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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늘' 잡아야 할 것에 대하여 - [오늘을 잡아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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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늘' 잡아야 할 것에 대하여<오늘을 잡아라>를 읽고  "아무튼 오늘 아주 멋지십니다.(13쪽)" 뉴욕에 자리한 호텔의 신문 매점에서 일하는 '로빈'이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만난 '윌헬름'에게 인사를 건넨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왕년에 배우로 활동할 만큼 잘생긴 그가 과연 어떻게 멋진 오늘을 보낼지 궁금해 <오늘을 잡아라>를 집어 든다.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1976년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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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늘' 잡아야 할 것에 대하여

<오늘을 잡아라>를 읽고



  "아무튼 오늘 아주 멋지십니다.(13쪽)" 뉴욕에 자리한 호텔의 신문 매점에서 일하는 '로빈'이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만난 '윌헬름'에게 인사를 건넨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왕년에 배우로 활동할 만큼 잘생긴 그가 과연 어떻게 멋진 오늘을 보낼지 궁금해 <오늘을 잡아라>를 집어 든다.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197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솔 벨로'가 쓴 책으로,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영업부 이사를 그만두고 몇 달간 (겉으로 보기에) 호캉스 같은 생활을 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사십 대 중반의 한 남성의 '어떤 하루'를 집중하여 조명한다.


  호텔의 투숙객은 대체로 은퇴한 노인들이며 의사였던 아버지 '애들러 박사'도 아내와 사별한 뒤 함께 머물고 있다. 두 사람이 아침 밥상머리에서 나눈 대화를 듣다 보면 부자의 갈등(葛藤)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아무도 짊어지기 싫다. 내 등에 업히지 말란 말이야!(81쪽)" 등나무와 얽히고설킨 칡 같은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무도 짊어지고 다니지 마라.(81쪽)"고 충고하면서 ‘탐킨 박사’를 조심하라고 덧붙인다. 그렇다, 아침에 신문을 펼친 이유도 그와 함께 투자한 선물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처지ㅡ양육, 별거, 외도 등ㅡ를 공감하고 자기를 도와주기 위해 공동투자를 제안한 탐킨 박사가 자식애보다 자기애가 강한 아버지보다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오후를 향해갈수록 객장(客場)의 전광판에서 요동치는 시세같이 윌헬름의 감정 기복도 점점 심해진다. 어떻게든 사기(士氣)를 끌어 올려 적게나마 안정적인 수입을 마련한 뒤 아이들과 떳떳하게 만나고 연인과도 새로운 출발을 할 셈이었으나, 어쩐지 사기(詐欺)를 당하고 그 돈마저 모조리 탕진할 것만 같아서다. 그는 짧고도 긴 하루 동안 여러 차례 과거의 결정적 순간들을 오가며 회한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약속된 시간은 흐른다. 야속한 시간 앞에서 윌헬름의 두 눈가에도 눈물이 흐른다. 흡사 슬픈 예감은 틀린 적 없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객장에서 사라진 탐킨 박사를 찾아 이곳저곳 헤매다 우연히 들어선 장례식장에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 영원한 안식에 든 모습을 마주하자 그는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 것이다. 그의 머리 끝까지 차오른 슬픔과 분노로 인해 아침에 떠올린 한 영국 시인의 시구처럼 영원히 '수면 아래로 가라 앉(23쪽)'을 뻔한 사람을 구원한 것이 그토록 잡고 싶었던 삶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책을 덮으며 다시 책표지에 그려진 그림을 바라본다. 한 사람이 나무(가 어쩌면 등나무일지도 모른다)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하다. 마치 햄릿의 대사처럼 "오늘을 '지르냐' 아니면 오늘을 '잡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되뇌며 고뇌에 빠진 윌헬름과 겹쳐 보인다. 소설의 원제인 'Seize the Day'에서 동사를 '캐치(catch)'가 아닌 '시즈(seize)'로 한 까닭과 연결지어 짐작해볼 따름이다. 캐치가 뭔가를 가볍게 잡아보(고 놓쳐도 괜찮다)는 느낌이라면, 시즈는 그것을 움켜쥐(어 놓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물론 쉽진 않겠으나 아주 멋진 오늘을 잡지 못하더라도 오늘의 경험이 또 다른 오늘이기도 한 내일을 잡을 수 있을 테니 결코 체념하지 말고 자기만의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데 전념하면 어떨까 싶다.



