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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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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유머사이트 이용자들을 말한다. 일베 유저들은 사회의 문제거리였다. 지금은 한풀 꺾인 상태인데, 각종 소송이 빈번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일부사람들의 행동과 여성들을 희화화하며 조롱한다. 상대를 단번에 규정짓는 것은, 짤방이라는 단순하게 만든 사진들이다. 젊은 과격한 우파인 그들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감성적인 호소를 못마땅해한다.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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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유머사이트 이용자들을 말한다. 일베 유저들은 사회의 문제거리였다. 지금은 한풀 꺾인 상태인데, 각종 소송이 빈번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일부사람들의 행동과 여성들을 희화화하며 조롱한다. 상대를 단번에 규정짓는 것은, 짤방이라는 단순하게 만든 사진들이다. 젊은 과격한 우파인 그들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감성적인 호소를 못마땅해한다. 광우병 촛불집회같은 것을 좌파가 주동한 정치적 행위라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고만이 팩트라고 믿는다.

 

일베는 산업화에 맞지 않는 인물을 조롱한다. 그들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잣대. 추천, 좋은 글은 산업화라 하고, 그 반대되는 글은 민주화 시켜 버린다. 그들에게는 연약한 민주화가 잘못된 것이다. 일베는 여성과 전라도 사람을 주로 희화화한다. 짤방이라는 단순한 사진과 인증샷으로 그들을 놀리고 수치심을 가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신상을 털어 조롱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일베는 약자를 괴롭히는 전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팩트라 여기고 있다. 요즘, 미국 대선에 나온 트럼프가 거짓말을 일삼으면서도, 자기만 진실하다고 믿는 것처럼.  

 

조롱대상자는 성적으로 비하되거나, 영화 포스터 등에 끼어져 놀림감이 된다. 그들은 숭고하고 고귀한 것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실력있는 논리성 같은 글빨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일베는 단순하면서 유머적인 방식으로 단번에 정곡을 찌른다. 권위와 엄숙함에서 벗어난 그들의 행동을 자율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들이 그러한 글과 사진을 만들어 올리는 것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함일까. 인정투쟁의 한 부분. 사회에서 낙오하였기 때문에 그 화를 다른 곳으로 푸는 것일까. 이러한 주장에 그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인증하기도 하였다.

 

일베는 혐오주의자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베는 감성적인 정치인, 연약한척하며 이득을 취하는 여성, 5.18의 희생자 같은 피해자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하는 글을 올려서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다. 단원고 희생자들을 오뎅이 비유하기도 하고, 5.18 희생자들을 모욕하여 고소당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그저 재미를 위해 그렇게 하였다고 말했다. 나의 재미를 위해서 약한 너는 조롱당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일베는 승자주의자들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만큼은 그들은 타인을 조롱하며 승리자 기분을 만끽한다.

 

일베를 할복자살한 일본의 문학가 미시마 유키오처럼 미학적으로 보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방인과는 더더욱 다르다. 일베충이라는 말에도 굳건한 건 그들이 미학적이라기 보다는 뻔뻔하기 때문 아닐까. 미시마 유키오는 남성스러운 자살이라는 자뻑에 빠진 광신자라 생각한다. 그에게 자살은 하나의 도전이었던 셈이다. 반면에, 일베는 군림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의 행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잘해줘서 마음을 얻어 승자가 되는 사람도 있고, 일베처럼 타인을 짓밟고 깔아내려 승자가 되려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인본주의가 결여되고, 경쟁과 승자주의 사회가 낳은 괴물이 아닐까 싶다.

 

