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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환 선생은 『나무가 민중이다』(글항아리, 2011년)에서 우리 민중의 일상이고 생활이며 삶 자체인 나무와 풀에 대해 썼다. 나무를 학문 대상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결부시켜 풀어내었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번에는 자신의 삶, 특히 유년기에서부터 청년기까지의 삶과 결부된 나무와 풀을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노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고, 민중의 삶이 배경으로 함께하는 것은 이전 책과 다르지 않다. 선생이 들려주는 청춘의 나무는 대부분 나도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의 나무라서 공감하는 것이 적지 않다. 선생에게 미루나무는 문명 세상으로 나가는 관문과도 같은 상징적 존재이다. 어느 여름 장날 네댓 명 산골동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처음 면내에 내려갔을 때 신작로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성황림마을에서 면은 세상으로 나가는 관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미루나무는 내게도 선생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처음으로 내가 설던 보은군을 벗어나 이웃한 영동군에 살고 있는 고모를 찾아가는 길에 미루나무를 만났기 때문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던 뙤약볕 영동의 신작로를 따라 아버지와 함께 걸으며 만난 미루나무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미루나무는 ‘미국에서 온 버드나무’라는 의미로 미류나무라 불렀으나 단순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라 미루나무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개통된 철도역 주변에서도 거의 그 역사와 수령을 같이하는 미루나무를 볼 수 있다. 선생에게 첫사랑은 중학교 때 찾아온다. 얇은 시집 책갈피 속에 가을소풍 때 찍은 소녀의 사진 한 장과 노란 은행잎으로 다가온다. 소녀의 사진과 노란 은행잎을 슬쩍 한 것을 계기로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군대에 있을 때는 내무반 통로 당번이 되어 아침마다 목련꽃잎을 쓸어야 했다. 아침 구보에 열외를 받으며 목련꽃잎을 쓸다가 올려다본 하늘은 눈부신 꽃 천지였지만 마음은 고립무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도권의 높은 벽에 좌절하다 찾아간 부평공단에서도 어김없이 사랑은 찾아온다. 일요일마다 연인의 손을 잡고 플라타너스 그늘을 따라 길을 걸었다. 이와 같이 선생은 삶의 갈피마다 끼워져 있는 나무와 풀의 기억을 불러와 우리에게 조곤조곤 들려준다. 어김없이 우리 삶에 깃든 민중의 지혜도 곁들이면서. 산나물은 그 성상에 따라 채취 방법도 다양하다. 잎이 넓고 줄기가 연한 취나물 종류는 손으로 그냥 잡아 뜯으면 되니 “뜯는다”고 하며, 화살나무나 회나무 또는 광대싸리의 잎처럼 오밀조밀하게 난 작은 잎은 “훑어” 담는다. 두릅이나 개두릅 같이 굵은 순이나 고사리나 고비처럼 통통한 줄기를 가진 놈은 손으로 분질러 담아야 하니 “꺾는다”고 했으며 원추리나 미나지(영아자) 등은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이 적어 땅속줄기까지 칼로 잘라서 채취하기 때문에 “도린다”고 한다. 더덕이나 도라지 같이 깊이 박힌 뿌리나물은 호미나 괭이를 사용해서 “캐야” 했다. 다래순이나 오가피순처럼 꺾거나 뜯거나 딴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들은 그냥 채취하는 행위를 폭넓게 통칭하는 ‘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눈이 발바닥”이라며 스스로 문맹임을 자조하듯 말했지만 이들이 쓰던 표현의 정교함은 지금 생각해도 감탄을 자아낸다. 산행의 목표물이 뚜렷할 때에는 “두릅 꺾으러 가자”거나 “취나물 뜯으러 간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나물 하러 가자”는 이것저것 골고루 채취하러 가자는 의미이니 말의 토씨에 따라 행선지와 준비물을 달리했던 지혜가 녹아 있는 표현들이다. (205-20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