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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철학- 미하엘 슈미트잘로몬 표지에 있는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가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책 보다고 생각을 많이 하고, 경험들을 떠올리며 읽었던 책이다. 포스트잇을 이렇게 덕지덕지 붙여가며 읽은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만큼 깊게 생각해볼 포인트가많았다. 철학은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가 있지만 결국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의 경험과 감정을 생각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쉽지많은 않았고 중간중간 의문이 들때마다 곧 저자가 그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살아왔던 내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책의 첫 파트부터 충격적이다. 바로 '악'은 허구적인 밈일 뿐이라는 것이다. 무교이기 때문에 성경을 잘 알지 못하지만 '악'이라거나, '악마'와 같은 것들은 뉴스에서도, 소설에서도, 뮤지컬이나 가수들의 공연에서도 퍼포먼스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일상속에서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 사실은 종교에서 만들어낸 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살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이었다.
<낡은 밈플렉스> 많은 문화권이나 국가사회, 조직에서 '악'을 만들어서 서로를 나누고 혐오한다. 악은 공격, 혐오, 보복의 대상이 되지만 사실은 그 악이 허구일 뿐이며 악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속한 사회기준에서 악한 행동을 하면 바로 낙인을 찍고 벌한다. 사실 그 악은 우리가 만들어냈을 뿐이고 그 악을 벌하는 우리는 선한 사람(도덕적인)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악의 밈플렉스는 사실상 상대방을 향한 폭력(혹은 어떠한 부정적인 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이 자유의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상대방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과 그들과 나의 행동들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그동안 얽매여왔던 밈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p.250 죄와 속죄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더 높은 목적'을 위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실패의 두려움이 적은 사람은 성장을 장려하는 도전에 나설 준비를 하고, 성장을 위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몰입 상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56 초연한 사람은 죄와 속죄, 선과 악처럼 독성이 강한 밈플렉스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러워 하지 않으며, 자신의 모자람에 절망하지 않는다. 모두 그대로 자신일 수밖에 없음을 알기 떄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크게 와닿았다. 내가 굉장히 낡은 도덕적 밈플렉스에 갇혀 있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었고 당장 나와 주변을 새로운 시각으로 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저자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낡은 도덕적 밈플렉스를 던져버리고 선과 악을 벗어나서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다.
*책키라웃과 애플씨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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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규범과 규칙, 도덕적 가치 등의 개념을 익힌다. 태초의 인간들도 도덕적 생각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과 이해관계의 충돌로 점점 법적인 테두리안의 규범과 규칙들이 생겨나고 우리는 선과 악이라는 용어로 구분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정도까지가 선이고 악인지 명확히 구분지어 말하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절대적 개념과 주관적 개념들이 있고 그것을 인정하냐 안하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느순간 선과 악은 절대적 도덕 기준과 원칙이 되어버렸다. 그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면 증오와 차별, 부당한 대우를 당하게 된다. ‘우리는 선이고 저들은 악이다!’ 과연 누가 진정한 선이고 악일까? 절대적 도덕 개념을 정해놓고 말하는 선과 악으로 구분짓는 것이 공평한 것일까? 이책에서는 절대적이고 그릇된 도덕주의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하고 윤리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억지로 가정하지 않고도 자유로울 수 있고,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고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도덕적 의식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때 비로소 느낄수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키라웃과 애플씨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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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철학』 ;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
미하엘 슈미트잘로몬 안성철 옮김 애플씨드
>>> 책소개 진정한 도덕과 자유의 의미는 뭘까 과연 우리는 선이고 저들은 악일까
저자 미하엘 슈미트잘로몬은 계몽주의 인권단체인 ‘조르다노 브루노 재단’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이며, 과학ㆍ인류학ㆍ윤리학ㆍ사회이론을 연구하는 철학박사이기도 하다. 그는 본도서 『위험한 철학』을 통해 오늘날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의 분열과 대립이 격화하는 ‘위험한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진화생물학, 심리학, 뇌과학 등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본도서는 도덕주의 허구를 비판하면서 경직되고 그릇된 허구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윤리적이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 목차 들어가는 글 : 선과 악의 저편 선과 악에 관한 낡은 관념 | 이브,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과 | 원죄 증후군 |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새로운 나무
1부. 새로운 인식의 열매 01. 선과 악에서 벗어나기 묵시록의 귀환 | 어둠의 세력 | 침팬지 전쟁 | 자기 이익의 원칙 | 공감적 자기 이익 | 타인은 지옥이다? | 문화적 진화와 악의 밈플렉스 |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 선과 악의 평범함
02. 자유의지에서 벗어나기 흔들리는 자아 개념 |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 감정이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 | 생각이 자유롭다? | 자유로부터의 도피
03. 잘못된 결론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 숙명론의 저편 |모든 것이 임의적이다? | 문화적 상대주의의 오류 | 무죄 패러다임
2부. 새로운 존재의 가벼움 04. 초연한 나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 | 행복이란 무엇인가? | 성장의 자각 | 합리적 신비주의
05. 느슨해진 관계 잘못을 인정하는 기술 | 서로에 대한 용서를 배워야 하는 이유
06. 여유로운 사회 보복은 정당하지 않다 | 묵시록에서 인도주의적인 공동체로
07. 털 없는 원숭이를 위한 복음 진화는 자신의 창조물을 파괴한다
끝맺는 글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원주 찾아보기
>>> 추천사 오늘날 경직된 도덕적 원칙과 선과 악을 재조명하고, 새롭게 탄생시킨 도덕적 개념으로 분열과 대립의 이해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슈미트잘로몬의 『위험한 철학』 이 꿈꾸는 행복은 결국 ‘공존’과 ‘평화’이기에 반드시 읽어봐야 할 교양 철학서가 아닌가 싶다.
