평화의 축제로 삼으려 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현상이다.듣기로는 일부 몰지각한 교인 및 목회자들이 '설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잿밥에만 신경 쓴다'고 하는데 거의 맞다고 본다.기독교의 교리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 많고 교인들에게 강제적인 조항들이 많아 일탈하려는 교인들도 늘어 나고 있다고 한다.교인들이 일탈하게 되면 그 교회에 대한 나쁜 이미지와 소문은 소리소문 없이 만리를 갈텐데 제발 교회도 이제는 참신하고 현실에 맞게 바뀌어 갔으면 한다.교회는 교인들이 내는 성금과 십일조에 의해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종교의 목적은 인류의 구원과 자비 등에 있다.예수,석가모니,마호메트는 서로 다른 종교의 창시자이지만 그들이 최초에 종교를 설립할 때의 원리와 교리에 맞게 교인 및 중생들에게 종교의 참뜻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은 들지만 일부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종교인들이 정신적 피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안타깝기만 하다.순결과 순수를 지향하고 강조하면서도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돈과 물질에만 급급하면서 부를 축적하려는 이기적인 행태와 남.녀간의 성적 욕구 및 성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겉으론 엄격하게 교리에 맞게 하도록 강조하고 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평신도들보다 더욱 못되고 패악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만하다는 생각까지 든다.남.녀 간이 좋아해서 성관계를 맺고 각자의 판단에 의해 번식행위를 하는 것을 종교 지도자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다.보다 현실에 맞고 융통성 있는 말씀이 나오길 바란다.

 

 



j******6 2013.11.2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 금욕도 만들어졌다.
"신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 금욕도 만들어졌다." 내용보기
물과 기름처럼 절대 화합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종교와 성(SEX)다. 새삼스러울 건 없는 사실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가리지 않고 종교가 금욕주의를 강조하며 성을 배척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니까. 오죽하면 우리 단군신화마저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만 먹으며 자신의 육적인 본능을 억눌러야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대로부터 사람은 그렇게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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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과 기름처럼 절대 화합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종교와 성(SEX)다. 새삼스러울 건 없는 사실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가리지 않고 종교가 금욕주의를 강조하며 성을 배척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니까. 오죽하면 우리 단군신화마저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만 먹으며 자신의 육적인 본능을 억눌러야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대로부터 사람은 그렇게 동물과 뭔가 다른 것으로 개념화되어야 했고 아마도 그래서 모든 동물이 다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망인 성적 욕구를 스스로 억압할 수 있는 것으로 차이를 만드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종교가 점차 특권적 지위를 가지면서 더욱 금욕적으로 발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번에 읽게 된 대럴 W 레이의 '침대위의 신'이 바로 거기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럴 W 레이에 대해 좀 말해야할 것 같다. 독특한 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감리교 신학대학을 다녔다. 처음엔 목사가 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30대 초반,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 계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책에서 그가 직접 한 얘기로 추측해 보건대, 아무래도 종교인들의 비행으로 인해 어떤 환멸 같은 것을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는 마흔에 이르러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심리학을 공부했다. 신을 괄호쳐 버리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인간 그 자체에서 근거와 이유를 얻으려 한 것이다. 그렇게 그에겐 두 개의 역사가 중첩되어 있다. 신자로서의 역사와 무신론자로서의 역사가. 경계를 넘나든 존재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이 일종의 구성된 존재임을 자각한다. 즉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주입된 것이라는 걸,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 마음 같은 것들은 바로 그런 주입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잘 안다는 뜻이다.


