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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미국에 살던시절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국내메이져 항공사중에서도 유독 대한항공을 더 선호했던 기억이 난다 괜히 편안하고 뭔가 더 안정적인 비행이 될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던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지 않았을까 한다.
이번에 접한 FKI미디어 경제거인 시리즈는 수송계의 거장 한진그룹 창업주이신 조중훈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을 보면 사세가 확장하면서 여러 분야로 사업을 확장시킨 반면 조중훈회장은 오직 운송업 외길에서 활로를 개척해온 뚝심있는 기업가이다
땅을 이용한 육상 수송회사 한진
바다 해상수송 한진해운
하늘을 이용한 항공수송 대한항공
땅,바다,하늘을 아우르며 종합물류그룹
수송계의 큰별이자 땅과 하늘과 바다의 길을 연 대한민국 수송계의 거목.. 그 발자취와 행보가
소개되는 책이다.
25세에 트럭한대로 수송업을 시작하여, 5년만에 30대의 트럭과 큰 매출 규모를 가진 운송업자로 성장하게 되나
6.25로 인해 그간 모았던 차량을 몰수 당하게 되자, 은행에서 회사돈을 모두 찾아 직원들과 함께 나눈후
피난길로 떠나게 된다.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 인천으로 다시 돌아와보니 그의 앞엔 찌그러진 간판 과 폐허가 된 사무실,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회사를 운용하며 쌓아온 신용을 담보로 하여 빌린돈으로 다시 차량을 사들여 일을
시작하여 결국 미군부대의 운송서비스 계약을 계기로 큰 성장을 하여, 후에 항공업, 해운업으로 진출하게 되는
행보를 그리고 있다.
그는 일명 '매의눈'으로 시대를 앞서 보며 앞으로 다가올 시장에 밝았으며, 신의를 최우선으로 하며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 훌륭한 인맥의 소유자 이었고, 항상 사업도 예술의 하나이다.
라고 이야기 하며 늘 사업에 혼을 담으며 동시에 남과는 다른 방법을 늘 생각했다.
또 사업을 예술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 안에 진심을 쏟아 넣어야 하기 때문이며 예술가가 예술작품을
완성시킬 때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처럼 사업도 마찬가지 이니..
그렇게 될 때 예술이 높이 평가받듯 사업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경제거인 시리즈를 읽다보면 공통점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어난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해방이전이나 해방후에 시작한 사업이, 한국전쟁 6.25 로 인해 풍지박살 내지는 큰 어려움으로 사업을 정리하게
되나, 전쟁 종식후에 그간 쌓아왔던 인맥과 신용을 바탕으로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하게 된다.
물론, 국가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되어 그 배경이 마련 되었다는 이점도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쌓아왔던
노하우, 신용, 인맥이 바탕이 되어 그 근간을 이루게 된다.
마지막으로 접한 FKI의 경제거인 시리즈라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민국에 이10인의 위인을 넘어서.. 소개할 만한 경제위인들이 더욱 많아졌음 하는 바램이며
다만 이러한 위인전기를 읽다 보면 '과장'이 넘치며, 실제 이야기를 소설화하여 각색하다 보니 다소 주인공을
미화하거나 업적을 부풀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지만, 어찌됐건 대한민국 경제사에 한 획을 그으신 업적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신 앞서 가신 분들이기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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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처럼
땅과 하늘과 바다의 길을 연 대한민국 수송계의 거목 조중훈 회장은 해방 직후인 1945년 항구의 물동량이 많아지기 시작하던 때 인천 지역에 조그마한 간판 하나를 내걸고 운송 회사를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가 스물다섯이란다. 가진 것 이라고 트럭한대 였지만, 미국과 군수 물자 수송 계약을 체결하며 단기간에 한진상사를 국내 최대의 육상 운송 회사로 성장 시킨 분이시다.
조중훈 회장은 해방당시 전쟁을 겪고 가난과 배고픔의 어려운 상황을 견디면서 산업 강국, 물류강국으로 성장시킨 그는 다른것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수송분야에만 전문적으로 발전시킨 외길 인생을 사셨던 분이시다. 이 도서를 읽고 알게 된 사실인데 그가 88서울 올림픽에도 많은 기여를 했던 분이라는 것이다. 조중훈회장 역시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것보다는 남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수송 선진국을 일궈낸 분이시다.
