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1879년 12월 21일 ~ 1953년 3월 5일)은 1922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고, 1941년부터 1953년까지 국가평의회 주석)을 지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도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한반도를 양분한 것이나, 6.25동란의 발발과정에 간여하였을 것입니다. 스탈린은 서구를 지향한 공업화와 농업을 강제로 집단화시켜 낙후된 소련의 사회구조를 개조시킴으로써 소련을 강대국으로 끌어올렸지만,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비밀경찰을 동원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공포정치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소련 사회의 구조개혁의 성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전후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지배가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C. 터커가 스탈린을 20세기의 이반 뇌제(雷帝)로 묘사한 것은 25년여에 걸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철권통치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극단적인 공포를 기억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젊은 스탈린>의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1937~1838년 사이에 소련에서는 대략 150만 명이 총살되었는데, 스탈린이 직접 사형선고장에 서명한 것만도 거의 3만9천명에 달했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스탈린의 지인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략 2,000만에서 3,000만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스탈린을 ‘겨룰 자 없는 정치가, 편집증적인 과대망상가, 히틀러를 제외하고는 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참상을 저지른 정신이상의 대가’였다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파국적인 성격은 대체적으로 성격형성기에 문제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서구에서 출간된 스탈린에 관한 수천 권들의 저서 가운데 젊은 시절을 다룬 것은 극히 희소하다고 합니다.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새로 공개된 그루지아의 기록보관소에서는 ‘(스탈린)의 어린 시절, 혁명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 폭력단의 일원이고, 시인이고, 수습 사제이던 시절, 한 여자의 남편이자 혈기방장한 연인의 남자. 또 사생아를 낳게 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저버리는 남자로 살아온 과정에 대해 생생하게 말해줄 새 자료들(11-12쪽)’이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젊은 스탈린>에서 기술할 내용은 스탈린의 성장과정에 대한 진짜 기록을 밝히는데 두었다고 했습니다. 스탈린 숭배나 반스탈린 음모론의 어느 편으로도 기울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기록을 다루려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젊은 스탈린 주변에 모여든 캅카스인 남자들의 폭력성과 부족주의는 라트비아, 폴란드, 유대인 심지어는 러시아인들에 못지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갱들의 전쟁, 부족들 간의 경쟁, 민족학살을 함께 겪고, 동일한 폭력의 문화를 수용하였던 것입니다. 즉 스탈린을 형성한 것은 비참했던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한 것이 기여했다고 보았습니다. 소련을 형성한 것이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입니다. 소련의 성립이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하였음에도, 역설적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찍이 유럽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모순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도하는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가 프로메테우스의 낭만적 환상과 완고한 역사적 유물론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토니 주트 지음, 재평가 195-196쪽, 열린책들, 2014년; http://blog.yes24.com/document/8201367, http://blog.joins.com/yang412/13741266).