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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작품을 진작부터 읽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나온 '잡동사니'를 읽었는데 얼른 그녀가 그려내는 여성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소설은 두 여성 화자를 중심으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그녀들의 이름은 쇼코와 미우미(이 이름 보다는 미미로 더 많이 불린다.) 쇼코는 45살, 미우미는 15살이다. 이렇게 30년의 격차가 있지만 그녀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왠지 비슷하다.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마치 그녀들은 자기가 들어 갈 껍질을 잃어버린 듯이 군다.
소설 내내 그들은 애타게 비로소 안심하고 깃들 수 있는 진정한 '집'(이건 소설에 그대로 나오는 표현이기도 하다.)을 찾는다. 그 '집'은 소설에서 주로 '남자'로 표현된다. 쇼코에게는 남편 '하라'가 그 집이고 미우미에겐 '와타루'가 그 집이다. 그렇게 그녀들의 '집찾기'는 사랑이란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래서인지 그 사랑이 얼른 내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쇼코의 남편 하라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남편 하라는 그리 사랑을 받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아내 쇼코를 내버려두고 하나도 아니고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그러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여성 편력 또한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쇼코는 그런 남편을 정말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그의 한 마디에 기뻐하고 그의 손길 하나에도 이루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젓는 것이다.
어이. 고작 그 한 마디로 이 사람은 내 피부에, 마음에 심지어 내장 속까지 파고든다. (p. 72)
우리 나라로 치자면 쇼코의 남편은 막장 드라마에서 아내의 복수를 받아 마땅한 남자지만 쇼코의 하라에 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크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남편이 바람피고 있다는 걸,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여러 명과 바람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남편 하라 역시 굳이 그걸 숨기지 않는다. 아니, 어떤 때는 자신이 바람피는 상대와 함께 있는 자리에 쇼코를 불러내기도 한다. 쇼코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없다. 그야말로 최악의 남자인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주위에 이런 여성이 있다면 말리느라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면 '뭐 이런 어리석은 게 다 있냐'며 쏟아지는 비난 역시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하라는 여성들의 중심이다. 그는 거의 하렘을 소유한 아랍의 왕처럼 자유롭게 여러 여자들을 거쳐다니고 그런 하라를 여자들은 바람같은 존재라며 더욱 좋아한다. 일본 여성들은 어리석은 자들의 우주란 말인가? 나중엔 또 다른 주인공 미우미까지 그의 주위를 돌게된다. 30년의 나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쇼코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아무런 장애가 못된다. '헐~' 에쿠니 가오리는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니 진작부터 그녀의 작품세계를 알아왔다면 좋았을 걸 하는 말을 한 것이가. 그랬다면 지금 내게는 그저 어리석게만 보이는 그녀들의 모습이 조금은 이해될지도 모르니까...
물론 그렇다고 에쿠니 가오리가 이 여성들에게 투영시킨 그 마음을 아예 모르겠다는 건 아니다. 여성들이 이토록, 비록 그 대상은 그만한 애정을 받을 값어치가 조금도 없지만, 남자에게 매달리는 이유는 맨 앞에서도 말했듯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집을 원하기 때문이다. 즉, 그녀들의 삶이 중력을 갖게되길 원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대지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도록. 그들의 집착은 바로 그것에 대한 집착과 같다.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의 전개를 통하여 이를 뚜렷이 드러낸다. 무엇보다 소설의 시작이 그렇다. 소설의 시작은 어느 휴양지의 리조트이다. 쇼코는 남편없이 엄마랑 단 둘이 거기에 놀러와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미우미와 그녀의 아버지를 만난다. 쇼코는 미우미의 아버지와 관계를 가지지만 그저 찰라의 경험으로만 여긴다. 스스로 '관통'이라는 표현을 쓴다. 미우미의 아버지 역시 '원 나잇 스탠드'할 대상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그 만남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쇼코는 미우미를 처음 보자 그녀의 아름다운 젊음에 시선을 빼앗겼다. 나중에 그녀는 미우미가 그토록 매혹적이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
"지금 확실하게 저기에 있는 저 아이가 1년 후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구나, 지금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존재구나 생각하니 묘한 생각이 들고, 마치 환상이나 유령이나 우주인 따위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었는지도 몰라."(p. 67)
그녀가 그렇게 시선을 빼앗겼던 이유는 그것이 찰라로 사라져버릴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리조트에서 쇼코는 모든 찰라적인 것에 둘러싸여 있었다. 찰라의 정사, 찰라의 아름다움. 거기다 리조트라는 공간 자체도.(리조트 마저도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오로지 일시적으로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에쿠니 가오리가 소설의 첫 부분을 리조트로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영원한 지속은 불가능한 밤 하늘에 흩어지는 불꽃들처럼 순간적인 것들로만 가득한 우주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거기서 쇼코는 불안해한다. 몸은 느긋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어딘가 물 위에 떠 있는 부표처럼 헛되이 떠도는 것 같다. 그녀가 고백한 '관통'이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착'을 바란다. 리조트가 아닌 '집'이야 말로 그녀가 꿈꾸는 진짜 우주인 것이다. 리조트에서 마지막 날, 쇼코는 남편에게 전화한다. 그 때서야 그녀는 비로소 관통이 아닌 정착의 느낌을 갖는다. 재미있게도 에쿠니 가오리는 그녀의 그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숙제를 제대로 끝내고, 칭찬이 듣고 싶어 희희낙락하며 새 학기에 등교하는 아이처럼 (p. 79)
