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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고 어떤 시인은 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눈물 많은 아이였다. 하도 잘 울어서 울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눈물 많은 게 부끄러운 행위 인가 같은 생각도 했더랬다. 툭하면 눈물샘이 터져버렸으니까. 남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우는 게 싫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이를 악물고 참으며 속앓이를 했다. 때로 억지로 참다가 늦은 밤 숨죽여 울기도 했다. 울고 나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흐르는 건 감정이 살아있다는 증거인데, 억지로 참으려 하니 오히려 독이 된 거였다. 물론 지금은 어린 시절만큼 툭하면 눈물방울을 흘려대지는 않는다. 나이 들수록 예전이었다면 눈물 흘렸을 일도 차츰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시인의 말처럼 나 또한 눈물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눈물이라는 건 감정의 솔직함, 감정의 깊이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눈물 앞에 유독 강하면서 약한 게 남자들이다. 여자의 눈물에 약하고 자신의 눈물에는 강하다. 여자가 울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부끄러워한다. 누구에게나 감동적으로 다가가고 누구나 눈물을 찔끔 흘리는 장면을 보게 될 때, 나는 차라리 울라고 말한다. 억지로 눈물을 참아 눈가가 빨개지는 남자들이 있는가 하면 미리 차단을 하는 건지 아무런 감정 기복도 보이지 않고 실실대며 조소하는 남자들도 간혹 보았다. 그런 남자들을 볼 때면 참 정 없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눈물이라는 건 성별에 따라 나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갖고 태어난 감정의 산물 아니던가. 감성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눈물과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나쁘게 보면 감정과잉의 분출, 해소 정도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메마른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유독 걸핏하면 눈가가 빨개지는 기간이다. 눈물은 슬플 때만 흐르는 거라 알아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불만이 쌓여있을 때, 뭐든 짜증이 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비친다. 눈물이라는 건 그만큼 인간 감정의 총합체이기도 해서라 생각한다. 슬프고 아플 때 웃기 어려운 것과 달리 눈물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든 가장 가까이에 상주해있다. 그래서 나는 우는 사람을 두고 부끄러운 행위라 느껴본 적이 없다. 남자들이 울어도 아프고 슬프니까 우는 거겠지 싶어 안쓰러울 뿐이다. 감정에 정말 솔직한 사람만이 타자 앞에서 눈물 흘릴 수 있는 법이다. 오히려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본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눈물이야말로 원초적 감정의 발로이니까. 그래서 '울지 않는 아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눈물 흘리는 횟수가 줄어드는데, 자각과 인식, 참을성의 융합 때문이다. 아이일 때는 인내도 없고 원초적 감정 표출이 무한대인 시기이기에 눈물로 의사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울지 않는 아이라니, 제목이 오히려 슬프게 다가오는 건 그런 이유였다. 울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울지도 못하는 아이처럼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꽤 읽었다. 취향에 부합할 때도 있고 반대일 때도 있었지만 그녀의 담백한 감성은 꽤 나와 잘 맞다. 『울지 않는 아이』는 초기 작품 활동 당시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그 시절, 그녀가 누구를 만났고 어떠한 생각을 했으며 어떤 곳을 거닐었는지와 같은 일상과 가치관 등이 함축된 짧은 글 일색이다. 사소하고 담백한 감정 상태를 짧은 2~3페이지에 담아내어 그날그날의 읽기 같은 느낌이다. 안다. 그녀가 말하는 건 단순한 '눈물' 유무로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눈물이란 성장의 척도 이전에 가장 내밀한 인간 감정의 표출이다.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성장의 단계인지, 얼마만큼 감정에 솔직한 사람인지가 더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을. 한때는 마음이 울적할 때 엉엉 울어버리고 훌훌 털었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눈물이 메말라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건지 그도 아니면 삶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예전만큼 눈물 흘리는 시간이 줄었고 그에 따라 감성적 코드도 주춤한다는 거다. 단지 눈물 때문은 아니겠지만, 정말 그러하다면 차라리 난 눈물 많은 사람이 낫다고 본다. 누구를 위해 흘려줄 눈물은커녕 나를 위해 흘릴 눈물도 점점 소진해가는 기분은, 썩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예쁜 책이다. 