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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이면 나는 신문에서 '책의 향기' 코너를 먼저 읽는다. 기자들은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을까. 어떤 책이 새로 나왔을까.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열어보며 그 즈음의 신간 서적들을 눈으로 읽는다. 좋다고 생각한 작품은 메모를 하고, 언젠가 구입해서 읽어야 겠다 생각을 한다. 닉 페어웰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생소했다. 신문의 작은 꼭지 기사에 닉 페어월 작가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짧게 나왔다. 브라질 작가려니 했지만 '이규석'이라는 한국이름도 있었다. 작가 이력을 들춰보니 열네 살때 브라질로 이민가 28년을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 한국 출신의 작가였다.
외국에서 성공한 작가. 한 편의 자전적 소설로 브라질 고등학교에서 비치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이라 한다. 아이들은 GO라는 글자를 몸에 새기고 다니기도 하고, 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닐 정도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했다. 한국 출신 작가가 외국에서 성공을 하면 앞다투어 인터뷰를 하고 작가가 쓴 책을 소개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사실 『GO 고』라는 제목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앞을 향해 달려가 할때의 GO.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라는 GO인것 같았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는 『GO 고』는 역시나 작가의 독백처럼 들린다. 작가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형식으로 글이 이어져 가는 것이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나'는 특별한 직업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여자친구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하는 일이라곤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는 일이다. 적은 돈을 벌면서 살아가지만 그는 글을 쓰고 있다.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을 하고 있다.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을때 마음이 통하는 여자애 진저를 만났다. 진저로 인해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주인공은 굉장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글을 쓰는 것,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 아이들로 하여금 꿈을 갖게 하는 일이 무척 마음에 든다. 글을 쓰고자 하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그 아이들이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는 희망을 갖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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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책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영하고 있었다. 읽었던 책들, 작가에 대한 생각들, 그가 디제잉하며 들려주는 음악들은 우리를 다양한 음악속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가 들려 주었던 노래들은 내가 아는 것도 있고 들어보고 싶은 음악도 있었다. 실생활에서 음악을 생활화하는 그의 음악사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글 잘 쓰는 법을 물어보자, 책 속에서 작가의 생각들을 만나라고 하는 글귀는 압도적이었다.
작가의 감정, 작가의 의도, 작가의 쓴 것을 대신 경험해보는 일이 책을 읽는 일이 아닌가. 우리가 책을 읽는 일을 아주 잘 표현해 주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주인공의 삶은 어떻게 보면 아주 절망적인 삶이다. 아버지에게도 버림받고, 사랑했던 진저에게도 순간의 실수로 버림받고, 좋았다고 생각한 여자애에게서 어이없는 일까지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그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 자신의 심연으로 침잠하며 글을 썼던 일들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나도 그에게서 희망을 읽었다. 희망의 빛이 비춰지는 걸 느꼈다. 이런 희망적인 글들이 브라질의 고등학생 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듯 하다. 사진에서처럼 몸에 문신을 새겨가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이 절망적이어도 꿈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말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이 책을 많이 읽고, GO라는 말을 기억하며, 삶이 힘들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때도 앞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GO. 앞으로 가. 그냥 해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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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제목 ‘GO’는 다른 작가 책을 생각나게 했다.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 《GO》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이 소설이 생각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제목만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이 생각났느냐 하면, 이 소설을 쓴 사람 때문이다. 이름은 닉 페어웰이지만,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이규석으로 1985년 열네 살 때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우리나라에서 이민을 간 것은 아니고 재일교포다. 책 제목이 같고 교포라는 것 때문에 생각이 난 것뿐이다. 열네 살이면 중학생이었을 텐데, 스물여덟해를 그곳에서 지내면서 우리말을 거의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 다 잊어버렸을까. 이런 것을 먼저 생각하다니. 이규석은 브라질에서 브라질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브라질 사람이지만 예전에는 한국 사람이었다는 게 조금 신기해서. 어쩐지 이상한 말 같다. 이런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살다가 브라질에 가서 잘 살고 있는가 보다 이 정도만 생각하면 괜찮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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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챙겨야 할 부분도 많고, 계획을 세우고 새로 진행해야 하는 일도 많고 해서 너무 몰입해 읽어야 하는 무거운 책들은 좀 미루고 있다. 이런 저런 일들로 피곤해진 나의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해 가벼운 작품들을 주로 읽고 있는데, 그래서 꺼내든 책이 바로 이 책, 닉 페어웰의 <GO>였다. 시간은 밤 열 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고, 하루 종일 누적된 피로와 지친 머리로 인해 나는 살짝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머리 쓰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 든 것이었으므로, 책을 읽기에는 가장 나쁜 자세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히고, 발은 반쯤 다른 의자에 걸쳐 올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튼 자세 말이다. 책을 대하는 가장 성의 없는 자세로,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별한 직업도 없고,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지도 않은 29살 젊은이의 독백이 정돈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졌고, 나는 설렁설렁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가..문제의 페이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쩌자고 이런 장면이, 이런 작품에 등장한단 말인가.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흐트러져 있던 자세를 바로 고쳐 잡기 시작했다. 문제의 그 장면은 바로 이것이다. '독서와 작문 교실'에서 시 외곽에 사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가르치기 시작한 두 번째 시간에, 그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하나 보여준다. "이건 SF영화야. 영화 제목은 <화씨 451>" 나는 다시 트뤼포에 의지한다. "이 미래의 소방수들은 불을 끄지 않아. 책을 불태우지. 왜냐하면 책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고 여기거든. 