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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며 살고 싶었던 중섭은 혼자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딸린 식구들을 돌볼 힘이 없었다. 부산 범일동 피란민 구역에서 살 때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받은 돈을 다 써버리고 말아 남덕과 슬하의 두 아들은 처참한 생활 속에서 비쩍 말라갔다. 이를 지켜보다 못한 남덕은 중섭과 헤어져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난을 견디지 못한 남덕은 온 식구가 한 가정 아래 모여 살아갈 날을 고대하며 아들 태현과 태성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 그녀는 지금의 이별을 달게 받아들이며 희망을 예견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절대적 빈곤에 처연함이 더했을 것이다. 식민지 지배국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는 죄의식은 중섭의 마음을 지배하였고, 잇따른 전쟁으로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부부는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수도 없었다.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낸 뒤의 헛헛함과 고독은 중섭에게 고착화된 듯하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흘려보냈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고 돈을 써야하는지 방법을 몰랐던 그는 애써 번 돈을 대책 없이 탕진하여 늘 돈이 궁했다. 남편의 성향을 잘 아는 아내는 남편에게 책 판매를 알선하여 일본으로 수익금을 부쳐달라고 청하였지만 중섭은 돈을 저축할 줄 몰랐고 술 한 잔하자는 사람의 청을 뿌리칠 줄 몰랐다. 그림 그릴 종이를 구하지 못해 담뱃값 안의 은지화에 그림을 새겨 넣어 현상 너머의 세상의 본질을 담았다. 친정으로 가 삯바느질로 자식들을 키우는 딸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측은지심이 더했던지 중섭이 가족을 찾아 일본으로 갔을 때 장모는 사위를 냉대하며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도 맞춤으로 정해 두고 헤어진 터라 중섭은 상실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번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부부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5일이었고 가족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아빠를 데면데면하게 대하여 기운을 차리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아 중섭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중섭은 반듯한 질서의식에서 배태되는 비인간적인 억압과 군대적인 규율과 집단의식이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이민족을 압박하는 일본의 민족성에 대한 반발심은 더 커졌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그동안 그리지 못한 그림을 그려 동란 후 처음으로 미도파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가 즐겨 그렸던 소의 다양한 이미지를 화폭에 담았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두고 호불호가 분명히 나뉘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순환과 회귀를 간결한 선에 담아 애들이 발가벗고 노는 그림을 춘화(春畵)라고 폄하하여 전시회를 제대로 갈무리할 수 없었다. 변변한 화구도 없이 인간적인 진실을 소박하게 담아낸 그의 그림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는 게 화가로서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쇠약해진 육신에 정신적인 충격이 겹쳐 중섭은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교감을 나눴던 구상 시인은 늘 그를 위해 따사로운 손길을 전했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중섭을 아꼈다. 이들은 서로 걷는 길이 달랐지만 생에 대한 깊이와 통찰력으로 질박한 삶 속에 깃든 인생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남달랐다. 죽음을 향해 치닫는 중섭의 병이 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남덕은 남편을 찾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뒤 자식들을 건사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는 일이 남편을 대신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로 여기고 현실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남편을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아내 역시 가족과의 재회는 단념하고 지금 곁에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길이 우선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아내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던 중섭은 적십자 병원 철제 침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었던 남편은 죽음에 임박하여서야 이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아내 생각에 미치자 감정에 솔직하여 허랑하게 보낸 시간이 회한으로 남았을 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남에게 대접 받고 싶으면 그만큼 베풀며 살라는 어머니의 말은 세상사 이치를 담고 있는 진리였음을 깨닫게 되지만 평생 예술적 욕망과 가족에 대한 의무 사이에 갈등하던 이는 죽음으로 인연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랑했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울음을 삼키며 살아야 할 명분에 충실하였던 남덕은 엄마로 자리하는 일이 자기 역할로 여겼을 것이다. 