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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yones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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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비 오는 날 작은 앞마당에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불 하나를 여럿이 덮어쓰고 배깔고 누워 만화책 보던 생각이 난다. 키득키득 우리는 웃었고 얇은 이불을 서로 끌어가려고 쌔웠고 싸우다 또 웃었고, 친구 엄마가 부침개를 들여보내기도 했다. 키득거리면서 읽던 만화책들 생각이 난건 이 책을 혼자 읽으면서, 함께 키득거릴 유년이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렸으며 다시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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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비 오는 날 작은 앞마당에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불 하나를 여럿이 덮어쓰고 배깔고 누워 만화책 보던 생각이 난다. 키득키득 우리는 웃었고 얇은 이불을 서로 끌어가려고 쌔웠고 싸우다 또 웃었고, 친구 엄마가 부침개를 들여보내기도 했다. 키득거리면서 읽던 만화책들 생각이 난건 이 책을 혼자 읽으면서, 함께 키득거릴 유년이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렸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라는 노스탤지아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옛날은 가고 추억은 남았다 1930 년대에 그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도박과 밀주, 범죄를 터전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터프한 인간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단편들은 느슨한 연결고리로 엮여 독특한 러니언의 세계관을 이룬다. 꽤 많은 단편들을 싣고 있는데, 모든 소설에서 화자는 동일 인물로 여겨지며 캐릭터 역시 일치한다. 그는 그 가난한 시대에 브로드웨이에서 어떻게든 먹고 사는 방법을 깨친 한 젊은이에 불과하다. 자신의 이야기는 없지만 그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 한명 한명이 곧 자신일 수도 있다.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은 비록 관람하지 않았다 해도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세계 최다 공연 뮤지컬이다. 그 뮤지컬의 원작이 데이먼 러니언이라고 해서 별도로 원작 소설이 장편으로 나왔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데이먼 러니언은 주로 단편소설 만 썼다 장편도 썼는지는 모르겠다 찾아봐야겠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주요 스토리는 이 책에도 실린 두 편의 단편 <세라 브라운 양의 이야기>와 <혈압>을 기반으로 플롯을 따라가고, 이 밖에도 여러 편의 단편에서 극중 캐릭터와 배경 등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단편집을 읽으면 대표작이 있기 마련이고 독자로서도 특별히 더 인상 깊은 작품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 집에서는 개별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동일한 비중으로 재미있었다. 일련의 단편 소설들울 통해 러니언이 구축해낸 가상의 세계 속 인물들의 성격과 묘사 방법 그 자체를 일컫는 말 러니어니스크(Runyonesque)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독특한 문체와 서술 방법이 읽는 재미를 준다. 애써 설명하자면 심각한 상황을 가볍게 묘사하는 재미랄까. 어릴 때 읽던 만화책이 생각난 건 그 때문이었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로 만나면 눈도 못마주칠 무시무시한 범죄자들, 갱단 멤버와 두목, 도박과 사기를 업으로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중 덜 공포스러운 일을 하는 인물들의 직업이 금주법 시행 당시 밀주를 팔거나 경마장에서 말을 경기에 내보내거나 연극 비평을 하는 신문 기자 정도다.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소설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모든 소설들을 다 합치면 전체적인 1920년대 193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와 부르클린 거리의 구석구석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면을 드러내는 세계관이 펼쳐지고, 눈 깜짝 않고 아무렇게나 총을 쏘댈 수 있는 그 거친 인간들의 숨은 순정도 함께 진행된다. 갱단 두목쯤 되는 듯한 멋쟁이 데이브는 자신이 사랑하는 빌리 페리 양이 자기 대신 윌도 윈체스터라는 얼간이 가난뱅이 신문 기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쏴죽이는 대신 깜짝 결혼 파티를 열어주고( 광란의 40번대 구역에 꽃핀 로맨스), 도박으로 먹고 사는 무일푼 피트 새뮤얼스는 백달러 빚을 갚기 위해 자기 시체를 의사에게 팔고 남은 돈으로 사랑하는 쇼걸 오르탕스에게 보석과 선물로 마음을 사고 도박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시체를 제공하기로 한 약속이 다가오자 의사가 칼을 들고 쫓아다니며 몇 배의 돈으로 계약을 취소하자고 제안하지만 통하지 않는다(아주 정직한 사내 a very honorable guy).