d******m 2016.05.01. 신고 공감 7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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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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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인터넷에 ‘일베’, ‘일베충’ 이라는 단어들이 인터넷상에 떠돌기 시작했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말이 정확히 무슨뜻인지 몰랐고 인터넷에서 사용된 그 단어들을 대충 맥락을 따라서 보니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댓글에 ‘일베’라는 말이 특히 많이 사용되었고 급기야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알지 못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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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인터넷에 ‘일베’, ‘일베충’ 이라는 단어들이 인터넷상에 떠돌기 시작했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말이 정확히 무슨뜻인지 몰랐고 인터넷에서 사용된 그 단어들을 대충 맥락을 따라서 보니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댓글에 ‘일베’라는 말이 특히 많이 사용되었고 급기야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알지 못했다. 이번에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이라는 책을 읽고 비로소 ‘일베’가 ‘일간 베스트’의 약자이며, ‘일베충’은 ‘일간베스트 벌레들’이라는 비하적인 단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왜 인터넷에서 그러한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박가분은 몇해전 쯤에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라는 책으로 만나 보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붉은서재’라는 블로그에 수준높은 인문학 관련 글을 올리고 그것을 엮어서 만든 책이였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문학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깊이는 상당한 수준이였다. 하지만 아직 익지 않은 개념적이며 현학적인 용어의 사용은 막 젊은 논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치기어린 풋내기 인문학도라는 느낌도 들었다. 이 책 <일베의 사상>은 그의 두 번째 책으로 첫 번째 책보다 문체가 깊이, 표현방식등이 훨씬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문학에 대한 서평이 주를 이룬 것이 첫 번째 책이라면 두 번째 책은 ‘일베’라는 인터넷 문화현상에 대해서 분석한 하나의 문화비평서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에 대해서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이론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비평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이 책은 본 나로써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저자 박가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 베스트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것의 어떻게 지금의 익명의 극보수적인 성향의 유저들의 집합소가 되었는지 근원부터 살펴서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발전 상황을 살펴보는 꽤 수준있는 문화비평서 같은 책이였다. 일베 유저들은 그들이 직접적인 필명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익명성을 무기로해서 논리와 논의가 아니라 어떤 사안들에 대한 희화화와 짤방이라는 사진 합성을 통해서 조롱하고 무시하고 비웃으므로 자신들의 견해아닌 견해를 나타낸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 박가분이 상당한 인문학적 지식과 분석력을 통해서 사상이 없을 것 같은 일베 유저들의 사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서 일베들의 찌질한(?) 실체를 까발리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그저 조롱하고 비하하는 그들의 어두운 사고방식과 습성을 ‘사상’이라고 까지 불렀다는 것은 비평보다는 이론화에 더 치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가 서문에 그러한 이유에 대해서 밝혀놓았으나 오히려 일베 유저들을 체계적인 생각, 즉 사상을 가진 논객으로 격상시킨 실수를 범하지 않았나 싶다. 어두운데서 비겁하게 약자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무뢰배들일 뿐인데 오히려 일베 유저들을 격상시켜준 프레임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은 일간베트스 유저들을 중심으로한 인터넷 문화현상을 새로운 이론틀을 통해서 분석해내고 잡히지 않는 문화현상들에게 이론적 도구를 제공하므로 문화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서를 마련해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박가분은 앞으로 문화비평가나 인문적 논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재원이라고 여진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일베 현상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앞서보았듯이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이 있다. 그리고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적 의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컬트문화로 그치지 않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상적 입장이 아이러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중략)...그렇기 때문에 배후에 감춰진 일베의 무의식적인 사상을 재구성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또 다른 사상을 재구성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또 다른 사상적인 분석틀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p.17)



YES마니아 : 골드 f****1 2013.12.22.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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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그만큼만 일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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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는 죽어 있던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누군가의 조종이나 선동이 아닌 젊은 대학생이 자기 자신에게 경종을 울렸다. 자기 자신을 일깨우는 대자보가 하나둘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잠자고 있던 혹은 죽어 있던 젊은 야성을 깨울 것인지, 잠시 반짝했던 이벤트로 끝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한 대학교 학생이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에 가장 먼저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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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대자보는 죽어 있던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누군가의 조종이나 선동이 아닌 젊은 대학생이 자기 자신에게 경종을 울렸다. 자기 자신을 일깨우는 대자보가 하나둘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잠자고 있던 혹은 죽어 있던 젊은 야성을 깨울 것인지, 잠시 반짝했던 이벤트로 끝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한 대학교 학생이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에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인터넷 언론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직접적인 대응(?)을 한 것은 일베다. 자신들만의 손가락 모양 식별법을 찢어진 대자보에 중첩해 찍은 사진 게시물이 일베에 올라갔다. 사람들은 일제히 일베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런 썩어빠진 놈들~’, ‘오죽 용기가 없으면 사람들이 없는 새벽시간에 대자보를 훼손하나 xx들’. 젊은 지성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현정부에 대한 결기 있는 비판에 대한 쓰레기 같은 꼴통보수 게시판의 비이성적 테러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물론, 완전히 망가져버린 한국의 언론들은 제대로 비판하지도 않고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대자보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붙이는 것은 자유다. 그리고 그 대자보를 찢는 것도 자유다. 두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자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그것에 대해 지지하고 찬성한다 할지라도 그 대자보의 내용과 그 대자보의 게시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도 자유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다. 그런데 일베는 이러한 정당성과 가치판단의 경중을 가소롭게 여긴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이유다.