화씨가 무엇인지는 아니?.... 영화 제목 화씨 451은 책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야." 무슨 영화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사랑영화'라고 대답하는 그 대목을 보면서, 나는 그가 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한 순간 알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나를 감.동.시켰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며,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의 <화씨 451>이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쓴 동명의 SF소설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이 1963년에 만든 영화로 책이 금지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된 미래, 그러니까 책을 보려면 몰래 벽에 숨겨서 봐야 하고,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방화수가 출동해 책들을 모두 불에 태워버리는 그런 시대이다. 원작에 비해 영화가 엄청나게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짠하고, 울컥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참 오래 남았던 작품이었다. <GO>에서도 언급되는 시람 들이 좋아하는 책을 외우면서 호수 주변을 걸어 다니는 장면뿐아니라, 수많은 책들이 발각되어 거실에 잔뜩 쌓여 불태워지는 것을 보다 결국 그 불꽃 속으로 몸을 던졌던 노부인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던 영화의 장면이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책들을 소각시키는 방화수들에게 "이 책들은 살아 있어. 내게 말을 한다고."라고 말하던 노부인의 눈빛을 나는 너무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그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책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해석하는 <GO>의 주인공이 그 순간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무도 대충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살짝 미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전형적인 루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별 생각 없는 방황하는 젊은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문득 든 것이다.
"이게 바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야. 이걸 위해 싸워야 하는 거야.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정말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여러분을 숨 쉬게 만들고, 쓰고 싶게 만드는 걸 기억하는 거야.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는 불을 가져야 해.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거기에 삶이 거칠게 섞여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해. 자신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을 느껴야 해.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물을 불태울 수 있어야 해. 그게 바로 우리의 생존에 관한 것이거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을 나가면서 그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 이 작품을 '사랑 영화'라고 소개하는 선생님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자신을 이해할 거라고, 앞으로 책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거라고 확신한다. 잠깐씩 이렇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 외에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바에서 디제잉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젊은이가 이런 가치관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나는 놀라움과 희망을 보았다. 그는 극 중에서 매일 같이 소설을 쓴다. 밤을 세워 수십 페이지를 쓰기도 하고, 자신이 대체 뭘 쓰는지, 출판이 될 수나 있을지 기약도 없고, 방향도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매일, 꾸준히 하는 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대한 내 유일한 충고.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글자. 넌 이미 알고 있지, 모든 게 엉망일 때 두 글자로 된 이 단어를 기억해. GO. 글을 써, 그림도 그려, 사진 찍어, 춤춰, 연기해, 노래해. 그렇지만 모든 게, 모든 게 잘못될 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만 기억해. GO. 가, 앞으로 가. 한 번 해보는 거야. ‘GO’라는 심플하고도, 직설적인 제목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거였다. 포기라는 건 삶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죽음이니까. 현재에 안주하고, 실패에 낙담하는 건 쉽지만,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건 어려운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한번 부딪혀보자.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가만히 멈춰 있는 것보다는 앞으로 가보는 게 진정한 삶을 누리는 거라는 걸 이 작품은 알려준다. 가장 평범하고, 쉬운 방식으로. 삶이란 누구에게나 좋은 순간도 있고, 나쁜 순간도 주어진다. 최악의 상황만 계속 이어지더라도,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만 떠올려보자. “GO. 가, 앞으로 가.” 까짓 것 그냥 해보는 거다. 어차피 한번뿐인 내 인생 아닌가.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은 바로 내가 앞으로 나아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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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내 삶이 지겨울 때, 모든 걸 포기하고만 싶을 때 “이 두 글자를 기억해줘,GO!”
열네 살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머나먼 이국 브라질로 이민했던 소년은 무려 30여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집하기 보다는 완벽한 현지인으로 동화된 삶을 살았던 그에게 기억에서 가물거렸던 한국은 낯설면서도 과거의 어느 깊은 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끈이란 의미 때문에 조금이나마 의식해야만 했을 것 같다. 한국 이름으로는 이규석, 브라질 이름으로는 닉 페어웰(닉 페어웰로 불러주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한국인이라는 뿌리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될 듯). 닉 페어웰은 자신의 인생에서 지금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브라질에서 펴낸 책 한 권이 가져다 온 돌개바람. 브라질 청소년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삶을 바꾼 책이라며 최고를 외치는 이 책 <GO>에는 어떠한 메시지가 있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이 책의 현지에서의 인기는 실로 놀랍고 화려하다. 성인이 주인공이고 내용도 그러하지만 브라질 교육부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공립고등학교 필독서라고 하니 읽고 나서도 좀 의아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브라질 청소년들이 <GO>라는 단어로 문신도 새기고 티셔츠 운동화도 입고, 신는 등 가히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은 인생에서 낙오하고 실패한 주인공이 자신을 구원하면서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자는 그 단순명료한 메시지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청춘들의 내면에 단비를 내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것이다.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았더니 그제서야 이 모든 현상들이 이해되고 정립되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나는 가난하다. 고정적인 직장도, 친구도, 당연히 여자 친구는 더더욱 없다. 작은 월세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상파을로의 바에서 디제잉을 한다. 그의 삶은 여러모로 남루하고 보잘 것 없지만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하는 것은 어릴 적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에서 자책과 원망의 한숨이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마나 희망이랄까,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겠다.
