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에 운전하고 가면서 라디오를 켜니, 미술사를 전공한 여성 시인께서 진행자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대담을 나누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더군요 이상하게 솔깃해져서^^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마냥 듣게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임희숙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신간소식에서 작가님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주문 들어갔답니다. 음~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우리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들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이 '정사'라면 거기에 흥미진진한 '야사'까지 곁들여진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 허목의 초상화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으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서 허목님 초상화를 만나면 참 반가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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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을 삶과 죽음으로 해석한 책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태항아리나 태실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많이 신선합니다. 작가의 시선이 새롭고, 읽는 독자들을 상상력의 세계로 이끄는 느낌입니다. 삶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새로운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생각에 제 생각을 덧입히면서 즐겁게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이 가을에 더더욱 읽기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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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던 사람도, 노비로 태어났던 사람도 모두 한사람의 화가였을 뿐이다....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태어났고 죽어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태어남과 사라짐, 부활을 기원하는 마음과 죽음을 초월하려는 의지가 당대 화가들의 예술 행위로 드러났음을, 2부에서는 죽음으로서 우리의 인생이 더 아름답고 살 만하다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삶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쟁여둔 서랍이 있고, 그 기억들은 시시때때로 약처럼 보살펴 준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경험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별개의 인격체가 되는 냉정한 순간이다. 그 결과 생긴 흔적이 태다. 우리나라의 장태 문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모든 왕손의 태실을 만들게 되었다. 국왕이 낳은 아기의 태를 언제 어디에 묻는가에 따라 왕가의 명운이 좌우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렇게 신성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던 왕손의 태항아리와 태지석들이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모두 파헤쳐져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이장된 것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수양대군이 일으킨 정난으로 서른여섯 나이에 죽은 안평대군은 피를 나눈 형제에 의해 태실까지 참혹하게 파헤쳐지고 말았다. 안견에게 청해 그린 무릉도원을 보고 있으면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웠을지 짐작이 간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시시각각 닥쳐오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을 그의 고뇌가 태실과 몽유도원도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작가의 의도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후손들이 망자의 죽음을 맞이하며 덕을 기리고, 다시만날 것을 희망했었음을, 신라왕릉의 껴묻거리를 통해 죽은자가 외롭지 않고 평안하기를 바랬음을 이야기한다........ ...................... ........................ 가을이 접어들 무렵, 경주를 찾았었다. 지난 홍수해로 아쉽게도 석굴암은 관람 금지되어 볼 수 없었다. 일정상 경주박물관에도 가보지 못했다. 한두시간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경주에 가면 신라 긴목 항아리의 토우를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장신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하나하나의 의미를 눈으로, 마음으로 느껴보고 싶다. 가난하고 힘든시기, 정쟁마저도 조상들의 생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그 치열함속에서 우리에게 남긴 수많은 유물들을 감상하며 서랍속 약처럼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예술가는 말보다 눈과 손으로, 작품으로 이야기를 전한다고 한다. 소리나 글로 빠르게 전달 받기보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통해 조상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길을 알려준 고마운 책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왕릉과 고분의 역사 뒤에 숨겨진 예술가들의 의도와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가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