그 숙제란 남편의 소중함이다. 남편이야 말로 자신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 리조트에서 그녀는 그걸 깨달았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온 그녀는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더 없이 그를 사랑한다. 진실되게 말하자면 매달린다. 또 하나의 주인공, 리조트에서 만나게 되는 미우미도 그렇다. 그녀는 아예 미국에서 살다가 건너 온 아이이다. 쇼코보다 더욱 아웃사이더적 존재. 더구나 그녀의 부모는 지금 이혼중이다. 아빠란 사람은 원 나잇 스탠드할 여성들을 물색하고 있도 자신의 엄마 역시 새로 시작된 연애에 빠져있다. 미우미 역시 쇼코만큼이나 흔들리는 부표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미우미 역시 쇼코만큼이나 매달리길 원한다. 무언가 자신의 삶에 찾아와 머무를 수 있도록 적절한 무게를 가져다 주길 원한다. 미우미 역시 쇼코처럼 그걸 남자에게서 찾는다. 처음엔 와타루, 그리고 다음엔 쇼코의 남편 하라다. 그렇게 쇼코와 미우미 모두는 자신이 언제 바람처럼 날아갈 지 몰라서 매달리려는 존재들이다. 자기 존재가 가진 가벼움이 너무도 불안해서 타인의 등에 업힘으로써 그것을 씻으려는 자들이다. 소설은 내내 그런 그녀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미우미가 주인공이 되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쇼코의 어머니, 기리코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와타루의 집을 찾아간다. 그렇게 '집'이라는 공간이 소설엔 정말 많이 등장한다. 쇼코의 집도 미우미의 집도 모두 나온다. 그녀들의 열망이 사실 사랑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삶의 중력을 가지는 것임을 에쿠니 가오리는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열망들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나 역시도 지구에 매달리려는 욕망으로 일상이라는 바퀴를 쉴 새없이 굴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취하는 방법론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 앞서도 말했지만, 난 그녀를 비판했다. 눈치빠르신 분들은 여기서 뭔가를 감지하셨을 것이다. 난 지금 과거형을 썼다. 이것은 지금은 그것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난 이걸 두 번째 읽었을 때 불현듯 깨달았다. 무엇보다 그토록 반복된 집의 상황묘사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건 바로 왜 에쿠니 가오리가 하필이면 그런 남자를 그녀들 우주의 항성으로 가져왔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다. 어떤 소설들은 표현으로 드러난 부분이 아닌 그 아래 은밀히 감춰져 있는 속내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가 바로 그렇다. 드러난 말이 아니라 감싸고 있는 분위기로써 짐작해야 하는 것이다.
l'enveloppe = 주위를 둘러싸는 것.
인상파 시대의 화가며 비평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말이다. 이 마은 모티프를 둘러싼 대기에 미치는 빛의 효과를 의미한다. (...)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아무 문제 없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새롭게 이해되어 버리는 순간.
(p. 65)
이로써 왜 쇼코의 직업이 번역가이고 왜 소설에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지, 그리고 미우미의 바람은 또 영화 번역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안정되게 만들고 싶다는 열망의 표현이다. 번역은 그야말로 의미를 제 손으로 획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 번역의 이야기와 직업을 통해 우리 스스로 이 소설에 은밀하게 드리워진 에쿠니 가오리의 진심을 독자가 해독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해독하면 어떻게 되는가?
보이는 것과는 완전 반대의 의미가 개시(開示)된다.
매달리는 것의 불가능성. 그녀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집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의 확인. 그럼으로 매달리면 매달릴 수록 당사자만 불행해질 뿐이라는 사실. 그런 것들이 우수수 눈 앞에 떨어지는 것이다. 증거? 그것은 그토록 많이 나오는 집에 대한 에쿠니 가오리의 묘사만 봐도 충분하다. '집'은 앞서도 말했듯 그녀들이 정말 열망하는 것의 상징이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집을 묘사할 때 단 한 번도 그녀들이 열망하는 안정감, 지속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례로, 쇼코의 어머니, 기리코의 집, 쇼코의 집 그리고 미우미의 집 모두 일련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어지럽혀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일흔을 넘긴 기리코의 집은 거의 치우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아마도 에쿠니 가오리가 집을 정말 그녀들이 열망하는 그 상징으로 쓰고자 했다면 그런 식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지럽혀져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공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소설 속에 모든 문제들 역시 집에서 일어난다. 기리코의 집에서는 전등이 꺼지고 쇼코의 집에서는 욕조 마개의 체인이 끊어진다. 갈등들은 언제나 집에서 폭발한다. 때문에 쇼코는 집에서 조차 하라의 반응에 예민하게 신경쓴다. 그토록 바라는 집이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묘사에서 집은 한 마디로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결국 리조트와 집은 모두 불안을 주는 존재로써 그리 다르지 않다.
이 모든 배반의 묘사는 무얼 뜻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집에 대해 열망하고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스스로를 가두게 되고 불행하게 할 뿐이라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왜 하라와 같은 존재를 가져왔는지도 알게된다.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그녀들의 열망이 사실은 자학에 불과한 부질없는 것임을 에둘러 알리기 위함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에쿠니 가오리가 '잡동사니'를 통해 궁극적으로 들려주고픈 진심이다.
