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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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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지적 회심의 과정을 보다 솔직한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보편적 은유가 아닌 개인적 은유를 사용한 부분 때문에 페이지마다의 윗부분의 간략한 설명이 없다면 방향을 잡기가 모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루이스의 사상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라면 이해하기가 좀 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학문, 사조, 지식과 지혜에 대한 회의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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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지적 회심의 과정을 보다 솔직한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보편적 은유가 아닌 개인적 은유를 사용한 부분 때문에 페이지마다의 윗부분의 간략한 설명이 없다면

방향을 잡기가 모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루이스의 사상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상태라면 이해하기가 좀 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학문, 사조, 지식과 지혜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 과정을 거쳐 이른, 자신이 경험적으로 얻은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루이스는 늘 어느 특정시대에 잠시 부각되어 부흥되었다가 사그라드는 사조들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루이스의 시각에 동의하는 바, 시대정신의 소굴을 지나는 대목과  

협곡을 따라 남쪽으로, 북쪽으로 지나는 대목이 시원스럽고 흥미로웠습니다. 

 

요즘은 복음주의도 구 복음주의와 신 복음주의가 나뉘나 보더군요.  

복음주의를 비판하는 개혁주의니 혹은 자유주의니 근본주의니 하는 것도 이또한 지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지한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에 불과하게 느껴지는군요.

장로교와 감리교가 서로 비난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듯이 말입니다.

물론 내부적 자성의 목소리는 늘 있어야 하고 성결과 본질을 끊임없이 지향해야 하겠지요. 

 

"미덕"의 동행은 루이스의 독특한 회심의 과정을 고려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혜"조차 헛점을 가진 인물로 묘사하는데 "미덕"은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끝까지 동행하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아마도 <인간폐지>에 나타난 도덕률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 <순전한 기독교>도입부에도 나와 있듯이

루이스 논거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루이스 개인의 출발선이자 동행자인 까닭일 수 있겠지요. 

또한 미덕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편적 미덕을 품는 기독교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동안 모호하게 생각되었던 루이스의 구원론에 대한 일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마지막 전투의 에메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이교도나 불신자, 혹은 하나님에 대해 소개받지 못해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지만

순전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미덕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

이 부분은 루이스 개인의 추측의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에 루이스가 늘 이렇게 대답했듯이 말입니다.

 

저는 우리와 함께 살다가 인격을 획득한 동물들이 나중에 회복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잊지마세요. 이 모두가 제 추측일 뿐입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당신의 벗, 루이스>p.194

 

내가 간청했는데도 분명한 표징을 주지 않았다.

나는 추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잘못 추측했다고 내게 벌을 내렸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p.294 

 

어쨌든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구원의 길을 수차례 예수님 한 길 밖에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해야겠습니다.

 

p.218부터 설명되는 "역사"의 이야기입니다.
p.220 인간들이 다시 이교도가 될 때마다,
지주님이 그들에게 다시 그림을 보내시고 달콤한 갈망을 불러일으켜 마더 커크에게로 인도하시거든.
오래전 진짜 이교도들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말일세. 참으로 다른 길은 없네.  

 

p.224 파구스의 문제점은 그곳에 완벽한 이교도, 다시말해 '전형'적인 이교도가 너무 드물다는 걸세.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그 그림들, 즉 문맹의 상태이자 끝없는 갈망은 다른 욕망들과 너무나 쉽사리 혼동되는 탓에,
적어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본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네.  

이 갈망에서 출발해 집에 이르는 길은 하나뿐이네. 천가지 다른 길은 광야로 이끌 뿐이지.
/ 목자도 반쪽이고 이교도도 반쪽짜리에 불과하네.
서로가 없이는 어느 쪽도 온전하지 않고, 지주님의 아드님이 이 땅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치료받을 수 없었어.  

 

p.226 "하지만 위험한 것뿐만이 아니라 출발점이 잘못되었다고 하셨잖아요.
목자 민족은 시작을 제대로 했다고 하셨고요."
"맞네. 하지만 출생이나 본성상 이교도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네.
아예 출발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디서건 출발하는 게 낫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교도일세. 그들의 첫 걸음은 언제나 그림에서 생겨난 갈망이라네.
그 갈망에는 천 가지 잘못된 오솔길이 숨겨져 있지만 한 가지 올바른 길도 있지.
스토아 철학, 금욕주의, 엄숙주의, 사실주의, 고전주의 등 어떤 구실로건 그 갈망을 깎아내리는 이들은 본인이 알든 모르든  

원수의 편이라네.   

