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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먹고 싶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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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때가 많습니다 하루종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공부하기 위해 학교로 달려갑니다 학교를 하루라도 빠지는 날엔 하늘이라도 무너질것처럼 어릴때 부터 우리는 너무 아이들에게 힘든 공부를 시켜야만 안심이 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에게 떳떳한 엄마아빠가 된다고 생각했었고 또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제대로 못 보내는 부모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더 적극적으로 매달리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날마다 그렇게 학교와 학원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시험이라는 무섭고 힘든 공포에 늘 억눌려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것처럼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는 일이었을까요? 한번쯤은 이제 아이들의 마음의 소리에 우리 부모가 귀를 기울여야 할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가 열심히 학교와 학원을 많이 많이 다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착한 아이이고 또 그렇게 길들여지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부모로서 도리를 다 하는거라 여기면서 살고 있는것 같습니다 학원 하나 못 다닌다면 가정형편이 어려워서일거란 판단을 먼저 해 버리게 됩니다 아이들은 쉬고 싶다는 말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허수아비 같이 보입니다 왜 이렇게 생활해야 하는지 이렇게 해서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엄마가 기뻐하니 성적을 올려야 하고 부모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칭찬 듣고 싶어서 마냥 길들여지고 있는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러다 보니 마치 로보트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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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피아노 치는 게 정말 좋아?' "엄마는 내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해." '나는 네가 좋아하냐고 물었어.' "엄마가 좋아한다니까." .... 그 아이는 나를 슬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와락 짜증이 났다. - 본문 22에서
*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실패한 아빠의 인생을 닮고 싶지 않아서 나는 친구도 사귀지 않고 쓸모없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면서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한다. 그래도 일등이 되지 못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의 마음에 드는 아이가 되고 싶은데 도저히 그게 안된다. 일곱살 때부터 내 눈 앞에만 나타나는 그 아이는 이런 나를 불쌍하게 바라본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싫고 짜증이 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였던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바르고 건강한 몸과 마음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각기 다른 환경과 상처를 겪으면서 힘들고 어렵게 혹은 자연스럽고 또 수월하게 어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 시절을 아름답게 미화하며 그리워하기만 하고, 어떤 이들은 그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영영 어린이인채로 남아 있기도 한다.
이 책은 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이어지는 그런 상처의 대물림을 보여준다.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못해 자신의 아이에게 마저 상처를 주게 되는 슬픈 동화다. 정작 그런 상처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그 상처가 본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로 다른 가족에게로 되물림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되고 스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나' 라는 사람의 바닥과 깊이의 끝 그 한계를 만나게 된다. 누구나 백퍼센트 만족스러운 부모는 없다. 그러나 가끔은 자신의 상처를 대물려 주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성공을 안겨 주고 싶어서 그런 이유들로 자신의 문제를 다른 이에게 혹은 아이에게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지 이야기는 묻게 한다.
구누나 상처없이 자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상처를 스스로 극복해 가는 사람이 있고 그 상처를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혹은 자신의 아이에게 물려주는 사람도 있다. 상처 입은 엄마 아빠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아이의 모습은 읽는 내내 우울하고 슬프다. 지금 당신은 아이에게 어떤 부모이냐고 묻는 슬프고 어려운 동화. 그래서 아이들보단 어른이 그리고 부모들이 더 먼저 읽었으면 싶은 동화 <누구냐 너는> 이었다. - 다락방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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