내용의 진중함은 차치하고 한 사람의 지나온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은 다 예쁘다. 사소하고 단편적인 생각의 흐름을 통해 다양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공존을 두루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사고 앞에서는 공감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나름의 존중을 배울 수 있다. 한 사람의 지나온 궤적을 두고 가치를 매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설을 통해 그녀의 삶이 투과되기도 하지만 리얼한 삶의 냄새를 볼 수 있는 건 이런 에세이를 통해서이니까. 가끔 빽빽한 활자에 지쳐 눈과 머리도 쉼이 필요할 때, 잠깐씩 펼쳐보기 괜찮을 것 같다. 에쿠니의 팬이라면 참 좋아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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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대충.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그렇게 쓰인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 졌다. 에쿠니 가오리의 [우는 어른]은 읽었지만 그 책과 짝이 되는 [울지 않는 아이]는 읽지 못했다. 이번에야 찬찬히 읽어본다. 작가의 단편 소설과 에세이. 비슷한 느낌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이 에세이에는 특히 작가의 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 어색해 하는 글을 보면서 나도 그런데 하는 공감을 하게 된다. 어려워하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글을 보면서 미용실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볼트와 너트를 몰랐다는 글을 읽으면서 진짜? 하면서 의외다 하고 또 놀라게 된다. 울집에는 아빠가 건축 관련 일을 해서인지 그런 현장에서 쓰이는 것들이 공구박스 안에 가득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몰랐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음이었다. 또한 남자 아이들이 읽는 것 같은 책을 자신은 나중에야 읽었다고 하니 일본에서는 그때 당시에는 남자책 여자책이 따로 나뉘어졌었나 하는 의문을 가진다. 작가가 읽지 않았다는 그 책들을 나는 다 초등학교 때 전집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읽어서 즐거웠으면 된거지 뭐.
이 책에는 작가의 리뷰도 있다. 자신이 다른 작품을 읽고 느낀 점들을 간략히 적어 놓은 글들인데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리뷰라고 적고 있는 글들이 얼마나 단순하고 일차원적인지 다시 한번 느끼고 살짝 자괴감도 가지지만 뭐 그녀는 작가이고 나는 독자인 것을 생각한다면 그런 것으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늘 읽는 것을 좋아하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리뷰란 내가 읽은 것을 기록하겠다는 목적을 가질뿐 책이 어떻다 하는 평을 할 자격도 없으며 작가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니 그에 대한 이야기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잊어가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용도로 리뷰를 적는 것이다.
우는 어른와 울지 않는 아이. 에쿠니 가오리는 아마도 두 부류에 모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녀는 우는 아이였으며 울지 않는 어른일 수도 있겠다. 자신이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넣어서 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을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놓은 글들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본다는 것은 비록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그 인생에 내가 기여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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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가 미세먼지에 덮여 시야는 온통 희끄무레 답답하기만 하다. 언제부터였지? 꽤 오래된 듯한데... 아무튼 나는 가을다운 가을을 단 하루도 누려보지 못한 사람처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불만을 누구에겐가 속 시원히 토로할 수도 없으니 애면글면 속만 끓이고 있다. 투명하게 맑은 가을 하늘을 보았던 게 마치 몇십 년은 지난 듯하다.
날씨에 대한 불만은 독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답답하고 끈적끈적한 내용의 소설이나 오랜 시간 몰입을 요하는 철학이나 경제학 서적은 일단 제외. 가볍고, 상쾌하고, 쉽게 이해되는, 그렇다고 너무 유치하지도 않은 그런 책에 눈길이 간다. 이 시기에 나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책으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수필집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울지 않는 아이>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자평 속에 책은 막힘 없이 쭉쭉 읽혔다.