조중훈회장역시 다른 해방을 겪고 큰 일을 일궈낸 회장님들과 같이 끈기가 대단한 분이셨다. 해방되고나서 트럭한대로 5년동안 42명의 직원과 30대가 넘는 트럭을 보유할 정도의 탄탄한 회사가 되었는데 다시 6.25가 터지면서 모든걸 포기하고 부산까지 갔다가 전쟁이 끝나자마자 다시 인천으로 와서 운송업을 시작하였다.
조중훈회장은 국내에서의 물류에 다시금 성공하자 해외에서 비행기를 통한 운송을 하기위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국영 기업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며 항공 사업을 시작하였고, 인수 당시 제대로 된 비행기는 커녕 노선조차 확보되지 않은 때 홀홀단신의 노력으로 많은 나라의 항공 노선을 개척해낸 분이시다. 지금 우리가 외국에 비행기 타고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다 조중훈회장 때문이다. 물론 조중훈 회장이 하지 않고 외국에서 외국항공사가 들어와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비싼 금액을 내고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또한 그는 육송, 공송에 성공하자 컨테이를 싣고 배로 운송하는 방법을 생각해 우리나랑 해운 물류업의 수준을 선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로써 육,해,공송에 모두 성공한 그는 한진중공업을 설립하면서 조선업까지 도전하게 이른다.
조중훈 회장은 수송은 인체의 혈관과도 같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물류의 수송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 하였고 각종 장학재단을 만들며, 국내 최초의 사내대학까지 만들면서 사내 인재 양성에 힘썼던 분이셨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소년들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권한다. 책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있고 책을 통해 얻은 것이 큰 재산이 되었다고 한다 책속에 길이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해 남보다 한발 앞서가기를 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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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은 일반 소비자들에게야 택배 사업 정도로 유명하지만, 물류와 운송, 그리고 항공 산업 대한항공이란 거대 유닛을 소유하고 이끄는, 한국 산업 중추 실체 중 하나죠. 그 창업주 조중훈은 워낙 잘 알려진 인사이고, 사업 초창기 H그룹 창업주 모 씨와의 불편한 인연으로도 세간에 큰 화제가 되기도 한 분입니다. 2002년에 타계하여, 그 길고 뚜렷한 인생을 마감했을 때의 그의 향년은 82였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한진은 인천을 기반으로 합니다(4년제 인하대학교, 그리고 전문대인 인하공전도 모두 한진 그룹 소유죠). 한진상사를 인천에서 갓 창립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때 그의 나이 불과 30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앞서 리뷰에서 언급한 조홍제씨는 이때 44세의 중년이었고, 이병철로부터 사업 전망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는 정도였으니 지역의 대부호였을 뿐 아직 사업의 감도 익히지 않을 무렵입니다) 젊은 사람이 배짱 한 번 대단하군! 언제나 주위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지냈으며, 실제로 다른 중견 사업가들이 해방 직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사업체를 불하 받아 기반을 닦거나, 해당 기업체에 소속되어 관리자 신분으로 인수를 받은 유리점이 있었던 반면, 조중훈은 상대적으로 맨주먹 창업이나 마찬가지였죠. 이 책에 나오듯이, 그냥 트럭 한 대로 모든 것을 시작했고, 다시 접었다가, 다시 일어셨습니다. 지금 한진 하면 생각나는 택배 산업, 전국의 소위 "1톤 사장님"들을 우리는 우습게 여기지만, 이 거대 기업의 창업주 역시 당시만 해도 그저 트럭 한 대 몰고 다니는 정처 없는 인생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많은 상념이 교차하게 됩니다.