 

초반부의 반복되는 갈색 여자의 등장과 그에 대한 환멸은 루이스가 오랜세월 독신으로 지냈던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성에 대한 첫단추가 잘못끼워져 상상을 동원한 비틀어진 경험의 반복으로 인해 죄의식으로 연결되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이와의 결혼이후 <네가지 사랑>에서는 이를 극복하고 아름답게 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반부의 조금은 거칠거칠한 초년병의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저로서는 비웃을 입장은 아니지만 루이스의 풋풋함에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삼십대, 젊은 루이스의 혈기가 느껴지는 매우 직설적인 비판입니다.

3권 시대정신의 소굴을 지나 / 8.앵무병 이라는 챕터에 나오는 대목인데

그곳의 지하 감옥에서 간수와 달인 앵무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여기선 비웃었다기 보다 통쾌하게 웃었지요.

"좋아. 한 가지만 더 확인하자. 2 더하기 2는 4라는 믿음에 근거한 논증에는 어떻게 대답하나?"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당신이 수학자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루이스의 모든 저작의 모티프가 되는 단서들이 보석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회심이후 전 생애에 걸쳐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무르익어 간 것으로 보입니다.

 

 

노골적인 이름 비틀기도 재미있습니다. 지기스문트, 마르크소마니, 무솔리미니, 스와스티시, 강고마니 등. p.148 

(강고마니는 무슨 뜻인지 몰라 역자분께 질문하여 Gangomanni : plain gangsters of any kind 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후반부에 대거 등장하는 시들이 인상적으로, 죽 이끌어 온 설명들을 보다 선명하게 해 줍니다. 

시인 루이스의 면모도 만끽해 보시면 좋을 듯 하네요.

 

아래는 개인적으로 밑줄을 그은 부분입니다. 

 

무지한 자일수록 자신의 교구와 작은 예배당이 문명과 철학이 활약하며 힘써 도달한 수준의 정점이라고 굳게 확신한다.

버나드 쇼 p.55
 
그것의 명백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눈치없는 자의 큰 실수였다. p.62
 
거기 사는 사람들은 한 주에 한 번이나 하루에 한 번씩 견해를 내놓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맘몬씨가 당장 밥줄을 끊어 버리니까요.
하지만 여기 시골길에서야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을 머리에 담고 하루종일, 그다음까지도 종일 걸어갈 수 있어요.
마음을 정할 때까지 아무 말 안해도 돼요.
"하지만 답을 너무나 알고 싶어서,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면요, 그런데 그 증거가 안나타난다면 어떻게 하나요?"
"그럼 죽어야지요. 그럼 끝나겠지요." p.89
잡히다
아침이 되자 상황이 돌변했다. 눈을 뜸과 동시에 소름끼치는 공포가 밀려왔다.
절벽 위 푸른 하늘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고, 뒤쪽의 바위산이 퇴로를 막아 그는 절벽에 갇힌 신세였다.
앞에 놓인 길은 계속 가라고 명령하는 듯 했다. 하룻밤 새 지주-아니, 그를 무슨 이름으로 부르건-가 돌아왔고
세상을 빈틈없이 가득 채웠다. 그의 눈과 손과 음성이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 가운데 깃들어 지켜보고,
가야할 곳을 가리키고, 해야 할 일을 명령하고 있었다.
존이 앉았던 그 장소에서부터 세상 끝까지 있는 모든 것 가운데,
존이 세상 끝을 뚫고 나간다면 그분은 그곳에도 있을 터였다.
만물은 참으로 하나였다.
지혜 선생이 꿈꿨던 것보다 더 온전한 의미에서 하나였고,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잡혔어!" 존은 다시 잡혀 노예 신세가 되었다.
평생을 조심조심, 지주의 호의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결코 혼자 있지 못하고 자기 영혼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신세.
사생활도 없고, "여긴 내 자리야. 여기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구석이 온 우주에 단 하나도 없는
신세였다.  p.211
내 모든 나날을 향한
당신의 피할 수 없는 눈길.
아라비아 하늘의 반짝이는 태양처럼
무시무시하고 비껴갈 줄 모릅니다.
답답한 천막 안에는 창백한 여행자들이
죽은 듯 꼼짝 않고 웅크려 있지만
그 주위로 환히, 길게 드리운 정오의 놀라운 태양이
바위들을 빛으로 두들깁니다.
오, 일곱 번 숨 쉴 때 한 번이라도
북쪽 지방의 시원한 공기를 호흡하고
옛 이교도 시절의 변화 무쌍한 하늘,
성城 모양의 구름뿐이던 그 하늘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당신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분노 가운데
모든 것을 붙잡으셨습니다. 이리저리
사방으로 날개를 부딪치지만 언제나 당신의 새장 속.
퍼덕거려 보지만 나가지는 못합니다. p.212
하지만 어르신,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지주님이 제게 실제로 원하시는 것이 제게 갈망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완전히 다를까봐 두렵습니다. p.232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와 만물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니까 p.234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존이 물었다.
"선택하라. 뛰어들지, 던져질지. 눈을 감을지, 눈이 가려질지. 항복할지 버틸지."
"할 수 있다면 앞쪽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네 주인이 아니다. 나는 너의 하인이다.
죽음의 치료법은 죽는 것. 죽는 행위로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를 돌려 받는다. 마더 커크에게 내려가라"p.244
근사한 다이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머리부터 들어갔다. p.248
 