"내게도 당나귀가 한 마리 있다면 좋겠다. 당나귀와 뒤뜰과 무화과나무와, 산책을 위한 길과 쉴 수 있는 언덕, 그리고 자그마하고 시원한 샘. 그러면 소설 따위 쓰지 않고 '무한하고 평화로우며 덧없는' 해 질 녘의 세계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나는 선한 것을 좋아한다." (p.30)
그녀의 팬은 국내에도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왠지 에쿠니 가오리의 팬은 날씨에 따라 변동성이 크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예컨대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는 날이 한동안 지속된다거나 장맛비가 한 달 내내 그치지 않고 내린다면 사람들은 다들 '아, 에쿠니 가오리가 생각나는군' 하고 말할 것만 같다. 그런 다음 사무실에서건 집에서건 외출을 삼가한 채 한동안 틀어 박혀 그녀의 책만 읽을 듯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날씨마저 우울하여 마음이 평소보다 백 그램쯤 무거워지면 나도 모르게 에쿠니 가오리의 가볍고 생기발랄한 문체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에 대한 열렬한 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문득 그녀를 생각해 내는 걸 보면 그녀에게는 나도 미처 알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뭐랄까, 그녀의 글에는 복어맑은탕을 한 그릇 쭈욱 들이켰을 때의 개운함이 있다. 입 안에 감도는 텁텁한 느낌이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을성이 영 없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편한 방향으로 흐른다. 책을 읽느니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나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어린애였다. 비눗방울 놀이 말고는 그림을 그리고 학종이 접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흐물흐물. 개어놓은 이불 위에 엎드려 그저 뭐라고 주절주절거리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놀이를 나와 동생은 그렇게 불렀다." (p.64)
나는 지금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과 에세이를 합쳐 고작 서너 권을 읽엇을 뿐이다. 그런 내가 작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하는 것은 조금 건방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리뷰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글에서는 좀 어떠랴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녀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초창기에 썼던 8년 치의 에세이를 모았으니 만큼 이 책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쓴 글이 대부분이다.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p.146)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멍하니 빨려들 듯 읽고 있노라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모름지기 자신이 겪었던 특별한 경험을 아주 특별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라기보다 평범한 일을 평범하지 않게, 적어도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자면 우리가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에서의 느낌을 잘 감지하고 그것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갈무리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책에서 읽는 타인의 감정은 곧잘 공감하면서도 평상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맹추도 그런 맹추가 없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 한 권을 다 읽었더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뿌옇던 대기도 조금 밝아진 느낌이다.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 책등이 각이 졌는지 둥그스름한지, 글자의 간격과 활자의 종류, 종이의 색감, 냄새, 감촉, 서점 책꽂이에 아무리 책이 많이 꽂혀 있어도 내 손에 딱 맞춘 것처럼 감기는 책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고, 그런 책들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책이 지닌 '기척' 같은 것." (p.212)
정말 그럴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만 날씨와 독서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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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종일 우울하다. 툭하고 터져 나오면 좋겠지만, 눈물도 마음대로 흐르지 못한다. 울어버리면 진실이 될까봐, 울어버리면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까봐, 꾹 참아야만 할 것 같다. 부모의 마음... 그 부모의 마음을 글로 혹은 그림으로 혹은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 아픈 그 마음을 나는... 그 어떤 것으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하다. 조금이라도 아픈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울지 않는 아이’란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서늘하다. 슬픈 내용이나, 울음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없는데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 서러운 마음을 글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내 이런 마음처럼 작가들도 그럴까?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쓰는가, 하고 다그쳐 물으면 어떻게든 그곳에 내 발로 가보고 싶어서,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좀 더 복잡하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그곳에 가보는 행위 바로 그것이다. (200) 작가는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이를 저 파란 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곳, 추위와 죽음의 공포 속에 내 던져진 아이들의 아픔을... 글로 쓸 수 있을까?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엉뚱한 사건으로 꽃 같은 아이들을 잃게 되면 생각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고, 또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겠노라 머리를 굴리는 것인지... 존재 자체가 아름다운 책이 있다. 그림이나 문장은 물론 여백까지도 아름다운 책. (117)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아름다울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 위로가 될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아름다운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수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좋고, 아름다운 문체의 사뿐거리는 책이 아니어도 좋다.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책이 그들에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게 된다.