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보인 행태에서 이들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930년대 말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 공산당 조직가들이 주도한 반파시즘 시위에서 조직가들은 사람들을 내보내 파시스트들에 맞서 싸우게 하고는 자신들은 카페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밖으로 내보내 자신들의 이름으로 죽게 만들고 뒤따르는 이익을 거두는 사람들로 인식하게 되면서 영국사람들은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이해했다는 것입니다(토니 주트와 티머니 스나이더 지음, 20세기를 생각한다 113-114쪽, 열린책들, 2015년; http://blog.yes24.com/document/8114182, http://blog.joins.com/yang412/13704215) 초기의 레닌주의에 매료되었던 지식인들도 1936년 스탈린의 시범재판이나 1939년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을 보고서는 소련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탈린과 레닌의 손에서 왜곡된 마르크스를 구출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이의 연계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러시아혁명은 1905년과 1917년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1905년 굴욕적인 러일전쟁의 패배 이후에 300년 이상 지속된 로마노프왕조의 실정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났는데, 평화적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군대가 무차별적으로 살상하였고, 시위대는 엄청난 규모의 파업으로 맞대응하면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철도노동자들의 파업과 시베리아철도 주변 부대의 부대들이 반기를 들면서 황제는 헌법제정과 의회의 창설을 약속하는 것으로 철도와 군대를 다시 장악하고 혁명을 수습했습니다. 이렇게 구성한 의회도 걸핏하면 해산시키는 등 반동정책이 계속되고,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러시아군이 보여준 무기력함에 더하여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자 1917년 3월 8일 제국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시민봉기가 일어나고 대다수의 수도경비대가 여기에 동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니콜라이 2세 황제가 퇴위를 결정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지만, 권력은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로 넘어갔습니다. 이 소비에트는 페트로그라드 시내와 외곽지역의 공장 및 군부대에서 선출된 2,500명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소비에트는 소련의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6월 16일에는 제1차 전(全)러시아 소비에트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사회혁명당이 최다석을 차지하였고,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순이었습니다. 7월에 케렌스키를 총리로 하는 임시정부가 출범하였지만, 좌익의 탈퇴로 내분에 빠졌고 사회적 혼란은 가중되었습니다. 9월 무렵에는 볼셰비키와 제휴세력인 좌파 사회혁명당원들이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를 제압하고, 10월 24~25일(신력 11. 6~7) 사이에 봉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다음백과, 러시아혁명;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6r0215a). 다시 <젊은 스탈린>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볼세비키혁명의 과정이나 이념적 배경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단순하게 스탈린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도 혁명 이전의 행적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스탈린에게 영향을 미친 캅카스의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보았던지 프롤로그에서는 1907년 6월 26일 지금의 그루지아공화국의 수도인 트빌리시의 중앙광장에서 일어난 은행강도 사건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29살의 스탈린이 주도하였고, 강탈한 돈은 레닌에게 보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카자크, 은행 직원, 무고한 보행자 등 40여명이 사망했고, 스탈린은 뻔뻔한 은행강도, 살인자, 해적, 방화범 등으로 점철된 경력을 쌓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스탈린은 1878년 12월 6일 그루지야의 작은 도시 고리에서 젊은 제화공 베소 주가시빌리와 예카테리나 케케 겔라제 사이에서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스탈린의 두 형은 홍역 등으로 태어나자마자 사망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 베소는 알콜중독에 빠졌습니다. 어렸을 적에 소소라고 불렸던 스탈린이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베소는 편집증에 시달리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이 주교가 되기를 바란 케케는 소소를 성직자의 자녀만 입학할 수 있는 교회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비밀이라고 하네요. 