 

 

 

일베하세요?

 

일베하세요? 라고 묻는 것이 실례일까. 나는 10대 청소년들을 주기적으로 만난다. 한동안 만나는 아이들에게 꼭 물었다. “일베하냐?”고. 10명에게 물어보면 9명은 하지 않는다고 하고 1명 정도가 자주 들어가 본다고 했다. 그런데 그 1명조차 게시물을 쓰거나 하지는 않고 구경하다가 나온다고 했다. 이유는 재미있어서.

 

“인터넷 바깥의 무언가에 자신의 이상을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굳이 어떤 이상을 말하고 싶다면 인터넷 안에서 자신들끼리 서로를 희화화하며 노는 방식으로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일베의 리얼리즘이다.” (p.221)

 

일베는 한국에서 현존하는 인터넷 게시판 중 가장 유명하다. 각종 논란과 고소·고발에도 그들의 열기는 식지 않는 것 같다. 이 책 「일베의 사상」의 작가 박가분은 일베의 리얼리즘을 가장 간명하게 요약한다. 그가 지적한 일베의 리얼리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자보를 새벽 시간에 훼손하고 그것을 촬영한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자기들끼리 좋아하는 일베의 전반적인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유명한 일베를 정작 한다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 이상한 이유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굳이 어렵고 강경하고 뭔가 멋있고 대의를 위해 일베를 하지 않는다.

 

“일베 유저들은 그러한 규범들을 유머감각이 결여된 ‘씹선비질’이라며 격하하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물리친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끝없는 토론이나 논증의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단번에 희화화하고 규정짓는 유머감각이다.” (p.12)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꼰대질’이라고 했다. 지금 일베에서는 그런 것들을 ‘씹선비질’이라고 한다. 노골적이고 수준 낮은 단어들은 일베에 가득하다. 그들만의 언어는 계속해서 재생산된다. 대학교에 붙여진 대자보를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도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어떻고, 지금의 현실이 어떻고, 그것에 대한 젊은 지성들의 자세는 어떻고 하는 것들 자체가 그들에게는 웃음거리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어떻게든 불법이나 종북 내지는 빨갱이로 뒤집어 씌우려하는 자들과 움직임은 예전 수구꼴통들의 ‘꼰대질’이다. 일베는 웃음거리로 만든다. 애써 논리를 개발하거나 맞부딪쳐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리얼리즘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국가와 사회를 향해 무언가를 위선적으로 요구하는 대신 자신들끼리 평등한 ‘병맛’이 되는 것에 의해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좀 더 근본적인 사상에서 비롯된다.” (p.93)

 

‘씹선비질’, ‘병맛’은 일베의 용어다. 입에 담는 것조차 불결해지는 것 같은 단어와 비속어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다.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그들은 애초에 국가와 사회에 대한 요구를 위선이라고 단정한다. 피아식별이 선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을 긋고 모니터를 응시한 채 키보드 워리어가 된다. 어설프게 가르치려 한다거나 그들의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되지도 않는 존대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조리 부서진다. 인정받지 못한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돌아선 후 그(녀)가 어떤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 안에서 함께 ‘병맛’으로 뭉쳐진다.

똥꼬깊수키 라는 천하에 다시없을 저질적이고 극악무도한 타이틀을 건 딴지일보의 초창기와 이상하게 닮아 있는 것이 일베다. 당시로서는 전무했던 패러디와 지금의 짤방과 유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던 딴지일보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열풍과 같은 인기를 끌었다. 기존의 딱딱하고 위압적이고 권위적이며 교조적인 진보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똥칠’해버리며 동시에 딱딱하고 위압적이고 권위적이며 교조적인 수구꼴통들을 향해 ‘똥꼬’를 날리는 패악질에 열광했다.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재미있었다. 정치적 경향성과 진영만 살짝 반대로 바꾸면 비슷한 맥락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해 샤이니의 종현이 본인의 SNS에 응원글을 남겼나 보다. 그것에 대해 일베와 샤이니월드(샤이니 팬클럽이라고 한다)가 전쟁을 벌였다나 뭐래나. 그런데 이 사안에서 가장 가관인 것은 이 전쟁(?)을 두고 민주당에서 ‘일베가 드디어 임자를 만난 것 같다’는 논평을 낸 것이다. 정말 ‘병맛’이다. 일베가 보면 얼마나 웃길까? 철도 노동자, 인천공항 노동자, 밀양의 노인들이 이 추위에 저렇게 고생하는데 제1야당이라는 분들은 기껏 이런 것에 논평을 내고 앉아 있다.

