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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망울을 굴리며 음매음매 소리를 지르는 소의 슬픈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게 된 이중섭 화가가 그린 소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강렬함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다. 앞발에 힘을 모으고 어딘가로 뛰어오르려는 태세로 뼈와 근육까지 꿈틀거리는 동적인 이미지로 울분을 터뜨리고 서 있는 소처럼 여겨졌다. 부드러운 붓질보다는 거칠고 격렬함으로 질긴 생명력을 담아 현실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자구책으로 그는 그림을 그려왔던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자리한 이중섭 미술관을 지나 퇴락한 초가 툇마루에 앉아 불운한 시대를 살다간 화가 이중섭을 떠올려 본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이 좁은 방에서 기거하며 한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배고픔을 달래고 게와 고동을 잡아 끼니를 해결하였던 궁핍함으로 점철된 나날이었지만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2012년 11월의 제주 바람이 불어 마음까지 뚫고 지나가는 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는 이중섭이 남긴 팔레트를 들고 아들과 함께 이중섭 미술관을 찾았다. 함께 살 수 없는 시대적 상황으로 긴 이별을 감내한 채 평생 남편 이중섭과의 재회를 기다리며 현해탄 너머 일본에서 두 아들과 함께 지냈던 그녀는 한 식구가 정을 나누며 열 달 남짓 살았던 바람의 섬을 찾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이중섭이 여러 병을 전전하며 고통에 시달리며 홀로 죽어갈 때에도 그를 찾지 않았던 아픔은 죄책감의 멍에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었다. 화가에게 화구는 예술혼을 담아내는 도구일진대 밑바탕 그림을 그린 뒤 팔레트에 담긴 갖가지 색깔을 덜어내 붓질하는 모습은 장인의 면모를 발견케 한다. 예술가로서 남편을 경외하며 식민 종주국의 국민으로 느꼈을 참혹한 슬픔까지 아우르고 싶었던 남덕은 남편이 남긴 팔레트를 기증함으로써 자신을 짓눌러 왔던 죄책감을 덜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팔레트를 기증한 다음 날 남덕은 기념관 앞에서 쓰러진 한 남자의 변사체 소식을 듣고 확인한 결과 그가 다름 아닌 허수임을 알게 되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예술적 감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명망 있는 상을 받으며 인정받는 화가 이중섭을 시기하며 그의 작품을 모방하는 일로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로 살아온 허수였다. 이중섭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 그림 공부를 할 때에도 식민국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반문하며 태양상을 수상하였을 때도 번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림으로 살고 그림으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그에게 반한 마사코는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게 느껴질 때마다 이중섭은 마음에 빗장을 질러둔 채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중섭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응시할 때 마사코의 시선은 그를 따라다녔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둥지를 틀었다.
첫아이를 떠나보내고 상심할 새도 없이 생계를 걱정하여야 했던 지난한 시절 구 시인과의 우정은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를 위해주는 진한 정을 두텁게 하였다. 신문에 삽화를 그려 밥벌이를 하라고 권한 구 시인의 배려를 물리칠 정도로 올곧은 예술가로 자리한 중섭은 생존을 위해 그림을 파는 화가로 전락하는 일을 삼갔다. 일본 강점기가 끝나갈 무렵 이중섭은 홀로 고향 원산으로 돌아와 그림을 계속해 그리며 화가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동안 해방을 맞았다. 광복 이후 남과 북은 이념과 사상의 대립은 이중섭의 그림에까지 파장이 미쳐 그의 사상성을 의심받는 일이 벌어진데다 설사가상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 남하하였다. 부랑의 벼랑 끝에 몰린 중섭은 우여곡절 끝에 범일동 피난민촌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했지만 처참한 생활을 이어야 했다.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받은 품삯을 술값에 탕진하는 동안 남은 식구들은 피폐함 속에 쇠잔해졌다.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싶었던 마사코는 중섭과 결혼함으로써 감내하기 힘든 고통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실 감각이 떨어져 생활인으로서 부적격인 남편과 헤어져 바다 건너 친정으로 발길을 돌리며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자기만의 색깔로 화풍을 유지해 온 화가들처럼 중섭은 식구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짐을 부려놓고 지낼 수 있다고 여기면서도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을 것이다. 고독한 상황에 놓인 중섭은 나약해진 스스로를 추스르며 보이지 않는 심상 너머 심연을 은박지에 새기며 그림을 그려 나갔다. 침묵 속에 함몰하여 그림을 그리는 대신 생존에 미숙한 남편의 순연한 영혼을 아내는 경외하였다. 사물을 집중해서 살피고 그 안에 들어있는 아픔과 외로움을 화폭에 담기를 반복하며 중섭은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뤄나갔다.