너무 많은 눈물을 봤다.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펼치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넘쳐나면 좋겠지만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아픔을 준 것 같아 마음 안이 서걱거린다. 오늘은... 쉽게 리뷰가 써지지 않는 날... 그냥 좋은 글귀 몇 개 메모해 본다.
읽고 싶어 사놓고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잔뜩 쌓여 있고, 전에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책도 잔뜩 이다.(중략) 그럼에도 책꽂이를 한차례 죽 훑어보고는 한숨을 쉬며 읽고 싶은 책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골치 아픈 것은 책을 읽고 싶지 않은 것 자체가 아니다.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들고 만 것이다. (68)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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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너를 생각했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속으로 너에게 자꾸만 편지를 쓰고 있더라.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집이야. 8년 동안의 글들을 1996년에 모은 것이니,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 늦게 배달된 편지 같은 느낌도 든다. 기억나? 우리가 장난처럼 놀이처럼 자꾸만 되내었던 영화 제목 <냉정과 열정 사이>. 아마도 에쿠니 가오리가 그 영화의 원작자라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 책에 흥분을 할 것 같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첫 장부터 불륜을 고백하는 작가 때문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어. "한 사람을 만나 사랑했다, 그 사실이 전부이고 그것은 아주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니까, 그 사람에게 가정이 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요? 적어도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18)라고 하더라. 씩씩하게 말하는데 왜 이리 안스러운지. 이 대목에서 우리가 마주 앉았던 어느 카페가 생각났어. 오래 만나던 그와 헤어진 후, 그와 나눠낀 반지가 네 손에서 사라진 후, 너는 그 빈손가락을 자꾸만 만지작 거렸지. 다친 손가락의 피를 멈추게 하려고 힘 주어 꾹 누르는 듯이, 자꾸만 그 빈 자리를 눌러대던 너. 사랑은 여전히 아프다.
에쿠니 가오리는 여동생을 아주 좋아해. 둘도 없는 친구 같은 동생과 쿵짝이 아주 잘 맞아. 함께 디즈니랜드에 가서 "신 난다고 신 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하는 그녀의 천진한 모습 위로, 우리의 추억이 겹쳐지기도 했어. 아무 말 없이 아이스링크를 몇 시간이고 바라만 보고 있던 일, 분수 안 항아리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던 일(동전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쩌나 어쩌나 얼마나 떨렸던지), 폐장시간이 지난 것도 모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 길게 늘어서서 인사를 하는 언니들 앞으로 총총 뛰어나오며 부끄러워 했던 일까지, 우리 추억도 한 편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어.
에세이를 좀처럼 읽지 않고, 에세이를 읽을 때 메모를 하는 일이 별로 없는 내가 이 책에 제법 줄을 많이 그었어. 내가 밑줄을 친 문장들은 이래.
그 중에서도 너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고 싶은 대목은 이 부분이야.
이 아름다운 문장이 눈부시면서도 조금 슬퍼지는 이유는 뭘까. 삶의 환희 속에서도 우리는 눈물을 흘렸고, 이젠 눈물 속에서도 삶의 환희를 느낄 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아야 했던 그 시절을 이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우리도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먹으며 새로운 사랑 얘기를 하자. 우리는 참 지칠 줄 모른다, 하며 신 나게 웃자.
