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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실린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예리한 눈빛이 시사하는 바를 예상했어야 했다. 서평이란 비평과 독후감의 중간 어디쯤 위치하는 감상이라는, 회자되고 있는 서평의 정의는 아직도 유효하며 합당하다. 그렇지만 저자의 이 서평집을 읽은 후에는 그러한 정의가 수정되어야 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글은 친절하지 못하다. 독자들을 위한 배려 같은 것은 애초부터 찾아볼 수 없다. 저자의 물 흐르는 듯한 감상을 따라가는 독자는 허겁지겁 가쁜 숨을 몰아치며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위해 종종걸음을 쳐야 한다. 그럼에도 앞서가는 저자의 모습을 어느샌가 놓쳐 버리고 뜀박질하며 저자의 모습을 찾아 헤매게 되는 행보는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소개되어 있는 38편의 책들이 낯설어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국내에 출간된 책은 겨우 7권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지적 편력에 대한 감탄은 서막에 불과하였다. 저자는 한 작품의 내용은 물론 저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작가의 다른 작품과의 연관성, 생애와 주변 인물 등에 이르는 방대한 구성으로 서평을 이어간다.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논쟁가로서 이름을 떨친 저자의 이러한 서평은 평론에 버금가는 글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내가 쓰고 있던 차마 글이라 이름붙일 수도 없는 알량한 글들을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옴을 느낀다. 저자는 곳곳에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 그 유머들은 저자의 역사 인식과 의지를 역설하는 절묘한 장치로 기능한다. “결코 해가지지 않는다던 제국은 또한 피가 결코 마르지 않는 제국이기도...”[악당의 시간“조지 맥도널드 프레이저의 《플래시맨과 호랑이》] “가장 견디기 힘들고 긴장되는 순간은 독재가의 기분이 가장 좋을 때”[한밤중의 밝음 : 마틴 에이미스의 《공포의 코바 :웃음과 2000만》 저자가 조지 오웰이 《1984》와 《동물 농장》 등을 통해 전체주의의 숨겨진 의도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있는 점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은 자신의 철학과도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 중에서 전체주의적인 폭정을 비판하는 책이 다수를 이룬다. 그는 “나치의 슬로건과 공산주의의 슬로건이 흡사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클렘페러의 말을 인용하며 스탈린과 히틀러를 동격에 놓고 두 사람에 대한 혐오감을 피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에 불과하다”는 스탈린의 비인간적인 발언에 대해 “홀로코스트로 죽은 600만 명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공포와 기근의 희생자 600만 명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로 스탈린의 만행을 지적하며 적극 반박한다. “한 명의 인간이라도 상당한 ‘통계’가 될 수 있다” “최고의 책은...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라는 저자의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는 이미 많은 진실을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 아니겠는가 저자의 깊은 사유와 함께 통렬한 역사인식은 경청해야 할 이 책의 또 다른 교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