민족주의적이며 조선적인 문화적 아우라가 강했던 오산학교 졸업생으로 중섭은 마사코와의 사랑이 민족의 반역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스스로 반역의 올가미를 들씌우고 아내와 함께 지내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고뇌하는 시간이 길었다. 한 장의 그림을 보고 학생의 잠재적 능력을 꿰뚫어 가능성을 열어 준 임용련 선생님과의 만남은 화가로서의 삶에 매진케 하였다. 흉내 내기 힘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연습을 거듭하며 소년 시절 우직한 소를 그림으로 담아내기 위해 집요하게 관찰하고 그리기를 반복하였지만 돈이 되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림이 팔려 돈을 손에 넣었을 때도 그는 그동안 신세 진 이들에게 술과 밥을 대접하며 빈털터리로 빈한한 삶을 이어야 했고 생활고로 그의 삶은 팍팍해졌지만 예술가로서의 혼을 지켜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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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우리나라 현대화가의 대표적 인물을 뽑자면 이중섭과 박수근이 아닐까? 미술에는 문외한이라도 박수근의 '빨래터'와 이중섭의 '황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중섭에 대한 지식도 '황소' 그림뿐으로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TV 드라마에서 이중섭과 아내 이남덕의 애절한 제주도 생활과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가 소개되면서 이중섭 화가의 생애가 궁금했었는데 소설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설레였다.
작가의 전작인 [난설헌]을 읽을때도 가슴이 아려와서 혼이 났는데 [이중섭] 또한 가슴에 큰 돌덩어리가 자리하고 있는것처럼 답답하고 명치끝이 아파왔다. 일제강점기, 6.25 동란 등 시대적 불운만 아니었다면 작가의 일생이 이렇게 가슴절절하게 아리지는 않았겠지..천재화가 이중섭의 인생이 어쩜 이리도 쓸쓸한지..평생을 가슴에 한을 품고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쳐보지도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삶을 마감해야만 햇던 이중섭의 한맺힌 인생에 그저 가슴이 먹먹하다.
제주도 이중섭 기념관에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이름 이남덕) 여사가 남편 이중섭의 유품 중 팔레트를 기증하기 위해 작은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 이남덕은 지독한 가난때문에 사랑을 버리고 결혼 7년만에 이중섭을 한국땅에 홀로 남겨두고 두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제야 한국땅을 찾은 그녀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 마음이 편치않다.
두아이의 아버지이자 사랑하는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고도 찾아올 수 없었던 이남덕의 애타는 마음을 누가 알까? 민족혼을 담아내는 화가라고 불리지만 정작 일본인 여성과 결혼 후 자신의 정체성 혼란에 빠져 술로 지새며 결국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고통을 감내해내는 이중섭의 생애가 현실을 보는것처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자신속에 내재해 있는 강한 민족혼조차 지켜낼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갔던 이중섭의 40여년의 생애를 지켜보는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저자는 이중섭 뿐만 아니라 동시대 예술인들의 삶도 함께 버무려 놓았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중섭의 재능을 살리고 이남덕과의 관계를 이어주려고 노력했던 구상 시인,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이중섭에게 질시와 시기어린 마음으로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허수..그 시절 그때의 시대와 사회문화가 현실감있게 그려내어서 타임머신을 타고 1940-1950년대속에서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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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화가의 아들 이태성씨가 아버지의 이름을 내걸고 사기에 가담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이태성씨가 진품이라고 주장했던 이중섭 화가의 작품 2800여점이 모두 가짜로 판명이 났었다고 하는데, 대체 그는 왜, 아버지의 이름에 제대로 먹칠을 해버릴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을까. 제 3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았을 때 이태성씨는 말 그대로 천하의 몹쓸 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늘 나라에 있을 아버지 이중섭이 이를 지켜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쓰라렸을까.