에쿠니 가오리의 일기장 같은 이 책을 너에게 주고 싶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시간도 흐른다. 엉뚱하고, 게으른 듯 열정적이고,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잘 빼앗기고, 혼자서도 잘 놀 것 같은 그녀를, 너도 금방 좋아하게 될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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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제목과는 다른(??) 느낌의 책이다. 작가 본인은 8년간 쓴 에세이라고 '작가의 후기'에 말했지만, 아주아주 광범위한 에세이랄까~?! 꼭..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에쿠니짱 버전으로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딱히 장르를 정하기 어려운.. 그런 위화감이 있었다.
에쿠니만큼.. 소설과 에세이에서의 목소리가 같은 작가가 또 있을까.. 많은 작가를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에쿠니는.. 읽을 때마다 새삼 깜짝 놀랄 만큼 소설 속의 말투와 에세이 속의 말투가 같다. 그래서 가~끔은.. 소설 속 인물이.. 실제 에쿠니 그녀가 아니었을까~는 의심(??)을 나혼자 해보기도 한다.ㅋ 1996년까지 일본에서 쓰여졌던 글들이 2013년에 한국으로 넘어와 읽었음에도, 그 글들에는 시간의 차이도, 거리상의 차이도, 또 공간적인 차이도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뭔가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게하는 에쿠니의 담담한 말투가 한몫했으리라.. 거기에 좋은 책을 알아보는 좋은 번역자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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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일주일쯤 전에 남자 친구와 꼬치 커틀릿을 먹으며 그런 얘기를 했어요. 독신인 그 친구는 결혼한 여자와 연애한 적은 한 번도 없고, 결혼하게 되면 아내가 아닌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일도 절대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는 '요컨대 의지의 문제'라고 했어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겁이 나서 절대로 누군가의 아내가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결혼 후 몇 년 동안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한 번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남편의 의지라면 아내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남편이 자신의 강한 의지 때문에 날마다 집에 돌아오는 것이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면 매 순간 불안해서 어떻게 견디겠어요. 불안해서, 너무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겠죠. 매 순간 불안해하면서 몇십 년을 같이 산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다들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연인이라면 적어도 그 사람이 놀러 왔을 때, '내가 보고 싶었나 보다' 하고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반가워서 껴안을 수 있잖아요.
p.62 이때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아무리 약속을 했어도 그렇지, 한밤중에 자는 사람을 깨워 떡을 굽게 한 적은 없다. 깨우면 일어나준다, 떡을 구워준다, 만약 집에 사둔 떡이 없으면 편의점까지 뛰어가서 사 올 거라는 믿음. 그리고 물론 그 믿음은 진심으로 나눈 약속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내가, "한밤중에 깨워도 언제든 떡을 구워줄 거지" 하고 말할 때, 동생은 내가 그러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만약 그러면 동생은 반드시 구워주리란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신뢰감은 인생을 참 즐겁고 살기 편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동생이 취직한 후로 나는 툭하면 '지금 떡이 먹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p.76 책을 마무리하면서 노무라 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혹은 부모를 대신하는 분이 아이들에게 직접 읽어준다면, 어떤 이야기도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어른이 유념해야 할 것은 부모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지 잔인한 표현 그 자체가 아닙니다.
p.94 모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움찔 놀랐다.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세와 동작 하나하나가 얼마나 아름답고 정확한지 모두들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남자도 어린아이들도. 그때, 아까 그 여자아이를 보고는 또 한 번 놀랐다. 춤추는 표정이 얼마나 요염한지. 턱을 바짝 치켜들고 가슴을 쫙 펴고, 도전적인 눈길과 동작으로. 우와 대단하다, 대단해. 나는 흥분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렇다. 손과 발의 움직임, 힘찬 허리. 그리고 물러서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자신과 대치하는 자세. 다다닷다, 다다닷다. 나도 이제는 정신없이 스텝을 밟는다. 내가 생각해도 허접스러운 발동작, 턴을 할 때는 허둥지둥 두 스텝이나 박자를 놓쳐가면서.