 

“일베 유저들은 대한민국의 공적 영역이 소위 종북좌파에 의해 잠식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시간에 그것을 단적인 사실로 간주한 채 자신이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희화화하고 우습게 만드는 새로운 신조어나 짤방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들일 것이다.” (p.223)

 

일베는 ‘종북돌(종북+아이들)’, ‘좌이니(좌익빨갱이+샤이니)’라는 신조어를 이미 만들어 냈다. 민주당이 저렇게 뻘짓하고 있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조금 더 재미있고 그들만의 ‘병맛’을 즐길 수 있는 신조어와 짤방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그들의 리얼리즘이다.

 

“그들만의 유토피아, 모두가 병신인 사회” (p.141)

 

 

 

 

일베는 이미 깊숙이

 

그러면 일베를 하는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일까? 절대로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몇 달 전 내가 자주 이용하는 홈플러스 매장에서 일베 회원이 노알라(노무현+코알라) 합성 사진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띄우고 그것을 일베에 게시했다. 이 사진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경찰이 수사를 하는 것에 이르렀다. 최초 게시자는 이 매장 외주업체 이동통신사 판매 계약직 직원이었는데 처음에는 매장에 방문한 부모를 따라 온 초등학생이 한 짓이라고 했다가 경찰 조사에서는 자신의 짓이라고 시인했다. 그날 오후 구미점 홈플러스에서도 노알라 합성 사진이 또 게시되었다. 게시자는 고등학생이었고 일베에 인기게시물을 만들고 싶어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홈플러스는 부랴부랴 해명을 했다. 그 사건 이후에도 해당 매장은 장사가 여전히 잘 된다. 여전히 외부업체 계약직 직원들로 가득 차 있다.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카트 열차를 온몸의 힘을 다해 끌고 가는 어린 남자 직원들부터 너무나도 친절하게 문의에 응답하시는 중년의 여자 직원들까지. 내 동생 같은, 내 엄마 같은 사람들이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 밥벌이를 위해 일찍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존 말코비치」의 포스터처럼 모두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 누가 일베인지, 일베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다.

그렇다. 일베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무엇보다 일베 게시물의 유행어들을 살펴보면 젊은 한국 여성에 대한 비하가 유독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베인들은 한국 여성들을 싸잡아 ‘김치녀’, ‘김치년’이라고 부른다.” (p.113)

 

사실 나는 일베의 정치적 편향성이나 사자(死者)에 대한 희화화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몰상식적 여성 폄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소개된 일베의 유행어들 말고도 일베의 게시물들은 대부분 여성을 폄하하고 여성을 성적 하위계층으로 단정한다.

더군다나 자신들보다 약자로 인정되는 사람이나 계층, 이를테면 초등학생이나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게시글의 폭력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연히 여성도 들어간다.

한동안 큰 논란이 되었던 초등학생에 대한 이유 없는 폭행은 그들에게는 신나는 일이다. 여성을 강간하는 방법,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기에 대한 내용도 게시된다. 정말 모니터에 비치는 그들의 글과 시진과 동영상만 보면 유럽의 네오나치를 연상시킬 정도다.

 

“일베 유저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터넷의 나’가 사회적 예의범절을 통합된 ‘현실의 자아’와 다르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일베의 ‘인증 대란’도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한편에서는 여성에 대한 과격한 혐오발언을 늘어놓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여자와 소개팅한 사실을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예다.” (p.157)

 

하지만 ‘인터넷의 일베’와 ‘현실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 저자 박가분의 분석이다. 이렇게 유치하고 폭력적이며 다분히 선동적인 사이트에서 글을 올리고 좋아하고 노닥거리는 것을 보니 초·중·고딩들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일베에는 한꺼번에 자신의 학력을 인증하는 사진을 게시했다. ‘인증 대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양가적인 태도는 이미 우리 깊숙이 들어 온 일베현상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지만 나는 최소한 그들이 우리와 완연히 다르지 않다는 것에 안도한다. 내가 일하는 곳 노트북에 노알라 사진을 올리고 모니터 앞에서는 ‘김치년’ 운운하며 마초짓을 하지만 내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출근하고 등교하고 데이트하고 쇼핑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현실로 돌아온다는 점이 다행이다.