<쿠비코바>라는 제목으로 구상 중인 소설은 동유럽 국가출신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신과 똑같은 입장에 놓여있는 한 남자가 그녀를 만나는 이야기인데 상상이 현실에 이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 인생의 여자가 있었으면, 되어 준다면 이라는 바람이 소녀 진저를 만나 사랑에 빠지도록 된 것이다. 사랑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놓았다. 진저를 통해 구원받고 그녀의 소개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맡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기쁨과 보람에 설렌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행복의 나날들은 길지 않았다. 한순간의 오해와 실수로 그녀에게 이별통보를 받아 실연당한다. 이제 상심과 고통에 절어 다시 과거의 추레했던 시절로 퇴행해버린 나. 희망은 없다. 그녀가 없다면.
아무런 미래가 없는 루저라는 현실은 인생에서 진정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주저앉아 버린 진실에서 기인한다. 찾았다고 생각해서 시도라도 했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남는 것은 자기연민 뿐이다. 삶은 다시 재기할 때까지 기회를 무한리필해주지도 않고 냉정하게 빨리 흘러가 버리는 것만 같다. 이제야 자신의 삶으로 돌려놓을 인연을 만났는데... 부족했던 자신을 고쳐서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삶으로 변모시키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누구라도 자신을 대입시키고 응원해주고픈 마음이 굴뚝같을 거다. 더 잘 할 수 있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가슴에 난 실연이라는 상처는 살아갈 의지라는 연고로 치유해아만 한다. 그러기에 나의 방황은 길었다.
할아버지의 바람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했던 주인공의 아버지를 보라.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이타주의라는 도덕적 굴레에 얽힌다면 진심 행복하기 힘들다. 남들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즐겁지가 않다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신의 의지와 시간이라는 현상은 슬픔, 분노, 좌절,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과정들을 순화시키고 어느 정도 리셋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이다. 용서 못할 것도 없이. 연약함과 불안, 비참함에서 허우적거리기엔 인생은 길지 않기에 나는 멋지게 일어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도하는 수 밖에 없다, 누구의 방해도, 입김도 없이 말이다.
나는 말한다. “삶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네가 내 삶을 통해 보았듯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으로 가득해. 하지만 모든 게 최악일 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를 떠올려봐. GO. 가, 앞으로 가. 글을 써, 그림을 그려, 사진도 찍어, 춤을 춰, 바느질을 해, 연기해, 노래해.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최악일 때마다 딱 한 단어만 기억하는 거야. GO. 가, 앞으로 가. 그냥 해봐.” 포기하는 순간 삶은 죽음이다. 최악이라는 나락에 빠지지 않으려면 안주하지 말고 벽을 깨고 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만 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전제조건으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능력을 갖추기를 바라고 있다.
혼자서 잘 났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은 세상이니까. 곁에서 부축해주면서 같이 보조 맞추어 걸어줄 나, 당신 그리고 우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라면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팝 뮤지션, 특히 록 밴드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전해지는 추억에 대한 향수이다.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이 그때 그 시절에 들으며 추종했던 밴드들이 그리워서 맘 한구석이 잠시 감상에 젖는다. 당대의 대중문화가 심어놓은 소통은 단절되었지만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는 점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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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몇번의 강의, 몇 권의 책으로 바뀔만큼 시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인생을 두고 (중략) 함께 생각해보고 싶기 때문" _박웅현『책은 도끼다』中
책 한권을 집중해서 못 읽는 편이다. 그래서 여러 권을 동시에 읽을 때가 많다. 한참『지옥계곡』을 읽다가 기분전환 겸으로 『GO』를 펼쳐들었는데 도입부에서부터 『GO』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도입부에 적힌 글 중에 내 마음을 붙잡았던 건, 윌리엄 포크너의 연설이었다.
우리가 '사춘기'라고 단언하는 그 폭풍의 세월들을 거침없이, 그리고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춘기'를 과거로 이야기하곤하지만, 사실 '사춘기'는 우리에게 있어 끝나지 않는 '현재'이다. 과거이면서도 현재이고, 과거를 우리는 계속 가진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고민했던 것들을, 거침없이 정리되어있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 채, 마음 속에 담은 채 고민하고 있었던 것들이,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고 망설였던 것들이, 내 삶이 보잘 것없이 느껴질 때, 누군가의 따뜻한 말조차 위로되지 않을 때,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다고 느낄 때, 이런 것들은 다 욕심이지, 싶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성공하는 방법'이나 '힐링'같은 게 아니다.
