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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초가 되면 황금연휴가 시작된다. 노동절부터 석가탄신일 까지 6일간 계속되는 연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심난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텐데, 어딜 가나 하는 생각으로 잠시 고민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냥 마음을 접었다. 여행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조금은 불편해서였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잊고 재충전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행지에서 문득문득 드는 생각은 아마 여행을 잡치게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럴 때, 여행관련 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고역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먼 곳으로 데려다 놓을 것 같은 생각에 한장한장 페이지를 넘겼다. ‘6명의 작가들이 떠난 여행수첩’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어떤 글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난 그들의 생활을 엿보면서 혼자만의 상상의 날개를 편다. 천운영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갔다는 알래스카를 읽으면서는 나만의 전설을 만들었다. 길을 떠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전설을 들으면서 작가가 만들었던 전설들을 마치 내가 만든 전설인양 내 버전으로 고쳐 놓는다. 야만은 결코 전설이 될 수 없다는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혼자서 만든 전설을 살짝 고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작가들이 찾은 여행지는 흔히 사람들이 선뜻 택하지 않는 곳이어서 더 마음속에 담아둔다. 언젠가 내가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나에게 엽서를 써 부치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본 풍경들,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내가 느꼈을 법한 생각들을 엽서에 담아 나에게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혼자서 미소 지었던 기억이 난다. 김미월이 자신이 여행했던 몽골에서, 그리고 고비사막에서도 벗에게 쓸 말을 찾지 못했던 것은 아마 그녀의 말처럼 풍경은 기억에 없고, 사람들만 생각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그들과 언어가, 그리고 풍습이 다름을 느낄 때, 내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이라면 오히려 홀가분해 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롯이 자신만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이란 공간의 이동이기 전에 시간의 통과라는 조해진의 말이나, 버스에서 보내는 기나긴 시간 역시 터키 여행의 일부분이라는 손홍규의 말을 머릿속에 담아두며, 내가 생각했던 여행이 과연 진짜 여행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여행의 목적지가 어디이든, 또 무엇을 위한 여행이었든, 결국 여행이란 자신에게 스스로 더 깊이 다가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지리적인 공간을 떠나서, 느리면 느린 대로, 또 빠르면 빠른 대로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겨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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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황금연휴에 잠시 들떴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내 사전에 휴가란 없다’며 주말만을 이용해 돌아다니기 바빴던 나에게 이런 기회도 없으리라! 하지만 이내 풀이 죽었고, 이제는 화까지 나고 있다. 몸놀림 빠른 사람들이 모든 여행상품을 선점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평상시의 배로 비쌌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마치 허를 찔린 듯 나는 분노로 부르르 떨기 바빴다. 떠나기도 전부터 이렇게 애를 태워야만 하다니, 나에게 시간과 돈이 충분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아니, 둘 다를 바라는 건 욕심일 터이니 적어도 하나만이라도 주어진다면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 볼 터인데 그 조차도 쉽지가 않다. 이 시점에서 여행 서적을 집어 드는 것은 나의 성난 기운을 북돋우는 행위일까, 간접적인 힐링일까. 어느 쪽이 될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누구나 이방인’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들의 여행이었다. 그들에겐 시간이 충분했고, 심지어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풍족까진 아니었으나 부족하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감수성을 유지해야만 가능한 것이 글이었기에, 그들을 메마르지 않도록 돕는 손길이 있었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또는 하나의 작품을 마친 후에 색다른 컬러를 스스로에게 입히기 위해 그들은 여행을 떠났다. 널리 알려진 여행지여서는 안 됐다. 가는 곳마다 동양인이 보이고, 그 동양인에게서 어김없이 우리말을 들을 수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듯 그들은 알래스카로, 폴란드로, 몽골로, 터키로, 카리브 해로 그리고 라오스로 떠났다. 책의 첫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천운영 님의 글에서부터 나는 정신줄을 놓고야 말았다. 사실 그녀의 글은 독특한 측면이 많아서 이전의 작품들을 읽을 때도 나는 곧잘 혼쭐이 나고는 했었다. 