획일화된 제도 아래 민족성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중섭의 반쪽 자리로 태어난 아들들이 이지메를 당하는 고통 역시 푸른 바닷물에 흘려보내고 가슴에 응어리진 강박을 풀어내는 남덕의 슬픈 얼굴이 떠올라 처연함이 더한다. |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고흐처럼 강렬한 인상의 그림을 그리는 이중섭을 좋아한다. 황소 그림으로만 알던 이중섭을 책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을 보면서 그의 삶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소설 <이중섭>을 읽게 되었다. 이중섭이 살았던 1910년부터는 일제 강점기였다. 탄압이 심했던 시절로 1910년대 20년대 30년대까지 나누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는 일본 유학 중 후배 마사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만남은 마사코가 일본여자라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웠지만 이념을 넘어 대담하게 다가오는 그녀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멀리하려 해도 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을 알아주고 신념에 대한 갈등까지도 알아주는 마사코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마사코와 결혼했고 이중섭은 그녀에게 “이남덕”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는 부농이었으므로 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마사코를 만나 결혼을 해서 가장인 된다는 것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몰랐다. 그의 군동화에서 상징하는 끈의 이미지가 관계의 소통이라고 했지만, 그와 두 아이와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캄캄한 오지를 그가 한 번이라도 들여다봐준 적이 있었던가. 하긴 그녀 역시 술을 마시고 혼미한 상태에서도 연필을 들고 허룽거리는 그의 고독한 내면의 얼룩에 렌즈를 대본 적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11쪽) 점차 일제의 핍박으로 인해 삶은 궁핍해지고 중섭의 그림이 팔려도 그 돈은 그의 주머니에 남지 않았다. 팔린 만큼 축하를 받고 보답으로 동료화가에게 술을 사야 했다. 얻어먹은 것보다 더 내고 싶어 했던 성격이었고 화공이기에 그에 어긋난 일들(신문에 연재하는 삽화 등) 할 수 없어 돈이 없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해지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먹을 것을 사 올 거라며 기다렸지만 항상 빈손이었던 것이다. 우산을 쓰고 나란히 도쿄의 뒷골목을 걸어 다니면서도 그의 마음은 편치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비가 내렸다. 부슬비가 내리던 날 그가 우산을 접었다. 왜요? 하고 쳐다보는 그녀에게 “날 그냥 빗속에 내버려두는 게 좋아. 흠뻑 젖어서 떠내려가게 내버려둬.”하자 “아고리 상, 뭐가 그리 괴로워요? 나 때문인가요?” 하며 그녀가 나직이 한숨을 깨물었다. (30쪽) 결혼 후, 그림을 위해 집을 떠나있을 때가 많았지만 그의 심정을 볼 때 그 이유만으로 떠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내면에 나라를 잃은 슬픔과 한(恨), 그로 인해 자신한테 화가 나고 일본 인 아내를 둔 자신이 부끄럽고 이렇게 느끼는 것을 아내가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가까워지기보다 점차 더 멀어졌다. 이남덕, 그녀도 남편 이중섭과의 삶이 고되었다. 언제나 그림이 팔려도 돈은 가져온 적이 없었고 오히려 남편의 화구를 위해 돈을 구하러 다녀야 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기를 바라기보다 그날 굶지 않을 것을 걱정해야 했다. 부잣집 딸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낯선 땅에서 살기에는 그녀도 버거웠던 것이다. 우리 땅을 되찾게 되자 감정이 격해진 때를 피해 피난길에 남덕과 아이들만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가족 없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순수했던 그가 점차 빛을 잃어가고 남덕과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끝내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소설은 편지글에서 읽은 이중섭을 살려낸 것처럼 끝없이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시대적 아픔과 고뇌, 자신의 순수함 때문에 오는 아픔들 모두가 그였다. 이중섭 자체였다. 책을 읽고 난 후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의 소의 눈 같은 순수함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연약하였다고. 그래서 생을 일찍이 마감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는 평판을 팔았고 노래를 팔았고 시간을 팔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로 팔아서 술을 마셨다. 생존이 철저하게 망가져버린 그의 일상은 수만 수천 개의 구멍으로 시커멓게 곪아갔다. 그렇게 그가 갈구하던 예술을 향한 붉은 열정마저 숨소리를 잦히며 조용해졌다. (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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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모순의 사랑 부제가 가슴을 후려칩니다. 이중섭이 지인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일본에 건너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만나서 함께 살 기대에 부풀어서 말이죠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히 부셔지게 되죠 아내 남덕이 보낸 편지속에 자신이 투자한 책값 28만원을 찾아오라는 말 그리고 아내도 장모도 그의 손만 바라보고 있죠 묵직한 가방 이중섭은 그곳에서 함께 살 요량으로 옷가지를 챙겨왔지만 그의 개털옷에서는 역한 냄새가 날뿐이였습니다. 그렇게 냉대를 당한채 돌아온 대향 그는 그 후로 점점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미도파 백화점에서 미술전을 열지만 누군가의 신고로 춘화를 전시한다며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팔려나간 그림은 제대로 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가 많았죠 너무나 갑갑한 사람 그런 그의 옆에 구시인과 함께 허수가 있게 됩니다. 빈속에 술을 내미는 사람 그리고 점점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듯한 이중섭
