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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놈의 친구가 되기보다 정직한 놈의 원수가 되는 것이 낫다??
"비겁한 놈의 친구가 되기보다 정직한 놈의 원수가 되는 것이 낫다??" 내용보기
사민평등의 꿈을 꾸었던 이가 어찌 궁예뿐일까? 멀리 궁예가 살던 시절 만적도 같은 꿈을 꾸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은 거의 대부분의 인간의 꿈이자 시공을 초월한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힘든 세상이다. 과거에 많은 노예와 농민들이 인간으로 사는 걸 꿈만 꾸어야 했다면, 지금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겁한 놈의 친구가 되기보다 정직한 놈의 원수가 되는 것이 낫다??" 내용보기
사민평등의 꿈을 꾸었던 이가 어찌 궁예뿐일까? 멀리 궁예가 살던 시절 만적도 같은 꿈을 꾸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은 거의 대부분의 인간의 꿈이자 시공을 초월한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힘든 세상이다. 과거에 많은 노예와 농민들이 인간으로 사는 걸 꿈만 꾸어야 했다면, 지금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으로 사는 걸 꿈만 꾸어야 한다. 아마도 궁예는 이런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겠지. 그래서 승자의 역사에서 지워져야 했던 인물일런지도 모른다. 과거 로마 시대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도 잔인하고 흉폭한 인물로 묘사되어 왔으나, 18세기말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를 비롯하여, 1916~19년의 카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및 독일 스파르타쿠스단의 혁명가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니 않았던가?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1인의 노력은 단지 한 알의 밀알은 될지언정,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법. 더디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항상 다수의 몫이어야 하는 법. 프랑스 혁명이 그러하였고 러시아 혁명이 그러하였듯이....

[인상깊은구절]
비겁한 놈의 친구가 되기보다 정직한 놈의 원수가 되는 것이 낫다. 사갈과 전갈은 피할 수 있지만 비겁한 인간은 피할 수 없다.
q********f 2005.04.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궁예(上) - 강병석
"궁예(上) - 강병석" 내용보기
출판 자체는 태동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이 더 신간의 것입니다만 현재 품절 상태입니다. 계간문예에서 나온 같은 저자의 다른 포맷은 아직 판매 중입니다. 저는 지난 19기 48주차에 이재범씨의 소설 <슬픈 궁예>를 읽고 독후감을 남긴 적 있습니다.   궁예는 그 극적인 생애가 역사에 기록된 부분만으로도 현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합니다. 보통 자신이 고귀한 혈통이라고 제 입
"궁예(上) - 강병석" 내용보기

출판 자체는 태동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이 더 신간의 것입니다만 현재 품절 상태입니다. 계간문예에서 나온 같은 저자의 다른 포맷은 아직 판매 중입니다. 저는 지난 19기 48주차에 이재범씨의 소설 <슬픈 궁예>를 읽고 독후감을 남긴 적 있습니다.

 

궁예는 그 극적인 생애가 역사에 기록된 부분만으로도 현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합니다. 보통 자신이 고귀한 혈통이라고 제 입으로 강조하면, 대개 이를 주장하는 본인만 절실할 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콧방귀를 뀌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궁예는 본인이 애꾸가 된 사연부터 해서 본인 자신은 애써 부인하거나 심드렁했던 데 비해, 그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부지런히 소문을 퍼뜨린 편에 속합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 등에서는 오히려 신라 경문왕의 혈통이라는 루머에 대해 본인이 격분하는 반응을 보이며 부왕의 초상에 행패를 부린다는 식입니다. 물론 이는 픽션 속에서 그리 설정하였을 뿐 역사에 그런 기록이나 근거가 있지 않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신비감과 일종의 정통성을 부각하기 위한 대중 조작의 소산일 수도 있습니다만 정확한 진상이야 아무도 모르는 바이겠습니다. 

 

궁예는 또 하나 독특한 게, 국호와 연호를 여러 번 바꿨다는 점입니다. 연호는 만약 세 차례에 걸쳐 네 번 다른 것을 쓰지 않았다면 과연 건원이란 걸 했을지도 후대 일반 대중의 기억에서 흐릿해질 수 있었겠는데 말입니다. 견훤도 건원을 했으나 그것이 "정개"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태봉에서 태는 주역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혹은 그저 크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한참 후대에 정도전이 경복궁 중 왕후의 거처를 놓고 "교태전"이라고 했을 때의 태 라는 글자도 클 태(泰)이며 이 역시 주역에 근거를 둡니다. 봉은 그저 강역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헌데 앞선 "마진"은 대체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이것이 "마하진단"이라는 해석은 드라마에서뿐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인기 있는 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정보 중 일부는 상당히 잘못된 것인데, 가령 그 원어가 cinasthna(여기서부터가 잘못입니다. 제가 적은 이것이 정확한 표기이며, 그 출처에는 엉뚱한 오기가 버젓이 나오네요)인 것은 한역(漢譯)에서 震旦이라고 쓰고 범어로는 ????????입니다. 

 

우리나라를 가리키는(자칭 혹은 타칭)은 震檀이라고 합니다. 이는 ????????와 직접 연관이 없습니다. ????????의 뜻도, cina(???)가 중국을 가리키는 어근이며(멀리 라틴어 어근 sino-와 통합니다), sthna(?????)는 우리가 아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부카니스탄(이건 아니군요) 할 때의 그 스탄(이것 자체는 페르시아어 기원입니다만)과 거의 같습니다. 이 어근 중 어느 것에도 한반도를 가리키는 맥락에서의 "동방"이란 뜻은 없습니다. 혹시 해외 네티즌들과 논쟁할 때 책잡히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팩트에서 깨지고 난 후 정신승리만 하면 뭣하겠습니까?

 

역사의 중심과 주체가 일부 귀족이나 특권층이 아니라 민중일 수 있음을 지적한 지도자는 의외로 꽤 됩니다. 이들 중 일부는 운동 과정에서 장렬하게 산화했고, 일부는 성공했으나 집권 후 초심을 잃었습니다. 소설은 그런 궁예의 부상과 좌절을 흥미롭게 묘사했다는 느낌입니다. 

v*****7 2021.04.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