>>> 책 속 이야기 01. 선과 악에서 벗어나기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 어둠의 세력과 벌이는 험남한 투쟁이다. 이것은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주님의 말씀이 있은 뒤부터 최후의 날까지 계속될 투쟁이다.” - 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1965) / ~29p
미국의 저술가 노먼 메일러는 부시가 테러 사건을 ‘철학적’으로 바라본다며 이렇게 풍자했다. “9월 11일 테러는 ‘악한’ 행동이었다. 사담 후세인은 악하다. 모든 ‘악’은 어떻게든 서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란도 ‘악’이다.” ~36p
심리학자 테오 파익은 2008년에 펴낸 『우리 안의 악』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동물은 ‘선과 악’과 전혀 상관없이 생명을 유지하려는 타고난 본능과 반응 프로그램에 맞추어 살아간다. 하지만 수백만 년 전 인간으로 진화가 진행되면서, 원래는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 생겨난 공격성이 다른 생명체에 해를 끼치고, 다른 생명체를 억압하고, 심지어 다른 생명체를 말살하려는 행동양식으로 발전했다. 더는 인간의 지능이 생존을 위해서만 쓰이지 않았다. 생존을 넘어서 사기, 기만, 습격, 약탈, 정복을 위해 쓰였다.” ~47p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에게는 생물학적으로 직계 후소노다 더 적게 투자한다는 유전자적 자기 이익의 원칙이 더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C<rB’라는 학문적 수식으로 바꾸어 나타낼 수 있다. 해밀턴 부등식이라고 불리는 이 공식은 현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 중략, 이타적 행위의 비용(C)과 이익을 주고 받는 사람 사이의 유전적 근친도(r)에 수혜자의 이익(B)을 곱한 값의 관계를 수학적 공식으로 나타냈다. ~57p
“타인이 지옥이다.” 장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 짧은 말은 인간의 역사에 자주 나타나고, 자연에서도 꽤 자주 관찰되는 양식을 정확히 묘사했다. 내집단이라고 하는 집단의 내부 구성원에 대한 태도와 외집단이라고 하는 집단 바깥의 존재를 대하는 태도가 엄격히 다른 모습은 거의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76p
“먹을 것이 없는 자만이 소외되고 천대받는 자가 아니다. 인류가 이룩한 이대한 재화에 아무런 지분도 갖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소외되고 천대받는다.”로자 룩셈부르크는 문화를 함께 나누는 것이 지니는 큰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다면 ‘문화’는 무엇을 뜻할까? 넓은 의미에서 문화란 ‘사회적으로 전해진 행동양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다시 말해 단지 유전자의 복제를 통해서 전해진 행동양식은 ‘문화’라고 할 수 없다. 인간으로 범위를 좁혀 살펴본 좁은 의미에서 문화란 사회적 학습 과정에서 생겨나고 꾸준히 새롭게 나타나는, 어떤 개인들의 집단을 특징짓는 욕구, 의견, 인식 생산물 등을 뜻한다. ~83p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에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모방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미메이스타이mimeisthai’라는 말에서 가져온) ‘밈meme’이라는 개념을 ‘유저자gene’와 맞대어 사용했다. 이미 말했듯이, 밈은 문화적 정보의 단위이다. 사상, 작품, 행동양식뿐 아니라, 직접적인 모방이나 매체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히을 지닌 모든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밈은 뇌에서 뇌로 전파되어 인간의 생각, 가치관, 욕구를 ‘전염’시키는 ‘정신적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89p
“유대인은 참으로 거짓말쟁이이자 피에 굶주린 개떼들이다. (...) 그러므로 그대는 양심에 거리끼지 않고 성호를 그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도 된다. ‘여기 살아 있는 악마가 간다!’ 이 타락하고 저주 받은 민족인 유대인을 어찌해야 좋을까? (...) 중략, 1) 그들의 회당과 학교에 불을 질러라. 2) 그들의 집도 똑같이 파괴하고 무너뜨려라. 3) 그들의 기도서와 탈무드를 모두 빼앗아라. 4) 랍비가 계속 그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철저히 금하라. 5) 유대인에게 자유롭게 통행할 권리와 도로를 사용할 권리를 빼앗아라. 6) 그들의 고리대금업을 금지하고, 그들이 지닌 모든 현금과 금, 은 동의 귀금속을 빼앗아라. 7) 젊고 건강한 유대인 남녀의 손에 도리깨, 도끼, 곡괭이, 삽, 물레의 북과 물렛가락 등을 쥐여주어 자신이 먹을 것을 직접 땀 흘려 벌레 하라...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몸과 아내, 아이, 하인, 가축에게 해를 입히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경계하라. ... 그들을 향한 신의 분노가 너무 크므로, 그들을 부드러운 자비심으로 대하면 오직 화만 입을 뿐이고, 엄격하게 대해도 조금 나아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라!” 얼핏 보기에 나치가 발행한 반유대주의 기관지인 <스튀르머>에 실린 공격적인 논설 같지만, 마틴 루터가 1543년에 쓴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93-4p