그는 그렇게 서서히 죽음으로 걸어들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서도 아내 남덕을 그리워하면서 그녀의 편을 들죠 오지않는 아내를 사람들이 원망어린 말로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그는 장모가 아파서 못온다는 말을 합니다.
아내는 또 얼마나 한국에 있는 남편 곁에 가고 싶었을까요? 하지만 반쪽짜리 아이 지금도 일본은 재일교포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합니다. 저 시절은 얼마나 더 했을까요? 한인 아버지라는 반쪽짜리 아이라는 이유로 큰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 시작하죠 어미의 마음이 정말 얼마나 아플까요? 보고싶고 아픈 남편 곁에 가고 싶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남덕의 친정엄마는 냉정하리만치 차갑고 현실적인 말을 하죠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둘의 사랑이 잘못된게 아닙니다. 현실의 이념이 이들을 갈라놓았고 그리고 지금 우리의 시선이 이들을 왜곡해서 보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인 남편을 둔 일본인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덕이 살아가던 일본사회 안에서 엄청난 각오를 하고 살아가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중섭의 삶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고 그가 일본인 여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어려워진 이중섭을 놔둔채 일본 친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야했다는 것에 매국노, 혹은 일본여자란.. 이란 말을 덧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도 있고 가치의 차이도 있고,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사정을 보려 하지 않은채 나의 가치관만 자꾸 주장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속에서 한국인 혼혈로 살아가야 하는 그의 아이들의 입장을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든 강하게 살아남아야했던 남덕 여사를 우리는 그저 자기 편하자고 일본으로 가버린 매정한 여자로 보고 있는건 아닐까요?
요즘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두고 유산싸움이 났다고 신랑이 그러드라구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생각한다면 욕심많은 일본여자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전 한 아이의 엄마이다보니 그녀가 살아온 삶 또한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그저 그녀가 잘못했다고만은 말 못하겠어요.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중섭은 자신의 사랑에 얼마나 책임을 졌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둘이 한국인 남자와 일본인 여자가 아니였다면 만약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가버렸다면 이중섭화백이 자신의 혼과 같은 황소를 포기하고 조금만 유연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이런 멋진 대작을 만날 수 없었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반전이 나옵니다. 이중섭이 춘화를 걸었다고 신고를 당하고 아내가 보낸 책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과 팔린 그림 대금을 제대로 회수 못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사람 그 사람의 잘못된 사랑과 증오, 그리고 질투가 한 사람의 화백을 지옥문으로 밀어넣어버린 결과에 더욱더 가슴이 아픈 2권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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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리뷰와 2권의 리뷰는 따로, 1-2권 묶음의 리뷰를 빌어 책 전체에 대한 소감을 적을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그 배로 베풀어야 한다. 안 그러면 죽어서도 그 빚을 안고 고생하는 거야.” 원망하는 마음은 해준 것에 값하는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가슴에 생기는 섭섭함의 공동일 것이다. 그랬다. 남덕뿐만 아니라 구 시인이나 많은 화우들, 그리고 또 술잔을 부딪치며 어울렸던 그들에게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못했다. 늘 받기만 했다. 전생에 거지로 살았던가. 그들의 호의와 배려를 자신이 가진 무언가와 교감하고 교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얼마나 당차고 비열한 오만인가.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남덕에게는 그랬다. 그녀의 냉담한 탯거리에 섭섭함이 가중되었는지도 몰랐다. 심사가 꼬이고 뒤틀렸다. 