이렇게 소설 '잡동사니'는 보여지는 것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 다른 소설이다. 우리가 표면에만 집착할 경우 우리는 에쿠니 가오리가 진짜 전하고 싶은 것과는 전혀 반대의 것을 취할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어쩌면 이 작품이야 말로 오해받기 쉽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므로 주의깊게 읽을 것이 요구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위에 인용한 쇼코가 ' l'enveloppe '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갑자기 새롭게 이해될 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소설의 이러한 스타일 자체가 또한 에쿠니 가오리의 진심을 여지없이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드러낸 것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늘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매달리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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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별점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나는 사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까닭에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서평을 쓸 생각은 도통 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어떤 식으로 서평을 쓸까, 어떤 구절을 인용할까 궁리하기보다는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이 책에 대한 서평 대부분을 훑어 보았나 봅니다. 클릭을 해대느라 어깨가 다 아플 지경으로 말이지요. 사실 서평의 내용보다 내가 더 궁금해 했던 것은 별점이었습니다. 다들 3개 내지는 4개의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더군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나의 예감이 적중했던 것에 대한 묘한 흥분이 컴퓨터 모니터 위에 한동안 떠돌았거든요. 다른 책들과는 달리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잡동사니>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서평에 드러난 본심과 별점에 주어진 점수가 사뭇 달랐기에 독자 개개인의 본심과는 별개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 이 소설 <잡동사니>의 문체 또한 맑고 투명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다른 작가가 이 작품을 썼더라면 아마도 삼류 로맨스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소설의 내용만 보자면 위험하고도 아슬아슬한, 관점에 따라서는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현실에서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격정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독자들의 서평을 쭈욱 읽어본 바로는 정말 그렇게 읽으셨던 독자분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은퇴를 선언한 임모 드라마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본방사수'를 고집하던 시청자가 의외로 많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잡동사니>도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읽어냈던 듯합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하게 그려내고 있는지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욕을 하면서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차마 책을 덮을 수 없었나 봅니다.
책의 내용이 얼마나 외설적이기에 내가 이런 말을 할까 궁금해 하실 분들이 혹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윤리적 정서로 본다면 '일탈적 사랑'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말입니다. 예컨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미우미는 열다섯 살의 소녀입니다. 그럼에도 미우미는 중년의 남성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습니다. 돈을 원해서도 아니었고, 강압에 의한 추행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순전히 미우미 본인의 의사였지요.
나는 이 책에서 스토리 전개보다는 오히려 작가의 배경 설명에 주의해서 읽었습니다. 제목의 '잡동사니'는 사람이 아닌, 물건을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10대 소녀 미우미와 40대 여성 슈코의 상반된 감성을 번갈아가며 보여줌으로써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남편과 사별하여 혼자 살고 있는 75세의 슈코의 어머니 기리코와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는 미우미의 엄마, 그리고 미우미 아빠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와타루의 엄마 사야카에 대하여 작가는 스토리보다는 오히려 배경, 즉 그들이 소유한 물건의 설명에 집중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부유한 기리코의 집에는 남편과 함께 살던 과거에 구입한 고급 가구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고, 남편과 이혼하고 자유롭게 연애를 하는 미우미의 엄마는 사귀는 남자와의 관계가 좋을 때는 집안의 물건을 잘 정리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내팽개치고, 남편과 사별한 사야카는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삽니다. 반면에 남편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 슈코는 어떤 물건이든 완벽하게 정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것이다' 정의할 수는 없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사물에 투영된 열정의 강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사랑만 남은 기리코에게 물건은 정리되지 않는 어떤 것일 테지만 지금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슈코에게는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으며.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우미에게 물건에 대한 소유나 집착은 전혀 필요치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 인생은 퍼펙트해." 엄마는 말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인생이란 게 있을까. 모든 인생은 일종의 완벽이며, 나는 그것을 정사情事로부터 배웠다." (p.10)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 우리가 소유했던 것은 정작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잡동사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 함께 소유했던 물건들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나이가 어렸을 때 사랑은 단순한 환상이며 언젠가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합니다. 미우미가 슈코의 남편을 유혹했던 것은 그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뿐 결코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지요.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독차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정사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독차지하고 싶다면, 원치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남편의 여자 친구들이라든지......" (p.27)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만남을 방해하는 일부일처제는 어찌 보면 윤리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잡동사니>를 읽으며 독자들이 간과했던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 스스로에게 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나이와 신분에 걸맞지 않는 두 남녀의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 슈코의 말처럼 너무도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를 배제한 채 윤리적 잣대로만 이 소설을 읽는다면 임모 작가의 막장 드라마와 하나도 다를 게 없겠지요.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연애 관계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애인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 시간과 육체, 거짓 없는 말, 그리고 호의와 경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그 다섯 가지를 받고 만족하지 않는 남성은 없다." (p.160~p.161)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국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하나하나의 사랑은 모두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그러므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각각의 사랑은 다른 어느 것과도 같지 않은 개별적이고도 독자적인 사랑이지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요. 다른 누군가와 비슷한 삶을 살려고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완전히 똑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다 다르기에 우리의 삶은 완벽하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쿠니 가오리는 결국 삶의 일부분으로서의 사랑도 각각 다 다른 것이기에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일이 떠오르자 어쩐지 무서워진다. 슈코 씨는 냉정하고 온화하며, 아줌마 말투의 사야카 씨와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같은 말을 했다. 두고두고 간직해두는 것. 두 사람에게 그것은 아마도 중요한 일이리라." (p.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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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이다지도 거부감 들 수 있는 상황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표현해낼 수 있는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좋아한다. 그녀의 단아하면서도 고요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의 문체. 그러나 그 문체가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들은, 특히나 이번 책에서의 이야기는 더더욱 평범하거나 안정적인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말 어떨땐 작가의 결혼 생활이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를 보고, 실제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바보스럽다고는 하지만, 에쿠니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 작품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 그녀의 이야기 같아 염려스러울때가 많다. 아니야, 난 괜찮아. 그냥 이야기일뿐이야. 이런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바람'이라는 자체를 몹시 경멸하기에, '바람'을 미화하는 글 자체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 소재만으로도 괴로울 것 같았는데, 이 바보 같은 여주인공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서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지언정, 또 심하게 이기적인 남자주인공에 대한 증오같은 것도 그다지 크게 솟구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재주로 그런 거부감을 없애버린건지. 내가 에쿠니 가오리에게 단단히 뭔가가 씌인건지.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쇼코는 부자인 엄마와 함께 9박 10일의 여정으로 동남아의 고급 휴양지에 와 있다. 거기에서 눈이 부실, 반짝반짝할 젊음을 가진 열 대여섯살 정도의 소녀 미미를 보게 되었다. 이국땅인지라 일본인들이 드물었고, 쇼코 모녀 일행과 미미 부녀 일행은 서로에게 눈에 띄는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해도 쇼코의 미미 훔쳐보기는 좀 심할 정도.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간다.