책 뒷면에 적힌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느 '루저'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까지의 모험담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성공담을 만나왔다. 실패는 항상 '해서는 안되는 약점'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 그 약점이라는 인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실패=하지 말아야할 경험,이라는 동의어처럼 인지되고 있다. 아무리 토머스 에디슨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했다고 해도 무력하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 없이, 이 말만으로 그 누구도 위로받지 못한다. 하지만 성공을 전제로 이야기되어야만하는 '실패'라면 또 거절하고 싶다.
이 책이 좋았던건, 흔히 이야기하는 '성공'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여러가지 생각 중에 양 극단의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않은가, 그 어떤 화려한 말들로도 이 책을 간추리고 요약하고, 강한 한방을 줄 수는 없다. 진실로 일독하길 권한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GO』밑줄,
독한 커피 한 잔을 마셔야지, 목요일. 오늘은 무슨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지 너에게 이야기하는 날이 아니다. 아니 몇 푼 버는 얘기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이렇게 숙취에 따른 두통을 보장해주는 돈이다. _59페이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내 보잘것없는 인생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꺼내고 싶은 거야? 인생 프로젝트? 나를 너하고 일치시키는 것? 내가 사진 전문가라고, 록밴드를 하고 있다고, 아니면 개인 전시회라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으면 좋겠어? 아니지, 아가씨, 나는 아무런 미래가 없는, 그냥 루저야. 나는 너하고 많이 달라. 진실을 알고 싶어? 인생에서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어. 찾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 해보려고 했어. 하지만 하지 못했지. 당신이 보고 있는 이 가련한 영상이 바로 나야.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아무것도 믿지 않아. 어떤 재능도 없어. 나 자신에 대해 연민을 가지는 이 무한한 능력 외에는 없어." _81페이지
"어때? 잘 되어가?" "응. 좀 힘들었어. 지금은 좋아졌지만." 그래, 우리가 이 삶에서 필요한 건 이런 솔직한 거짓말들이다. "나랑 바람 쐬러 나갈래?" "그래, 하지만 뭘 하지?" "음...... 좋은 질문이네. 너랑 같이 있는 것만 생각했지 뭘 할지는 생각 못했어." _98페이지
"내가 널 잘 알잖아." 아, 이 말은 기가 막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다니, 젠장, 지미, 내 삶이 이렇거든, 아무도 날 모르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_133페이지
그러면서 나도 부탁한다. 삶을 생각하라고, 삶을 의지로 채우라고 말이다. 또 실패는 철을 단련시킨다는 사실을 배우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삶은 우리에게 상처 주고, 피 흘리게 하며, 우리의 이를 악물게 하기 때문이다. _181페이지
"아버지가 행복해하셨고, 나도 그런 점에서 행복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한 적 없다. 난 언제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행복의 열쇠라고 확실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이타주의? 체념? 희생? 더 나쁜 게 뭔지 아니? 그걸 내가 이해한다는 거다. 왜 아버지가 행복했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정말 행복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로,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_211페이지
내가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진정한 인생이란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 덕분이다. 너는 내가 대기업에서 일했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것도 다국적 기업에서, 사람들은 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진정한 삶은 사무실 밖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난 거리로 발을 내디뎠다. 나는 아웃사이더 정신과 아카데믹한 규율을 배웠고, 길거리 철학과 전통적 교육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인생의 양 끝을 묶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인생의 아픔과 부적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_284페이지
"내가 한 짓을 넌 하지 마라. 네 삶을 살아라, 아들아......" _303페이지
거의 1년간의 작업. 그걸 믿게 한 건 내 삶이었다. 이 모든 게 사라진 후에도 내가 계속 존재할 거라는 건 위대한 진실이다. 내 고통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_314페이지
나는 그저 너와 마찬가지로 출구를 찾으려는 인간일 뿐이다. 나는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우주의 크기만 한 불확실성을 지닌 한 남자일 뿐이다. 내 권리, 내 유일한 권리는 시도하는 것이다. 누구도 내게서 이걸 뺏을 수는 없다. _336페이지
포기하는 건 인생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죽음이다. 안주하는 건 시도하는 것보다 더 쉽다.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 때, 이미 시절이 지나가버렸다는 서글픈 감정에 부닥친다. 낙담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시도해봐. 한 번, 두 번, 열 번, 백 번, 천 번, 필요하다면 수백만 번이라도. 해봐. 제대로 될 때까지. _338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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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 책을 읽으라고? 직업의 특성상 어린이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2013년 말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노고(?)와 감사(?)로 책을 선물받았다. 제목은 [GO] 두께도 어마어마하다.(지금까지 읽어왔던 고학년용 어린이 동화책의 2배 쯤은 두껍웠다. 양장본이라 더욱더...) 닉 페어웰이라는 작가의 이름도 생소하였다. 알수 없는 영어 비슷한 글씨가 겉표지의 하단부를 채우고 있다. 읽으려고 애썼지만(영어 울렁증이라, 내가 정말 영어를 못하는구나하고 자책하였다.) 읽을 수 없는 글씨였다. 필기채라서 그럴까? 에고에고 나중에 알았다. 포루투칼어란다..이런.