<스튀르머>의 편집인이던 율리우스 스트라이허는 1946년 4월 29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도 루터의 이 글을 자신을 변호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나를 고발한 사람들이 이 책을 검토했다면, 마르틴 루터가 지금 내가 앉은 이 피고인석에 대신 앉아야 할 것이다.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서 마르틴 루터는 유대인이 뱀의 피를 가진자들이며, 그들의 회당을 불태우고 멸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94p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십자가형과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끔찍한 결과를 불러온 유대인의 자기 저주가 등장한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이 질 것이오.” ...중략, <요한 복음서서>에서 예수는 신의 말을 믿지 않으려는 유대인에게 이렇게 야단친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글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98p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악’ 자체를 찾아내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나치의 범죄를 통해서 ‘악 자체’가 존재한다는 전제 자체가 나치가 저리른 만행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치의 선전과 선동에 수없이 많이 쓰인 ‘악’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아가 그것이 (유대인과 같은) ‘이방인’을 폭넓게 인간의 범주에서 재제하도록 이끌지 않았다면, 나치 친위대원은 대부분 학살을 저지를 심리적 무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행동에 전혀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악의 위협을 막는 ‘정의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감적 자기 이익에 기초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겼다. ~106p
선과 악의 이분법은 현실을 밝히기보다는 현실을 가리는 진부하고 실체가 없는 관념일 뿐이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선과 악의 이분법을 포기하기에 충분하다. ... 선과 악의 관념은 무척 진부하지만, 영향력만큼은 절대 진부하지 않다. 선과 악이 대결하는 밈플렉스가 사고체계 안에 일단 자리를 잡는데 성공하면, ‘위대하고 정의로운 일’을 우해 행해지는 어떤 폭력행위도 잔인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112p
02. 자유의지에서 벗어나기 “내가 선한 일을 하거나 악한 일을 하든, 아침에는 품행이 선했다가 저녁에는 악한든, 그 원인은 늘 내 피 안에 있다. 피가 나를 유쾌하게도, 진지하게도, 활동적이게도, 만용을 저지르게도 한다. ... 내 의지와 존재 전체를 규정한다. ... 이 길을 선택할지 저 길을 선택할지도 내 뇌의 뇌수에서 형성되어 내 신경으로 전달되는 생각에 달렸다. 내가 공원에서 왼쪽 길을 선택할지, 오른쪽 길을 선택할지도 뇌에 달렸다. 그런데도 나중에 나는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 그러나 우리의 가장 자유로운 행동도 ...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 (1750)
“자신이 정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뭔가를 한다고 믿는 사람은 눈을 뜬 채로 꿈을 꾸는 셈이다. - 스피노자(1675) ** 추후 본문의 주요 내용은 순차적으로 계속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
>>> 한마디 도덕과 종교에 대한 인류학적 비판으로 유명한 대중작가, 바로 미하엘 슈미트잘로몬이다. 그는 계몽주의 인권단체인 ‘조르다노 브루노 재단’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이며, 과학ㆍ인류학ㆍ윤리학ㆍ사회이론을 연구하는 철학박사이기도 하다. 니체의 원제 『선악을 넘어서』와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본도서 『위험한 철학』은 선과 악을 재조명하며 권력의 이념에 의한 인위적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가령 자신이 속한 집단의 내적 도덕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외적 도덕에 대한 이중성에서 오는 실수나 오류가 아닌, 인간관계의 필연적 결과처럼 말이다. 그는 들어가는 글의 첫머리에 ‘선과 악에 관한 낡은 관념’이라는 말과 함께 “‘악’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망상일 뿐이며, 우리가 사는 현실과 아무 관련도 없다.”라고 말하며, 도덕적인 선과 악의 구분에 반대하는 그의 주장과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히고 있다. 또 지난 10년 동안 ‘원죄-속죄-처벌’이라는 도덕적 삼각기둥과의 결별이야말로 인류 진화의 최선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저자 슈미트잘로몬은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관념에서 벗어나도 다시 말해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으며 잃을 것 또한 없다고 주장한다.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도덕과 결별하는 건 인류의 가장 큰 진보라고 말했듯, 슈미트잘로몬 역시, 구태의연한 도덕관념은 오히려 우리를 총체적으로 병들게 하고 비판적 사고가 아닌 이기적 사고만을 만들며 도덕이라는 가면 뒤에 ‘악’이라는 낙인과 함께 보복을 향한 맹목적 본능만을 키웠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성서에서 시작된 아담과 이브의 최초의 죄, 다시 말해 ‘원죄’ 그리고 그 ‘원죄의 증후군’이 그렇지 않나 싶다. 