"...어떤 의미에선 우리가 이미 개울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겁니다.
산의 언어로 그것을 죽음이라 하지요.
죽음은 너무 질겨서 한입에 다 먹을 수가 없어요. 앞으로 생각보다 그 개울을 자주 만나게 될 거예요.  
그때마다 그 개울을 영원히 건넜다고 생각할 거고요.

하지만 언젠가는 진짜 그럴 날이 올 겁니다." p.253

s******7 2014.0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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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귀향 BY C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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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cs 루이스는 사실 신학자보다 소설가, 교수로 더 유명한데, 그 이름을 잘 몰라도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잘 없을 듯하다. 영화로도 제작된 나니아 연대기.. 유명한 판타지 소설을 집필한것처럼 어떻게 보면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굉장히 뛰어나신 분인데, 순례자의 귀향, 이 작품은 신학자로서 기독교의 여정을 나타낸 소설이다. 제목 그대로, 순례자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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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cs 루이스는 사실 신학자보다 소설가, 교수로 더 유명한데, 그 이름을 잘 몰라도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잘 없을 듯하다.

 

영화로도 제작된 나니아 연대기.. 유명한 판타지 소설을 집필한것처럼 어떻게 보면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굉장히 뛰어나신 분인데, 순례자의 귀향, 이 작품은 신학자로서 기독교의 여정을 나타낸 소설이다.

 

제목 그대로, 순례자가 어떻게 진리를 발견해 가는지, 목적 있는 여행을 떠나는 한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 하는데 그 청년이 자신에게 잠시동안 안식을 주는 것 같은 존재가 결국에는 거짓이었고, 영원하지 않았고, 달콤한 말을 하고 도와주는 것 같았던 존재가 실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을 여러 언어유희로 능청스럽게 묘사하는데 꽤 재밌게 읽엇다.

 

‘존’이라는 청년은 어떤 섬을 찾아 떠나는데, 이 섬의 그의 목적지이고, 실은 ‘진리’를 섬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섬에 대해서는 아는 단서가 몇 개뿐이라 마더 커크-결국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의 도움을 거부하였다가 중간에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로 비유된 낭만주의, 현실주의, 등등의 신앙인의 여정에 걸림돌이 될 만한 사상이나 타 종교나 이론을 사람에 비유해가면서 재미있게 표현해 냈다.

 

아.. 역시 천재. 라는 감탄도 나오고 진짜 쉽게 써서 쓱~ 읽히지만.. 그래도 나는 cS 루이스의 연설이 더 좋다. 산문이 더 좋다.

 

순례자의 귀향보다 기적, 고통의 문제, 순전한 기독교, 영광의 무게 등등 그의 연설문을 엮어 놓은 책이 내 취향에는 훨씬 더 맞았다.

 

하지만 분명히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 없으므로 cs 루이스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읽어보셨음 좋겠다.^^

 

v********e 2016.1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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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로잡는 '갈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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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이야기는 한 사람의 꿈으로 시작한다. ‘나’는 꿈속에서 한 소년을 본다. 그의 이름은 ‘존’이고 ‘퓨리타니아’라는 이름의 땅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이 세상이 ‘지주’의 소유이며, 그의 위임을 받은 ‘집사’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어느 날 부모와 함께 집사의 성을 방문한 존은, 들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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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이야기는 한 사람의 꿈으로 시작한다. ‘나’는 꿈속에서 한 소년을 본다. 그의 이름은 ‘존’이고 ‘퓨리타니아’라는 이름의 땅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이 세상이 ‘지주’의 소유이며, 그의 위임을 받은 ‘집사’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어느 날 부모와 함께 집사의 성을 방문한 존은, 들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인자하고 친절한 집사를 만나지만, 대화 도중 무섭게 생긴 가면을 쓴 집사는 지주에 대해 그가 얼마나 ‘친절하고 무서운’ 분인지를 설명한 뒤, 존이 앞으로 지켜야 할 수많은 규칙들의 목록이 적힌 카드를 준다. 만약 그 규칙들을 어긴다면, 지주가 그를 온갖 전갈과 뱀이 가득한 검은 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규칙들과 지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로워하던 존은, 어느 날 숲 속에서 ‘무한한 달콤함’을 경험하게 해 주는 ‘섬’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그 환상은 존의 온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았고, 존은 다시 한 번 그것을 경험하고자 지주의 규칙 따위는 내버린 채 세상의 서쪽에 있다는 섬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

     루이스가 쓴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작품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중세에는 단테의 ‘신곡’이 있었고, 근대에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있다면, 현대에는 단연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 있다는 제목을 붙였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잠시 이 책이야말로 ‘천로역정’과 좀 더 유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다. 실제로 내용의 구성과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쪽이 훨씬 비슷하니까.