흐름을 놓칠까봐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는 장르였다. 아니, 알래스카 자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광지의 향연은 아니기에 느리디느린 흐름이 글에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곰과의 조우를 위해서라며 그녀는 알래스카에 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분명 곰이 목표였는데, 어느 순간 그녀의 글에서는 연어가 등장했고 오로라가 빛났다.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자연 앞에서 완전히 굴복한 듯한 작가의 모습에 독자로서 같이 항복을 외쳐야 하는 건지, 애초에 그녀가 만나고자 했던 곰을 찾아 나서라며 그녀에게 닦달을 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무엇을 보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야무지면서도 당찬 소녀의 모습을 그녀의 글 말미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유레카’라도 외쳤어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여행의 백미는 ‘인간’임을 그녀는 결국 증명해보이고야 만 것이었다. 구소련의 음침한 분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듯 폴란드는 묵직했다. 자본주의 체제로의 선회에도 불구하고 그 곳의 사람들은 묵묵히 제 몸에 배인 사회주의적 질서를 좇고 있었다. 그래서 투박했던 건지 본디 투박한 것인지 모를 사람들로부터 아마도 저자는 상처를 입었지 싶다. 하지만 진정한 상처는 폴란드 인들의 기억 속에 있었다. 모든 인류가 가장 끔찍하다 손꼽아 이야기하는 아우슈비츠. 그 곳에서도 일상은 전개됐다. 저자가 폴란드에서 보낸 일상과 아우슈비츠에서 누군가가 보낸 일상. 그 둘의 차이점을 어이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일상은 끊이지 않았으니, 운명의 장난이 이보다 더 쓰라릴 순 없는 것이리라. 이어진 공간들도 오묘한 색채를 끊임없이 내뿜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하지만 지금은 고요히 잠들어 있는 몽골에서 굳이 고비 사막을 찾아 나설 이유는 없었다. 가장 못사는 지역 중 하나일 카리브 해로부터 극단에 가까운 소비문화를 발견한 것과, 이름마저도 참으로 난해한 루앙프라방에서 평온보다 불안한 미래를 엿본 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순탄한 듯한 인생이라 하여도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굴곡을 느낄 수 있다 하였다. 같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이었으니, 여행이라 하여도 그 점을 깨닫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여유랄 게 주어지지 않을 듯했다. 수박 겉을 핥듯 시간에 쫓기며 장소를 이동하는 나로서는 내 발길이 머무는 장소에 속할 길이 없었다. ‘충분히’라는 단어가 허락되지 않는 게 여행이었고, 그럼에도 충분히 길게 머물렀던 이들조차도 ‘이방인’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거늘, 나는 다가오는 황금연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두고두고 씁쓸한 이방인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을까 한다. 떠나고픈 병은 깊어가고, 떠나지 못해서, 때론 너무도 가벼이 떠나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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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도서관에 갔고 신간을 구경하다가 6명의 작가들의 이름 사이에 천운영이라는 그녀의 이름에 닿았을 뿐, 그리고 습관적으로 책을 들었다. 당분간은 여행서적은 읽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이끌리듯 책을 편다. 누구나, 이방인_ 느리고 낯설게, 작가들의 특별한 여행수첩
내공은 무시 못하듯, 사뭇 여행에세이들과는 다름을 눈으로 깨닫는다.
(_72 폴란드 · 조해진)
여행에서 그들이 얻는 것들은 단순한 경험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보고 사유하며,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 그 곳에서는, 담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오로라를 만나기도 하고, 다른 곳에 와 닿았지만 결국 혼자라는 웅크리는 곰이 되기도 한다. 언어라는 것 이외에 감각으로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6작가는 문화예술위원회 작가파견 프로그램을 통해 도피 아닌 도피를 한다.
만우절의 만우절다운 사고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고는 몸에 일어났는데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친 마음이 더 아팠다. 말뚝에 끈으로 묶인 어린 염소처럼, 마음이 그 일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십대가 되도록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뒤늦은 자각과 함께 내가 살아온 방식 자체에 회의가 있었다.피해의식이 슬금슬금 내 마음에 발을 내리려 했다. 피해의식이 사람을 얼마나 방어적으로 만드는지, 나아가 공격적으로 만드는지 주변에서 보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될까봐 두려웠다. (_159, 카브리해 · 이혜경)
신해욱 작가만 제외하고 작가파견 프로그램을 통해 여행을 떠난 작가들의 이야기다. 에세이 형식으로 적혀있긴 하나, 여행에세이처럼 활기차지는 않다. 꼭 그래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듯, 작가의 숙명이라는 듯. 그래서 책이 묘하게 엄숙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훔쳐보듯 읽어서 그런지 책이 어렵진 않았다.
이 책, 매력이 있다. 한 도시가, 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전설을 글로 다시 재현해 내는 순간들을 보고 있으면 글의 힘과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즐겁게 읽고 깊게 내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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