총 1, 2부로 구성된 본도서는 <1부, 새로운 인식의 열매>를 주제로 ‘선과 악에서, 그리고 자유의지에서 벗어나기’에 관해 이야기한 후 ‘잘못된 결론’이라는 소제로 1부를 마무리한다. 이어지는 <2부, 새로운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초연한 나, 느슨해진 관계, 여유로운 사회, 그리고 털 없는 원숭이를 위한 복음’이라는 소제와 함께 이야기를 이어간다. 마지막 끝맺는 글에서 보면, “나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여행에 만족한다. 인간의 무죄 패러다임이 원죄 증후군보다 이론적, 실천적 관점에서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이 책에는 분명히 ‘진리’가 담기지 않았다. 글쓴이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밈을 모아 놓은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선과 악, 자아, 그리고 도덕과 자유의지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추구하며 또 더 윤리적이고, 더 평화롭고 그래서 더 공존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사고에 시야를 넓히고자 한다면, 두말없이 본도서 슈미트잘라몬의 『위험한 철학』을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이 책 속의 내용이 ‘진리’가 아님을 명심하되, 글쓴이가 살아오면서 직면한 모두 밈을 모아놓은 것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 외 싸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romantic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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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의 #도서협찬을 받아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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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일 철학자, 슈미트잘로몬의 저서로 원제는 <선악을 넘어서>라고 한다. 의도적으로 니체의 저서와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는데 일단 제목에 철학이 들어가면 접근장벽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니 원제 그대로 출판했으면 화제성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나도 <위험한 철학>보다는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란 부제에 끌린 케이스다. 도덕과 윤리는 거의 같은 개념 아닌가? 이게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도덕이나 자유의지 개념이 권력의 도구로 오용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도덕개념에서 벗어나야만 오히려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고, 자유의지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만 진짜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단 얘기다. 도덕개념에서 탈피하려면 선과 악이란 낡은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선악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님) 히틀러와 스탈린도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뒷통수가 얼얼해졌다. 스스로 악의 화신이 된 게 본인들 선택이 아니었다니? 비판적 합리주의자라는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니체 철학뿐만 아니라 뇌 과학, 진화생물학, 생활심리학의 연구 성과까지 제시한다. 그래서 솔직히 쉽지만은 않은데 다행히 성경이나 세계적인 영화 시리즈, 역사적 일화를 많이 활용했고 읽어보고 싶은 책도 다수 등장해서 마냥 어렵다기보단 흥미롭다. 저자가 중간중간 약간의 유머도 발휘함ㅎ 게다가 설득력도 있으니 지적 욕구를 적당히 자극하는 책이랄까. ?? "자신이 정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뭔가를 한다고 믿는 사람은 눈을 뜬 채로 꿈을 꾸는 셈이다."-p.115, 바뤼흐 스피토자 (1675) ???♀? 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가 참 하찮다는 생각은 모든 선택이 무거운 편인 내가 삶을 낭비하고 있단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고보니 요새 읽는 책마다 나한테 좀 가벼워지라고 말하는 듯. 그래! 그렇다면 일단 다이어트부터!! 읭?????? -책키라웃과 애플씨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으로 작성했습니다.- #위험한철학 #니체철학 #타인은지옥이다 #예루살렘의아이히만 #철학책추천 #책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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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고 하면 으레 어렵고 딱딱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평소라면 선뜻 읽을 생각을 못했을 책이다. 하지만 얼마 전 뉴스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돼 조사를 받다가 숨진 이란의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서 일까? “우리는 선이고 저들은 악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책에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낯선 개념과 이론이 나올 때는 살짝 어렵게도 느껴졌지만 곧 저자의 친절한 비유와 영화 해리포터, 굿윌헌팅 그리고 유대인 학살, 911테러 등 다양한 예시를 곁들인 설명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무척 신경을 쓴 덕분이었다. 