미미는 여느 소녀와 많이 달랐다. 가늘고 긴 다리, 일순 젊음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외모도 그랬지만, 도도한 그녀의 모습은 자기의 범주를 정해놓고 아무나 그 안에 들이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혼자서도 무척 잘 지내고, 그 모습에 무척이나 익숙해보였다.
쇼쿄의 엄마 기리코 여사도 독특하다. 그러면서 사실 좀 뜨끔하기도 했다. 책읽는 것을 너무 좋아해 기리코 여사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좀 살림을 등한시해서 뜨끔해하는 중이었는데, 이걸 부러워해야하나 놀라워해야하나. 74년을 살아오면서 살림을 전혀 해보지 않은 엄마라는 지위. 요리는 먹는 것이고 세탁이나 청소는 시키는 것이고 아이들 학교행사나 친지간의관혼상제는 불참하는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책만 읽었다. 책읽는 짬짬이 결혼도하고 아이도 낳아길렀다. 자신의 인생은 퍼펙트하다 말을 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신기할 정도로 받들고 사랑했다. 엄마의 책과 나의 정사를 같은 것으로 보는 슈코, 남편과의 정사, 남편과의 사랑을 완벽하다 믿는 그녀
슈코는 남편 이전에도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의 남편처럼 깊이 빠져든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남편을 잃을까 불안해하며, 남편이 그 어떤 짓을 해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비굴할 정도의 사랑에 빠져든 그녀지만, 한때 그녀도 남편에게 항거를, 무시당할 항거를 한 적이 있었다. 나 아닌 다른 여자와 당신이 자면 슬프다고, 술에 취한 그녀는 그렇게 구슬피 말했지만,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절대로 마시지 못할 우유를 주며 억지로 마시게 한다. 주르르 주르르 흘리면서 몇번의 실패 끝에 그녀가 억지로 우유를 삼키자 남편은 잘했다고 칭찬하였고, 그녀는 칭찬받아 행복해한다.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를 보는 기분이랄까. 슈코의 남편에 대한 헌신적이고도 무모해보이는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좋을지 모르겠다.
엄마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그녀의 사랑 매일 봐도 설레고, 가끔 봐도 설레고, 혹시나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까 불안하고.
이야기는 그런 쇼코와 미미의 관점에서 각각 교차하며 흐른다. 같은 시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말이다. 미미의 젊음이 부러웠던, 질투났던 쇼코와 원숙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쇼코의 그 무언가에 역시 부러움을 가졌던 미미,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결국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휴양지에서의 인연, 그리고 그것이 전혀 엉뚱하게 이어질 수 있는상황이었음을. 쇼코는 정말 남편에게 왜 그리 연연하고 심지어 그의 여자들까지도 다 감내해가면서 그를 소유하고 싶어하는지. 사랑이 그래야 완벽한 거라면, 불완전하더라도 안정적인 사랑을 선택하겠다.
인생을 전율하게 할 만큼 좋아하는 위험한 사랑이 있다면. 딱 떠오르는게 불나방이었다. 불 속에 뛰어들어 타버리고 마는 나방의 사랑. 쇼코는 그런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미미의 시선에서도 분명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나잇대가 그래서인지 자꾸 쇼코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린여학생들이 읽는다고 미미에게 공감하게 될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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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만날 때 나 자신과 비슷한 점이 발견되면, 무작정 호감부터 갖는다.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기대심 때문이다. 남편은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늘 말한다. 그건 평범하지 않다는 뜻과 같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를 갖게 되길 기대하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절실히 깨닫는다.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녀만큼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을-정확히 말하자면 그녀 소설의 주인공의 일부 성향-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은 부부이지만 아이가 없다거나 남편이 게이라거나, 혹은 한참 연하의 남자와 연애를 한다거나.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서 나와 비슷한 면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런걸 보면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한 것 같다.) 그렇다해도 때론 그녀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얼마 전 출간된 (일본에선 2007년에 출간) 『잡동사니』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은 좋았다. 어린 소녀가 아버지와 휴양지에 있다는 도입 부분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떠오르게 했고, 평생을 말 그대로 책만 읽고 산 기리코씨(주인공 슈코의 엄마)가 등장했을 땐, 이거야 말로 내가 꿈꾸는 삶 그 자체라며 반가워했다.(게다가 그녀는 부유하기 까지 하다!!)
푸켓에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이 어떻게 진전되어 갈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다만 에쿠니의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정사를 동반한 불륜 이야기일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 예상처럼 정사와 불륜이 등장했지만 수위는 예상 밖이었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들을 이해해야할지.. 나는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 특히 연인이나 부부간의 관계만큼은 클래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고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에 매력을 느끼는 나이지만, 이번 캐릭터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무리 격한 사랑에 빠져도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좋든 싫든 그 관계는 반드시 변하게 돼요. 하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죠. 그 심리를 이번에는 비교적 직설적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 에쿠니 가오리의 인터뷰 중에서.