하지만 정작 이중섭은 그의 아들 이태성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서 분노나 원망의 감정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최문희 작가의 소설 『이중섭』이 실제의 이중섭을 최대한으로, 최선으로 반영한 것이라면 이러한 추측은 당연해진다. 일단 소설 속에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의 그림을 빼돌려 팔아먹어도 전혀 개의치않았고 어떠한 후속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이중섭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중섭은 아내 이남덕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아가 아들 둘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 되고 나서부터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야했기에 오히려 아들 이태성이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고자 했을 때에는, 그래 아들아 그렇게라도 내가 너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를 빼앗긴 분노와 슬픔. 즉 민족혼을 가득 담아 황소를 그리던 그가 하필 일본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배신하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결혼을 한 후로 이남덕 여사와 그의 아들들에게 그 자신은 점점 초라해지고 작아지고 비굴해지는 존재로 전락해버리면서 결국 그림에 대한 자신감까지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이중섭은 여자 하나 잘못만나서 인생을 망쳐버린 꼴이 된 것이고 소설 속 허구인물 허수 역시 이중섭의 인생이 파멸로 치다른 이유는 여자를 잘못 만나서라고 외쳐대고 있다. 천재화가의 혼을 망가뜨려버린 일본의 여인 이남덕이 원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소설에서는 이남덕 여사가 이중섭을 아주 적극적으로 유혹한 것으로 나오기에 더욱 그렇다. 강제침탈한 나라의 남자를 꼬셔내 주위의 안좋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결혼까지 했으면서, 거지꼴로 살게 만드니까 평생을 외면하다가 죽기 직전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절규한 그의 외침까지 모멸차게 외면해버린 그녀가 문화훈장 수여식에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연히 곱지 않은 시선만 꽂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남덕 여사 역시 남자 하나 잘못 만나서 인생이 파괴되어버린 사람이었다. 물론 정확하게 그녀의 진심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소설만 놓고 보자면 그녀 역시도 무지하게 불쌍한 여인이자 피해자였다. 지나가는 여자들을 붙잡고 한 번 물어보자.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이중섭과 같은 남자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연애는 하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다. 잘생긴 외모와 예술에 대한 열정, 말이 별로 없는 조용조용한 성격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매력이 있는 그런 남자, 확실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의 씀씀이와 우유부단함을 평생 끌어안아줄 여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이남덕 여사는 충분히 아내로서의 도리를 행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성애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을 향한 사랑도 크지만, 그녀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고, 자신이 남편을 사랑해서,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에게 딸린 두 아들의 인생까지 무시하면서 남편 곁을 지킬 수는 없었지 않았을까.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데 뭐,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더 인생을 망쳤는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려 서로 뜨겁게 사랑했는데, 주변 환경이, 그놈의 돈이, 그들의 사랑을 마구마구 찢어발긴 것 밖에 더 있는가. 결국 돈인가? 결국 돈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무너졌고, 결국 돈 때문에 그의 아들 이태성이 아버지를 배신하게 된 것일까?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중섭은 아들을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제대로 아빠 노릇 한 번 해준 적 없고, 매번 약속도 지켜주지 못했기에, 두 아들의 마음 속에 쌓였을 아빠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이중섭 그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소설 내용으로 판단해 본 나의 생각이다.