그는 그런 자신의 내면의 얼룩을 보면서 문득 상처받은 남자의 남루에 진저리를 쳤다. (p.291) 소설의 1권이 ‘남덕과 대향이 사랑하기까지’였다면, 소설의 2권은 ‘마사코와 이중섭이 멀어지기까지’라 할 수 있다. 1권을 읽으면서 궁금해했던 인물, 극악스러운 마지막-알몸에 수의 하나를 걸치고 죽었던-을 보였던 한 남자의 정체도 이미 1권에서 충분히 드러났고 그 남자와 대향의 관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건 ‘왜’ 남덕은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듣고도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던 것인가만 남았다. 왜 ‘남덕으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소설의 2권은 이중섭이 사람들 앞에서 헤헤 웃을 때마다 두 아이를 돌보는 마사코의 손이 부르트는 과정을 하나씩 내보이고 있다. 그들은 충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다른 모든 것들이 그들을 헤집어 놓았다. ‘가정’을 이룬 조선의 남자와 일본의 여자는 편안하게 쉬어가며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었나 보다. 그래, 한때 같은 길을 걸었던 두 화공은 화가 이중섭과 생활인 마사코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일제 치하의 하늘, 남북한이 대립하는 하늘, 그리고 전쟁 속에서 나날이 굶주려가는 사람들의 하늘...이중섭과 그의 가족을 내려다보는 하늘은 그렇게 그들을 내몰았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을 찢기게 내버려 두었다. 섬세한 팔과 번득이는 눈을 가진 한 예술가는 일상의 삶을 꾸려가기에 부족했고 가족을 건사하는 것조차 짐이 되어갔고, 미술학도의 꿈을 내던져야 했던 한 사람은 휘청이는 그 예술가의 그늘이 편안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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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조선으로 건너온 중섭은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다. 마사코와 일본에서 약혼식을 올리기는 했지만,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미래는 기약할 길 없었다. 마사코는 중섭을 찾아 무작정 배에 올랐다. 고생 끝에 그를 찾아온 마사코에게 어머니는 [남덕]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남덕은 그림 밖에 모르는 중섭과의 사이에 태성, 태현 두 아이를 두었으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결여된 중섭으로 인해 힘든 삶을 이어가게 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제주로 피난 온 중섭 가족은 가난하지만 모처럼만의 평온한 삶을 누리게 된다. 모진 삶을 이어가던 중섭에게 남덕과의 이별은 시련의 시작이었다. 남덕은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 어머니가 계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중섭은 부산 바닥에 남아 막노동을 하는 동시에 다방에서 화우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고, 담배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기행을 하게 된다. 하늘은 어쩌면 이 세상모르는 순수덩어리 어른아이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주었나 보다. 시인 구상은 중섭이 평생을 따르며 교우한 친구였다. 구상은 중섭을 위해서라면 먼 길도 마다지 않고 달려와 주었으며, 경제적 도움과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수호천사가 있다면 또한 그를 괴롭히는 악마도 함께 주셨던가. 허수는 오산 학교 선배로서 중섭에게 묘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앞설 수 없는, 차원이 다른 붓질과 철학은 오르지 못할 나무와도 같았다. 중섭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꽤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중섭에게 돈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나눔의 매개체일 뿐이었다. 그림 값으로 받은 돈은 조카의 등록금으로, 화우들의 밥값, 술값으로 지출되었다. 만년에 죽음을 직면하고 입원하였을 때 그의 부인 남덕을 그리워하며, 원망하며 보낸 시간들을 상상하며 마음이 아려 왔다. 그 초췌한 시간 속에 그의 예술혼은 더욱 불타올랐고, 명작들도 만들어졌지만, 천재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주어진 에너지를 다 소모한 남포등 불빛처럼 사그러져 버렸다. 시대는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천재가 버텨낼 수 없는 시대 상황이 너무도 애처롭다. 최문희 작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천재화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보며 순수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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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은 고독하고 쓸쓸한 그림 그리기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그가 홀로 되어 안타깝게 생계를 꾸려 가는 것을 안 공예학원장 및 화우 등의 주선에 의해 통영으로 몸을 옮긴다.부산 초량진,범일동,아카자키 수용소와 같이 떠들썩하고 지저분하며 숨막히는 곳이 아닌 마음의 위로,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 통영은 그가 그림 그릴 곳으로는 적지였다는 생각이 든다.문득 고향이 통영인 박경리의 소설의 무대이기도 했던 <파시>의 작품이 시대적 배경과 흡사하여 잠깐 그 시절로 푹 빠지는 듯 했다.외고집과 순수한 열정으로 그림에 열중했던 그를 구상 시인은 정신적 멘토이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무엇을 바라고 지원하는 것이 아닌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존경했던 분이기에 구상 시인은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본다.