솔직히 읽기가 힘들었다. 1월 달에 읽었던 김진명 작가의 소설 [고구려1,2,3,4,5]와 [살수1,2], [삼성컨피시런시], [바이 코리아] 등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읽었다. 위의 소설들은 시간이 허락하면 하루에 한 권, 두 권, 적어도 이틀에 한 권 정도씩 진도가 나갔다. 궁금해서 못 견딜만큼(그 만큼 김진명의 소설은 스토리와 스피드가 있으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GO]는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지 못해서일까? 지루한 읽기가 계속되었다. 브라질을 배경으로 하고, 역사와 인물, 사건의 흐름과는 조금 다른 전개. 책 말미에 이야기하듯 음악 소설이라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 또한 문외하였기에 참으로 읽기가 불편하였다.
Come Back Home!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 떠올랐다. 가출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는 노래. [GO]는 꿈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방황하는 브라질 젊은이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 같았던 것일까? 방황을 마감하고, 미래를 향해 GO하는 역사를 이루어낸 것이다.
공립고등학교의 필독서로 등재! 브라질 교육부에 [GO]의 가치를 인정받아 브라질 공립고등학교의 필독서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감명받아 문신을 새기는 등 브라질 전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건데 인디음악과 클럽, 술과 담배, 가끔 등장하는 약, 섹스 이런 내용이 등장하는 소설이 고등학교 필독서라니 한국인으로서 정서를 가진 나, 교사로서의 정서를 가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러나 키스오 포옹이 자유로운, 이성에 대한 감정의 표현이 자유로운, 삼바의 고장인 브라질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의 초상을 극복하다. 아주 작은 아파트에 사는 파렌하이트는 클럽 디제이를 하면서 틈틈히 소설을 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할 것이다. 애인이었던 메기가 떠나고 방황을 하고, 새로운 연인인 진저를 만나 삶의 활력을 만나고, 인생에 없을 것 같던 글쓰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잠시 가르치기도 한다. 진저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오해를 하여 다시 헤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구'라는 말은 파렌하이트에게는 너무 먼 단어였다. 그러나 어려움이 극에 달할 때 파렌하이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친구라 여기지 않았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라 여길만 하였던 찰리의 죽음으로부터 파렌하이트는 다시 태어난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GO'가 시작된다. 삶의 의미는 주변과 항상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마음이있다.
모든 게 잘못될 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만 기억해. GO. 앞으로 가. 한 번 해보는 거야. 포기하는 건 인생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죽이다. 안주하는 건 시도하는 것보다 더 쉽다.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않을 때, 이미 시절이 지나가버렸다는 서글픈 감정에 부착친다. 낙담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시도해봐. 한 번, 두 번, 열 번, 백 번, 천 번, 필요하다면 수백만 번이라도. 해봐. 제대로 될 때까지.
그렇다. 해 보는 거다. 그게 이 책의 핵심이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세상을 부정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세상을 향해 외치길 기대하며. GO (그런데, 과연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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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의 울림으로 전해지는 청춘의 이야기 - GO _ 스토리매니악
쿵쿵쿵쿵쿵! 현란한 조명 아래 젊음이 소용돌이 치는 클럽에 가슴을 울리는 비트가 고동친다. 쿵쿵쿵쿵쿵! 비트는 열정이고 자유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청춘이기도 하다.
여기 비트 속에 청춘을 맡기고 자신을 소모하는 인물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소위 말하는'루저'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헤매고, 친구는 애써 거부하고, 여자친구도 없고, 아버지에겐 버림 받았다. 바에서 DJ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먹고 살고, 돈이 없어 굶는 일도 다반사다. 무엇 하나 가진 것 없고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끊임 없이 자신을 소모해가는 그리고 그리고 그 소모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는 청춘이다.
비트가 가슴을 울리듯 이야기에 가슴이 울리는 소설이다. 밑바닥 청춘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이야기를 보며 복닥복닥한 공간에서 최대치의 볼륨으로 울리는 스피커 옆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때론 더럽고 지저분하고 어처구니 없는 주인공의 행태지만, 그가 마음을 닫은 이유에 그가 세상을 일그러지게 보는 이유에 공감하고, 그가 구원의 빛을 향해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응원하게 된다.
청춘의 시기는 절망과 희망을 오간다. 어느 쪽에도 기울지 못하고 방황하며 자신을 소모하고, 그러면서도 청춘을 꾸준히 삶으로 밀어낸다.머리가 울렁일 정도로 힘든 때이지만, 돌아보면 너무나 소중하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이 최악의 자신을 자각하고 '진저'라는 여자를 만나 지금의 자신을 이탈하려 애쓰는 모습들은 청춘의 소중함 그 자체다.
