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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슐레비츠 (Uri Shulevitz)는 가장 애정하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슐레비츠의 식구는 그가 네 살이 되던 해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둘러싸인 바르샤바를 탈출하여 유럽을 떠돌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 뉴욕으로 이주한 슐레비츠는 비영어권 출신으로 많은 실패 끝에 직접 영어로 쓴 그림책으로 성공한 작가이다. 서야의 미술 역사와 테크닉을 익히고 동양 미술과 서예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동서의 미술을 조합하고 조화시켜서 그림책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요소 덕분에 내가 유리 슐레비츠에 빠져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 한 임금님이 사막을 지나가고 있었다. 혼자 낙타를 타고 머리 위에 조그마한 차양까지 달고 있는 왕 뒤로 호위무사와 대신이 뒤를 따른다. 임금님이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임금님 일행이 거쳐온 사막으로 향하고 있다. 흰 머리카락은 길게 자랐고 머리 가운에는 텅 비었다. 수염은 길게 자랐는데 새까맣다. 옷은 수도자가 있는 것처럼 잿빛이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 샌들을 신고 사막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인가. 임금님은 노인을 보고 어이 하여 머리칼은 허연데 수염은 검은가 묻는다. 머리칼이 수염보다 늙어서 그렇다는 노인의 말이 임금님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노인에게 명령한다. “내 얼굴을 아흔아홉 번 보기 전엔 아무에게도 그 얘길 하지 말라.”
임금님은 궁전으로 돌아가 우두머리 대신에게 노인한테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다. 왜 사람은 수염보다 머리칼이 먼저 하얘지냐고 묻는다.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 우두머리 대신은 노인을 찾아가 동전 아흔아홉 냥을 주고 답을 얻어낸다. 노인이 말한 것을 알게 된 임금님은 자신의 명을 어겼다며 노인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노인은 동전에 있는 임금님 얼굴을 아흔아홉 번 보고 얘기를 했다고 대답한다. 임근님은 노인의 영리함에 감동해서 노인에게 일을 밭긴다. 노인의 힘이 점점 커지자 우두머리 대신은 노인이 임근님의 보물을 훔쳤다며 모함한다. 임금님은 이 말을 듣고 우두머리 대신과 함께 노인의 집에 가서 비밀의 방을 열게 된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비밀의 방은 무엇인고?” 노인이 말했어. “폐하, 소인에게 이 모든 명예와 부를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나오 소인은 그 동안 저 자신을 너무 돌보지 않게 되었사옵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방에 와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소인이, 언젠가 사막에서 폐하와 만났던 흰 머리에 검은 수염을 지닌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를.“
아무것도 없는 방, 스스로를 돌보는 삶. ‘비밀의 방’이 임금님의 총애를 받는 노인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 누구라도 스스로를 돌보는 방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수도승들이 머무는 빈 방이 떠오른다. 빈 방에 들어가야 비로소 온전히 자신을 직시할 수 있으리라. 노인이 참 지혜롭다고 여긴 임금님은 노인에게 말한다. 노인이 영리한 줄만 알았는데 지혜롭기까지 한다는 것을. 임금님은 우두머리 대신을 쫓아 내고, 그 자리에 노인을 앉힌다. 마지막 장면은 홀로 있는 노인의 목에 우두머리 대신이 걸었던 메달 목걸이가 걸려 있다. 노인은 계속 영리하고 지혜로웠을까. 비밀의 방을 날마다 찾았는지 안 찾았는지가 관건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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