『잡동사니』는 푸켓에서 만난 마흔다섯의 슈코와 열다섯 미우미의 1년간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슈코와 미우미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번역 일을 하는 슈코는 엄마(기리코)와 함께 떠난 푸켓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열다섯의 미우미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휴양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그들은 귀국 후에도 종종 만나는 사이로 발전한다. 먼저, 쇼코는 결혼 8년차로 남편(하라 다케오)은 방송국에서 일한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가 참으로 기묘하다. (소설 속 인물들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쇼코의 남편 하라 다케오이다.) 그녀는 고목에 매미가 붙은 것처럼 남편에게 매달려 살지만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뜻밖의 여성이고, 남편 하라는 대놓고 애인을 만나고 다른 여성과 관계를 갖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쇼코가 튀김가게의 젊은 요리사에게 호감 갖는 모습을 보이자 하라는 그녀와 젊은 요리사가 단둘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주선한다. 집에 일찍 들어온 부인 쇼코를 향해 ‘일찍 왔네. 잠은 같이 안 잤나 보지?’라고 묻는다.
“ 잠은 같이 안 잤나 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 “그렇다면 아무 데도 안 간 모양이네.” 남편은 말했다. “다음엔 좀 더 멀리 다녀와. 멀리 가면 갈수록 진심을 알 수 있을테니까.”
이런 말도 한다.
“슈코가 누구와 자든 난 슬퍼할 수 없어” “하지만 난 어느 누구와도 자지 않았어” “알아” “당신이 외간 여자와 자면 나는 슬프단 말이야” “어째서?”
하라는 부인이 외간 남자와 관계를 맺어도 슬프지 않다고 하고, 외간 여자와 자는 것이 슬프다는 부인에게 어째서 슬프냐고 묻는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데, 쇼코는 이해된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라면 나도 안다. 그 슬픔은 나만의 것이다. 나 혼자 맞서야 하는 것이며 남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쇼코의 남편은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자기애가 강한 것일까. 그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순진한 독자였던가! 열다섯의 미우미는 귀국 자녀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풋풋한 나이만큼이나 행동도 거침없는 그녀는 아빠의 가게에서 일하는 와타루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그에게 먼저 뽀뽀를 할 정도로 당돌하기도 하고, 대담하기도 하다. 푸켓 여행 후 쇼코와 기리코를 만나게 되면서 쇼코의 남편 하라와도 동석하게 되는 그녀는, 곧 하라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쇼코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
첫 번째로 읽었을 때, 남은 페이지수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불안했다. 설마 미우미와 쇼코의 남편 사이에 무슨 일일 벌어질까봐. 아니나 다를까, 하라는 미성년자인 미우미와도 관계를 맺고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평소 독자가 소설가가 만든 인물들에 대해 평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잡동사니』속의 인물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설을 두 번째 읽으면서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미우미 아빠의 가게에서 일하는 와타루의 엄마(사야카)가 등장한다. 그녀는 미우미의 엄마(교코)와도 친분이 있는 사이로, 미우미의 아빠(네기시)와 이혼 후 여러 남자와 만나는 쿄코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나도 사야카 씨처럼 한 남자의 여자로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네기시 씨는 살아있으니까 된 거예요. 살아 있는 상대에 대한 감정을 변함없이 보존할 수는 없어요.”
에쿠니 가오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이것이었을까? 남편이 죽은 후 그를 잊지 못하고 평생 추억하며 사는 사야카는 자신의 집에 그대로 남아있는 남편의 물건들을 ‘잡동사니’라고 말한다. 여러 남자를 만나는 교코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야카에게 그런 사랑이 부럽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살아 있는 상대에 대한 감정은 변한다고’말한다. ‘사랑은 움직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정말 변하지 않는 사랑은 ‘잡동사니’인 것일까. “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독차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정사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독차지하고 싶다면, 원치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남편의 여자 친구들이라든지.” (쇼코) 쇼코는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면, 그 움직임마저도 사랑해야 함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나 역시 아무리 사랑해도 서로 다른 인격체를 지닌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독차지할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사랑이 다른 사랑을 찾는 것을 납득할 순 없다.
쇼코는 “비극이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생활 자체가 되어 우리를 붙잡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생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활이 되면 초심을 잃게 된다. 설렘도 잃게 된다. 그 순간 일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쇼코의 남편 하라는 고전적인 결혼 생활을 택하는 대신 자유분방한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비극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인 양. 결혼이 생활 자체가 되어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 다른 여자와 잠을 자고, 아내에게도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여행은 여행일 뿐, 돌아올 집은 언제나 있다. 다른 여자와의 하룻밤은 말 그대로 원 나 잇 일뿐, 그 밤이 지나면 부인에게 돌아온다. 나는 여전히 쇼코와 하라와 미우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그들이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만 간신히 동의할 뿐이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와의 일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이 쓸모없는 ‘잡동사니’처럼 보일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전부가 됨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랑은 진한 키스와 포옹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꼭 두 손을 맞잡지 않아도 둘만의 공기가 있음을,. 그것이 정情이라는 단어로 표현됨을 나는 알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땐 이런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쇼코와 하라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연거푸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정情 대신 열정적인 사랑을 택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무엇보다 쇼코와 하라의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사실은 자신들이 가진 사랑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면, 그 사랑 역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나를 충격에 빠뜨렸지만, 결국 새로운 시각으로 ‘사랑’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독서의 즐거움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결국 이해하게 될 때 오는 것 같다. 한 동안 이들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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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꿈꾸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달콤하거나 혹은 아찔하거나.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녀의 결혼 생활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씩은 그녀가 그려내고 있는 결혼생활이 너무 달콤해 결혼생활의 로망 같은 것을 꿈꾸게도 만들고, 또 가끔씩은 정말 그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위험한 모습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알콜중독에다가 조울증 증세까지 보이는 아내 쇼코와 동성애자 남편 무츠키의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그린 『반짝반짝 빛나는』과 남편도 있지만 친구의 아들 토오루와 사랑을 나누는 시후미가 등장하는 『도쿄 타워』가 특히 그랬습니다.