인천 바닥에서 신용을 쌓으며 좀 잘나가는가 싶었는데, 한국동란의 발발로 그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됩니다. 하지만 의지와 배짱으로 다져진 조중훈의 마음가짐은 누가 함부로 침노할 수 있는 연약한 지반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완과 순발력을 발휘하여, 미군 군수품 수송 계약을 따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미군측에서도 그의 성실성과 추진력에 감복하여 수주액을 점차 늘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기업 한진 그 도약 발판 마련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군과 연계를 맺게 되니 항공 물품 운송에도 손을 뻗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이것을 계기로 "에어 코리아"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손을 대는 영역마다 큰 이익을 보는 놀라운 재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그였지만, 잘나가는 업적 뒤에는 부담도 없지만은 않았는데요. 박정희는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공기업 한국항공공사를 조중훈더러 인계할 것을 강권합니다. 조중훈으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으나, 시대 분위기가 분위기였던지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겠죠. 허울이 좋은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은 이래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한진은 "여객" 운송에까지 확장을 보기에 이릅니다. 마지못해서, 혹은 사업상의 불이익을 권부(權府)에서 가할까 하는 두려움에 받아들이긴 했지만, 일단 인수한 후에는 순풍에 날개를 단 듯, 홍콩, 파리 등으로 취항 노선을 확대하는 등 일취월장의 추세를 탑니다. 이 무렵에 드디어 베트남 전쟁이 터지는데, 한진은 이에도 참여하여 거액을 달러로 벌어들이기에 이릅니다. 운송은 특히나 국제적 영역을 취급할 수밖에 없는 부문이므로, 그가 벌어들이는 거의 모든 수익은 달러 매개였습니다. 사업 보국을 몸으로 실천하는 그였지만, 전화로 고생하는 현지 베트남인들에게는 "타 민족의 고생을 기화로 이익만을 취하는 어글리 코리언들"이 밉고도 미웠다고 합니다. 조중훈은 이런 점도 감안하여, 거래시 월남인들의 감정과 자존심을 최대한 존중하고, 취업의 기회를 현지인에게 대폭 개방할 것을 지시합니다. 조중훈은 사업 수완 못지 않게 실용적(practical) 유머 감각 역시 상당했다고 하죠? 석유 파동은 당시 한국 같은 자원 부재 개도국에게 특히 타격을 주었습니다만, 기름으로 움직이고 기름으로 돌아가는 운송업계가 받은 타격은 여타 업종과 비길 바가 아니었습니다. 원가를 아끼고 또 아껴야 하는데, 한번은 아래에서 "비행기 동체에 페인트를 안 칠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건의가 들어오자, 그렇게 하라며 겉표면에 " 이 비행기는 비키니 차림입니다."라고 쓰게 지시했다는 겁니다. 얼마나 위트가 넘칩니까. 이런 여유야말로 위기를 도리어 기회로 만드는 사업가만의 기지라고 할 수 있죠. 그는 대단히 진취적이고 공격적 기질이 강했습니다. 박정희가 카터 행정부 시절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미군 철수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자, 자체 국방력 충원을 위해 방산물자 생산을 지시하는데, 조중훈을 이를 받아들여 국산 전투기 1호인 "제공호"를 생산, 성공하기에 이르죠. 이 책은 다소 시대 관계가 좀 셔플링되어 편집한 모습입니다. 조중훈 하면 또 지일파로 유명한 기업인인데요. 그 중에서도 고급의 인맥만 알짜로 구축해서 필요할 때마다 동원한 전설적인 일화로 유명한 분이 조중훈입니다. 이 책에 보면 장기영 부총리(당시 한국일보 오너)가 조중훈을 불러, 한일 외교 정상화에 일익을 담당할 것을 주문합니다. 이때 그가 알게 된 일본 정치인 중에 다나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물론 나중에 총리대신을 지낸 다나카 가쿠에이 그 사람입니다. 이 책에도 그런 서술이 있습니다만, "학력은 비록 미흡하나, 야심과 총기로 가득했다"는 점이 공통이라고 적어 놓았는데요, 실제로 다나카 가쿠에이는 국졸 학력으로 그만큼이나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로도 유명하죠. 조중훈의 위대한 면은 언제나 인재 양성이라는 기업의 소명에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는 일류 조종사 확보에만 주력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자체 양성을 하는 인프라를 창설하는 일에도 정력을 쏟았는데요, 그 결과가 우리가 보는 명문 학교들입니다. 일국의 미래도 결국은 인재 양성에 달려 있고, 위대한 기업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 생각하면 그의 혜안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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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FKI미디어에서 다루는 인물은 한진그룹의 '조중훈'회장이다. 현 시대의 큰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조금 더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것 같다.
조중훈 회장.
많은 기업들이 그러하듯 회사가 성장하면 투자하는 분야도 다양해 진다.
또한, 책을 통해 조중훈 회장의 생각을 엿보면서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성장을 통해 강국이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시대를 파악하고 앞날에 대해 대비했던 수송계의 거장 조중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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