그리고 ‘뭐라고?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다고? 히틀러가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고???’ 내가 기존에 가진 사고체계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던 의문점들을 저자가 충분히 풀어내어 신선하게 해소시켜 주었다. 도덕은 반드시 이중성을 띠고 나타난다. 도덕이야말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벌이는 사회적 충돌에서 가장 유용한 승리전략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도덕적 결속력이 강할수록 집단의 융화력도 강해지고, 외부를 향한 투쟁 능력도 향상된다. (p.81) 저자는 새로운 인식의 열매를 맺기 위해 가장 먼저 권력의 도구로 오용되고 있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이분법과 도덕의 이중성을 뒷받침하는 자유의지라는 허구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한다. 진화생물학, 심리학, 뇌과학 등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고정화된 사고의 틀을깨어 주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공정과 불공정을 판단기준으로 한 윤리적 관점에서는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성적 취향이 무엇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선과 악을 판단기준으로 한 도덕적 관점에서는 타인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절대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규정한다. (p.209) 과거에 주어진 조건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반성하고 미래에는 다르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결정으로 자신을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연적이었던 과거의 결과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자기를 용서하는 힘이 생겨난다. (p.213) 결국 우리는 도덕에 억눌리지 않는 새로운 시각으로 윤리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래된 사고의 틀을 새로운 관점으로 대체해야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오류가 드러나더라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판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기술로 공감과 마음챙김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일상적인 것도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일상적이지만은 않다. 그래서 오래된 것에서도 새로운 것이 주는 자극을 발견할 수 있게 해서 새롭고 극단적인 자극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p.242) 어려울 것만 같던 철학이, 나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던 철학이 나의 경직된 도덕적 관념을 유쾌하게 깨주었고, 그뿐 아니라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시켜 주었다. 철학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의식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책키라웃과 구름의 시간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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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위험한철학 - 요즘 그동안 잘 읽지 않던 뇌를 괴롭히는 책들을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는데 이런 책들은 읽을 때는 어렵고 익숙하지 않아 힘들지만 읽고 나면 그동안 지나쳐온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위험한 철학은 선과 악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규범의 고정된 시점에서 벗어나 어떤 것을 선으로 악으로 보아야 하는지, 볼 수 있는지 이것이 이분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웠다. 선과 악은 어떤 부분에서는 양면성을 띈다는 것에 현실의 사건들과 엮어보기도 했는데 절대 악과 절대 선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건 역시 너무 어려웠다. 텍스트로 정의하는 것과 현실의 사건에서 선과 악을 대입하는건 너무도 다른 부분인 듯 하다. 현실의 다양한 사정과 이해관계 속에 점점 모호해지는 부분들이 앞으로 선과 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대한 숙제를 남긴 것 같다. *책키라웃과 애플씨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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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6. 우리의 의지는 '자유로운'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생물학적·문화적 원인에 의해서 규정된다.