나는 몰랐다. 이중섭이라는 사람, 이중섭이라는 화가는 '대충' 알았지만 그에게 이렇듯 비참한 삶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중섭 화가의 진품이 겨우 14점 밖에 되지 않는다니 말이다. 대체 그의 그림은 다 어디로 증발해버린 것일까? 60여 년 정도가 흐른 지금까지 남아있는 진품이 이렇게도 없단 말인가. 그의 아들이 진품이라고 내놓은 그림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나버렸으니... 이중섭이라는 존재가 점점 잊히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의 작품까지도 몇 점 남아있지 않으니, 그를 추억할 수 있는게 너무나도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슬프다. 그래도 이렇게 소설로나마 그의 숨결을, 그의 혼을, 그의 삶을 느껴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고 언젠가 그의 그림을 직접 두 눈으로 꼭!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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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격유형검사인 MBTI 를 한 적이 있다. 성격유형검사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MBTI 검사를 통해서 나는 ‘옳다, 그르다’ 보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행동이나 사건을 판단할 때 대부분 좋다·나쁘다·기쁘다·슬프다 등의 감각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1월 9일부터 20일까지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읽은 책이 있다. 나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 습관을 갖고 있기에 한 권의 책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건 다반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10일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 이유는 읽을 책이 여러 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읽는 시간이 힘겨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단지 허구일 뿐이라고 되뇌어 보았지만 허사였다. 소설 《이중섭 1,2(2013.11.05. 다산책방)》으로 다시 태어난 천재 화가 이중섭은 생전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감정 이입되는 작품이다. 예술혼과 가족애 사이에서 주춤거리는 이중섭, 조선의 그림(민족혼)을 그리는 화가와 일본인 아내를 둔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흔들렸던 이중섭의 모습이 애잔하고 애달팠다. 최문희의 소설 《이중섭》은 감정적으로 읽기 힘든 작품이다. 우리에게 ‘황소’그림으로 유명한 천재 화가 이중섭이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소설 《이중섭》은 2012년 11월, 남덕(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이중섭 화가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은 때부터 시작한다. 이중섭이 사랑한 남덕 그리고 마사코(남덕)가 사랑한 아고리 상(이중섭)의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본강점기를 지나 6.25를 거쳐 이념과 사상이 충돌한 혼란의 시간을 버텨낸 인간 이중섭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보여준다. 그녀가 그에게서 가장 높게 얻고 싶었던 것은 그의 순연한 영혼이었고 그다음이 그가 지닌 예술성이었다. P.257(1권) 마사코는 프랑스로 그림 유학을 떠나려던 꿈과 미래를 접고 이중섭 아내로의 삶을 선택하지만 이중섭은 마사코 앞에서 주춤거린다. 지배국과 피지배국, 수탈자와 피해자라는 관계의 고리가 이중섭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나보다.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차이를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손이 헤프고 마음이 헤프고 쓰임새가 헤픈(P.242,1권) 이중섭은 생존 보다 예술이 우선이었고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천재 화가 앞에 놓인 예술로만 밥벌이를 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 안타깝고 타인에게 독하지 못한 여린 감성을 지닌 남자의 아내로 살아야했던 남덕 여사의 현실이 애처롭다. 헤헤거리는 그의 헤픈 웃음(P.232,1권) 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낮춤의 의미(P.233,1권) 였다는 사실은 그의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은 역동적인 분위기의 ‘소’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핍박받고 억압받는 민족혼을 소에 담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한없이 너그럽기만 한 ‘소’와 자신 그리고 가족을 위해 타인에게 모질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을 동일시한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또한 화가로서의 삶 이전에 자신의 그림 속 힘 센 황소처럼 가족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이중섭에게 가장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 《이중섭》을 읽는 내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인 ‘허수’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작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중섭과 마사코의 마지막 만남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배타적 존재로 인지하고 오해만 쌓이게 만든 동기는 모두 ‘허수’로부터 비롯되었기에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허수’가 허구의 캐릭터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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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표지속의 사진이 이중섭 화백이시다. 지금까지 이 분의 얼굴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분의 작품은 그저 스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분의 삶이라든가, 고민, 살아감에 있어서 그의 철학등에 대해서는 모른채 그가 그저 일본여성과 일제시대때 결혼을 했고, 그로 인한 왜곡된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1권 게와 아이들과 황소 이중섭에서는 아내 이남덕 여사가 이중섭의 이중섭의 유품인 팔레트를 기증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하면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많은 수근거림 그렇다 그녀는 일본여성이다. 이남덕이라는 이름은 그의 시댁에서 지어 준 이름이다. 그녀의 이름은 야마모토 마사코이다.
팔레트 기증식을 시작으로 그녀는 이 책속에서 이중섭을 만나게 된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과정과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척박한 황무지 같은 삶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온순했던 그녀가 일본행을 결정하기 까지 그녀의 고민이 책 여기저기에 기웃기웃 녹아있다.
이중섭에게는 앙숙과도 같은 허수라는 사람이 있다. 파레트 기증식을 끝낸 후 이남덕 여사에게 전화가 온다 온몸에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수의처럼 입고 쓰려저 있는 사람 대향기념관 앞에 그렇게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1권 내내 이중섭에게 거머리처럼 악귀처럼 그를 괴롭히기도 하고 삶을 방훼하기도 한 인물 허수라는 인물이였다.