“거리의 다른 많은 사내들이 그러하듯 피트 새뮤얼 수가 가장 잘 하는 일이 곧 그의 직업이다 경마장과 클래스 게임과 권투 장은 들락거리며 마권업자 대신 수금을 해서 몇 푼 벌고 여기저기 조금씩 걸고 삐끼 노릇도 하는데( 아주 정직한 사내 중)”

아가씨와 건달들에 영향을 준 <혈압>은 의사를 만나 혈압에 안좋은 일들을 만나지 말라는 충고를 듣고 조용히 살려 했지만 뜻대로 안되고 최고 악명높은 갱단 두목 러스티 찰리를 우연히 만나 하루 종일 코꿰어 돌아다니며 온갖 깡패짓을 보조하다가 밤에 집에까지 따라가게 되는데 거기서 찰리의 진면목을 목격하게 되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부치 아기를 보다>가 가장 따뜻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내용이었는데, 금고털이범인 부치가 결혼하고 애낳고 맘잡고 살려 하지만 동료들이 들쑤셔대서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화자가 알기에 전과 4범의 터프한 금고털이범 부치가 손가락을 우유병에 넣어 온도를 맞춰 우유를 주고 조심조심 케어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이 유독 인상깊다. 또한 아내가 아기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화낼까좌 처음에 거절하는 등의 소박한 소시민으로서의 모습 역시 재미있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려 일이 엉망으로 되어 가지만 또한 아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하는 것까지 짧은 단편이 가진 희극적 힘 뒤에는 뭉클한 감동이 함께 한다.

<브로드웨이 컴플렉스> 역시 짧은 단편에 극적 요소를 충분히 배합한 잘 짜여진 한편의 드라마다. 앰브로즈는 연극 비평 기자고 퍼거스 애플턴은 <네버네버> 연극의 주연배우인데 앰브로즈가 네버네버 혹평을 기사를 싣는 걸 계기로 악연이 시작된다. 이들은 러니언 소설들의 주요 배경이 되는 민디네 레스토랑에서 세실 얼이라는 사내와 엮인다. 세실 얼의 직업은 골든 슬리퍼 나이트클럽 사회자로 다중인격 소유자로 하버드 출신의 엠브로즈는 그에 대해 이런저런 컴플렉스라는 말로 그의 의학적 소견을 설명하며, 그가 읽은 책이나 영화 연극에서 암시를 쉽게 받는다고 부연한다. 원래 성격은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나 주로 다른 사람이 되어 산다 나폴레옹도 되고 일주일 내내 무솔리니로 살기도 하고 조지 버나드 쇼도 되고 흉포한 고릴라가 되어 공격적이 되기도 하지만 세실 얼 자신으로 돌아올 때만큼은 수줍고 조용하다.

“세실은 가끔씩 다른 일을 다른 역을 연기하는 배우인 셈이었다. 다만 세 실은 자기가 연기하는 역의 인생을 진짜로 살려는 살려고 한다는 것이 었다. “(브로드웨이 컴플렉스) 

플로렌트 페이엣이라는 부자 가문 출신의 여배우가 세실 얼과 애플턴 사이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데 촉이 좋은 기자 앰브로즈는 페이엣이 세실 얼의 약점을 이용하고 조정하여 살인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아낸다. 결국 음모가 밝혀지고 해피앤딩으로 끝을 맺는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어두운 뒷골목의 불법이 판치는 이야기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말랑말라한 감정이 불행마저도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끝을 내기에 단편들이 많이 영화화한 듯하다. 데이먼 러니언 원작의 영화를 검색하면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다 옛날 영화이긴 하지만 러니언 시대에 그의 명성과 인기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애매하고 상징적인 순문학의 난해함에 지쳤다면 기분 전환용으로 하나씩 아껴사며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내가 그토록 현대문학 단편집을 모으는 이유이기도 하다.