저자가 말하는 청춘의 방황은 전 세계 그 어떤 청춘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미숙한 나, 삶에 묻혀 가는 나, 사랑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나까지, 작가는 상처 받은 청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읽어냈고, 이를 주인공에 투영시켰다. 한 때의 자신이기도 하고, 브라질 청춘들의 현재이기도 하다.
결론은 읽는 이의 몫이다. 청춘의 방황기로 읽든, 어설픈 청춘의 성장기로 읽든, 삶과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로 읽든, 어느 쪽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청춘의 지금,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니 말이다. 바로 작가의 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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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중반까지 읽었을 즈음 마치 확인되지않은 사실로 인해 순수함이 더럽혀졌다며 첫사랑을 포기한 [건축학개론]의 승민처럼 스스로 관계를 망쳐버린 주인공으로 인해 화가 벌컥 났다. '뭐 이런 미친 똘아이가...'라고 말하다 문득, 글쎄 그게 바로 제3자가 바라보는 심정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공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승기와 보다 수월히 정보를 얻는 꽃누나들을 비고해 보며 답답해하는 것처럼. 근데, 막상 사람들은 다시 젊은 시절로 간다면 가지않겠다고 말한다. 그건 보면서 답답해하는 자신들 역시 그 때로 돌아가면 똑같이 발 동동 구르고 미친 똘아이처럼 스스로를 망치는 실수를 저지를 것을 뻔히 아니까. 아마도 청년기에 흘린 눈물과 실수만큼 밤하늘에 별이 된다면, 그건 아마도 성공과 자신감의 순간으로 이뤄진 은하수보다 엄청나게 크리라.
...신 (제임스 조이스)과 인간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리고 성자 (토마스 만)....p.34
당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않는 (주니오르로 불린 것을 보니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때문인가)이 청년은, 트뤼포의 영화에 열광하며 그 영화 포스터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을 한심해하며 지겨워하는 다소 오만함을 지닌다. 하지만, " 그래, 당신이 언급한 작가들은 다 읽었거든. 그럼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다 읽었어?"라는 질문을 당당히 던질만큼, 래이 브래드버리가 쓰고 트뤼포가 감독을 한 [화씨 (파렌하이트) 451 ]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Absolute Equality + Tranquility = Happiness???? )이 보여주는 것처럼 책에 대한 엄청난 사랑을 간직한, 글을 썼다 없애곤 하는 글장이, 미스터 파렌하이트이다. 좋은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하였으나 여기저기 일자리를 떠돌고 지금은 일주일에 3일뿐인 클럽의 DJ를 하고 있지만, 틀고싶은 음악은 사장 때문에 틀지 못하고 좋아하는 여자 옆에서 딴 여자에게 눈길이 돌아가며 몸이 반응함에 어쩔 쭐 몰라한다. 글쎄, 왜 나는 왜 완벽하지 못하지 라고 자신을 자책하는 건 어쩜 왜 이 세상은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매우 순수한 면을 간직했다는 거 아닐까.
...내가 느끼는 것을 알지못해서 안타깝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못해 생긴이 모든 상처를 쏟아내고 싶다. 이렇게 불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생긴 상처를 쏟아내고 싶다. 나의 이 모든게 평생 내 뒤를 쫓아오는 것일까. 나는 그림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림자는 상처와 같아서 내 삶의 태양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p.120
친구라고 부를 사람도 없다며 아버지의 부재에 슬퍼하는 그는, 실상 이해받기를 갈망한다. 짧은 광고처럼 아주 짧은 문단으로 이뤄진 가운데 가끔씩 꽤 멋진 문장이 등장하고, 엄청나게 많은 음악들이 등장해 주인공의 기분을 대변해주고 가볍게 넘어가는 와중에도 주인공의 고민은 점차적으로 더욱 소개가 된다. 근데 그 음악에 사람들은 춤추는데 주인공은 좌절하는거 보면 꽤나 아이러니하게 이 음악들은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한다기 보다 어째 주인공을 더 갈라놓을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묘사하는게 아니라 꾸준히 부른이와 곡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무의식적으로든 '날 이해해줘'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오만한듯 타인과 거리를 긋는 그의 마음은 실상 여리다.
인생에서 농담의 대상이 되지않을 만큼 진지한 건 없지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물론 어떤 것들은 웃어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것 또한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좀 더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이런 나를 네가 봤으면 좋겠다...p.212
(이 신나는 음악 속에 주인공은 여친을 잃는다고...그 와중에 가사가 들리는 주인공이라니... )
근데 그는 우연히 않게 투덜거리며 맡은 글쓰기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를 털어놓는다.