​

     그러나 전에 썼던 서평을 수정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주제 자체를 두고 보면 확실히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 ‘신곡’이나 ‘천로역정’의 뒤를 잇는다고 보는 게 맞다. 일단 이 책 ‘순례자의 귀향’은 어린 시절 받았던 엄격한 청교도식 신앙교육을 떠나 유물론자에서 불가지론자로, 다시 유신론자로 되돌아온 저자의 신앙적 귀향을 토대로 쓰인 자전적 소설이다. 실제로 루이스는 작품 속 존처럼 당대의 매력적인 사상에 심취해 끝까지 밀어붙여 본 뒤, 그 한계를 깨닫고 다시 길을 떠난다. (물론 루이스는 이후 덧붙인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이 완전히 개인적인 경험만을 쓴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내용들 쓰려고 했다고 말한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책이 다양한 철학과 사조들의 주장과 한계를 설명하는, 일종의 교과서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천로역정은 구원, 혹은 천국에 이르기 위한 신앙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행 중 존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은 다양한 사상들을 의인화 한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은 문학의 탈을 쓴(?) (기독교적) 철학개론서 같다는 느낌을 준다.

​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결말부다. 섬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장애물은 거대한 협곡을 통과한 존은, 의미심장하게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쪽으로의 여정을(이제까지 서쪽으로만 걸어왔었다) 시작하는데, 이 때 그의 눈에 보였던 풍경들은 얼마 전 그가 지나왔던 곳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온전한 것을 마주한 후 사람의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오래된 진리를 참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물론 그에 앞서 등장하는 이야기도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가기엔 아깝다.

​

     루이스의 작품들 중 상당히 초기에 쓰인 이 책은, 그래서 그런지 이제까지 읽었던 루이스의 작품들에 비해 세련된 맛이 좀 덜하다.(저자의 말을 보니 루이스 자신도 살짝 불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역자도 후기에 언급했듯 밀당 대신 시종일관 강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랄까. 그 때문인지 굳이 페이지 상단에 면주(面註)를 넣지 않았어도 각 사건들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충분히 보일 정도니까. 내용의 분명한 이해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확실히 루이스 자신도 인정했듯 알레고리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

 

 

     이 책은 ‘갈망’의 이야기다. 예고 없이, 어느 순간 루이스의 인생에 찾아온 ‘갈망’에 대한 오랜 추적과 연구가 이 우화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건 단지 루이스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갈망의 근원을 찾기 위해 서쪽의 섬으로 가는 길의 어딘가에서 그냥 머무르곤 하지만.) 이후 나오는 루이스의 다양한 책들에 담겨 있는 개념들의 프로토타입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

 

 

p*********n 2015.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순례자의 귀향 - C.S.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 C.S. 루이스" 내용보기
C. S. 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을 다 보았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가이고 또한 기독교에 대한 깊은 철학적 바탕도 있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고른 책이었다. 마치 천로역정을 보는 듯 한 기독교를 향한 철학적 여정을 소설로 풀어낸 책이다. 철학 사조와 기독교를 의인화해서 여정 가운데 만나는 형태로 풀어냈고, 각 페이지엔 그에 대한 설명도 있다.. 그런데...어렵다..ㅠㅠ
"순례자의 귀향 - C.S. 루이스" 내용보기

C. S. 루이스의 <순례자의 귀향>을 다 보았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가이고 

또한 기독교에 대한 깊은 철학적 바탕도 있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고른 책이었다. 

마치 천로역정을 보는 듯 한 

기독교를 향한 철학적 여정을 소설로 풀어낸 책이다. 

철학 사조와 기독교를 의인화해서 여정 가운데 만나는 형태로 풀어냈고, 

각 페이지엔 그에 대한 설명도 있다.. 그런데...


어렵다..ㅠㅠ 

철학적 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철학 지식이 얕은 나에게는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철학 공부가 훨씬 많이 필요할것 같다. 

나의 짧은 지식을 이렇게 크게 느끼게 했던 책이 있었던가....


그나마 위로가 되는것은 책 뒤의 저자의 글에도

책이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역자도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ㅎㅎ 

나만 어려운건 아니구나..ㅎㅎ


10년 후에 다시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해진다..

YES마니아 : 로얄 m*****7 2018.0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