 그게 대럴 W 레이에게 일어난 일이다. 무신론자가 되고 보니 종교인으로 있을 때 옳다고 배웠고 스스로도 인정했던 많은 것들이 그저 종교의 이익을 위해 조작된 기만과 허위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성(SEX)이 특히 그렇다고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수천년간 종교가 무엇보다 억압하고 배척해왔던 것이 바로 성(SEX)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모든 종교적 도그마로 부터 이 성(SEX)을 구해내려 한다. 그 종교적 도그마에 비추어 수치스럽게 여기고 감추려고만 했던 성(SEX)을 사실은 그래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임을, 성(SEX)은 그 자체로 인간의 본연을 이루는 소중한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구성은 바로 그 성(SEX)의 구출 혹은 해방이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지도록 이루어져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모두 다섯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자의 말이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되려면 가장 먼저 무슨 얘기부터 하는 게 좋을까? 그건 아마도 성(SEX)을 배척하고 금욕을 강효하는 종교의 도그마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그래서 또 위험한 것인가를 낱낱이 밝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책도 그렇게 서두를 뗀다. 그럼 그 다음은? 물론 이제 성(SEX)에서 종교적 도그마들을 싹 걷어 내었으니 그렇다면 원래 인간 본연의 모습에서 성(SEX)은 어떤 것인가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종교가 얼마나 인간의 성(SEX)을 멋대로 왜곡하고 근거없이 부정해왔는지 똑똑히 드러날테니까 말이다. 당연히 이 책도 그런 순서를 취한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성(SEX)은 어떠한 지까지 밝혀 인간의 성(SEX)이라는 것이 인간 번성과 진화의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임을 밝힌다. 생물학적으로 밝혔다면 이제 문화적인 측면일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것은 어쨌든지간에 어떤 특정한 시점에 인위적으로 태어난 것이므로 과연 종교가 하는 말이 맞으려면 그것이 태어난 이전에도 그 말대로였음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럴 W 해리는 예수와 붓다 그리고 마호메트가 태어나기 이전, 고대의 문화에서 인간의 성은 어땠나를 세번째 파트에서 보여준다. 그렇게 생물학적으로 문화인류학적으로 금욕이란 자연적인 진리도 아니며 당연히 인간의 성이 배척당해야 하는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 다음 대럴 W 해리는 네번째 파트로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종교와 전면적으로 대결한다. 내 생각엔 아마도 이 부분이 대럴 W 해리가 이 책을 쓴 진짜 목적이 아닐까 싶다.


 결국 '침대위의 신'이 우리에게 하려는 말은 무엇인가? 그건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성향이 사실은 외부로 부터 억지로 주입되어 가지게 된, 달리 말하면 세뇌당한 결과라는 걸 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성(SEX)에 대한 가치관, 태도 등이 말이다. 이건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종교가 우리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수치심과 자기 부정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종교의 힘에 의지하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진실의 모습이다. 그건 다음과 같이 인용한 지은이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대럴 W 해리의 말에 따르면 종교는 우리의 자기 부정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억압하며 그것이 실패할 때마다 '나는 안돼'하고 스스로를 부정할수록 종교라는 나무는 무럭무럭 자란다. 금욕은 바로 그것을 위해 종교가 우리들에게 던져준 족쇄다. 인간에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억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을 인간이라면 모두 당연히 지향해야 할 당위로 설정하고는 마치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다 지키는 것처럼 호도하여 늘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스스로 왜소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기 위하여. 그러니까 단군신화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모두 호랑이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종교는 곰이라는 걸 만들어 '봐라! 곰은 가능하잖니?'하면서 곰처럼 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못난 존재로 여기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금욕은 바로 그것을 위해 기능한다. 자기 긍정으로 열린 광장에 나서야 하는 우리를 끊임없는 자기 부정 속에서 자아 비판의 감옥 속에다 가두기 위하여. 바로 그 잔혹한 짓을 종교가 저지르고 있으며 그 종교가 만든 잔인한 환영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이 '침대위의 신'이 들려주는 간곡한 진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인간이 자연적인 모습을 부정하는 종교의 도그마와 싸우고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어쩐지 리처드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이 많이 생각난다. 그게 딱히 내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니었던지 책 뒤 표지를 보니 이미 이렇게 써놓고 있었다.



 가장 뜨거운 본론이라는 말에는 별로 찬성하지 못하겠지만 이 책을 그래도 '만들어진 신'과 같은 '만들어진 금욕'편 정도로는 충분히 볼 수 있을 듯 하다. 네, 다섯번째 파트에서 너무 지은이 자신만의 의견을 진실처럼 피력하는 곳이 종종 있어 좀 못 미더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근거는 충실하고 논지 또한 설득력 있기 때문에 종교가 얼마나 우리의 성적 가치관, 태도를 멋대로 유린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충분히 권할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아도 푸코는 근대가 계몽주의와 함께 양산된 개인이라는 주체를 통제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했던 것이 바로 성(SEX)이었다고 밝힌 바가 있다. 특히 '자위'가 대표적이었는데, 사실은 가장 경제적으로 쾌락을 얻는 수단인 자위를 오로지 수치스럽고 자기 부정의 대표적 행위로 여기게끔 만들어 체제가 주체를 길들였다고 한 바 있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의 대부분은 사회가 인위적으로 주입한 것들이 많다. 나와 타인에 대한 내 판단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상정하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오늘을 현명하게 사는 태도라고 본다. 궁극적으로 '침대위의 신'은 바로 그런 태도가 오늘의 우리에게 있어 당위임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책이다.