 

“일베 유저들은 시위나 집단적 의견 표명 방식을 꺼린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네티즌들과 다르고 심지어 일본의 넷우익과도 다르다.” (p.89)

 

그러면 왜? 도대체 왜? 일베를 하는 것일까?

 

 

 

 

일베의 사상?

 

“여기서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은 일베 유저들이 일으키는 집단행동 배후에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사상’이다.” (p.38)

“팩트를 중시하는 태도, 상대의 과거 발언에서 현재 행동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자세, 모두가 평등한 병신이라는 사상, 이 모든 것이 ‘데이터베이스’라는 인터넷의 특성에서 나왔다.” (p.57)

 

일베는 팩트를 중시한다. 이것은 기존 진보진영이나 진보논객, 글쟁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다. 지난 대선 전 광폭질주를 했던 “나는 꼼수다”의 동력은 팩트였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고 알수도 없는 팩트가 생생하게 전해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이제는 일베마저도 팩트를 중요시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예전처럼 진보논객, 진보글쟁이들과 논리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 말실수나 행동, 나아가서는 학력과 논문까지 팩트라는 기준을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 이전까지 보수·우익 진영은 대게 말 못하고 논리도 없고 뭉치기만 하는 사람들로 생각했는데, 일베는 팩트를 중시하면서 젊은이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무작정 이상한 신조어나 패러디, 움짤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구조를 갖춘 논객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팩트 중시 태도는 5.18과 광주에 이르러서는 어김없이 무너진다.

 

“‘성역’으로서 5.18이 지닌 숭고한 위상을 훼상하고 싶은 것이다. 5.18에 관한 일베 게시물을 보면 그들이 좋아하는 ‘팩트’는 온데간데 없다.” (p.169)

 

이미 정치적·사법적 판결이 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이상한 자료들을 짜깁기 하거나 예전의 일부 논리를 가지고 와 폄하하고 명예를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에 대해 지난 5월 광주광역시장이 엄포를 놓자 대량 게시글 삭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 때, 그들이 이야기하는 팩트 중심이라는 기준이 단지 진보진영의 인사와 글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사용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일베를 하는 것일까?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일베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치적 동질성과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표출될 수 없었던 사회적인 갈등과 적대들이 특유의 ‘혐오 문화’라는 전치되고 응축된 형식으로 표출된 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p.123)

 

한국에는 무수한 갈등이 산재해 있다. 지역, 문화, 종교, 정치, 학교, 세대 등등. 해방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동일하게 이러한 갈등이 반복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언제 적 지역 갈등이 아직도 존재한다. 이러한 갈등은 개별 한국민들에게 내제되어 있는데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정권 하에서는 강제적으로 억압되어 왔다. 국가, 이념, 개발, 성장이라는 도그마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 개인은 국가의 톱니바퀴 날의 하나가 되어 꾸역꾸역 돌아가기만 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달성되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전 이후, 특히 IMF이후 강제적으로 억압되어 오던 갈등과 적대는 한꺼번에 터졌다고 생각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에서 살아남아 성공해야만 했다.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민주정부가 10년을 집권했다. 이제는 정말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아진 것이 별로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더욱 좌절했다. 복지, 평등을 부르짖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 된 것이 없었다. 다시 보수진영에 정권을 내어줬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 작금에 대자보 열풍이 이는 것처럼 그 반대편에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일베 이전 그들의 기원에 대한 추정도 자세하게 열거되는데 꼭 진보가 좌파만이 옳은가? 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면 생각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정권과 자본주의에 세뇌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민주·개혁 정권이 들어서도 그 반대쪽 정치진영의 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고 그들이 오히려 입만 살아 떠들어 대는 자들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여전히 자신들의 삶은 지루하고 힘들고 밥벌이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데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허상과 같은 이상놀음에 빠진 이들을 놀리고 성질을 건드리며 이들이 자신들에게 달려들기를 유도했을 것도 같다.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도 다들 힘든데 뚜렷한 방법은 보이지 않고 뭔가 응축된 응어리와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데 마땅한 대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들은 사자(死者)와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화했다.