p.79. 『요한 묵시록』…(중략)…나는 세상의 모든 문학작품 중에 '외부인'을 이토록 끝없이 증오하는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철학박사 미하엘 슈미트잘로몬이 쓴 <위험한 철학>을 만나본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상가'라고 불리는 저자만큼이나 이 책의 원제도 흥미롭다. 이 책의 원제『선악을 넘어서』는 니체의 유명한 저서와 같은 제목이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같은 제목을 취한 까닭은 무엇일까?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주장하며 당시 부패한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철학자다. 그런 니체처럼 저자도 종교를 걱정스러울 정도로 비판하고 있다. 진화생물학, 심리학, 뇌과학 등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종교가 내세우던 '선과 악'의 존재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본문은 첫 장 01. 선과 악에서 벗어나기로부터 시작한다. 역시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괜찮겠지만 왜 선에서 벗어나야 하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런 우매한 의문을 품을 정도이니 이 책을 쉽게 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흥미로운 예시들이 난해한 철학 책을 친근한 에세이로 느끼게 해준다. 몇 번의 재독이 필요한 책이다. 출판사와의 서평 약속만 아니라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처음 접하는 새로운 개념을 들려주고 있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정말 흥미롭게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범죄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들이 아직도 여의도 언저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까닭은 '내 편'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이었다면 벌써 범죄자가 되었을 인물들이 '내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버젓이 국회를 돌아다닌다. 이 책에서는 이런 세상이 오게 된 원인을 다양한 예시들과 함께 보여준다. 윤리의 이중성을 설명하며 종교단체들이 보여주는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집단 간의 갈등의 예시로 들려준 '침팬지 전쟁'은 동종 간의 비극적인 행위였기에 인간의 전쟁을 떠오르게했다.
이 책이 가진 매력은 인류의 역사를 증명된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과 코란이 가진 의미를 신화의 한 종류로 보며 그 속에 담긴 이방인에 대한 자세를 보여준다. 끔찍한 수준이다. 내 편 아니면 적인 상황이 만든 '선과 악'을 믿을 수 있을까? 오늘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선과 악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막연한 개념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디테일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진화를 드라마에 비유하며 제1막 생명의 탄생, 제2막 다세포 생물의 발생 그리고 제3막 성의 발명을 이을 제4막의 핵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진화라는 흥미로운 드라마의 제4막에는 무엇이 있을지 만나보길 바란다. 정말 재미난 매력적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유대인 학살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그곳에서 절대 선과 절대 악을 찾을 수 있을까? 나치 친위대 대위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유대인 학살은 '자유의지'에 따른 것일까?
종교가 가진 역할은 이제 변해야 할 것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과학의 발전으로 더 속도를 내게 될 것이다. 기존의 개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서 조금은 헤맸지만 저자의 친절한 안내가 새로운 개념으로의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그 속에서 '선과 악','자유의지'가 가진 의미를 흥미롭게 만나볼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책키라웃, 구름의시간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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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선이고 저들은 악일까?' 이 한 문장이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념과 갈등으로 얼룩진 이 시대에 던져진 물음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낡고 경직된 도덕 관념에서 벗어나야 더 행복한 윤리적 삶이 가능하다'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도덕적인 선과 악의 구분'에 반대하는 저자가 '선과 악에서 벗어난 인간 친화적 철학'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선과 악에서 벗어난 저자의 이야기에 그동안 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명과 암, 흑과 백처럼 선과 악은 제 머릿속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박혀있던 존재였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저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는 성격의 호불호가 뚜렷한 성격이다보니 뭐든지 뚜렷하게 구별이 가는, 칼로 무를 자르듯 뚝 잘리는 내용을 선호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구태의연한 도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세상은 극적으로 좋아질 것이다'(14) 프롤로그에 적힌 저자의 말에 조금 반감이 들었습니다. '도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세상이 극적으로 좋아진다고?' 도덕관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던 저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철학>을 완독하고나니 이제야 저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우리가 구태의연한 도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세상은 극적으로 좋아질 것이다'(14) 이 문장의 핵심은 바로 '도덕관념'이 아니라 '구태의연한'이었습니다.
'구태의연한 도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일까요?
그전에 낡은 도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겠지요. 이 책의 1부에서는 선과 악이라는 낡은 관념체계가 왜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은지 이야기를 하고 2부에서는 낡은 도덕관념에서 벗어날 때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1부의 제1장에서는 바로 '선과 악에서 벗어나기'라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주제가 던져집니다. 여러분은 '선과 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선과 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스타워즈>의 다스 시디어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반지의 제왕>의 사우론. 이 세명의 공통점은 바로 '악의 어두운 힘'이며 세 영화 모두를 흥행하게 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선인 주인공을 방해하는 절대악이라고 할 수 있죠. 끝내 절대선인 주인공이 결국 승리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의 개념은 인간에게만 있는걸까요? 제인 구달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침팬지는 집단 외부의 같은 동족을 동종의 동물이 아니라 먹이로 취급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적을 '비인격화'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81)
이와 같은 윤리의 이중성은 세계 5대 종교의 경전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는데요,
도덕이 이중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쿨리셰르가 밝혀낸 윤리의 이중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나의 적.