g******1 2017.10.08. 신고 공감 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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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 러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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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세계문학 단편선" 이라는 시리즈로 옛날 유명 거물 작가들의 단편집을 내고 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나 대실 해밋 같은 극히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선이 출간된 것이 무척 반가운 일이고, 화제도 좀 되는 듯 합니다. 이런 작가들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것은 많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정작 국내에 출간된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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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세계문학 단편선" 이라는 시리즈로 옛날 유명 거물 작가들의 단편집을 내고 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나 대실 해밋 같은 극히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선이 출간된 것이 무척 반가운 일이고, 화제도 좀 되는 듯 합니다. 이런 작가들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것은 많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정작 국내에 출간된 단편집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후련하게 출간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이 시리즈에서 제가 가장 재밌게 읽은 것은, 기대 많았던 윌리엄 포크너 단편집이나 대실 해밋 단편집이 아니라, 다름아닌 데이먼 러니언 단편집이었습니다. 이 단편집을 저는 어떤 것들보다 가장 재밌게 읽었습니다. 


내용은 1920년대 전후의 미국 뉴욕에 사는 날건달, 도박판, 클럽 주변의 잡다한 사람들이 겪는 소동에 대해 다룬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루는 말투가, 계속해서 과장과 헛소리를 주절주절 엮어 가는 농담 말투입니다. 보다보면, 21세기 요즘의 웃기게 쓴 잡지글이나, 풍자와 과장을 섞어서 재밌게 꾸민 컬럼, 블로그글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인 겁니다. 그래서 웃어가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덩치가 크다지만 발이 너무할 정도로 크다. 멋쟁이 데이브 말로는, 피트는 신발 대신 바이올린 케이스를 신는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첼로처럼 아주 큰 바이올린을 넣는 케이스면 또 몰라도, 피트의 발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들어갈 리 없다."


같은 식이란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줄줄이 차 있는데다가, 대부분의 이야기는 또 주제가 그와중에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이야기요, 그러면서도 묘사 켠켠히, 농담 사이에서 자본주의 도시 풍경 뒷골목의 애환을 잡아채는 날카로운 대목들이 살아 있습니다. 말하자면, 더욱더 도시적이고, 더욱더 웃기는데 힘을 기울이는 오. 헨리 소설 분위기가 났습니다.


이야기들은 대체로 한 시절의 뉴욕 브로드웨이 주변을 배경으로 해서,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는 형식이라, 단편 이야기들 사이에 서로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같은 배경이 나오기도 하는 점도 흥미있고 재미있습니다. 정말 그 거리, 그 곳에 그런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매우 흥겹게 읽은 책이고, 웃기게 지나가는 몇몇 묘사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감개무량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책 뒷면에도 적혀 있듯이, 이야기 중에는 유명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소재가 된 단편도 끼어 있습니다. 그리고 책 소개에는 없지만 이 책에 나온 단편 중에는 "Poketful of Miracles"라는 유명한 옛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는 성룡의 "미라클"의 원작이기도 해서 더욱더 친숙하다고 할만합니다.


의외로 "SF소설"이나 "추리소설" 같이 명확히 장르가 정해지는 소설들은 옛날 소설이라도, "이 장르에서는 이게 고전이다"라고 하면 꾸준히 번역이 되고, 재간도 되는데, 데이먼 러니언 소설 처럼, 현실의 이야기를 한가지 장르스럽지 않게 다루는 내용들이면 상당히 재밌어도 철이 지나면 다시 보기 어려운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심각한 고전이 아닌 이상은 상당히 인기를 끈 소설이라고 해도, 화끈하게  장르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스토예프스키급으로 추앙되는 것도 아니면, 어중간해서 잘 안 펴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틀을 깨고 칭송해 줄만큼 훌륭한 대목이 많은 소설이 풍족했다고 생각합니다

g******r 2015.05.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