  

 

 



l****1 2013.11.22.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금기의 영역에 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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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교리와 생활양식은 흔히들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 범접하지 않으려 한다. 비합리적인 요소나 시대착오적 대목이 읽혀져도 문제 삼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인 것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세 암흑기를 거치면서 종교적 권위에 압도되어 반론을 제기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역사적 경험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하나의 근거로 제시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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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교리와 생활양식은 흔히들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 범접하지 않으려 한다. 비합리적인 요소나 시대착오적 대목이 읽혀져도 문제 삼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인 것이다.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세 암흑기를 거치면서 종교적 권위에 압도되어 반론을 제기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역사적 경험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하나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 교리나 지도자들의 권위에 도전했다가는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곤 했으니 말이다.

 

종교가 지니고 있는 비합리적 요소 가운데 섹스에 관한 편견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섹스를 죄악시하여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수치심이라는 자기 검열 장치를 부과하여 인류의 자연스런 행동을 부정적으로 규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성해방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과도한 종교의 성적 규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침대 위의 신]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과학적 응답이다. 막연하게 비합리적이라 짐작할 뿐이었던 종교적 금기와 왜곡된 성의식의 근거를 역사적, 사회적, 생물학적 맥락에서 짚은 다음 그 허구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필자의 칼날은 특정 종교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종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적 허구, 왜곡된 성의식을 유형화하여 정리하기도 하고 개별 종교의 특수한 문제점을 분석하기도 한다. 이때 그 종교 본연의 교리도 유용한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종교적 교리로 그 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니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할까?

 

이 책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가차없이 메스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에 종교 근본주의에 빠져 있는 이들은 불경스러워 차마 읽어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의 합리적 지성을 지닌 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필자의 주장에 공감하며 마음 문을 열 것이다. 그만큼 도전적이고 논쟁 유발적이고 그래서 위험한 책이라 하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a*****7 2013.11.21.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신이 있건 없건, 신은 성을 억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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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은밀하고, 사적이며, 개인적인 행위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종교 안에서든 종교 밖에서든, 미숙하든 성숙하든 매우 개인적이인 일이며, 어느 문화에서건 마구 드러내 놓고 하거나 떠벌이지 않는다. 섹스의 속성이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것처럼 육체에 대한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욕망임과 동시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자연을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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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는 은밀하고, 사적이며, 개인적인 행위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종교 안에서든 종교 밖에서든, 미숙하든 성숙하든 매우 개인적이인 일이며, 어느 문화에서건 마구 드러내 놓고 하거나 떠벌이지 않는다. 섹스의 속성이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것처럼 육체에 대한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욕망임과 동시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자연을 느끼는 것만큼 정신적인 충족감을 주는 행위이다.

 

   그러나, 섹스를 논하려면 욕망의 해소라든가 충동의 해결을 위한 관점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애정, 사랑, 친밀감, friend with benefit, 다 좋다. 그러나 유전자 전달이 목적이 아닌 이상 섹스의 목적은 사랑의 완성에 있고, 성적 욕망 역시 대상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을 토대로 하여, 성행위를 통해 이를 더 강화시킨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성을 필요 이상으로 충동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 역시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고루한가. 역사 인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종교가 섹스를 억압해 온 건 사실이지만, 현대 사회, 특히 최근 10여년 간, 성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며, 누구나 자유롭게 성충동을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몽을 넘어 과도하게 주입되어, 지켜져야 더 가치있을지도 모를 내밀함마저 무방비하게 준비 없이 노출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섹스란 게 두 남녀 혹은 동성 커플의 친밀감과 애정의 완성과 확인을 위해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묶는 의미있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인스턴트적으로 만나서 쉽게 섹스하는 일이 합법적인 것은 물론이고, 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 시대에, 종교가 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당장 컴퓨터를 켜고 바깥 세계로 연결된 인터넷에 접속해보자. 온국민의 시작화면인 네이버 홈의 뉴스 기사 하나만 클릭해도, 상품화된 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최고의 부스를 자랑한다던 스스로 지성인임을 자처하던, 보수를 대변하는 조선일보 인터넷 판에서는 주요 부분을 클로즈업 하고 유혹하는 반나의 성인들이 사이즈 확대며 성만족을 위한 각종 상품들과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광고를 백두대낮 어린 아기들도 클릭할 수 있는 환한 컴퓨터 모니터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광고하는 시대에, 종교가 성을 억압한다니. 조금 시대 착오적인 주장이 아닌가.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개인의 은밀한 성생활에 대한 자료를 심리치료사로서의 임상 데이터에 기반으로 한다.즉, 결혼생활 혹은 다른 정신적 문제를 가진 환자와의 심리적 임상치료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와 무신론적 종교 인류학을 결합해서 지나치게 해석한다. 

