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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민음사)에 소개된 48권의 책 중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책은
《위대한 개츠비》(F.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북로드) 입니다.
1924년에 쓴 책이니 출간된지 벌써 100년 가까이 된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영화로 제작될 정도의 위대한 작품입니다.
제목에 위대하다고 소개된 개츠비는 사실 의문이 많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큰 저택에 살면서 토요일마다 성대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는
31세의 단정하고 야성적인 남성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오고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소문이 나있지만,
이는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개츠비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가 토요일마다 성대한 파티를 연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시절 사랑하던 여인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개츠비는 작품의 화자인 옆집 사는 닉 캐러웨이를 통해 사랑하던 여인을 만납니다.
가난 때문에 헤어졌던 여인을 다시 만나 새로운 사랑을 꽃 피워갈 무렵,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터집니다.
결국 《위대한 개츠비》는 비극으로 끝이 나고 마는데요.
저는 책을 읽으며 개츠비에게 왜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을까? 의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한 여인을 향한 그의 순애보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되더군요.
아니면 마법에 홀린 듯 첫눈에 개츠비를 사로잡을 아가씨가 나타날지 모른다.
이제껏 흔들림 없이 한 여자만을바라본 지난 5년의 세월을 말끔히 지워버릴
그런 아름다운 아기씨 말이다. (......)
"나라면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고요? 아니에요. 돌이킬 수 있어요."
그따위 말은 믿지 않는다는 듯 그가 소리쳤다.
그는 마치 과거가 손 닿을 거리, 자신의 집 어두운 어딘가에 숨어 있기라도 한 듯
사납게 휘둘러 보았다.
"전과 똑같이 할 작정입니다.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158~160쪽)
저는 책을 읽고 재미있고,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왜 이 책이 100년 가까이 명작으로 전해올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작품해설과 다시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들춰보고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에 서 물질문명이 가장 발달했던 동부 뉴욕,
그중에서도 세습 귀족과 신흥 부자들이 모여 살던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가난한 청년 개츠비가 자신의 이상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무참히 깨지고 마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미국인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정신적으로 공허한 사람들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비록 좌절과 실패가 눈앞에 보이더라도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츠비야말로 위대한 인간이며,
이것이 바로 미국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268쪽)
표면적으로 소설의 줄거리는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진부한 멜로드라마처럼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부와 관련된 탐욕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어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결국 개츠비의 사랑도 탐욕에서 출발했던 셈이다. 그러니 사실 위대했던 것은 개츠비가 아닐 수 있다.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을 가로지르고 있는 '탐욕' 그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 세 사람이 아니라 '돈'이었던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101~104쪽)
저의 책 읽는 수준이 얼마나 낮은 데 머물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이면, 배경을 살피기 보다 그저 읽는데만 집중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책을 읽는 중요한 목적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독사讀思의 글쓰기 by 보보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