읽는 내내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기적이지도 못하고, 가족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자신이 얻어 먹은 만큼 자신이 돌려주어야 한다면서 돈이 생기면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하는 화백들에게 다 써버리는 사람 어떻게 보면 참 의리있고,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 수 도 있다. 하지만 그의 그런 기질 덕에 늘 고생하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내 마사코였다. 아이둘과 함께 곱디고운 부잣집 딸로 태어나 프랑스 유학까지 준비하던 그녀가 사랑이라는 이중섭을 택하면서 일본인 난민수용소에서 아이들과 지내야했고 제주도에서는 집주인 아주머니를 따라 감자밭에 풀을 메야 했던 아내였다. 하지만 그는 늘 돈이 생기면 지인들을 위해 써버렸고 그런 돈이 생길때마다 나타나서 돈을 뜯어가다시피 하는 허수 이런 저런 이유로 그를 놔주지 않았고 돈을 쓰게 만들었다.
책 속에서 이중섭은 성인군자처럼 그려지고 있다. 맞다. 지인들 사이에서는 화내는 일도, 기분 나쁜 일도 없는 그런 사람이였다. 늘 헤헤 웃으며 속절없어 보일정도로 사람 좋아보이는 사람 이중섭
그의 어린시절은 자신보다 4살 위인 막내이모의 괴롭힘 속에서 외가에서 보통학교를 다닌 그였다. 12살 위인 형은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대차고 저돌적이며 현실적인 남자였다면 이중섭은 늘 고분고분하고 시키는대로 하는 말 그대로 마마보이 기질의 남자였다. 늘 결정할 일이 있으면 망중거리게 되는 사람
내가 생각했던 가슴 아픈 삶을 산 이중섭이 맞는 것인가.. 이북땅에 어머니를 홀로 놔둔채 남향을 선택하지 못하던 그 효심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의 성격 때문이란 것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늘 수동적이면서도 작품에 대한 자신의 주관은 너무나 뚜렷해서 그림을 그릴때 방해를 받게 되면 그 그림은 망친 그림, 제대로 못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는 이중섭
이제 그는 아내를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그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일제시대와 6.25전쟁 그리고 휴전을 하기 까지 이중섭에게는 아픈 이별만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2권에서는 어떤 기구하고 가슴아픈 이야기가 펼쳐질지 그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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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그는 누구인가. 대중들에게는 '황소'를 그린 작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최근 이중섭 관련 평전과 다큐멘터리, 전시회, 책 등 재조명의 붐이 일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과연 이중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사실 잘 몰랐다. '황소'라는 작품이 있는 것만 알았지 왜 황소를 그렸는지, 그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몰랐다. 신문을 통해 아내가 일본인이란 것도 최근에 알았다.
먼저 이 말은 해 두고 싶다. 소설 이중섭을 읽는 동안 나는 약간은 괴롭고 약간은 우울했다. 내가 마치 이중섭 본인이 된 것 같았고 이중섭의 부인 남덕이 된 것 같았다. 최문희 작가는 놓치지 쉬운 작은 행동 하나, 작은 생각 하나, 마음 간 데까지 허투로 하지 않았다.
화가로서의 이중섭, 일제의 억압 하에 사상의 억압 하에 지식인, 자유인으로서의 이중섭, 아들로서의 이중섭, 남편으로서의 이중섭, 아버지로서의 이중섭. 그는 언제나 이 모든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자신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지위에 괴로워했고 조금씩 그의 한 인간으로서의 세계는 무너져갔다.
이 과정이, 이 괴롭고 힘든 과정이 너무나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오히려 나의 마음을 가혹하게 했다.
그의 그림 속 황소는 그 자신이 원했던 그 자신이 온전히 하나의 존재로 그러하고자 했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잘 모르겠다. 이중섭의 사후 그의 작품들의 행방, 수많은 위작 논란, 일본인 아내에 대한 사람들의 야멸찬 시선, 민족작가로의 추앙.
우리 중 누구 하나 제대로 이중섭이라는 인간을 들여다보았는지. 우리 중 누구 하나 이중섭의 작품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맨몸으로 보았는지.
