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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대가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무의식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만큼 남다른 구석이 있을 것만 같다. 일반 소시민들이 맛볼 수 없었던 그런 맛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었을까? 우리가 프로이트와 융의 전기를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심리학 이론과 사상을 개괄하고 진솔한 인간적인 면모를 접하고 동시에 그들이 이론을 어떻게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또 실천하였는지 탐구하기 위해서다.
프로이트와 융 모두 기념비적인 자서전적 텍스트를 남겼다. 『프로이드 자서전』(탐구당, 1989)과 『C. G. 융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집문당, 2012)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의 충실한 제자들, 아니 사도들도 평전을 남겨 존경하는 스승의 업적과 매력을 재현했다. 어니스트 존스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삶과 저작』과 바바라 한나의 『융, 그의 삶과 저작』(한국심층심리연구소, 2013)이 대표적이다. 사족이지만, 융은 빼어난 여성 제자들과 동료들이 많았다. 아니엘라 야페(Aniela Jaffe), 토니 볼프(Toni Wolff),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Marie-Louise von Franz), 바바라 한나(Barbara Hannah), 에스더 하딩, 엘리스 크롤리 등이 융의 주요 사도들이다. 한 학파의 장문인답게 융 마스터는 여복이 무척 많아 다른 학자들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영국 출신의 분석심리학자 바바라 한나(Harbara Hannah, 1891-1986)는 30년 이상 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제자다. 한나는 원래 화가였으나 스위스로 가서 수련을 받고 융 분석가가 된 후, 오랫동안 취리히 C. G. 융 연구소에서 강사 및 교육분석가로 있었다. 민담 연구에서 업적을 남긴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와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내가 읽은 한나의 저작은 고작 두 권에 불과하다. 이 책『융과 그의 저작』(Jung, his life & work)과 디안 프란츠(dean L. Frantz)와 공저한『고양이, 개 그리고 말 강의』(The Cat, Dog, and Horse Lectures)이다.
융의 수많은 전기 가운데 1976년에 출간된 이 책『융과 그의 저작』은 품격있는 고전에 해당한다. 한나가 융의 일화를 그때마다 일일이 비망록 형식으로 적어 놓았던 것을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그러나 이번 국역본에는 사진이나 다른 서지 정보가 전무하다. 양장본도 아니고 단지 번역만 해놓은 것과 같아 다소 한심스럽다. 물론 이 책 표지에 융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담았지만 본문에서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다. 저자가 1935년 7월 융의 60회 생일을 위해 연필로 완성한 융의 초상화가 본문에 수록된 유일한 그림이다. 어떻게 융의 사진을 단 한 장조차 싣지 않았을까?
인간 영혼의 탐구자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이다. 융은 보덴 호의 작은 마을, 케스빌에서 1875년 7월 26일에 태어나, 볼링겐에서 1961년 6월 26일에 사망했다. 융의 양친 모두 성직자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 파울 융은 케스빌의 교구 목사였고, 어머니 에밀리 프라이스베르크는 바젤의 오래된 가문 출신으로, 외할아버지 사무엘 프라이스베르크는 바젤 교구의 수석목사였다. 외가쪽으로 최소 여섯 명의 목사가 있었고 신학자 출신의 삼촌들도 많았다. 학교와 마을에서 언제나 '목사 아들 칼'로 불리던 융은 서너 살되던 해에 꾸었던 꿈을 기억했다. 그가 기억하는 최초의 꿈은 황금의 왕좌에 앉아있던 거대한 지하의 신에 대한 꿈이었다. 대개 최초의 꿈은 미래의 운명과 인격의 패턴을 보여주기 마련인데, 융의 최초의 꿈은 그가 앞으로 대지의 신비를 탐구하는 길을 걸어간다는 운명을 예고한 셈이다. 융은 평생 지적 사고와 환상적 사고의 사이를 오갔다. 어린시절부터 경험한 강렬한 꿈과 환상 등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하면서 신화와 역사, 연금술에 심리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융은 "분석심리학이 매우 기이한 방식으로 연금술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융 심리학의 개념으로는 꿈, 원형, 그림자, 페르소나, 늙은 현자, 자아/자기,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 정신적 전체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융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는 '개인적 무의식'과 더불어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집단적 무의식'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는 자기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분석작업을 통해서 얻은 방대한 경험자료를 토대로, 원시종족의 심성과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현상들을 비교 고찰한 결과, 인간심성에는 자아의식과 개인적 특성을 가진 무의식 너머에 의식의 뿌리이며 정신활동의 원천이고 인류 보편의 원초적 행동 유형인 많은 원형들로 이루어진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1913년 프로이트와 융의 마지막 결별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개념은 성애적인데 반해, 융은 리비도를 심리적 에너지로 정의한다.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성욕의 원시적 충동을 중시했다면, 융은 리비도라고 하는 개념을 성적이 아닌 일반적인 에너지라고 하였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의견이 대립되어,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내향적인 성격의 융은 프로이트의 우정을 잃는 것을 고통스러워했지만 진실을 더욱 추구했다.
"내가 보기에 근친상간이 개인적으로 얽혀들게 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다. 대부분 그것은 고도로 종교적인 내용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거의 모든 창세신화와 수많은 신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것을 글자 그대로의 해석에 집착해서 상징으로서의 근친상간의 정신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이 모든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148쪽)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의 금지를 문자그대로 해석했지만, 융은 상징적 정신적 욕구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렇다고 융이 성(sexuality)을 무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프로이트는 단지 성의 개인적 의미와 생물학적 기능에만 머물렀지만 융은 성의 정신적인 면과 누미노제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이에 더욱 가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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