 

“현실의 국가에서 불가능한 이상이나 도덕성을 국가와 정치인에게 기대하거나 설교하는 상상력 대신 일상 속의 타인들에게 먼저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공유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p.241)

 

책의 저자는 제목부터 「일베의 사상」이라 정하고 일베의 사상에 대한 자세하고 복잡하며 다소 어려운 분석을 한다. 일베의 기저에 깔린 사상을 분석하는데 사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특별히 일베의 사상이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 한다. 그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컴퓨터 모니터를 벗어나면 일상에 찌든 내 얼굴이 그대로 오버랩 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당연히 대다수일 일베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별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명예훼손이나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구별해서 처벌하거나 고발·고소를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글이나 패러디 움짤에 대해서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도 제대로 일베를 파악하지 못하는 현상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무관심·무대응도 능사는 아니다. 실제로 그들이 일본의 넷우익이나 유럽의 네오나치처럼 모니터 밖으로 차고 나와 실제적 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처럼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권은 어느 쪽이든 일베를 이용하면 안 된다. 그리고 언론은 그들의 논조가 어떠하든 정치적 경향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일베를 이용하여 언론놀음을 해서도 안 된다.

일베가 어떤 사상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내 옆으로 마주쳐간 사람들일수도, 내가 만나 인사하고 밥 먹은 사람들일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l****h 2014.02.07.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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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용어사전'에 그친 일베분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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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의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50대, 마약 복용 혐의로 선 법정에서 사강은 그렇게 당당했다. 굳이 그의 화려한 이력이나 사생활을 들추지 않더라도, 그 말은 타당했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의 사유를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마약(복용)은 범죄인가. 마약이 술이나 담배보다 나빠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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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의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50대, 마약 복용 혐의로 선 법정에서 사강은 그렇게 당당했다. 굳이 그의 화려한 이력이나 사생활을 들추지 않더라도, 그 말은 타당했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의 사유를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마약(복용)은 범죄인가. 마약이 술이나 담배보다 나빠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마약이 나쁜 것인가, 인간이 나쁜 것인가.

 

‘청년 논객’이라고 불리는 박가분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를 들추면서 ‘일베의 사상’이라고 내세운 것이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이른바 ‘혐오의 문화’이다. 나와 다른, 혹은 비슷한 ‘병맛’들끼리 혐오를 통해 뭉친다. 타인에 대한 공격(혐오)를 통해 공동체 아닌 공동체를 이룬다. 그들끼리 재밌다. 이른바 ‘까 대는’ 재미다. 일베의 사상이라고 박가분이 정의한 것은 사강의 말을 변용했는데, 문제는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박가분이 일베를 세계의 한 일부로 인정한 것에 충분히 동감하겠다. 일베가 이루고 있는 세계는 지금 무시할 수 없는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베의 사상》이 일베를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옹호한다는 주장은 오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일베는 생각하지 마!’라며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을 들고 나온 것치고는 어설프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일베의 사상에 대해 사상적 고찰을 했다지만, 책을 읽은 감상은 안 하느니보다 못하다! 일베에게 나름의 사상이 있고, 그것의 유래를 봐야 일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그의 취지는 생뚱맞다. 왜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일베에 대한 기본 태도와 연관 지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일베 사이트에 들어가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들의 행태가 ‘기사’로 나올 때 읽기도 하지만, 일베를 극복하거나 정화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서 바라보고,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로 여긴다. 일베만 뚝 분리해서 떼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것 역시 세상을 인식하기 위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베가 내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잡아뗄 생각도 없다. 직접적이 아니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일베(의 생각과 행동)가 내 삶의 어느 한 틈에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베가 쓰는 용어사전이나 일례를 모아놓은 것 같은 - 그것이 일베를 좀 더 잘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었다손 치더라도 - 글쓰기는 도통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저자의 의도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불편함이 사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라고 본다. 일베의 사상론을 드러내기 위한 그의 글쓰기는 그렇게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 극우파의 것을 일베에 대입시키는데, 어울리지 않는다. 일베의 행동이 일관되게 극우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서다. 극우파가 분명한 목적을 위해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면, 일베는 명확한 목적보다 ‘재미’를 위해 움직인다. 일베의 무의식적인 사상을 재구성하고 기원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외국의 낯선 사상가를 비롯해 여러 사상적인 분석틀을 동원했다는데 그냥 끼워 맞춘 것 같다.

