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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예언》에서 아홉 가지의 통찰에 이어 《열두 번째 예언》은 열 번째 통찰과 열 한번째, 열두 번째 통찰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들에 감탄을 하면서 읽게 된 것은 이 모든 예언들이 지나온 인류가 지나온 발자취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주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요동치는 이유를 명료하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이 영적이라는 사실임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의식 변화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조금이나마 삶에 관한 통찰을, 첫 번째 통찰은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의 통찰로 가려면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책이 명시해주는 영적 통찰력을 받아 들인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삶이 보일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 영적인 이야기에는 그 이야기 자체에 에너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의 통찰은 과학과 철학, 수많은 종교들이 다다르고자 했던 궁극의 삶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는 자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안에서 영적인 통찰이 시작되었다.
페루에서 필사본을 찾아 다니며 모험을 하였던 주인공은 이집트에서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세도나의 시크릿 산으로 떠난다. 주인공이 시크릿 산에 도착하자, 종교적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증폭되고 있는 증오와 양극화의 위험성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동시에 본보기 그룹을 결성한 레이철(기독교)과 아자르(이슬람교), 히라(유대교), 토미(원주민 신앙) 등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들은 고문서를 하나씩 발견하면서 자신들의 소명을 깨달아가게 되며 종말주의의 봉인을 풀 수 있는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전편 천상의 예언에서 아홉 가지의 통찰을 통해 의식 변화의 흐름을 짚어주었다면, 열 두 번째의 예언에서는 통찰 보다 높은 정신세계의 의식 수준에 들어서고 있다. (그래서 다소 어려웠음) 첫 번째 통합은 동시성의 흐름을 유지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각각의 동시성은 또 다른 동시성(물리학에서 서로 다른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으로 인도된다는 것으로 영적 본성의 첫 포문을 열고 있다. 동시성이 나에게 지속된다면 속도를 늦추고 그 동시성의 흐름에 들어가 운명을 펼쳐보이듯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고 믿는다. 이 첫 번째 동시성에 대한 깨달음은 두 번째 통합으로 이어져 남들에게 전달해주는 진실에 이르게 되고 우리가 중심에 머무는 진실을 지킬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에게 곧 닥쳐올 사고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직관과 예감을 감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세 번째 통합이다. 우리가 진실에 입각해 활동할 때 우리는 진실의 법칙과 나란히 줄을 맞추게 되고, 이 흐름을 뒷받침해 주는 연결의 법칙이나 카르마의 법칙, 봉사의 법칙 등 다른 법칙들에서도 이러한 진실을 찾아볼 수 있다. 네 번째 통합은 이 심원한 영적 연결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탐구에 관련된 이해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세속적인 집착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도리어 허위의 시스템을 더 키워 나가면서 양극단으로 쏠리고 있는데, 서로에 대한 인간성 말살에서 더욱 극단화해 모든 것을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통합은 우리가 얼마나 신과 깊이 연결 될 수 있는지를 언뜻 일별하게 해주고 있고 우리는 그 연결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호와 사명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들을 만나는 동안, 놀라운 책을 발견하였다며 지인들에게 조금 호들갑 아닌 호들갑을 떨고 다녔다. 나에게는 놀라운 책이었고, 수천년을 되풀이 되고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 우리 존재가 이렇게 불확실하게 된 현대라는 시간안에서, 유장하게 계속되고 있는 현재성에서, 삶이라는 거대한 물음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소명疏明을 꺠닫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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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예언이 통찰을 일깨워 줬다면 열두번째 예언은 의식의 통합에 대한 가르침이다. 종교전쟁을 막기위한 주인공들의 노력 세상의 여러종교는 평화보다는 분리와 전쟁을 일으킨다 자신들의 종교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열두번째 예언은 통합의 통합으로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한다. 종교의 기본적인 역할은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다.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인간은 사랑의 상태일때 의식이 높아지고 에너지가 활발해진다.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아가페적인 사랑밖에 없는것 같다. |
우리 삶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우연의 일치에 초점을 맞춰 진화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통찰'의 진실을 다뤘던 《천상의 예언》 이후 제임스 레드필드의 최신작 《열두 번째 예언》
《열두 번째 예언》은 종말론자와의 대립구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21세기의 두 번째 십 년에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하는 고문서가 발견되는데 페루에서 발견된 천상의 예언과 주제면에서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 영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추상적이고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영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발견하는 것이다.
천상의 예언에서 다룬 첫 번째부터 아홉 번째 통찰까지는 우주는 온갖 종류의 뜻밖의 만남과 직감, 신비스러운 우연의 일치로 가득하며 우리의 삶 이면에는 더 높은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진실에 눈뜬 탐구자에게 남은 의문은 단 하나. 바로 이 신비로운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며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때 내세에 관한 과정을 무너뜨리는 열 번째 통찰과 아직 정의되지 않은 어떤 계획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집단적 지식이 발휘되며 '시크릿', '기도의 힘', '끌어당김의 법칙'과 같은 이론으로 성장해 우리를 긍정의 환상으로 이끌었지만 영적인 동시에 실질적인 현실세계에 적용되는 답을 요구하기에 이르는 열한 번째 통찰로 인도했다.