 

  물론, 종교를 지난 몇천년간 인류 문화를 지배해온 역사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청소년기의 자위나 혼인 전 성교, 구강섹스, 동성연애 등에 대한 죄책감이 성적 무지로부터  비롯된 종교적 억압 때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종교 내에서는 신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만일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삶을 지배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성교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은밀한 행동을 할 때, 설령 그게 나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더라도 예를 들어 똥이나 오줌을 누거나  밥을 버리거나 몹시도 게을러지거나 할 때,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신에게 수치심 혹은 난감함을 느낄 수는 있지 않을까. 설령 종교가 그런 행위들을 억압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굳이 성적 억압을 종교적 억압이라는 틀에 맞추어 무신론을 주장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성충동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남녀의 시각이 다르고 나이에 따라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학계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게 맞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의 확신을 얻었을 때 서로의 몸을 허락하는 종교적 원칙이 그리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나도 교회를 한두 해 다녀 봤지만, 어느 교회에서건 목사가  강조하는 것 중 우리의 세속적 생활을 통제하는 범위 내의 것은 십일조를 내야 한다, 건축 헌금을 내야 된다는 종류의 것 뿐이지, 성적인 행위까지 통제의 범위 내에 두는 것은 별로 보지를 못했다. 아마도 미국의 청교도적인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아직까지도 종교편향의 사람들에게는 섹스에 대한 무의식적 죄책감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저자의 주장이 조금은 시대 착오적인 것이라는 나의 견해를 제외하고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종교에 대한 납득할 만한 사실을 근거로 실랄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그 예로, 성직자의 성추문이 교회 조직 내에서 어떻게 보호되고 성 학대 사건을 은폐하는 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의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교사 등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고객과 성관계를 맺으면, 즉시 해고되고 심지어 형사법으로 고소, 처벌될 수도 있지만 수백년간 철통같은 성직자 보호 조직 속의 카톨릭 성직자들이나 조직 내 자금 조달 능력과 리더쉽으로 영향력이 큰 목사의 경우, 오히려 종교 조직 내에서 보호 받으며 더 나아가,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교회의 잇권을 가진 이사회에 의해 다른 명목으로 불명예스럽게 쫓겨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섹스와 자위 행위에 대해 종교에서 전하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섹스를 막지는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은 있지만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섹스를 하는 도중 느끼는 죄책감보다는 비 종교적 이유, 즉 이성 친구가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맘대로 섹스를 하지 못해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더 크지 않을까.

 

   이 책은 무신론적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하기 위해 종교 자체의 부정적 측면들을 실날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종교는 신자들을 통제하고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를 떠남으로써 생기는 사회적 고립을  복종의 메시지와 함께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막는다. 실제로 사이비 종교나 이단으로 불리는 종교들 내의 유대 관계는 가족 이상의, 아니 가족을 파괴할 만큼의 결속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단이 아니어도 기독교는 특히 여러가지 방식으로 교회 내에서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장려한다. 그들은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없다. 종교 속에 감금되어서가 아니라, 고립이 두려워서이다. 종교라는 이름의 끈끈한 유대관계와 결집이 달콤해서 중독되는 것이다. 종교가 주는 아늑한 사회성, 그들이 이미 정을 붙인 그만의 세상에서 소외되는 고립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228
보편적인 종교는 혁명적인 생각을 내놨다. 종교가 문화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 보편적인 종교는 마치 침략자처럼 행세하며 부족 종교를 마구 없애버리고 부족 문화를 감염 시켰다.

 

231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종교와 질병은 항상 협조관계였다. 종교는 기도를 통해 질병의 치유를 약속하고 혹시 질병에게 패하는 경우에도 대신 천국을 약속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문화인류학 관점에서나 혹은 생물적 존재로서의 관점에서나 일부일처제가 반드시 궁극적 합의에 도달한 인류 최후의  문화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유인원과 모든 동물에게서 동성애, 난교, 자위 등의 성적 다양성이 발견되었고,  수렵 채집 문화의 부족에게서는 결혼이나 나이의 제한이라는 제도에 구속되지 않는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문화가 관찰되었다. 남녀가 비교적 평등했던 수렵 채집 문화를 깨고 나타난 농경문화의 종교는 양적 팽창을 통해 인류 전체의 성문화와 이성 간의 관계를 지배하였다. 농경 사회에서 시작된 보편적 종교는 지배력을 확장하기 위해 성적 억압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였고, 불교, 기독교, 카톨릭, 이슬람을 막론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남성의 지배 체제 밑으로 종속시켰다는 점을 저자는 새삼 주지시킨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g******1 2013.11.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