p.146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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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화,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가 이번에는 작가의 맨얼굴과도 같은 에세이 두 권을 들고 독자들 곁을 찾았다. <울지 않는 아이>는 에쿠니 가오리가 작품 활동 초기에 쓴 8년 치 에세이를 모은 것이며, <우는 어른>은 <울지 않는 아이>를 발표하고 나서 5년 동안 쓴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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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줄 알았다. 허나 시간이 흘러 신체는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의 마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나의 기분이 우선이고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막무가내 행동을 하는 사람들... 이런 어른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나 혼자의 기분일까? 육체는 성인인데 정신은 여전히 어린이인 사람들... 떼쓰고 울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어린이와 달리 어른은 울고 싶어도 참고 점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무뎌져 간다. 이런 것이 꼭 좋은 것일까? 한 번씩 너무나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너무나 예쁜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울지 않는 아이' 그녀는 왜 울지 않는 아이였는지 궁금하다.
'울지 않는 아이'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간부터 8 년간의 에세이를 모은 작품이다. 잘 울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울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렸는지... 우리 역시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우는 것이 왜 그리 낯설게 느껴지며 점차 울지 않게 되었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서로의 성장 과정은 달라도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처음에 나온 회전목마... 유달리 무서움을 많이 타는 탓에 제대로 놀이기구를 타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나마 마음 편하게 타는 것 중의 하나가 회전목마다. 에쿠니 역시 부모님이 태워주는 회전목마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느끼는 그 기분... 부모님에서 사랑하는 남자로 바뀐 시간에서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써 느끼게 되는 고독감, 안도감, 그리고 홀가분함... 이런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지금 나도 한번씩 이런 시간이 너무나 그립다.
우리 집은 4남매로 나는 바로 밑 여동생과 두 살 터울이라 다른 형제들보다 잘 지낸다. 지금도 보고 싶으면 연락을 해 한번씩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에쿠니는 여동생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며 지낸다. 서로의 잠을 깨워 부탁하고 들어주어야 하는 일이 있을 정도로 애틋했던 자매... 그런 여동생이 취직을 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녀와의 시간은 새벽 시간대로 변해 있다. 에쿠니씨와 여동생의 모습이 나와 내 동생의 모습이 연달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열심히 읽는 편이고 책을 많이 갖고 싶은 욕심도 있다. 욕심이 있다 보니 사 놓고 아직 읽지도 못한 책이 꽤 되는 편인데 에쿠니씨는 작가라 책을 항상 옆에 끼고 살거란 생각과는 달리 책이 읽지 싫을 때가 있다고 한다. 습관처럼 책은 항상 가지고 다녀야 마음이 편한 그녀는 이럴 때 이탈리아 민화집, 일본 옛 이야기 백선, 그림 동화집 같은 옛 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야기가 짧은 책을 읽는다고 한다. 나 역시도 책이 읽히지 않을 때는 예전에 열심히 읽었던 순정 만화를 보거나 간단하면서도 술술 잘 읽히는 그림이 들어간 책이나 동화책을 찾아서 읽기에 그녀의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대부분 커피숍을 찾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하거나 모임에서 식사를 한 다음이다. 허나 혼자서 어디든 가고 싶은데 마땅하게 갈 곳이 없을 때 아지트처럼 예쁜 커피숍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커피의 향과 맛, 커피숍의 분위기가 내 것이 되는 시간... 이 시간을 사랑하고 자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왠지 한편으로 커피 값이 싸지 않기에 한편으로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에쿠니씨는 혼자서 찾는 찻집의 시간이 너무나 좋다고 한다. 여행도 혼자하는 여행이 좋다며 자신의 생활과 무관한 낯선 장소가 주는 온전히 혼자란 존재의 고독감, 안도함, 정당함이 편안함이 어떤 것인지 나 역시도 혼자하는 여행이 좋기에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울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설프고 울고 싶은 어른의 마음이 느껴진다. 두 권의 에세이를 읽으며 에쿠니 가오리의 모습이, 느낌이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온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써내려간 이야기는 왠지 그녀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날 설레게 했다.