언뜻 그의 삶에서 고흐의 삶이 비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부를 보고 전체를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겠지.
덕수궁에서 열리는 근현대회화전을 찾아서 드디어 이중섭의 작품 앞에 섰을 때. 나는 오히려 쓸쓸해졌다.
여담이지만, 난설헌, 이중섭을 쓴 최문희 작가가 어느 덧 80대라니. 80대의 작가가 풀어낸 이중섭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80대의 최문희 작가였기에 쓸 수 있었구나. 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책 표지의 문구대로 난설헌의 최문희 작가는 누구보다 어떤 책보다도 뜨겁게 이중섭의 숨결을 되살려내지 않았나.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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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까마귀, 아이들 하면 떠오르는 많은 이들이 이중섭을 생각할 것이다. 순수했던 어린시절엔 그림과 소에 미쳐 바보로 불릴 정도였으며, 일본 유학중에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와 사랑에 빠졌으나 이별을 하게되고 다시 만나고 아이들이 태어나지만 전쟁으로 인해 피난과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덕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게 되는데...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 사랑을 하지만 배타적 정서의 피해자라는 점에 불가항력적인 이질감이라기보다 피지배국 민족으로서 갖는 이율배반적인 자아에 대한 자책과 깊은 자괴감에 사랑이라는 단어에도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지는 못했다. 조용한 그녀의 사랑에 끌려가는 느낌이 더 강했으나...
미인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결이 고운 마사코(남덕)는 온유함과 부드럼움과 조용함을 거느린 정의 화신이라 할수 있고 마사코가 지니고 있는 정치한 이미지가 또한 그랬다. '저 여잔 내거야'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목련 같은 수줍음과 섬세함의 결을 마사코는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중섭과 어울리는 거였다.
솜에서 실을 뽑아내는 데는 맞춤이 있어야 하는데, 빠르거나 늦거나 되거나 엷으면 고운 천을 만들수 있다며,[열가닥넘게 고운 실을 뽑아낼 수 있는 손이다] 고물고물 찰흙으로 강아지도 만들고 사람도 조물거리는 중서블 보며 속이 깊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되라며 할머니가 중섭에게 하는 말중에서....
그는 소가 태어나자마자 코뚜레를 끼이고 목사리를 견디면서 뼈 빠지게 일하다 죽은 다음에도 남김없이 인간의 욕구에 헌신하는 가장 지고한 혼의 동물인 소를 자연의 느낌이며 순응의 미덕이라는 여겼다. 소의 느낌을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선의 흐름으로 한낮의 소나기처럼 퍼붓는 느낌처럼 해를 보듯 명쾌하고도 서늘한 감각을 잘 표현한 그런 느낌으로 그렸다.
뛰어난 사람옆에는 질투가 가득한 허수가 있는가 하면 중섭의 일이라면 자기일처럼 앞장서고 중섭의 가족들을 먼저 챙기는 구시인이 있었으며, 세계적인 화가인 임용련 선생으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와 6.25동란 중에 우리나라의 많은 화가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예술가들이 들먹이기도 한다. 그림이 팔리면 가족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데 왜? 이들은 다 술로 세월을 보냈을까나하는 의문이 든다. 질 좋은 재료를 구입해서 더좋은 작품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 주머니에 동전 한닢 남지 않을 때까지 마시는 그런일이....
한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들을 나는 아직 못 보았다. 허나 여기에 소개된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띄운 그림엽서와 편지 그리고 이남덕 여사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서 나름 만족했다. 그림이 없어도 본듯한 느낌의 설명으로 조금은 만족스러웠다. 궁핍했던 생활과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예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애처로웠지만.