교회학교에서 소소는 공부를 잘하는 합창단 소년인 동시에 길거리의 싸움꾼으로, 반쪽은 옷을 잘 입은 마마보이이며 나머지 반쪽은 부랑아로 이중적인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성과 형편없는 처신, 열정적인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타고난 영리함과 거만함이 교대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매우 침착하고 신중했지만, 화가 나면 잔인해졌고 마구 욕을 하면서 극단으로 치달았다.(107쪽)” 다른 사람보다 잃을 것이 없었고 감정적인 애착대상이 별로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합니다. 그럼에도 전교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인 소소는 그림, 연극, 합창 등 다양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1890년 1월 6일 합창단원들이 교회 밖 행사에 나갔을 때, 통제를 잃은 마차에 소소가 치어 큰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때 베소가 등장해서 소소를 자신이 일하는 구두공장에 도제로 등록시켰습니다. 물론 케케가 후원자들을 동원하여 소소를 다시 교회학교로 돌려놓을 때까지 힘겹게 일하면서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에 헌신한, 스탈린이 직접 노동자로 일한 유일한 경험이라고 합니다. 베소의 납치사건 이후로 소소는 폐렴을 심하게 앓았고, 학교에서도 점점 반항아로 변해갔습니다. 교회학교를 졸업하고 소소는 뛰어난 성적으로 트빌리시의 신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그 무렵 트빌리시는 그루지야 민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로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의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소소는 금지된 사회주의문헌을 읽는 비밀 독서회에 가입하였고, 결국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서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 봄에는 신학교 밖으로 몰래 나가 철도노동자들의 모임에 참석합니다. 낭만적인 시인이었던 스탈린은 ‘반쯤 신비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독실한 광신주의자’가 되어 갔습니다. 이 무렵 형성된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만이 인류를 해방시키고 세계에 행복을 가져다주도록 역사가 정해 놓았다. 인류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회주의를 달성하기까지 엄청난 시련과 고난과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섭리에 따르는 이러한 진보의 핵심은 계급투쟁이다. 마르크스주의가 곧 일반 대중이다. 그들의 해방은 개인의 자유를 위한 촉매제가 된다(148쪽)”라고 설명되었습니다. 결국 소소는 신학교를 떠나게 됩니다.신학교를 떠난 소소는 기상관측소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급진적인 성향의 동료들을 모아 조직적인 행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트빌리시의 헌병대 장교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 등 직업적인 비밀 투사의 길을 밟아 갑니다. 그리고는 파업을 선동하고 시위와 파괴를 주도하면서 경찰과 헌병대의 감시를 받고, 체포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몸을 피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 이어집니다. 때로는 붙잡혀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내 탈출해서 다시 새로운 투쟁을 시작합니다. 1905년 스탈린은 볼셰비키 당대회에 참석할 캅카스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제국의 수도에서 레닌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양쪽 부모가 모두 세습귀족인 레닌은 볼품없이 생겼지만 그의 삶은 마르크스주의 혁명에 대한 광신적인 헌신으로 일관되었습니다. 스탈린은 이때 만난 레닌에 대하여 “‘입만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토록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그의 지성의 힘과 완전한 실용성의 융합이었다.(287쪽)”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이후 스탈린은 레닌에게 경도되어 갔고, 스탈린의 강한 추진력에 매료된 레닌 역시 스탈린을 중시하게 되고 결국에는 후계자로 지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스탈린 역시 모든 활동의 중심에 레닌을 두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 스탈린>을 통해서 저자가 밝히고자한 것은 스탈린의 냉혹한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스탈린의 성장배경에 더하여 러시아제국시절부터 운용해온 비밀경찰들의 은밀한 활동으로 어느 조직이나 배신자가 끼어들 가능성이 있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으면 단호하게 쳐내는 전략을 구사해야만 했던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탈린의 그런 냉혹한 성격은 수없이 등장하는 여성들과의 관계를 맺고 상황이 바뀌면 관심을 두지 않은 데서도 읽혀지는 것 같습니다. |