겨울이라 앞으로 날씨는 더 추워질 것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줄 책을 읽으며 맛있는 차 한 잔을 마시며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으면 딱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날 딱 어울리는 두 권의 에세이 '울지 않는 아이'와 '우는 어른'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 즐거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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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읽는 내내 행복한 마음이 드는 에세이를 만났다.
2.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정말이지 울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혼란스러운 와중에 내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은 책이 절실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됐다. 장르도 어떤 것이 좋을 지 감을 잡을 수 없어 감성적이고 아주 슬픈 소설이 좋을까, 아니면 에세이? 에세이라면 어떤 에세이지? 에세이도 정말 다양한 종류의 에세이가 있고, 나의 상황과 맞지 않는 책은 안읽느니 만도 못한데 그중 최고봉이 에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가 없었다. 아싸리 <총, 균, 쇠> 같은 책을 집어들까도 했지만 그건 역시 좀...... 그러던 중에 우연히 눈에 딱 들어온 책이 바로 <울지 않는 아이>였다.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바로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라는 표지의 문구도 마음에 와닿았다. 물론 나는 울지 않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우는 어른이 된 건 맞으니까. 그리고 당시의 마음 상태가 동한 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
3.
'에쿠니 가오리'의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된 <도쿄 타워>가 기대에 너무도 못 미치는 책이었기 때문에 사실 다음에 에쿠니 여사의 책을 읽게 될 날은 언제가 될 지 기약이 없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접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 횡제야! 100% 내 취향의 글들로 가득한 에세이였다. 근데 나 스스로도 이건 무조건 내 취향의 에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은 내리기 힘들다.
4.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를 작가가 아닌, 물론 작가이기도 하지만 작가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그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일상 생활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엮은 에세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거기에다 작가의 어떤 생각, 살아가는 방식, 삶의 태도, 거창한 것은 아니고 작은 사소한 것들에서 공감되는 무엇인가가 발견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데 바로 이 책이 그랬다. 그렇다고 단숨에 읽어버리진 않았다. 이런 에세이의 장점은 호흡이 짧고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그때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 책에 언급되는 책은 웬만하면 일단 한 번씩은 검색해보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검색도 해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먹듯이 천천히 읽었다. 아껴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워서 읽는 순간 그대로를 그냥 즐겼던 것 같다.
5.
에쿠니 여사 특유의, 에쿠니 여사만이 가진 힘이 느껴지는 문체는 앞서 읽었던 <도쿄 타워>에서도 스토리는 내 타입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작품은 나와 맞는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이나마 기대하게 만든 요소였다. 그 기쁨을 바로 이 작품에서 맛보았으니! 이 여사님은 에세이 쪽이 나랑 좀 맞나 보오......
'밤, 늘 가는 장소로 산책을 갔다. 늘 가는 장소란, 벚나무가 죽 늘어서 있는 길쭉한 공원이라고 할까 산책로라고 할까, 그런 곳이다. 늦은 시간에 가면 사람이 없어 기분 좋은 장소다. 눅눅한 흙과 벚나무 이파리들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그야말로 벚 이파리 찰떡 냄새다. 나는 코를 발름거리며 냄새를 맡고, 펜스에 걸터앉아 담배를 두 개비 피웠다. 올려다보니, 쭉 뻗어 나온 가지와 빽빽한 이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짙고 옅은 먹색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에쿠니 여사의 문장은 보고 있노라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지만 적당할 만큼 풍요로운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지나친 묘사로 사람을 지치게 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문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미흡한 여타 문학 책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수수한 매력이 있다.
6.