이번에 나온 신간 『잡동사니』도 그와 같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 마흔다섯 살의 슈코와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난 열다섯 살 소녀 미우미는 낯선 휴양지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어린 미우미의 도발로 슈코는 낯선 여행지에서 미우미의 아빠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남편이 있는 슈코에게는 그저 낯선 여행지에서의 단 한번뿐인 아찔한 경험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미우미가 사진을 핑계로 슈코의 어머니 댁을 방문하면서 슈코와 미우미의 만남은 계속 이어집니다. 사실 슈코는 미우미의 아빠보다 미우미에게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의 소녀는 마흔다섯 살의 슈코와는 달리 무엇을 하든, 어떤 옷을 입든 예뻐보일 수 밖에 없는 나이입니다. 슈코는 그런 미우미에게 질투 이상의 감정을, 반대로 미우미는 동경 이상의 감정을 느끼며 미묘한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또 그 아이를 보고 있구나." "예쁘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자꾸 보게 돼. 왠지 눈길이 가고 마는걸." "바보 같으니. 왜 그런지 모르겠어? 질투잖아, 그거."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 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 (p.36~37)
슈코와 미우미, 두 화자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잡동사니』에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의 여자까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슈코, 아버지 뻘이자 슈코의 남편인 하라 다케오와 사랑을 나누는 미우미. 동성애자인 남편의 애인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반짝반짝 빛나는』의 여자 주인공 슈코와 이름만 같은게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다음에는 슈코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까요? 아니면 미우미가 그 바턴을 이어 받게 될까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사랑 뿐아니라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그의 물건을 버리지도 못하고 잡동사니처럼 쌓아둔 사야카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어느 쪽의 사랑도 반 이상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향한 에쿠니 가오리의 시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잡동사니』. 당신이 꿈꾸는 사랑은 어느 쪽인가요? 달콤하거나 혹은 아찔하거나.
"너무 어질러져 있지? 당최 뭘 버리질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말았다. 딱히 어질러져 있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방은 전혀 어질러져 있지 않다.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추억의 물건들이네요." "잡동사니들뿐이에요."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하지만 어쩐지 자랑스러운 듯이. (p.293~294)
2013. 04. 01.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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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어릴때 읽었다면 지금과는 분병히 감상이 달랐을것이다. 그 때는 평범하지않고 사람들이 감당할수있는 범위를 벗어난 사랑에 대해 가차없는 혹평을 하고 색안경을 끼고 봤엇는데 아무래도 살아온 연륜이 부족하기에 내가 하는 생각만이 옳다고 착각하고 살었었기 때문이리라. 일종의 젊음의 오만이랄지... 그럼에도 이 책은 읽기가 편치않다. 책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사랑이 일반의 통섭에서 벗어난 일종의 오픈 메리지와도 비숫하면서도 또 어떤점에서 본다면 지독한 열애와도 같은 사랑이기에 이해하기가 쉽지않지만 살아오면서 사람마다 개성과 성격이 다르듯 그 사람들 수만큼 다양한 사랑이 존재할수 있다는걸 알기에 그런사랑도 있을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맘이 좀 편해진다.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그를 독차지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어 안타까운 슈코 슈코의 남편 하라는 바람과도 같은 남자이기에 주변에 늘 여자가 끊이지않고있지만 그럼에도 늘 슈코를 사랑하는 일엔 최선을 다한다.그에겐 항상 지금 이순간만이 중요한 사람이기에 그때그때의 현실에 100%충실하고 그런 하라가 진심임을 알기에 슈코는 하라가 하는대로 바라볼수밖에 없다. 슈코가 엄마와 둘이서 간 여행지에서 미미라는 소녀를 알게 되고 이들의 일상에 미미가 들어오게 되지만 서로 어색하지도 의식하지도 않고 물흐르듯 자연스럽다.마치 온갖 추억이 깃든 잡동사니로 가득찬 기리코의 집처럼 각각이 개성있는 물건들이 서로 어우러지는것과 같이...
사랑은 아니 사랑만이 아닌 살아있는 모든것은 세월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지만 유독 사랑만은 다를거라고 고집하는 사람이있다.그들에게 사랑은 늘 변치않고 한사람만을 변함없이 꾸준히 바라보는것이기에 변한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변하지않는건 없다는 옛어른들 말씀이 옳다는걸 세월이 지나고보니 알게된다. 이 책에선 사랑하는 순간의 찰라에 충실한 지독히 현실적인 로맨티스트 남편인 하라와 그런 하라의 사랑에 늘 목말라하면서도 그가 하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슈코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늘 남편을 그리워하고 심지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도 그런 남편을 생각하는 슈코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있어 읽으면서 좀 쓸슬함을 느끼게 한다. 사랑은 소유할순 있어도 독차지할수는 없다는 하라의 말이 공감이 가지만 그럼에도 그런 하라를 바라만 보며 그가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바라는 슈코는 왠지 애완견과 주인과의 관계처럼 비쳐지기에 읽는 동안 좀 불편함이 있었다. 물론 사랑엔 여러형태가 있고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둘만 좋다면 뭐든 용납이 되겠지만 늘 여자친구가 있고 다른여자를 안으면서 아내와 있을땐 아내만을 사랑한다는 하라의 마음이 공감이 잘 가지않는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예전의 가오리책처럼 가슴에 와닿고 나도 모르게 공감을 하면서 읽었던 느낌이 아닌 왠지 약간 겉돌고 몰입해서 읽을수없엇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파격적인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을것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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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나는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을 느꼈다. 워낙 편식이 심한 내가 새로이접하게되는 작가의 문체도 좀 낯설었는데다 그 내용이 납득이 되지 않아 더 그런것도 같다. 어울리지 않는듯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잡동사니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냥 들여다 보고 있는것만 같은 그런 느낌!