6·25 한국전쟁 당시 스탈린은 중국의 마오쩌둥이 공산당 정권을 출범시키면서, 전후 미소협력체제인 ‘얄타체제’가 붕괴되자, 중·소간 갈등과 대립이 격화된 상황에서 대중-대미 이중전략을 고안해 한국전쟁 발발 원인을 제공했다. 스탈린은 1950년 6월 27일 유엔이 한국전쟁 개입을 결의한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불참하는 모양새를 갖춰줌으로써, 미국이 한국파병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하고,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게 됐다. 스탈린은 20세기 최고 괴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이상주의 신학생이었으며, 낭만주의적 시를 쓰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다. 또 다른 한편에는 레닌, 부하린, 트로츠키 같은 유능한 정치가를 능가하며, 산업화 계획을 진행했고, 농민을 상대로 전쟁을 치렀으며, 자신을 위협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처단했다. 이 책은 스탈린 연구에 매달려온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가 스탈린의 어린 시절, 혁명가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 폭력단의 일원, 시인, 수습 사제이던 시절, 한 여자의 남편이자 혈기 방장한 연인인 남자, 또 사생아를 낳게 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저버리는 남자로 살아온 과정 등 39년 동안의 삶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상세히 들여다본다. 저자가 ‘젊은’ 스탈린에 대한 이야기 하는 이유는 스탈린의 전반기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극악무도한 후반기 삶과 세계사를 뒤흔든 사건들에 대해 좀 더 깊고 치우침 없이 이해하기 위함이다. 더욱이 우리는 이를 통해 볼셰비키로 대변되는 러시아 사회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볼셰비키당의 주요 인물들인 레닌, 트로츠키, 카메네프 등과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처음에는 스탈린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레닌이 그가 ‘더러운 업무’를 마다하지 않고 두각을 내보이자 점차 그를 인정하고 또 그에게 도움을 받았으며, 마침내 1917년 난관에 부딪친 10월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부관으로 여기게 됐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트로츠키의 경우에도, 스탈린과 처음 만남부터 일생의 라이벌이었던 관계가 거침없이 묘사돼 있다. 무자비하고 독재자인 스탈린의 일대기는 거짓말을 능사로 하는 소비에트식의 ‘전설’로 인해 오랫동안 은폐되어왔다. 그 ‘전설’은 영웅적인 볼셰비키 혁명의 모의자이자 소련의 건국자인 레닌의 충실한 추종자로서 그의 위대성을 과장하고 있다. 전성기에 스탈린은 ‘만능의 천재’, ‘빛나는 태양’, ‘삶의 지주’, ‘위대한 선생이며 친구’로서 찬양을 받았고, 한때는 러시아 정교회의 부주교로부터 공공연히 ‘우리의 아버지’로 불리기까지 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것은 그저 한 사람의 전기만이 아니라 그들 집단의 연대기이며, 소련의 전사이자 강철 날개를 가진 나비로 탈피하기 전 땅속에 있는 벌레, 침묵 속의 유충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p.20)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분량이 무려 700쪽에 이를 만큼 방대한대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가 있어서 누구나 손에 들면 중간에 놓을 수가 없이 술술 읽힌다. |
※ 본 서평은 네이버 역사 카페 부흥(http://cafe.naver.com/booheong)의 서평단원으로써 남긴 글입니다.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볼셰비키당 레닌의 주도하에 사 회주의 국가가 성립된 후 레닌의 후계자가 되어 정적들을 제거하고 소비에트 연방의 철권 독재 정권을 이끈 강철 인간 스탈린 그의 성장과정이 담긴 귀중한 책 <젊은 스탈린>을 읽은 서평, 특히나 그의 성인이 되기 전 일을 간략하게 써볼까 합니다. 저는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벌인 여러 무자비한 행위가 그가 성인이 되기 전에 가정적, 교육적, 사회적으로 경험한 일들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스탈린의 본명은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이며 제정 러시아의 식민 통치를 받는 그루지야의 소도시 고리에서 능력 있는 제화공인 <비사리온 베소 주가시빌리>와 아들을 위해 헌신한 <예카테라니 케케 주가시빌리> 사이에서 1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통칭 <베소>, 어머니는 <케케>로 불렸으며, 스탈린은 <소소>로 불렸지요. 스탈린 위로 두형이 있었으나 모두 스탈린이 태어나기 전에 병사하였고 스탈린이 제대로 성장한 유일한 자식이었습니다. 스탈린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아버지 베소가 능력 있는 제화공이어서 매우 유복하게 자란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베소가 알콜중독에 빠지면서 가계도 기울었고, 생계는 케케가 허드렛일을 하면서 유지되었습니다. 베소의 알콜중독 이후 그와 스탈린의 관계는 <폭력과 증오>의 관계 그뿐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술에 취한 베소로부터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렸던 스탈린의 영유아기는 스탈린 특유의 폭력성, 잔인성을 유발했을 것으로 저는 생각됩니다. 