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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회사 상사 추천으로 산 책. 술자리에서였는데, 딱 한 권만 추천하라면, 이라는 소재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다가 그 술자리에서 가장 높은 분이 꼽은 작품이 바로 『하우스 키핑』이었다. 드미트리, 사회 생활 좀 해야겠지? 바로 샀다. 당장 읽지는 않았다. 이래서 내가 안 되나. 바로 읽고 나서 그 분께 가서, 와, 대박 멋진 작품, 엄지 척,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타이밍 놓침. # 1 많은 소설 작품이 그러하듯, '하우스키핑'이라는 제목에서는 아무런 내용도 짐작할 수 없었. 역시 이야기 대부분이 그러하듯 다 읽고 나서는 왜 작가가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장편소설은 집에 관한 이야기다. 집을 지키고 싶었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의 주인공은 루스다.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하는 이 작품은 이야기 대부분을 루스의 독백과 회상에 의존한다. 그녀는 철도원인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부부가 되고, 그 사이에 엄마와 이모가 태어났으며, 첫째 딸인 엄마로부터 자신과 여동생인 루실이 세상에 등장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3대는 핑거본 마을에 산다. 한 집에서 말이다. 호숫가에 위치한 이 마을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메릴린 로빈슨이 어린 시절을 보낸 미국 북서부 마을의 초상이라 한다. # 2 호수는 주요한 장치다. 할아버지가 철도 사고로 죽은 곳이 호수 근처였고, 엄마가 자살한 곳도 그곳. 마지막 파국 역시 호수에서 벌어진 사건이 주요한 원인이다. 그 파국이 어떠한지는 스포일 방지 차원에서 생략. 여하튼 엄마가 자살하면서 루스와 루실을 맡은 건 할머니. 할머니 손에서 두 자매는 그럭저럭 잘 자라나, 할머니가 죽은 뒤 이들을 누가 봐줄지가 걱정이다. 다행히도 할머니의 시누이인 릴리와 노너 할머니가 핑거본으로 온다. 그 생활은 잠시. 도시 생활에 익숙한 두 할머니는 기회가 된다면 핑거본을 뜨고 싶어 한다. 마침, 종적이 묘연했던 실비 이모와 연락이 닿고 딱히 거처가 없었던 실비 이모가 핑거본으로 들어온다. 두 자매의 주 양육자는 실비 이모로 바뀐다. 문제는 실비 이모가 공교육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점. # 3 번역이라는 벽이 존재함에도, 참 아름다운 문장으로 짜여진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과연 1981년 허밍웨이 상 수상작답다. # 4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소설이 다루는 주제는 가족이다. 가장 안정적인 단위, 처럼 보이지만 실은 깨지기 쉬운 결합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태로 가족이 무너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리처드 포드의 『캐나다』와 닮았다. 『캐나다』와 『하우스키핑』의 또 다른 닮은 점 하나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임에도 한국에서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사실.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 1쇄를 넘기기 힘들어 보인다. # 5 # 6 너무나 전형적인 해석일 듯한데, 마지막 대목은 안티고네가 던지는 질문과 궤를 함께한다. 즉, 사적 차원의 의무와 공적 차원의 의무가 충돌할 때 인간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공동체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건 뭐, 중국적 세계관에서도 똑같은 문제다. 효와 충이 충돌할 때 무엇이 우위인가, 이 질문. 안티고네에서는 공적 명력이 우위인데,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종종 효과 충을 이기기도 한다. # 7 짠한 작품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실패라든지 나의 고통에는 그 뭐 별 의미가 있나 싶다. 대신 내 가족의 실패라든지 고통 혹은 장차 마주칠 죽음에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린다. 특히나 내 아이들. 좀 덜 고통받고 좀 더 즐거운 사회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래도 『하우스키핑』같은 아름다운 소설에 관한 리뷰 쓰기 정도는 꽤 괜찮은 짓 아닐까, 스스로 위안 삼는다. --- 이번 겨울과 그 이후의 겨울들까지 무사히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사춘기와 결혼과 출산 등등,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온갖 위험이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의 기구한 운명으로 인해 일이 얼마나 더 복잡해질 것인가? (53쪽) 내 생각에는 이모가 그냥 단순히 과묵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모도 말했듯이 누군가를 묘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마치 밤에 불이 켜진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기억이란 본래 분해되고 고립되고 제멋대로 변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77쪽) 핑거본은 결코 인상에 남는 마을이 아니었다. 구성없이 거창하기만 한 풍경에, 날씨도 영 형편없는 마을이었다. 게다가 인간의 역사 전체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는 깨달음도 별볼일 없는 마을이라는 생각에 한몫을 더했다. (89쪽) 슬픔의 원인으로 말하면 모두가 하나같이 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251쪽) "가족이란 슬픔이죠, 그게 진실이에요." (중략)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가족을 건사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대단한 일이지만, 만일 그들을 잃어버린다면......" 세상이 온통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되는 법이다. 그렇고 말고. "가족은 함께 있어야 돼요." 다시 이모가 말했다. (260쪽)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상실감이고, 상실은 우리를 자신의 뒤편으로 끌고 간다. (중략)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생각만큼은 많지 않다. 사소한 일화나 식탁에서 나눈 대화 정도나 될까? 하지만 모든 기억이 자꾸자꾸 다시 떠오른다. 또 아무리 우연히 던져진 한마디일지라도 그 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다. 기억이 제 스스로 힘을 발휘해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고, 방랑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271~27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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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 펜 헤밍웨이 문학상 수상 2013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 이 책 <하우스 키핑>에 붙은 수식어들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사람은 '어디 한 번 보자!', '그렇게 대단한가?' 이런 생각으로 첫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버리는 책이다. 이 소설은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핑거본이라는 허구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삼대에 걸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가고 있다. 특히 자매중 언니인 루스의 시선으로 그녀의 동생 루실과 그녀와 동생을 외할머니 앞에 두고 호수 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그녀들을 떠난 엄마를 이야기 하고 있고, 그리고 그녀들을 돌봐 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시누이들인 릴리와 노너 할머니와의 생활을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자매를 돌보게 되는 그녀들의 이모 실비아 피셔와의 생활을 통해 루스와 루실의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루스는 떠돌이 생활을 하던 몽환적 분위기의 실비아 이모와 점점 비슷한 성향을 보이게 되고 이에 루실은 집을 떠나게 된다. 한편 이런 루스와 실비아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집에 불을 지르고 떠나게 된다.