그렇게 통영에서의 그림 그리기 작업을 하던 이중섭에게 구상시인은 아내 이만덕과 자녀를 만나러 가라고 선원증까지 만들어 준다.아내 이만덕은 인편에 한국으로 일본도서를 보내서 이를 판매한 돈으로 방 한 칸이라도 얻을 요량이었는데 국내 경기도 좋지 않아서인지 제 값을 받지 못한 채 일본에 있는 아내,자식을 만나러 간다.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일전에 장모될 사람,처형될 사람에게 반은 퇴자를 맞았기에 입성이라도 제대로 차리고 가는 것이 상례이건만 그는 작업복에 가까운 복장과 후즐그레한 용모로 장모를 뵙게 되는데 상견례는 커녕 등을 돌리고 마는 장모,중간에 끼인 아내 이만덕은 그래도 남편 이중섭의 장래를 생각해서 좋은 쪽으로 말을 한다.자전거가 갖고 싶고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던 아내 이만덕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서울,대구 등지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게 된다.미도파 백화점에서 열었던 <이중섭 개인전>이 대체적으로 잘 끝났지만 《군동무(群童舞)》가 춘화로 오인되어 대구 전시회마저 정신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서 그는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림 그리기에 대한 평소의 견해를 피력한다.
"작가의 본질은 어떤 대상을 어떻게 조형화 하느냐에 그 자리매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같은 그림을 다른 풍의 그룹전에 출품했다고 해서 양다리 걸치기라든지 지조 없는 놈이라고 매도하는 건 작가의 발목을 묶는 거나 다름없어요." - 본문 -
해방후 이념과 사상의 대립으로 그림 그리기마저 그것에 휩쓸려 가는 것에 환멸을 느낀 이중섭은 무한한 자유를 얻으려 남으로 피난을 오고 제주 서귀포에서의 단란하고 화목했던 1년 정도의 기간이 그의 삶에서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외롭고 고독했던 이중섭은 아내 이만덕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사랑과 (다시 만날)기약 등으로 몇 날 며칠을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수많은 편지왕래를 통해 그가 이만덕을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던 것이다.술과 담배,공복으로 생을 살다 갔던 그는 죽어서도 아내 이만덕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다만 사대 대장부로서 자수성가를 하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식구들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한다.아내 이만덕 역시 남편의 부음을 편지로나마 접했음에도 불구하고,그의 절친 구상시인의 부음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인과 같은 따뜻한 정리(情理)는 부족했다고 본다.