침팬지가 자신이 속한 집단 외부의 동족을 먹이로 의식하듯 인간 역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내부 구성원이 아니면 가차없이 악으로 규정하고 살인, 약탈, 증오, 적대감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경우 악으로 규정된 외부 구성원이 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를 악으로 규정한 내부 구성원이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도덕의 이중성은 사회가 협력적일수록, 구성원이 지켜야만 하는 내부 윤리를 통해 통합되는 밀도가 강할수록, 외부를 향해 더 강력한 투쟁심을 지니고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합니다.(81) 한 사회나 집단의 결속력이 높을 수록 그들끼리 똘똘 뭉쳐 그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면 모두 다 적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류 진화의 산물이지만 역설적으로 권력 집단에 의해 타자에 대한 보복과 공격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도덕의 이중성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행복과 윤리를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용기는 기성문명에 대한 상당한 도전으로 여겨진다.라고 하는 최종덕 교수님의 추천사가 이제야 와닿았습니다.
무죄 패러다임 이 책은 우리가 버려야 하는 낡은 관념을 원죄 증후군이라고 하며 이를 대체하는 무죄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첫번째 장에서 선과 악이 현실에서 적용될 수 없는 도덕적 허구임을, 두번째 장에서 자유의지는 뇌과학적으로도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면서 무죄 패러다임을 논증해나갑니다.
저자가 맺음말에서도 이야기하듯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진리는 아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덧붙여보겠습니다.
일단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인지는 이해를 했습니다. 집단의 안정화, 즉 집단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외부인에 대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다는 측면에서 도덕의 이중성이 있다는 것도 이해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취, 증오, 살인, 약탈 등 흔히 우리가 악으로 규정하는 행위는 여전히 악이라고 생각한다.
신문기사를 통해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살인하거나 아이를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악마가 따로 없다’ 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악’으로 규정합니다. 그들을 ‘악’으로 규정하는 저와 같은 선량한 시민들이 집단 내부 결속력을 높이고 외부에 존재하는 그러한 범죄자들에 대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함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의지와 관련해서는 동감하는 바입니다.
즉, 아무리 우리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이라고 생각을 하여도 감정적으로 느끼기에 좋다고 느껴지면 긍정적인 반응을 감정적으로 느끼기에 나쁘다가 느껴지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요?
생각해보면 우리의 결정은 생각보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저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일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결정을 수백번도 더 내릴 수 있다. 단지 ‘오늘은 운동할 기분이 아닌데?’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말입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에도 좋고 분명 운동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언제난 감정적으로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에 따라 그날 운동하는것이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정말 타기 싫은 부정적인 감정을 달래고 달래서 자전거 안장에 앉았고 페달을 굴리면서도 ‘너무 하기 싫다’는 감정을 끊임없이 달래가며 겨우 운동을 했을 정도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자유의지론에서 벗어나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더는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 이 책을 감사히 읽고 서평을 남길 수 있다는 것들이 모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절대 영향을 미칠 수없는 수많은 요인으로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한 마디로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수많은 요인으로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사고를 충분히 마음에 새긴 사람은 오히려 자유로워지게 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한데요.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더라도 거만할 이유가 없으며, 성과를 이룬것이 내 특별한 능력때문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요소들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열등감, 모멸감,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힐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어찌보면 불교의 가르침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팔자대로 살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 말이 단순히 운명론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아님을 알 것입니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이 드는 분이라면 책의 앞뒤 흐름을 함께 파악하며 의미한다면 저처럼 단번에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ㅊ'자만 봐도 가려운 느낌이 드는 사람이어서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망설여졌습니다. 내가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전문적인 학술용어를 지양하고 쉽게 설명하려고 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어려울 수 있는 철학적인 문제를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이야기한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는 선이고 저들은 악일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했지만 왜 자유 의지를 논하면서 뇌 과학 이야기가 나올까? 라는 질문을 거쳐 분열과 대립의 시대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 것일까? 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중성을 가지는 낡은 도덕 관념과 윤리는 동의어가 아니기에,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은 철학이 다소 낯설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 뇌과학 이야기, 심리학, 유전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저자의 주장이 충분히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분열과 대립의 시대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궁극적인 방향은 무엇인지 저자의 논증을 따라가고 비판하며 읽다보면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생각하던 것이 낡은 사고방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마주한다고 해도 대립각을 세우고 배척하기 보다는 '그럴수도 있지'하는 열린자세로 맞이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또한 저의 자유의지와 결별을 고했습니다. 