40대의 쇼코와 10대의 미미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듯 전개되고 있다. 40대의 쇼코는 70이 넘은 엄마와 단둘이 푸켓여행을 하면서 10대의 미미를 만나게 된다. 사실 그 나이쯤이면 한창 반짝반짝 빛나는 사춘기의 아이들이 이뻐보이기도 하는데 쇼코 역시 미미가 너무 이뻐 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곤 한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을 생각하며 더욱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쇼코는 남편을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는 여자다. 남편이 좋아하는 옷만 입고 싶고 남편의 목에 걸린 넥타이조차 질투하며 남편에게 애인이 있음을 알지만 그조차 받아들이는 쿨한 여자! 그러면서 다른 남자와 정사를 치르는 이 여자가 보통 여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0대의 미미는 이혼한 엄마와 아빠 밑에서 자라난 마음이 참 쓸쓸한 소녀다. 사춘기에 엄마 아빠와 따로 만나 그들의 자유로운 사랑을 보며 자라난 아이여서 그런건지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나이 지긋한 쇼코의 친정엄마를 찾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한다. 그렇게 미미는 쇼코부부와의 만남을 갖게 되는데 만나면 좀 불편한 쇼코와 달리 자신을 자신으로 인정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쇼코의 남편에게 끌리는 미미의 마음까지는 뭐라할 수 없겠지만 결국엔 자신의 순결마저 주고 마는 결말에서는 작가의 너무나도 직설적인 이야기 전개에 당혹감을 느꼈다. 아니 소설속에서 내내 너무나도 쿨한 쇼코의 남편에게 화가 났다.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남편을 더욱 사랑한다고 말하는 쇼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건 뭐지?' 하는 생각과 내내 무언지 모를 아슬아슬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보니 어딘지 찜찜한 그런 기분이 든다. 아무렇게나 쌓아진 잡동사니들을 마구 흐트러 버리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다. 설마 설마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더니 설마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그런 당황스러움? 왠지 이들의 사랑은 잘 포장되어진 상자속 잡동사니 같은 느낌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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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책에는 언제나 현실상에서는 잘 볼수 없는 특이한 캐릭터가 있다. 그런 반면에 이야기들은 잔잔한 편이다. 그냥 일상생활속에 살아가는 주인공들인데 그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아니면 주어진 개성들이 뚜렷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않은 주인공들때문에 보기 불편하다고 그런다면 나는 그 개성이 주는 매력때문에 그녀의 책을 보는 듯 하다. 나와는 다른 지극히 평범한 어디가서도 절대 튀지 않은 너의 성격때문에 나와는 다른 모습을 책속에서라도 찾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여러주인공들이 나오지만 제일 처음에 시작은 일흔 넘은 노모와 딸의 여행이다. 엄마와 딸의 조합은 사실 이 전작인 '하나님의 보트'를 통해서 느껴본적이 있어서 조금은 다른 조합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 조합은 뒤로 가서는 미미라는 십대소녀와 엄마와의 이야기로 또 맞물리더라. 엄마와 딸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려나. 4명의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그 중간에 남편이라는 존재로 연결된다. 나이 많은 남자와 십대소녀. 현실에서 보면 원조교제로 여겨질법한 이야기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 단조로우면서도 잔잔하게 그려진다.
때로는 번역가인 그녀의 입장에서 때로는 십대인 소녀의 입장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나는 때로는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혼을 한 십대소녀의 엄마는 자신에게 중매를 해준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면서 오로지 죽은 남편만 바라고 사는 그녀가 행복해보인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를 이해하는 것일까.
사실 나는 같은 여자입장에서 어느쪽에도 공감할수 없었다. 나는 남편과 이혼하고 딸아이를 키우면서 연애를 자유롭게 하는 그녀입장에서도 설수 없었고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오로지 그만 생각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도 설수 없었다. 나는 대체 세상을 어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때 일본에서 유행하던 건어물녀, 연애감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수 없는 그런 메마른, 물기라고는 하나 없이 미라처럼 삐쩍 말라버린 그런 사람이 나인지 모르겠다. 남들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비판이 되고 있었다.
유독 가오리의 이번책은 나에게 그랬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봄이라서 그런건지 또는 비록 책이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잡동사니들 속에서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 잡동사니지만 버릴수 없는 것들. 그래서 결국 사랑은 잡동사니인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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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에쿠니가오리의 "도쿄타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작가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회적인 통념이나 사상을 논하기에 앞서 사랑은, 늘,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하는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에쿠니가오리의 책을 읽을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흔히 말하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찌보면 참으로 불륜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거지요. 물론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그저 누구의 아내, 누그의 엄마에서 벗어나 한 여자의 사랑을 이야기 한달까요. 책을 읽을때 만큼은 그저 여자로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나이, 서로 다른 경험과 삶을 살아온 두 여인이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행동들이 서로의 시점에서 번갈아 전개되어집니다. 40대 여인인 슈코와 10대 소녀 미우미가 그 주인공 입니다. 슈코는 남편을 너무 사랑하고 의지하며 남편의 모든면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남편 역시 슈코를 너무 사랑스러워 하죠. 그렇지만 이 두사람의 사랑은 보통 사람인 저의 입장에서는 좀 애매한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다른 이성과의 관계를 눈감아 준다고나 할까요.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독차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정사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독차지하고 싶다면, 원치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남편의 여자 친구들이라든지...(마흔다섯 살, 슈코)
아무튼 둘의 관계는 좀 오묘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10대소녀 미우미. 그녀는 엄마랑 둘이 살면서 헤어진 아빠와 일년에 한두번 둘만의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슈코와 미우미는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알게된 후 미우미는 슈코의 남편과도 알게되죠. 미우미의 사랑은 꽤나 저돌적입니다. 나를 나로서만 봐주고, 알아주고, 이해해준 하라씨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절대 '보고 싶다'고 적어 보내지 않았다. 음성으로도 그런 메시지는 남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이었기에. (열다섯 살, 미우미)슈코와 미우미의 감정을 잘 나타낸 작가의 글에서 우리는 그녀들의 변화를 조금씩 느낍니다.
