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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천만 인구를 수용했던 서울은 넓지만 좁은 곳이기도 하다. 천만 명을 줄지어 세워놓으면 서울 면적의 얼마를 차지하게 될까? 과연 수십 층의 아파트를 만들어 위로 올려야 할 정도로 과밀한가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서울, 특히 구도심을 돌아다는 걸 좋아한다. 태생이 그곳이라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상기할 수도 있겠지만 조만간 영원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일 쏘다니며 좀 특이한 건축물을 보면 사진도 찍고 주변도 살펴보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서울은 사대문과 성곽을 둘러치고 왕이 살던 곳이었다. 외세의 침략을 받고 전쟁을 거치며 기존의 도시의 전형은 마구 흐트러졌다.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수 있었던 고건축들은 난리통에 훼철되거나 용도변경되었다. 최근엔 도시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행정책임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뭉개버리는 작태가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그들의 주장은 어차피 그 건물들도 기존의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져 건축학적으로 가치도 별로 없고 이미 낡았으니 싹 갈아 엎고 새롭게 높이 지어 올리는 게 보기도 좋고 또 돈도 되지 않느냐는 극히 단세포적 발상의 발로다.
정도(定都) 600년은 세계 그 어디에 내놓아도 역사적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런데 내세울 만한 역사성을 띤 공간이 많질 않다. 변고도 많았지만 그만큼 우리 사고엔 건축이란 언제든지 부수고 다시 지으면 되는 "돌덩어리"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집은 누군가에겐 삶의 공간이고 일터의 공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 땅엔 브랜드 달린 아파트 단지가 들어왔다. 사회 초년병 시절 부푼 꿈을 안고 출근했던 첫 직장이 있던 건물은 지금 도심 재개발이라고 적힌 비계와 가림막에 막혀 내부조차 볼 수 없게 공사중이다.
서울은 산과 강으로 둘러쌓이고 나뉜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길도 반듯하지 않고 구불거리고 사람이 사는 공간도 그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조성되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집은 부족하고 도로는 확장되어야 하니 그 충돌 지점에서 기존의 건축물들이 깎여 나가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되었다. 좀 오래된 그 시절엔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가 법이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싹 다 밀고 도로를 내" 라고 하면 그 길옆에 있던 누군가의 집은 헐리거나 깎여나가야 했고 얼마되지도 않는 보상금을 받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했다. 하지만 운명인지 그렇게 깎여 나가고 난 자투리땅도 땅은 땅이었다.
워낙 밀집된 도시인지라 한뼘의 땅에도 필지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역시 좀 오래된 그 시절엔 행정적으로 미비한 부분도 많고 식민지 시절, 한국전쟁 시절을 거치며 땅에 대한 소유권과 증빙이 부족했다. 그러니 측량도 문제가 많고 소유권에 대한 다툼도 비일비재했다. 이 역시 인간의 소유욕이 문제지 땅은 잘못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주 오래전 바둑판 모양의 마을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7시방향에서 2시방향으로 작은 내가 흘렀다고 치자. 그런데 위생과 교통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내를 복개하면 그게 도로가 된다. 처음엔 지름길이 생긴 셈이니 그 마을 사람들이 환영을 했을텐데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자 교통의 혼잡을 이유로 도로를 확장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도로변에 위치한 건물들을 안쪽으로 밀어붙여야 하는데 아이들 장난감도 아니고 그럴 수가 없으니 보상금을 흔들며 강력한 행정력을 총동원하거나 용역의 물리력을 행사해 결국 집과 건물은 난도질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네모난 집은 세모가 되거나 부채꼴이 되어 버리곤 한다. 그런 좀 이상한 형태의 집들이 서울 도심엔 유난히 많다.
건축사인 저자는 몇 년전 아주 좁은 땅, 아니 도저히 건물을 올릴 수 없는 길고 얇은 땅에 건축을 하고 그걸로 건축상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걸 계기로 서울엔 이렇게 생긴 건물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고 커뮤니티 등에 뜨, 아(뜨거운 아키텍쳐)라는 이름으로 수소문을 했다. 그랬더니 사방에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렇게 얇은 집들을 소개해줬고 저자의 발품을 통해 얻은 자료들이 이 책으로 묶인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너무 놀랐다. 내가 살았던 곳, 내가 다닌 학교 입구, 내가 일했던 동네, 내가 수시로 놀러다녔던 곳, 심지어 군복무를 했던 곳등 무려 10군데나 등장했다. 이 책엔 오래된 지도와 사진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보는 순간 말그대로 "뜨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 있나 그건 나와 관련된 서울의 곳곳이 젊지 않은 이력을 가진 곳이라는 반증도 되고 그만큼 서울과 내가 더불어 나이를 먹고 있다는 말도 되겠다.
소개된 집과 건물의 모양이 비슷했다. 건물은 네모난 땅에 반듯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채 저런 곳에 저런 모양의 건물이 들어설 수 있나? 심지어 바람이 불면 바로 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도 들었다. 위에서 보면 마치 모서리를 한 입 베어문 조각 케이크나 피자 같기도 하고 책의 소개처럼 부채같기도 하고 쐐기 같은 모양이기도 했다. 사다리꼴 모양인 곳은 상대적으로 복이 많은 집이었다.
책엔 현재의 건물이나 집의 외형을 소개하는 것 말고 그 땅이 왜 그렇게 분할되었는지에 대해 문서와 오래된 지도를 활용해 역사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어 인문지리서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곳에 거주자가 살고 있고 영업중인 상업시설이라 내부의 모양을 알 수 없었다는 것과 너무 오래된 곳이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사정인지 셔터 문으로 굳게 닫힌 모양이 마치 죽음을 앞둔 환자의 모습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비록 의도치 않은 개발에 의해서 짤리는 바람에 조금은 이상한 모양의 건물이 되고 말았지만 이는 땅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 이렇게나 넓은 서울에서 그래도 그 작고 요상한 공간을 차지하며 살았고 살고 있고 돈을 버는 공간으로 활용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책의 맨 뒤 커버에 보니 미처 다 실리지 못한 지방의 얇은 집도 소개되어 있다.
소개되지 않은 나만 알고 있는 얇디 얇은 집도 있는데 날이 좋아지면 나도 한 번 저자처럼 찾아가보고 싶다. 아주 아주 오래전 내가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그 사이 개발의 광풍이 불지나 않았기를 바라면서. 서울은... 한편으로는 모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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