아! 이게 마른 가슴앓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남덕과 이중섭의 사랑이... 운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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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리뷰와 2권의 리뷰는 따로, 1-2권 리뷰를 빌어 책 전체에 대한 소감을 적을까 한다.) “이남덕 여사님을 소개합니다. 대향 선생님께서 일본의 유명한 지유비주쓰카교카이에서 수여하는 태양상을 수상하실 때 부상으로 받은 팔레트를 육십여 년간 보관하셨다가 대향기념관에 기증하시겠다는 통보를 주셨습니다.” 태성의 부축을 살짝 뿌리치고 그녀가 일어섰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주춤거리지 않았다.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입니다. 지금도 나는 이남덕으로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인 다음 남덕이 마이크를 사회자에게 넘겼다.(p.34) 이중섭의 아내가 누구이기에 사람들은 그녀 뒤에서 수근거릴까, 기증식이 있던 날 맨 몸에 이중섭의 그림으로 수의를 지어입고 죽은 사내는 또 누구란 말인가. 소설 1권의 첫 시작은 그런 흥미진진함으로 시작되었다. 친절하지 않아서 더욱 더 빠져드는 이야기였다. 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도서관에 가서 이중섭이 그의 아내에게 주었다는 편지글들을 찾아 읽었다. 편지 속에서 보이는 대향 이중섭은 말도 안될 정도로 달콤하고 다정하고 섬세한 남자였다. 민족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소를 주로 그린 남자, 화가 대향. 편지와 사진 속에서 보이던 샤프하고 멋진 얼굴이 그 섬세한 ‘예술혼’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읽던 소설 속의 그녀-이남덕은 어쩌다 그렇게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남자를 만났던 건가, 부럽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돌아와 마저 읽게 된 소설의 1권에서 다시 만난 이남덕이 슬몃 미워지기도 했다. 왜 남편이 아플 때도 찾아오지 못했던 건지.. 아니 그녀는 왜 ‘이남덕’이 아니라 ‘야마모토 마사코’란 일본인이란 말인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만 가득 했다. 1~2권을 다 읽고 나니 소설의 1권은 ‘그들이 사랑하기까지’로 주제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 네 식구가 제주도 바닷가에서 게를 잡고 밤이면 남몰래 부부가 나와 부인의 나체를 그리는 풍광이 그득하게 담겨 있는 완벽한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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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가진 순응의 미덕을 배우는 거지요. 태어나자마자 코뚜레를 끼이고 목사리를 견디면서 뼈 빠지게 일하고 죽은 다음에도 남김없이 인간의 욕구에 헌신하는 가장 지고한 혼의 동물이라서 존경해요.”(p.83) 이중섭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상 화가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학도로서 일본 화가들도 받기 어렵다는 태양상을 받는 둥 애초부터 남다른 자질과 격이 다른 클래스를 보여준 화가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오직 부러움 없이 자란 그였지만, 조선의 숨결을 그림에 불어 넣는 순수한 예술혼을 불태웠던 사람. 이 책은 그림 밖에 몰랐던, 그림 외에 모든 것은 사치로 알고, 바보에 가까웠던 하늘이 내린 화가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이다. 2012년 11월 제주. 남덕은 이중섭 박물관에 중섭의 유물인 팔레트를 기증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학창시절 중섭이 태양상의 부상으로 받은 것이었다. 수십 년, 애증의 바다를 건넌 남덕을 향한 그 곳의 눈길은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팔레트 기증식을 마친 그 밤, 한 노인이 박물관 앞에서 자살을 하였다. 온 몸에 중섭의 그림을 두른 채로. 중섭은 일본 유학시절 운명의 여인 마사코를 만나게 된다. 원체 그림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인지라 자신에게 향하는 여인의 뜨거운 눈길을 거부하였었다. 가냘픈 몸피와 약삭빠른 점령국의 여인네들과는 다른 진중하고 소박한 여인 마사코를 운명의 여인으로 맞이하게 된다. 1부에서는 천상화가 이중섭과 그의 여인 마사코의 운명적 만남과 전쟁이 한 천재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삶 중에서 가난 하였으나 가장 행복한 한 때였던 제주에서의 피난 생활을 통해 그림과 가족에 대한 그의 애착, 그의 철학과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인물에 대한 묘사와 그 삶을 영사막처럼 밀도 있게 펼쳐보이는 《난설헌》의 작가 최문희의 최신작이다. 2부에서는 전쟁을 겪으면서 이중섭의 어린아이 같은, 한없이 여리고 철없어 보이는 순수한 면을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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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이중섭 미술관을 간적이 있었다.. 그때 그냥 보고 지나쳤던 그림들.. 편지들이 다시 떠오르는 책이다..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헷갈리는 소설..그런데 여자 입장에서 이중섭이라는 화가는 나쁜 아빠 나쁜 남편이다.. 가장역할을 못할 것이라면 왜 결혼 햇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