#오늘을잡아라 #솔벨로 #문학동네


k*****o 2026.05.23.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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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 솔 벨로 / 김진준 옮김
"오늘을 잡아라 - 솔 벨로 / 김진준 옮김" 내용보기
- 탬킨 박사가 말했다. "내 경우에는 상담료를 꼭 받지 않아도 될 때 오히려 제일 유능한 편이지. 사랑만으로 행동할 때. 경제적 보상이 없을 때. 그럴 때는 사회적 영향에 초연해지거든. 특히 돈 문제에. 그때는 정신적 보상을 추구할 뿐이지. 사람들을 '지금 여기'로 이끌어주면서. 현실 세계로. 지금 이 순간 말이야. 우리한테 과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미래는 근심 걱정만 가
"오늘을 잡아라 - 솔 벨로 / 김진준 옮김" 내용보기
- 탬킨 박사가 말했다. "내 경우에는 상담료를 꼭 받지 않아도 될 때 오히려 제일 유능한 편이지. 사랑만으로 행동할 때. 경제적 보상이 없을 때. 그럴 때는 사회적 영향에 초연해지거든. 특히 돈 문제에. 그때는 정신적 보상을 추구할 뿐이지. 사람들을 '지금 여기'로 이끌어주면서. 현실 세계로. 지금 이 순간 말이야. 우리한테 과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미래는 근심 걱정만 가득하고. 진짜는 현재뿐이야. '지금 여기'뿐이라고. 오늘을 잡아야지." (97쪽)

1915년 캐나다 태생의 작가 솔 벨로는 아홉 살 때 미국으로 이주를 해 작품 활동을 하다 1976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이며 당대 문화를 섬세하게 분석했다'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를 수상했습니다. 처음 [오늘을 잡아라]를 읽기 시작했을 땐 주인공 토미 윌헬름-윌헬름 애들러-가 제일 이해가 안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부유한 노인들이 거주하는 글로리아나 호텔에 아버지인 애들러 박사와 층만 달리해 머물고 있으면서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하다 단호한 아버지의 거절에 마지막 남은 돈까지 탈탈 털어 단지 아버지와 안면이 있고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탬킨 박사에게 모두 위탁을 해 버립니다. 그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엔 나름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으나 사장의 사위가 낙하산으로 들어와 윌헬름의 영업 구간을 반이나 가져가고 나름 기대하고 있던 부사장 자리마저 놓치자 퇴사를 한 후 탬킨 박사가 투자한 선물 시장에서 라드와 호밀 가격의 폭등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잡힐 듯 보이는 성공의 끈만 바라보며 달려가다 그 끝이 벼랑이라는 것을 허공에 발을 떼고 나서야 아는 사람처럼,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도저히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대혼란과 대공황의 시대에 작가인 솔 벨로의 모습을 닮은 토미 윌헬름이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다. 아들이 잘 나갈 때는 여기저기 자랑을 늘어놓던 아버지도 이제 등을 돌려버렸고 마지막 희망이던 선물 투자로 구매했던 라드와 호밀은 되팔수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빌려 준 돈이라도 받아내려 탬킨 박사를 찾아갔을 땐 그는 이미 사라졌고, 별거 중인 아내는 돈을 보내라며 긴급 전보를 치고...그러다 장례 행렬에 휩쓸려 망자의 관 앞에 선 그는 오열을 합니다. 몹시도 서럽게. 도대체 진짜는 현재뿐이라고 하면서 '지금 여기' 오늘을 잡으라고 하는데 그가 잡을 수 있는 오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는 윌헬름이 슬픔보다 더 깊이 가라앉았다(172쪽)는 마지막 문장이 희망과 내일을 잃은 이들의 모습 같아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도시의 묘사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려낸 섬세한 표현들이 작가 솔 벨로 매력이라면 [오늘을 잡아라]에는 이에 심리적인 흔들림과 끝까지 자신의 가족을 보살피려는 윌헬름의 마음까지도 잘 나타납니다. 다만 난관에 봉착한 그가 빠져나갈 수 있는 문은 보이지 않을 뿐. 소설 [오늘을 잡아라] 짧고 강력합니다. 노벨문학상의 달 시월에 읽어보시길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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