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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함께 지내던 배우자가 죽고 자식도 없이 혼자 남았을 때, 당사자의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것이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견디며 혼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그 하나라면, 죽은 이의 명복을 빌며 지내다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재혼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선택이든지 먼저 세상을 떠난 이와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남은 생을 꾸려가고자 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와는 달리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끝내 이기지 못하거나 혹은 혼자서 살아갈 경제적 능력이 없어, 안타깝게도 남은 생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특히 배우자를 따라 목숨을 버리는 선택은 세상에 남겨진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겨준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기록에서, 죽은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을 ‘열녀(烈女)’로 칭하여 기리는 내용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가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배우자와 사별(死別)한 이후 살아남은 이가 남자인가 혹은 여자인가에 따라 그 선택의 가능성이 전혀 다르게 적용되었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 남자들은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재혼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반면에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은 개가(改嫁)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심지어 재혼한 여성이 낳은 자식들에게는 과거 응시를 제한하는 등의 조처가 취해지기도 했다.
예컨대 상처(喪妻)한 남성의 재혼을 끊어진 끈을 다시 잇는다는 의미인 ‘속현(續絃)’이라고 일컬었는데, 이러한 표현에는 남성의 재혼을 긍정적으로 여겼던 당시의 관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반면 남편을 잃은 여성의 개가를 일컬어 절개를 잃었다는 의미인 ‘실절(失節)’로 지칭하였으며, 재혼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남성들은 부인이 죽더라도 다시 결혼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지만, 여성들은 평생 혼자 살거나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는 선택만이 암묵적으로 강요되었다고 하겠다.
‘여자, 글로 말하다’라는 부제를 덧붙인 이 책은, 조선 후기 다른 ‘열녀’들과 달리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았던 풍양조씨(1772~1815)의 자전적인 글을 현대역하여 소개하는 내용이다. 남편을 따라 죽는다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이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남성 중심의 당대 관습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처럼 여겨졌던 작자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200자 원고지 약 500 장 정도의 분량으로 작자는 ‘자신이 살아남기로 한 경위’를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을 소환하며 꼼꼼하게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다른 ‘열녀’들과 달리 자신이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를 굳이 밝힐 수밖에 없었던 것에서 보듯,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남성 중심의 부당한 관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