하우스키핑, 쓸고 닦으며 집안을 꾸려나가는 살림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외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핑거본에 정착(이 표현이 어쩜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하게 되는 루스와 루실, 그리고 그녀들의 엄마와 이모, 그리고 외할머니와 할머니의 시누이들. 이렇게 삼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그러나 그것이 결코 평범하거나 잔잔하다고는 할 수 없는, 그렇다고 뭔가 끝가는데 없이 끝없이 달려가기만 하는 그런 이야기도 아니다. 이런 그녀들의 아슬아슬한 모습이 결코 내 이야기는 아니다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여서 더욱 빠져들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이 책에 그렇게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 않았나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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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의 표지를 보면 가장 먼저 '2013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라는 띠지의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짧은 띠지의 글귀 하나에 소설에 대한 기대는 커지기 마련이다. 가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되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은 '핑거본 호수'에서 주인공 '루스'의 할아버지가 기차 사고로 호수에 빠져 죽고 난 후에 남겨진 핑거본의 어느 작은 집에서 일어나는 가족 이야기이다. 루스의 엄마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갔다가 다시 돌아온 뒤, 절벽에서 차를 돌진해 호수에 빠져 자살을 한다. 결국, 루스와 한 살 밑의 동생 루실은 실비 이모에게 맡겨진다. 하지만 실비 이모는 방랑 습관을 지닌 사람으로 아이들의 보호자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집 안에는 고양이 열네 마리와 실비 이모가 모아 놓은 날짜 지난 신문들과 깡통들로 가득 차 있었다. 루스와 루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학교에 자주 빠지게 되었고, 실비 이모의 행동을 견디지 못한 동생 루실은 결국 집을 나가 버린다. 루실이 떠나고 집에 남게 된 루스와 실비 이모는 서로 헤어지지 않기 위해 둘만의 소통을 하며, 남들에게 평범해 보이도록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모의 양육 방식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참견한다. 결국, 두 사람은 집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떠나게 된다. 지내던 집에서 쫓겨나듯 도망치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람들이 자신들을 찾아 나설까 두려워 다리를 건넌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새롭게 자신들의 삶을 찾아 나서는 첫걸음을 위한 다리를 건넌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핑거본을 지나며 열차 문가에 선 채 호수를 바라보고 이젠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들이 살던 집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 다르다고 그것들을 없애려고 한다. 과연 행복의 방정식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 같은 것일까. 과연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들과 다르다고 상처 입히고 있지는 않았는가 라는 생각을 곰곰이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 겨울에 읽기에 괜찮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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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문학의 극찬을 받은 소설이자 극찬한 소설 고독이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묻는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갈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상실감이고, 상실은 우리를 자신의 뒤편으로 끌고 간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란 매우 적은 법이다. 사소한 일화나 식탁에서 나눈 대화 정도나 될까? 하지만 모든 기억이 자꾸자꾸 다시 떠오른다. 또 아무리 우연히 던져진 한마디일지라도 그 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다. 기억이 제 스스로 힘을 발휘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고, 방랑자는 집으로 가는 길을 찾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항상 그의 부재를 느끼고 있던 죽은 자들이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마침내 문지방을 넘어 들어와, 여느 때와 다름없는 꿈꾸는 듯한 애정 어린 태도로 우리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라는 희망과 더불어....... 262
지키려는 몸부림을 제목으로 표현한다. 소설의 결말 또한 저자의 회상으로 기다림, 사랑, 가족에 대해 애잔한 마음을 밀도있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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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을 버리고 책을 읽는다는 게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책표지의 끌림보다도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수식이 나의 마음을 먼저 끌었다. 번역작품에 대해 특히 시에 대해 '얼마나 그 맛을 살릴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 생각을 깔고 있는 나에게 외국 작가가 그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나처럼 그 상을 수상했다는 점에 대체로 호기심이 이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상실과 해체의 위기에 처한 가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토지'의 서희와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책을 읽기전 스스로 많은 억측으로 이야기를 갖다 붙이고 있었다.