이번 글이 이중섭의 미망인 이만덕여사가 지유텐 작품전에서 이중섭이 태양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받은 팔레트를 서귀포시에 증정하면서 이 글은 탄생했다고 본다.오밀조밀하게 완성도 높은 이중섭의 삶을 조명하고 해석한 최문희작가의 스토리텔링은 아련한 여운과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감명을 안겨 주었다.'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격언을 새삼 상기하게 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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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덕수궁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 ‘근현대회화 100선’을 전시하고 있다. 소설 <이중섭>을 읽기 전 이중섭이 그린 <소>작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전시장을 방문했다. 이중섭이 그린 붉은 바탕에 순수한 눈망울을 한 소의 모습은 조선인을 닮아있었다. 전시 장 안에서 김기창, 김환기, 천경자, 구본웅, 많은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이중섭 앞에 ‘천재’라는 수식이 붙었다. 이 ‘천재’라는 수식은 남보다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의 우월성을 지닌 긍정의 의미보다, 남과 달라서 힘겹게 살다가 간 부정의 의미로 다가왔다. 화가 이중섭의 삶이 그러했으니까. 또 천재라고 명명된 많은 예술가들은 비운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니까. 최문희의 장편소설 <이중섭>에는 이런 천재적 예술가의 비극적인 삶을 잘 조명하고 있다. 민족명문학교 오산학교를 다니며, 민족의식을 싹틔운 이중섭은 일본여성을 사랑하면서 의식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갈등한다. 자신의 예술의 세계와 현실 속의 자신의 모습은 모순이었기에. 게다가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성장하여 가장으로 책임을 지고,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을 몰라 호평을 받은 개인전을 하고도, 돈을 벌어드리지 못하고, 아내와 아들과 했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다. 결국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인해, 정신을 놓고 만다. 예술가와 가장의 역할 사이에서 줄다리기는 그 어떤 것도 택하지 못하고, 피폐한 정신세계로 치닫게 만들어 결국 음식을 거부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하지만 그가 그린 작품 소재는 소뿐 아니라, 아내 남덕과 태현, 태성 가족을 모티브로 한 그림도 작품 세계의 한 축이었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린 그의 작품은 이중섭이 지향한 이상세계를 잘 담아내고 있는 듯 했다. 꼭 이중섭을 민족 화가라 한정지어 명명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소설 안에서는 이중섭과 시인 구상과의 우정, 일본여자 남덕(마사코)와의 사랑, 실존한 인물인지, 소설가 최문희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인물인지 모를, 이중섭을 시긴한 허수와 관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소설 <이중섭>의 이야기 구성은 굉장히 독특했다. 시간의 순차적으로 기술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양식도 아니었다. 소설 처음엔 이중섭의 아내, 마사코의 현재 시점에서 과거 이중섭의 일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같은 일화들이 여러 번 반복 재생되어 드러났다. 그 일화의 성격이 각각 달랐다. 앞 사건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했다. 앞의 일화에서 왜 이렇게 이중섭이 했을까 의문을 갖고 읽다가 보면, 뒷장에서 그 실마리를 해결하는 일화의 설명이 나와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처음 읽을 때는 익숙하지 않아 껄끄러웠는데, 읽을수록 묘한 매력을 느끼는 구성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작가 최문희의 문장을 통해 화백 이중섭의 애정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이중섭뿐만이 아니라, 이중섭의 교우 구상 시인, 그의 아내 남덕, 마사코 역시 최문희 작가의 애정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일반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선택과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해 놓았다. 인물들을 옹호하고, 그들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 하는 노력은 소설 시작에서부터,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노력이 독자들이 이중섭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제약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중섭에 대한 작가의 애정의 지나친 과잉은 독자들에게 전달은 되었지만 독자들이 상상의 몫을 많이 앗아간 듯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천재예술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중섭은 생전에 개인전을 통해 작품성을 평단에 인정을 받고 관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돈으로 환산 받지 못하고, 병원에서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는다. 천재 시인이라 일컫는 이상도 남다른 생각으로 연작시 오감도를 썼지만, 비난도 받고, 폐병으로 살다 일본에서 비운하게 죽는다. 천재 화가 고흐도, 고갱도, 시인 랭보도 비극적인 삶을 살다 단명하여 죽는다. 남과 다른 삶을 사는 천재들. 천재적 예술혼을 발산하지 못하면 힘들기도 하고, 그 천재성 때문에 힘든 삶을 사는 천재들.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면서 당대에 인정받고, 행복한 삶을 산 예술가들을 알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또 이중섭을 소재로 한 다른 책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