...책을 읽어봐. 글 쓰는 것보다 훨씬 좋은 연습이 될테니까. 작가가 쓴 것을 경험해봐. 거기서 감정을 느껴봐. 작가의 의도를 느껴봐. 그 모든게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도록 해봐. 그 모든게 여러분 각자의 것이 될거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될거야. 마치 여러분 자신의 단어처럼 말이지...p.96
..오직 사람만이 사람을 구한다...p.175
...만남...인생....기회...그 기회를 어디서 어떻게 잡을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계속 해나가는 거야. 믿어보는 거야. 어느날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하게 될거야. 우리 손으로 기회를 만들게 될거야. 서로 영감을 주고, 서로 지지하고, 서로 믿으면서 말이다...우리의 삶이 가치있도록 만들자...부디 네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줘....p.180 (나중에 기회가 와서 그것을 붙잡았을때 진정 의미있었던 순간은 그 기회를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그래도 무언가를 하려던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재능이라곤 전연없다고 생각하지?..하지만 우린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 싶고, 그걸 멈출 수 없잖아. 지독히 힘든 순가조차도. 그럼 해봐. 한번 해봐. 삶은 좋을 떄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네가 내 삶을 통해 보았듯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으로 가득해. 하지만 모든게 최악일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를 떠올려봐. GO. 앞으로 가. 글을 써. 그림을 그려. 사진을 찍어. 춤을 춰. 바느질을 해. 연기해. 노래해.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최악일대마다 딱 한 단어만 기억하는 거야. 아, 앞으로 가. 그냥 해봐....p.128 ...포기하는 건 인생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형태의 죽음이다. 안주하는 건 시도하는 것보다 더 쉽다.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않았을떄 이미 시절이 지나가버렸다는 서글픈 감정에 부닥친다. 낙담했을떄도 마찬가지다...p.338 (동일 제목의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도 있었는데, ㅎㅎ 정답은 똑같은건가. 동서양이나 다. GO!)
..장점 외에도 작은 결점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그런 결점들을 좋아해야만 한다. 그게 사람들을 사람답게 만들고,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게 없는 나를 상상해봐. 더 이상 내가 아닐 것이다. 작은 결점들. 그게 나를 사람답게 만들고 인간적으로 만든다...내가 사람들의 결점들을 좋아할때 비로소 그들을 좋아한다는 것. 나를 너와 똑같은 뼈와 피를 가지게 만드는 것은 인간적인 결점들이다....p.267
...사람들이 날 이해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날 아프게 하는 것을 조금 나누고 싶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내가 꼭 그걸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 비참함을 나누고 싶지도 않다. 그건 언제나 나만의 위대한 비밀일게다. 아마도 우리의. 아마도....p.294
어떻게 보면 그 많은 깨달음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수없이 읽고 들었던 것이지만, 부던히 깨져가면서 깨우쳐진다. 그동안 머리속으로만 알았다면 이젠 피부로, 심장으로. 문득 성장이란 청년기에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전인생을 통틀어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짓을 넌 하지 마라. 네 삶을 살아라, 아들아....p.303 (물론, 주인공의 아버지는 그를 버렸지만, 문득 이문장에서 난....자라면서 전업주부였던 엄마에게 엄마처럼 살지않겠다며 상처주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 보니 엄마 만큼이라도 잘하면서 살기는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 다 큰거 같지않다. 그리고 주인공이 선생님하면서 하는 말들을 볼때, 그런 말들을 했던 선생님들이나 어른들 모두 그때 바라보기만큼 어른들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
p.319
p.s: 젠장 넌 나에게 또 숙제를 안겨줬어. 토마스 만, 보들레르의 [악의 꽃], 트뤼포와 안토니오니의 영화, [파리, 텍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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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열네 살 때 브라질로 이민 간 한국 이름 이규석의 소설이다. 이력을 보면 브라질 속으로 동화되기 위한 그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의 아버지 말처럼 브라질 사람으로 살고 있는 그가 출세작인 <GO>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다. 사실 이 제목을 봤을 때 재일동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GO>가 먼저 떠올랐다. 같은 제목이지만 다른 분위기다. 닉의 소설이 방황을 조금 무겁게 그려내었다면 가네시로는 좀더 가볍다. 닉의 소설에서 국적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가네시로의 소설에서는 재일동포가 분명히 드러난다. 서로 다른 두 나라가 가진 문화와 인식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작가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 주인공의 피부색이 나올까 궁금했다. 결론만 말하면 나오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발견하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 중 하나가 피부색과 인종에 대한 것이다. 영미권 소설을 볼 때면 인물 묘사에서 반드시 나오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나의 착각일까?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브라질에 동화되고 브라질인으로 살아가게 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니면 브라질에서 이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첫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짧은 문장들이다. 주어와 명사로만 구성된 듯한 문장은 빠르게 흘러간다. 흡사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반 이후로 가면서 이런 짧은 문장은 줄어든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쉽다. 충분히 이런 문장으로 이야기를 더 끌고 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주인공의 직업이 DJ라서 그런지 아니면 브라질 분위기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어가 아주 많이 흘러나온다. 음악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작중 직업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내공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것은 그가 고전 작품을 곳곳에 인용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주인공의 엄청난 독서량을 보면서 작가도 그런 것이 아닌가 살짝 의심이 생긴다.