작가 메릴린 로빈슨의 첫소설인 '하우스키핑' 시적이고 섬세하며 몽환적이며 서글프기도 한 한 가족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는 낙엽이 지고 있는 늦가을에 두터운 옷깃을 여미며 긴 여정을 걸어가는 쓸쓸함과 긴스타킹 삐삐에게서 느껴지는 시니컬한 평온이 느껴지기도 하고 헛헛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해체의 이야기,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 시대에 이러한 해체의 이야기는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울음을 토해내지 못하고 머금게 하는 우울이 책의 전반을 띠지의 빛깔처럼 두르고 있다.
핑거본이라는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할머니의 손에 키워지는 루스라는 여자아이의 눈을 통해 기차사고로 호수에 빠진 할아버지와 세 딸의 소식을 알지 못한채 두 손녀를 키워가는할머니의 이야기, 루스와 루실을 할머니 집 앞에 둔 채 호수에 빠진 엄마, 할머니의 사망 후 할머니의 두 시누이와의 생활, 몰리 이모와의 핑거본에서의 삶이 막막한 호수처럼 상실의 아픔을 담아 담담하면서 탁한 빛으로 채색된다.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비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그녀들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는 작가의 시적 묘사로 나를 핑거본으로 데려가고 몽환적 필체는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도 했다. 이 책 읽는 이를 놓아주지 않는다. 마치 핑거본의 호수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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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의 노 작가의 작품이라는 소개가 이 작품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의 명예와 역량이 결부된 작품이기에 기대가 컸다.
이 소설의 작가인 메릴린 로빈슨은 미국 아이다호 주의 오지에서 태어나고 그 곳에서 자란 작가로써 고독이 그의 글의 자양분이라고 술회한다. 이 작품도 그의 술회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핑거본이라는 가상의 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 있는 호수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펼쳐진 이야기다.
이 책의 화자는 루스라는 여자아이다. 그 화자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관련한 삼대에 걸친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가 주 테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이 퓰리처 상 소설 부문 후보에 올라가기도 하였고, 2005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에 추천되었음을 볼 때 이는 순전히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된다.
하기사, 고 박경리 작가의 이름이 걸린 문학상을 수상했음도 이 작가의 탁월한 역량을 평가한 때문이다. 이 작가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픽션이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풍경은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루스는 막내 이모와 닮은 생활을 하게 되고, 이에 반대하는 루실은 집을 떠난다. 막내 이모는 잘 여미지 않는 옷과 같고, 잘 닫히지 않는 문짝과 같이 삶에 이가 맞지 않아서 항상 부유하는 정서적 결핍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의 막내 이모 실비와 호수와 들에서 많은 시간을 비정상적인 그 이모를 닮아 방랑자연한 삶을 살아간다.
결국, 그의 동생인 루실은 집을 떠난다. 이런 형태로 한 가정이 해체되고 붕괴된다. 이모와 화자는 자기들이 살던 집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이 책 제목, [하우스 키핑]과 정반대의 내용이고 결말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 했을까가 궁금하다. [하우스 키핑]이라면, 한 가정을 가정답게 꾸미며 지키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부모도 없는 자매가 친척들의 손에 의해 양육되고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격형성을 해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향력을 어떻게 수용해 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우스 키핑]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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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열차 사고로 잃고 홀로 세 딸을 키운 여인은 딸들이 집을 떠남으로써 혼자가 되었다. 첫째는 개종 후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떠났고, 둘째는 어떤 남자를 만나 시애틀로 가 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곧 막내마저 남자와 결혼해 집을 떠났다.
"핑거본"이라는 마을에 3대째 살아온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그 집에 살았던 루스가 외할아버지 때부터의 그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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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 주노 디아스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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