스탈린은 후에 아버지의 실패가 자신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전혀 형성되지 못한 이유로 그 또한 성인이 되어 생긴 여러 연인과 아들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자식에게 헌신적이던 케케는 스탈린이 당시 최고의 직업이던 성직자가 되길 원했고, 결국 여러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열 살의 스탈린을 고리의 성직학교에 입학시키게 됩니다. 성직자가 되길 원했던 어머니 케케의 바람과는 달리, 스탈린은 성직학교를 통해서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제정 러시아의 통치를 받아 그루지야어가 금지된 성직 교육을 받으면서 스탈린은 철저한 제정 러시아에 반감을 지닌 이념 교육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는 후에 스탈린의 성직자 대숙청과 반정부 투쟁의 원천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또한 성직학교에서 배운 러시아어는 그를 완벽한 소련인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하였고요. 그가 성인이 되기 전에 받은 가정 폭력은 그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의 원천이 되었으며 성직 교육은 그를 철저한 무신론자로 만들었으며 러시아의 그루지야인 억압 통치는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 1국가 소련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실패한 노동자가 되어서 그 당시에는 불운했으나 생각해보면 좋은 일이었다는 스탈린의 회고처럼 가정폭력은 그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출세하고 정권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성직자에 대한 그의 반감은 제정 러시아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 그를 테러리스트로 키웠으며 그루지야의 식민 통치는 후에 여러 주변 국가를 침공하여 하나의 공산국가, 강대국 소련을 만들었으니 그의 청소년기 여러 가지 우울한 실패는 그를 역사에 이름을 크게 각인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젊은 스탈린>의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최고의 스탈린 전문가 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엄청난 내공을 지니고 있더군요. <젊은 스탈린>에서 인용한 여러 비밀 기록 보관소 등의 글들을 정리하고 유추하고 종합하여 스탈린이 정권을 잡기 전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일들을 여러 독자들에게 읽기 편하게 소개해 주니 스탈린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에게 최고의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보통의 평전이나 전기라면 그 인물의 전 생애를 다루기 마련이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나 정상에 오른 후 몰락 또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기 마련이다. 하지만 <젊은 스탈린-강철인간의 태동, 운명의 서막>은 말 그대로 젊은 스탈린만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러시아 제국의 변방인 그루지야에서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생이 되었다가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지만 볼셰비키 당의 비밀요원으로써 ‘징발’이라고 불리우는 ‘강도짓’까지 하고, 러시아 혁명 후 장관급인 민족 담당 인민위원을 맡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 후의 삶이 훨씬 유명하지만 이 책에서는 희대의 악마적 독재자가 되는 그의 ‘싹수’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지하활동 도중 동료가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시인 출신 혁명가다운 멘트를 날린다. “어쩌겠어? 가시에 찔리지 않고 장미를 꺽을 수 없잖아? 가을이면 나무에서 잎은 떨어진다. 하지만 봄에는 새 잎이 나오게 되어 있지.” 동료들과의 대화 중 스탈린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제물을 고르고 계획을 세세한 곳까지 치밀하게 준비하여 무자비한 보복을 실행한 다음 잠자리에 드는 것이오. 세상에서 그보다 더 즐거운 건 없지.” 스탈린이 잠시 비엔나에 살 때 히틀러와 티토도 그 도시에 같이 살았다는 일화를 비롯하여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바는 많았다. 물론 독재자를 키운 그 가공할 폭력적 환경에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거인의 몰락>에서도 잘 묘사된데로 제정 러시아가 얼마나 맺고 끊는 데가 없는 체제였는지, 스탈린의 가공할만한 엽색행각을 보면서 여자들이 얼마나 나쁜 남자에게 잘 빠지는지를 새삼스럽게 통감하게 된 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정복자 혹은 전쟁광인 알렉산드로스, 칭기즈칸,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이 모두 변방 출신인 이유는 무엇일까? 란 생각을 다시 들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좀 더 내공이 쌓이면 그 것을 주제로 책을 쓸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