20대 후반의 DJ가 주인공이다. 그의 삶은 불안하다. 그는 그 누구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첫 장면에서 돈 없고 배고파 찰리를 찾아가는데 누가 봐도 친구 사이다. 삶에 희망이 없는 그에게 친구는 환상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또 그는 생각한다. “내 삶을 멈추게 하는 건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지나친 자아비판이다.”(24쪽)라고. 글을 쓰는 자신을 불안과 절망 속에 빠트려 놓지 않으려는 의지로 보인다. 이 노력은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최악일 때마다 딱 한 단어만 기억하는 거야. GO. 가, 앞으로 가. 그냥 해봐.”(128쪽)로 표출된다. 알고 있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GO는 그가 더 깊은 절망의 나락에 빠진 후 다시 한 번 더 힘을 발휘한다.
주인공 ‘나’는 하나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갑자기 떠난 것이다. 이 공포가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강의하는 수업생 중 한 명에게 똑같이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 아이에게 조언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것은 해결하지 못한다. 그 아이 덕분에 전화번호부에서 아버지를 찾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도 어색하기만 하다. 아버지의 변명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씻어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술 취해 그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한 말은 가장 진솔한 감정의 표현이자 조언이다.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소설 속에 그의 여자 친구가 세 명 등장한다. 전 여자 친구. 가장 완벽했던 진저. 진저를 잠시 잊게 만들었던 마조리. 진저를 잃게 된 것은 자신감 결핍 때문이다. 수컷의 욕망도 한 손 거들었지만 마음 속 불안이 믿음을 산산조각내었다. 당연히 차인다. 이때 방황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미친 여자 애 마조리를 만나면서 잠시 잊는 듯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녀의 배신으로 산산조각난다. 목적 없고 삶의 의지조차 없던 그에게 이것은 치명타로 작용한다. 심하게 망가지고 무너진다. 도저히 회생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역시 찰리다. 보들레르다. 소설이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다시 진저를 찾아간다. 그녀가 말한다. “살아갈 의지. 네 두 눈에 있어.”(340쪽) 그가 ‘GO'를 말한 것도 “한 번 해보는 거야.”라는 의지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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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단순히 인생을 정리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다' 라고 <GO>에서는 말한다. 열네 살이던 1985년에 브라질로 이민을 가고 브라질 사람으로 살아온 저자 '이규석' 오늘 저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후기 부분에서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이렇게 느꼈을까. 그냥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소설은 생각을 전달 할 뿐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감정을 말하고 있기에 그러지 않을까 싶다.
<GO>는 첫 장부터 화자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화자가 나 이고 주인공인데 이야기는 단락도 없고 그냥 쭉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루저라는 말을 반복하는 한 남자는 살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한다. 어릴 적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로 인해 삶에 대해 목표와 의미를 잃어버린 남자와 그의 곁에 있으며 그를 응원하고 살아 갈 수 있게 해주는 여자 '진저'의 애기는 고통을 안고 있으나 어느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걷는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있다. '그'는 포기했다. 삶도 그리고 그 안에서 찾는 희망도 말이다. 클럽에서 디제이로 일하면서 간간히 생활을 하고 있던 그에게 '진저'와의 만남은 탈출구 이다. 그녀로 인해 글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도전하고 여기에 그녀의 소개로 학교에서 잠깐 동안 학생들에게 글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글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 유일한 존재였기에 그는 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늘 불안에 살고 있기에 자신이 변해가고 있음에도 안정을 찾지 못함은 안타까웠다. 이 감정은 사람이라면 늘 갖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 결코 혼자서는 설 수가 없다. 친구와 가족 심지어 연인일지라도 우리는 늘 누군가의 응원과 위로가 필요하다. '진저'와의 만남이 어긋나면서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되어지는 그를 바라보니 어떻게 다시 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실패는 철을 단련시킨다는 사실을 배우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삶은 우리에게 상처 주고, 피 흘리게 하며, 우리의 이를 악물게 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그가 학생들에게 맘속으로 간절히 전달하는 독백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한테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루저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와 동시에 본인의 모습도 변해가는 과정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 혼자라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친구'가 존재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순간과 가장 자신을 알아주고 곁에 있어준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절망이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남겨진 친구에게 편지를 썼던 '찰리'는 그에게 글을 쓰라고 한다. 필요한 것을 하라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쓰게 된다. 사랑했던 친구를 보내면서 ..
마지막으로, 제목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인 'GO'이다. 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는 책속의 내용과 다르지가 않다. 나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영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시간은 과거로 되돌리 수 없다. 앞으로 계속 가기에 좌절해도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는 인생을 힘들다고 주저 앉을 수 없지만은 없지 않을까. 그래서, <GO>는 이민자이기에 그리고 사춘기에 겪어야 했던 갈등과 고뇌를 저자는 책를 통해 희망을 놓치지 말고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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