이로써 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앞으로 도전하게 될 것이며, 도전하는 와중에 몰입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의 경험을 하게 되고 행복한 삶으로 걸어나갈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탐구하는 학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험해보이지만 우리를 절대 해치지 않는 매력을 가진 철학의 늪으로 <위험한 철학>과 함께 풍덩 빠져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위험한철학 #애플씨드북스 #철학 #분열과대립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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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도덕과 종교에 대한 인류학적 반성을 제기한 비판적 대중작가로 유명한 슈미트잘로몬은 <위험한 철학>을 통해 선과 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이 책이 제시하는 새로운 대안이 우리의 의식구조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뇌에 새로운 변환 모델로 삶이 얼마나 단순하고 충만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우리의 눈을 넓혀주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서문에서부터 인상깊었던 것은 '악'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망상일 뿐이며, 우리가 사는 현실과 아무 관련도 없다는 것이었다. 저자 슈미트잘로몬은 세계를 인식하는 우리의 가정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편견 혹은 한 쪽으로 치우치는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에 매우 동의한다. 슈미트잘로몬은 우리에게 핵심적인 물음을 던져주는데, 바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고,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이다. 그의 말대로 악은 독립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다. 한때 나는 성선설과 성악설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시기에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따라 나의 관점과 시야가 바뀌었던 것 같다.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이 태초에 인간이 갖고 태어날 수 있는 것은 맞는 것일까. 그 무엇도 정답은 없지만, 나의 모든 가정과 생각의 전환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 인상깊었던 것은 '원인'과 '이유'의 구분이다. 철학적 논의 중, 뇌 신경학 문제 부분에서 나온 것인데, 철학자는 '원인'을 특정한 결과를 위한 물질적 전제 조건으로 이해하며, '이유'는 행동에 대한 이상적인 전제조건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해 슈미트잘로몬은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유와 원인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가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설명해온 모든 주장과 양립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정신적인 이유가 어떤 것에 영향을 끼치려면 거기에도 반드시 물질적 원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뇌신경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작용으로 물질적 원인이 정신적인 이유가 되는 것, 이 순서 또한 중요하다.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이 책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나의 인생영화인 <굿 윌 헌팅>까지 다루고 있었다. 명대사이자, 모든 감정이 한 곳으로 모인 것만 같았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영화 속 이 대사는 한 마디일 뿐이지만, 이 책에서도 나에게도 많은 의미를 담고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는 운명에 그냥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움켜쥐라는, 운명론에 얽매인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주인의식을 더 크게 가지라는 의미다. 나는 자유의지를 믿는다. 내가 했거나 내가 하는 모든 것에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철학>에서는 지속된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시야를 자신에게만 고정하게 해서 주변 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인 착시현상에 빠뜨리기 때문에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막는다고 한다. 극도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은 잘 하지 않는 편임에도,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막는다는 것에는 동감한다. 자부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다가도 뭔가 다른 기준에서 실패라도 하면 곧바로 심각하게 괴로워하는 인간만의 자아 집착에서 나는 좀 멀어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심오한 내용을 다르고 있음에도, 정말 많은 예시와 함께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 매력적이었다. 기억에 남는 부분들이 많았고 특히 편견을 깨고 정말 새로운 생각들을 펼치며, 그에 대한 의견을 객관화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더욱 좋았던 책이다. 정말 생각의 크기를 확장시켜주며, 새로운 세계를 접한 것만 같은 짜릿한 책이었다. 평소 읽던 철학책과는 사뭇 달랐다. 보지못한 오류를 일깨워 준 <위험한 철학>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는 마치 어느 한 부분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슈미트잘로몬의 끝맺는 글이 너무 멋있는데,, 이건 책을 통해 그 여운과 전율을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마음에 드는 알찬 책을 만나서, 강력 추천하는 책 :) ?? 내적?외적 행동의 자유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자유'이다. 이 개념은 세뇌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보다 더 많은 자유는 필요치 않다. 기대하지도 않는다. ??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마음에 깊이 새긴 사람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며, 내면의 깊은 고요를 경험할 것이다. 아직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죄책감과 자만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더는 없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번 상상해보라. ?? 마지막 인류가 최후의 숨을 거두는 순간이 언젠가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런 뒤에 우리는 잊힐 것이고, 잊혔다는 것 자체도 잊힐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생존의 시기에 조금이라도 풍성한 의미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괜히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 마지막 날에는 분명히 새로운 출발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구원도 없이, 절망적이고 영원한 공허만이 존재할 것이다. (책키라웃과 구름의 시간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