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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어려운 고전이지만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다. [장자]의 철학은 잘 알지 못하더라도 소요유(逍遙遊)와 호접몽(胡蝶夢)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붕이라는 새와 건이라는 물고기의 이야기를 알고 있거나,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를 희롱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해서 소요유와 호접몽이 전하는 참뜻을 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장자]의 철학은 어렵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동양고전을 전공한 사람들이 쓴 [장자]의 해설서들을 찾아 읽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부제가 인상 깊게 다가와 읽은 책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라는 부제가 [장자] 철학을 제대로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권의 [장자]해설서를 더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자]읽기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먼저 우리가 [장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장자는 영리한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을, 유식한 사람보다 무식한 사람을, 강자보다 약자를 좋아했고, 문화를 싫어하고 자연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름길의 유혹을 탐하지 않고, 무식한 사람은 사람을 이용하려는 잔꾀를 부리지 않고, 약자는 언제나 무엇을 해쳐야 한다는 용심을 부리지 않으며, 문화는 자유를 약탈하지만 자연은 자유를 남김없이 주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즉, 우리가 [장자]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장자]가 언제나 사람을 편하게 하고 자유를 누리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자]를 사상으로 읽게 되면 심오한 속뜻을 헤아려야 하기에 어려워지지만, 이야기로 읽으면 재미있고 즐겁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본래 제대로 된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들려줄 뿐 언제나 해답은 이야기 밖에 맡겨두는 법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의 분수에 걸맞게 나름대로 이야기를 듣고는 이것이 정답인지 저것이 정답인지 하면서 토를 단다.’(16쪽) 이렇게 [장자]를 이야기로 읽게 되면 그 의뜸의 가치는 [장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고 한다. [장자]에는 편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대화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장자]와 친해지는 비법은 바로 그런 우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친해지는 것이고, 그것은 [장자]를 이야기로 읽으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장자] 33편 중 내편 7편을 소개하고 있다. 내편은 진나라 곽상이 전해오던 [장자] 52편을 교정하여 33편으로 편집을 하면서도 전해오던 7편 모두를 남긴 것으로, 이는 내편이 본래 장자의 사상과 가장 가깝다고 여긴 까닭이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장자의 인물’은 말 그대로 [장자]의 각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2부 내편의 장자어록’은 [장자] 내편 7편의 각 편마다 장자의 사상을 나타내주는 글들이 실려 있다. 내편 7편의 편명은 차례로 소요유,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인간세(人間世), 덕충부(德充符), 대종사(大宗師), 응제왕(應帝王)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우화형식을 띠고 있다. 이는 이성적인 논리를 앞세우지 않고 상상 속에 노니는 이성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우리는 [장자]를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자]의 우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장자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들이다. 그들을 통해 장자는 자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연은 스스로 있는 것이며, 이 세상의 무엇이든 있는 것이면 스스로 있는 것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즉 자연은 어떠한 조건을 전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으므로 있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자연을 장자는 자유(自遊)라고 정의한다. 자유란 스스로 노니는 것이다. 장자는 매 편마다 바로 그런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법이 보장하는 자유가 아니라 존재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들려주며 아무것도 걸림 없이 노니는 것이 바로 소요유이다.(소요유) 자연은 변화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구별과 편견을 꿰뚫어보고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자연은 한결같다.(제물론) 이런 자유는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게 감출 것 없이 떳떳하게 사는 법을 헤아리게 하여 참된 삶을 누리게 만든다.(양생주) 그런가 하면 제 분수에 맞게 그리고 쓸모없다지만 쓸모 있게 제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임을 알려주기도 한다.(인간세) 또한 덕은 마음의 자유를 나타낸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참다운 자유인 까닭에 덕이란 사람의 마음을 자연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이 있는 사람은 남을 무조건 편하게 만든다. 이처럼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돕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를 자유롭게 하면 마음에 일어나는 욕망마저도 투명해진다.(덕충부) 분별이 없다면 죽음과 삶은 하나가 된다. 무위(無爲)가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나 그 무심이란 마음을 비워내어야 가능해진다. 마음을 비우고 만물의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을 장자는 지인(至人)이라 칭한다. 장자의 철학은 바로 지인을 찾아가는 길이고 방향이다.(대종사) 다시 말해 무심과 무위가 이루어진다 함은 스스로를 잊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을 따름으로써 이루어진다.(응제왕)
저자의 안내를 따라 [장자]를 이야기로 읽는다. 이야기로 읽으니 무엇인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줄어든다. 아마 저자의 말처럼 내 분수에 맞게 이야기를 읽기 때문일 것이다. 각 편마다 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장자가 말하는 자유(自遊)에 대해 토를 달아본다. 다른 해설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분별심을 줄여나가 마음의 온전함과 단순함을 보전하는 것, 달리 말해 자연을 따르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양고전을 읽다보면 해설서마다 저자에 따라 드러나는 미묘한 관점의 차이를 느낀다. 원전을 읽고 해석할 수 없기에 주석과 해설서들을 찾아 읽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읽는 사람의 몫이다. 같은 텍스트를 두고서 여러 해설서를 읽는 까닭은 역자 혹은 저자마다의 관점이 다르기에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서이다. 물론 모든 해설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시각과 관점으로 쓴 책을 만나게 되면 책 읽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그러한 관점들을 통해 나만의 독법을 찾아갈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쓴 [장자] 외편과 잡편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