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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은 역시 차가웠다. 제멋대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에 정신이 조금은 산만해졌다. 예전에는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도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다 하였다. 일제의 간척사업으로 해안선은 저 멀리 밀린 지 오래다.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이지만 한 번도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김장철을 앞둔 시점에서 몇몇 이들은 젓갈을 사기 위해 소래포구로 향한다는 소리를 듣고도 그랬다. 그랬던 내가 인천을 찾은 건 잔뜩 흐린 어느 날이었다. 한 시간도 채 달리지 않은 시점에서 인천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오른쪽은 여느 도시에서나 쉬이 보이는 아파트 단지였는데, 왼편은 어딘지 모르게 칙칙한 기운이 감도는 공장지대였다. 도시가 정확히 양분돼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낯설었다. 많은 공장이 보다 저렴한 땅값과 넓은 공간을 보장하는 타 지역으로 이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공장은 인천 지역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정체성을 인천이 가지게 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다. 제물포를 중심으로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인천은 조그마한 어촌에서 급속히 해외문물을 받아들여야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자본이 몰렸고 자연스레 사람도 몰렸다. 소금밭이었던 자리에 각종 공장이 들어섰고, 수시로 배가 드나들던 곳에는 항구가 건설됐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땀 흘려 노동했을까. 재주 부르는 놈과 돈 버는 놈은 따로 있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졌다. 조선인들이 노동했고 일본인들은 돈을 벌었다. 배를 곯다 못해 누군가는 쓰러질 때 인천에는 쌀이 있었다. 청주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즐겨 마신다는 술을 만들기 위한 양조장도 제법 여러 개 들어섰다. 동국제강, 조선알미늄, 조선차량제조 등 전쟁 수행을 위한 필요에서 들어선 시설이 참으로 많았다. 해방 후에도 인천의 정체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지엠으로 바뀐 대우자동차와 인천제철, SK에너지 등 산업화의 선두그룹에 섰던 이들이 인천을 기반으로 일어섰다. 대학생들의 일부라 위장취업을 했고, 노동을 통해 자녀를 기른 이들이 신분상승을 꿈꾸기도 했다. 높이 솟은 굴뚝에서 연신 뿜어대던 검은 연기는 산업화의 상징이자 인천의 상징이었으니, 많은 이들이 인천에 대해 그리 산뜻하진 못한 이미지를 가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 인천은 일종의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많은 이들이 서울로 출퇴근을 함에 따라 서울로 뻗은 길은 항상 교통체증을 호소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지엠 공장이 위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르망, 레간자, 아카디아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차종들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콜트, 콜텍 사태와,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고민한다는 SK에너지 인천컴플렉스 홍욱표 부장까지. 어느 하나의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오묘한 성질을 인천은 연일 뿜어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남동인더스파크와 남동하모니센터는 같은 공장지대인 듯하면서도 과거의 공장지대와는 인천이 달라졌음을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련된 태블릿PC 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외국인 노동자, 이주 여성 등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를 얼마나 심도 있게 고민하느냐가 인천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임을 이미 인천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많은 부분 아쉬움이 있으나 역사를 간직하려는 시도들 역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그저 때려 부수고 다시 세우는 일에만 치중해온 우리다. 그러나 인천에는 그와 같은 단순한 방법에 입각해서는 안 되는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지금은 비록 폐허와도 같은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다 하여도 그 안에는 앞서 피땀 흘려가며 인천의 일부가 된 숭고한 숨결들이 깃들어 있다. 이에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느냐가 인천의 미래에 풍성함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인천을 언급하며 쇠락해가는 도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디트로이트를 떠올려본다. 영광은 번쩍이는 대규모의 건물을 짓는 것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현재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한 때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그 곳에서 살게 될 사람들 모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