 

더불어 일베의 반복된 어떤 행동에 대해 사회적 논란과 처벌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상적 의지’ 없이 이해할 수 없다는데, 글쎄올시다. 사상적 의지라기보다 그것을 재미로 여기는, 혹은 자신에게 가해질 피해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회적 논란과 처벌 따위를 생각하기에 그들은 지나치게 순정(?)하다. 되레 논란을 즐길지도 모른다. 노출증 환자가 아니라고도 말하지만, 일베의 많은 유저는 일정부분 ‘관심병(!)’ 증세를 가진 듯도 하다.

 

차라리 ‘사상’이라는 접근보다 - 이 말에 거부감을 지닌 사람도 꽤 많은 듯한데 - ‘현상’에 대한 분석이라고 썼다면 어떨까. 아쉬워서다. ‘사상’이라는 타이틀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 때문이다. 일베가 구체적인 정치 프로그램이나 의제 없이 상대를 상처주고 비꼬는 방식을 지속하는 데 ‘사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심지어 그것을 ‘미학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과도하다. 일베가 2002년 시작된 ‘촛불’의 사상을 계승한다며, ‘촛불을 들었던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썼다는데, 글쎄,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자의 의도가 일베라는 현상을 깊이 파고들어 우리의 성찰과 사유를 북돋기 위함, 혹은 행동을 촉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글쓰기의 방법이나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예가 효과적인 것 같진 않다. 책을 통해 스스로 계몽주의자이길 자처하는, 아니면 그것을 갈망하는 무의식을 엿본다. 그가 말하는 진보좌파도 모호하다. 한국에서는 진보도 좌파도, 우파도 보수 모두 애매모호함을 품은 언어이다. 본디의 뜻과 다르게 활용된다. 좋게 말하면 한국적인 방식으로 소화되고 있다. 그러니, 부디 그 말부터 정의하고 전개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았을까.

 

나는 일베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정한다. 현실과 접점을 찾기도 한다지만, 일베는 여전히 가상의 공동체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나 박가분이 일베를 과대 포장한다는 인상 또한 받는다. 그는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좀 더 근본적인 사상”에서 우파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그것도 스스로 모두 평등한 ‘병맛’이 됨으로써. 박가분의 말을 풀자면, 일베의 사상은 아나키즘에 기인한다는 얘기이다. 모두가 우스운 인간임에 걸맞게 행동하는데서 재미를 찾는 일베 유저들에게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자율적인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 있을까. 행여 무의식에서라도 말이다.

 

아, 저자는 ‘일베의 사상’을 끄집어내기 위해 너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닐까. 일베는 새롭지도 않고, 우파다운 말과 행동도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은 그런 이들의 요란스러운 현상에 편승한 기획은 아닐까, 의심도 들게 만든다. 박가분의 재능을 아쉬운 곳에 소진한 것 같다는 얘기다. 물론 그는 다음에 더 좋은 글과 책을 쓸 것이다. 그것, 믿어 의심치 않는다. 늘 좋은 책과 콘텐츠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j******2 2014.02.23.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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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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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베의 사상 저자 : 박가분 가격 : 원가 13,000원 ( 구입가 : 0원 ) 이유 : 얼마전에 '일베'를 주제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다. 거기에 잠깐 이 책의 저자인 '박가분'씨가 나왔다. 그 방송을 보고 왠지 흥미를 갖게 되서 선택한 책. 독서 후 : 시립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을 신청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 책은 시립도서관에 없었다. 다른 시립도서관에서도 없어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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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베의 사상

 

저자 : 박가분

 

가격 : 원가 13,000원 ( 구입가 : 0원 )

 

이유 : 얼마전에 '일베'를 주제로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다. 거기에 잠깐 이 책의 저자인 '박가분'씨가 나왔다. 그 방송을 보고 왠지 흥미를 갖게 되서 선택한 책.

 

독서 후 : 시립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을 신청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 책은 시립도서관에 없었다. 다른 시립도서관에서도 없어서 신청하게 되었다. 신청한지 1달만에 구비되었고 바로 빌려서 봤다.

 지금까지는 '일베'하면 '이상한 사람들', 또는 '그냥 어떻게든 엮이고 싶지 않은 부류'라고만 마냥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처음 인터넷에서 자리를 잡으면서부터의 역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한 분석, 그들과 한국정치에 관한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내용들로써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읽을만했던 책이었다.

 

w*******5 2018.09.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