문장만 아름다워서는 내가 이렇게 좋아라 할 수도 없었겠지. 책에 나온 여사님의 인생 자체가 참 좋았다. 긴자 거리를 좋아하고, 여동생을 특히나 너무 사랑하고, 때때로 불쑥 떠나는 것을 좋아하고, 오이와케 양갱이라면 껌뻑 죽고, 욕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이런 소소한 모습들 만으로 나는 에쿠니 여사가 아주 좋아졌다. 그녀가 생각하는 방식 또한 좋다.
7. 보통 책과는 다른 넓은 여백, 문장과 문장 사이, 240페이지 가량 되는 많지 않은 분량. 아마 책을 처음 펼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조금은 당황스럽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책에는 여백이 상당하다. 줄 간격도 보통 책보다 넓은데도 여백을 아주 심하게 주었으니 출판사의 상술이 아닐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에는 이 여백이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마음에 드는 부분은 사진을 찍어두는데 여백 때문에 편리한 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겉표지를 벗기면 어둡고 굉장히 차분하지만 어딘가 위안이 되는 남색 하드 커버에 작고 정갈하게 일본어로 쓰여있는 글씨(아마도 '울지 않는 아이'를 일본어로 쓴 것이겠죠.)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8.
책은 언제 어떤 마음 상태에서 보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도 그런 점이 약간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우울할 때 읽어도 좋지만, 행복할 때 읽어도 여전히 좋다는 것이고, 나는 더 좋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어떤 이유에선가 우울했을 때고, 남은 절반 가량을 읽을 때는 무언가 우울하게 하던 일이 해결되어 아주 기쁜 마음 상태에 있을 때였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완전 더 반해버렸다는 거. 9. <우는 어른>도 무조건 볼 생각이다. 에쿠니 여사의 다른 소설 책도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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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좋아하기때문에 소설인 줄 알고 구입했는데 에세이라서 조금 실망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녀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좋았다. 어린시절 이야기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엿볼 수 있었고 많은 책을 접해 보지 않은 나에게 여러 작가들의 책을 소개 받는 기분도 들었다. 야마다 에이미, 프랑수아즈 사강, 아고타 크리스토프, 밀란 쿤데라 등. 그래서 사고 싶은 책 목록이 좀 늘어났다.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한다. 그리고 물론 그와 똑같은 정도로 증오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증오다. -72p 한참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딱 나의 마음이였던 것 같다. 이렇게 정의 내려주니 왠지 뒤늦게 위로 받는 기분이다. 도망치지 않는다. 세상에 구원 따위는 없다고 쓰지만, 그래도 절망은 선택하지 않는다. -122p 에쿠니 가오리가 존 치버라는 작가의 매력을 표현한건데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린 시절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모든 것이 -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하늘에서 내려온다.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아이들 위로 그저 내려온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136p 어린 시절이 순수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일까..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146p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이었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211p 책을 고를 때의 감은 참 신기하다.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 책등이 각이 졌는지 둥그스름한지, 글자의 간격과 활자의 종류, 종이의 색감, 냄새, 감촉. 서점 책꽂이에 아무리 책이 많이 꽂혀 있어도 내 손과 기분에 딱 맞춘 것처럼 감기는 책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고, 그런 책들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책이 지닌 '기척' 같은 것. -212p 아직은 책과 친하지 않아 서점은 어지러운 공간이다. 금방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순간이 부럽다. 나도 빨리 그 기척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가사의하게도 세상에는 아주 소수지만 사람을 배신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사람들이 있다.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리를 지닌 사람들이. 그리고 물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216p 내일 또 보자. 얼마나 행복한 말인가. 내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 -237p 에쿠니 가오리가 자기전 동생과 나누는 인사라고 한다. 잘자로 끝내기엔 아쉬운 감을 꽉 채워주는 것 같다. 오늘은 동생에게 이렇게 인사해야겠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포근하다. 우는 어른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