핸들을 잡고 전방의 차량 흐름을 주시한 채 어이없는 내 자신을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남편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못 견디면서 동시에 그 이전의 나를 고집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는 바로 그때의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당장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에 맞섰다. 만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양손을 펴고, 날 보라는 말이라도 할 작정인가. 날 봐, 이 여자 본 기억 없어, 하고. (187쪽)
많은 독자들은 말합니다. 에쿠니의 소설은 언제나 아슬아슬 하다고. 실제로 소설속 주인공들은 항상 위태로운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통념이나 사상을 논하기에 앞서" 라고 작가가 말했듯 사랑에 빠지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만을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솔직한 감정 표현은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도덕적 잣대에서 해방된 나를 느낄 수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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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하느님의 보트』였던 탓일까? 나는 이번 책 『잡동사니』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보트』를 자주 떠올렸다. 그건 아마도, 『하느님의 보트』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시점’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읽었기 때문인 듯 싶다. 엄마이자 어른인 요코의 시점과 아이이자 딸인 소우코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던 『하느님의 보트』는 때론 연애소설로, 때론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점이 내게 있어서 소설의 매력을 극대화했던 부분이었다.
이번 작품 『잡동사니』역시 마흔다섯 살 슈코와 열다섯 살 미우미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10대 소녀와 40대 여성의 상반된 감성. 이 부분은 『하느님의 보트』와는 다르게 흥미로운 점이었다. 나는 슈코의 사랑도, 미우미의 사랑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시점으로 읽고 있노라면 슈코는 이래서 이런 사랑을 하고, 미우미는 이래서 이런 사랑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읽었다.
이 책의 흥미로웠던 점 중 또 하나는 소설에 쓰인 시점과 비중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라 슈코-하라 다케오-네기시 미우미, 세 명의 삼각관계에 초점이 맞춰있는게 아니라 슈코와 슈코만의 하라 다케오, 미우미와 미우미만의 하라 다케오로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슈코와 미우미의 만남이 이들의 첫 만남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중심은 이 둘이 이야기하는 하라 다케오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슈코와 미우미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게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마냥 위험하고 비도덕적이며 비정상적인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면, 나는 분명히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을 독차지하기 위해 남편의 여자친구까지 인정하는 슈코의 이야기, 아버지뻘의 남자인 슈코의 남편 하라 다케오와 첫 경험을 하는 미우미의 이야기가 소설의 전부였다면 말이다.
세 살 때 미국으로 떠나 갓 일본에 돌아온, 사랑에 저돌적인 맹랑한 소녀 미우미. 결혼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그의 사랑만을 간절히 원하는 슈코. 이 두 여자가 몇 번의 만남을 반복하고 서로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 서로를 향한 질투, 그리고 동경마저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들이 재밌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질투잖아, 그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 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 (p.37)
소설의 제목인 ‘잡동사니’에 담긴 의미는 슈코의 사랑이나 미우미의 사랑을 뜻하는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창가에는 관엽식물을 심은 화분이 세 개 놓여 있다. 남편이 손수 만들었다는 가구는 하나같이 낡고 퇴색되었다. 둥그렇고 큼지막한 털실 뭉치가 들어 있는 바구니, 의자에 앉은 앤티크 인형.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사야카 씨가 말했다. “너무 어질러져 있지? 당최 뭘 버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말았다. 딱히 어질러져 있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방은 전혀 어질러져 있지 않다.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추억의 물건들이네요.” 엄마가 한마디 거들자 사아캬 씨는 손에 든 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잔을 천천히 흔들어 백포도주를 회전시킨다. 그리고 말했다. “잡동사니들뿐이에요.”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하지만 어쩐지 자랑스러운 듯이. (p.293-294)
바로,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그의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이 모셔두는 사야카 씨의 사랑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광기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말하는 ‘잡동사니들뿐’이라는 말이, 내겐 어쩐지 ‘사랑뿐’이라고 들렸다.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잡동사니에, 죽은 남편에 대한 사야카씨의 사랑이 담긴 것이라고.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길이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잡동사니들이 전부라는 것이 쓸쓸하지만, 모든 잡동사니가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 전부이기에 그녀는 어쩐지 자랑스럽게 미소 지었을 것이다.
“분명 좋은 어머니이실 것 같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했다 싶었는데 미미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건, 하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건, 슈코 씨가 생각하는 ‘좋은 어머니’가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죠.” (p.192)
슈코와 미우미의 사랑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의 사랑이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 그 외 인상깊었던 구절들 *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강하게, 내 자신이 미미를 눈부시다고 여겼던 것을 깨닫는다. 미미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주는, 그건 눈부심이다. (p.231)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 집 사람들은 모두 눈앞에 있는 인간을 그저 눈앞에 있는 인간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아닌, 그렇다고 슈코 씨 같은 성인 여자도 아닌, 네기시 미우미로만 나를 본다. 따라서 나는 존재할 수 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증거(아마도)로 하라 씨는 종종 내게 소홀히 대하진 않을 테니까, 하고 말한다. 그건 하라 씨의 의도적인 말실수랄까, 일부러 그런 말을 골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가족 모두가 솔직한 것이다. (p.269)
핸들을 잡고 전방의 차량 흐름을 주시한 채 어이없는 내 자신을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남편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못 견디면서 동시에 그 이전의 나를 고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는 바로 그때의 나이기 때문이다. (p.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