열두 번째 통찰은 바로 인류에게 주는 최종 계시의 신호인 것이다. 이는 한층 더 영적인 지식을 삶에 접목시켜 우리가 '살아 갈' 길을 보여준다.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면 내 안의 에너지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상적인 평범함을 초월해 더 높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열한 번째까지 각각의 통찰이 어떤 특정한 지식의 통합을 전적으로 다뤘다면 영적인 경험에 관한 진실을 추구해 온 모든 것이 이 열두 번째 예언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재정적인 붕괴와 사회 분열이 만연해지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영적 본성을 더 뚜렷하고 분명하게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기회이다. 열한 개를 통합하고 나면 마지막 열두 번째에서는 우리 삶에서 영성에 대한 전체 그림을 이해하고 실제로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이 책에서 '나'와 과학자와의 대화는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영성이 과학처럼 논리적이고 질서적인 것이라면? 이라는 의문과 함께 탐구할 가치는 있지 않겠나 하는 의미로 대하기 시작한다는 것. 과학자들의 논리 방식으로 영적인 현상들을 연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영성의 자연법칙 같은 것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영성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게 된다.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대립은 극우주의자들과의 관계인데 극우주의자들은 천상의 예언에서 묘사돼 있던 '통제자'처럼 오히려 이 고문서를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극단적인 조치로 대한다는 점이다. 극우든 극좌든 동일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영성이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기 전까지는 수수께끼처럼, 추상적인 어휘일 뿐이다. 이념에 함몰돼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종말론자들은 적을 쳐부수고 그 종파의 교리에 따라 지구상에 완전히 영적인 세계를 세울거라는 믿음으로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을 스스로 일으키려 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최상의 종교만 남기려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이성적으로는 '겪을 만큼 겪었으니 그만하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의 균형에 관한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극복하게 된다. 걷기를 배우려면 그저 남들이 걷는 것을 보고 자신도 노력하면 되듯 우리 뇌에서 신경 경로의 패턴을 작동시켜 걷기를 배우도록 돕는다는 뇌의 경로는 기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걷기를 배우는 경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게 느껴진다. 카를 융은 영성 계발도 마찬가지로 잠재된 경로로 구조화 돼 있고 우리가 그것을 일깨워 작동시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각자의 뇌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매력적인 이 개념은 신성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본보기 그룹이 늘어날수록 결국 다른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커질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각각의 종교간의 자연스러운 화해와 과학자들의 참여를 통해 각 통합의 진실에 의견을 일치시키는 합의의 힘으로 본보기 그룹이란 것이 형성된다. 냉전,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편협으로 분열된 인간 사회에서 종교적 사고를 비교해 보고 어떤 문화권 또는 어떤 종교에 속하든 공통점을 이끌어내어 통합시키게 된다.
천상의 예언에서는 인류가 이제까지 오랫동안 직감이나 감으로 분류해 온 이른바 육감이라 불리는 내면적 인상들에 관한 지각을 어느 시점에서 더 높이게 되리라 예견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세계관이 우세한 현실에서 우리 인류는 여러 해 동안 이성적인 사고와 논리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결국에는 뇌의 우반구가 제공해주는 귀중한 정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세속적인 세계관에서 보면 비논리적이고 어리석게 여겨질 것이지만 본보기 그룹으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의 파도를 만들어내어 종말론자들의 의도를 무산시킬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되려는 의도'를 적용해 아가페적 사랑에 중심을 잡고 각각의 통합을 모두 통합한다.
개인들의 더 높은 영성에 마음을 열고 있는 이들과 아직도 두려움과 분노에 가로막혀 있는 이들간에는 칸트의 '네가 하고자 하는 행위가 동시에 누구에게나 동일한 방식으로 통용될 수 있게 영향을 주도록 살고 행동하라' 처럼 우리의 생각 하나하나, 행위 하나하나가 우리 너머 멀리까지 파급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일러둔다.
이 모든 것은 물질적인 세계관에서 영적인 관점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루는 것이다. 《천상의 예언》보다 한 단계 더 '논리 적용'의 단계로 상승한 느낌이다. 이 책 역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어 딱딱하지 않고 그동안 등한시했던 개념을 흥미진진하게 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진화된 의식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완전한 진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무의식의 신호를 놓치지 않는 기민함을 유지해 직관의 힘을 완전히 찾아 긍정적인 삶,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진화된 의식이란것이 생각외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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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천상의 예언의 뒤를 잇는 놀라운 모험, “진정한 세계를 만나기 위한 그 열두 번째 비밀을 찾아서”이다. 역사의 최종 목적은 다름 아닌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삶이란 프로그램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이루어져 왔다. 이를 밝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의식의 성장 단계인 ‘열두 번째 예언’이다. 저자 제임스 레드필드는 세계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은 개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신념의 변화는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많은 이들을 고양시킨다. 의식의 혁명도 이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 결국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길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뿐이다. . 이제 잠에서 깨어나 진실에 눈뜬 사람에게 남은 의문은 단 하나다. 이 신비로운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며, 어떻게 해야 그 비밀을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정한 세계를 만나기 위한 그 열두 번째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주인공이 고문서를 찾기 위해 세도나의 시크릿 산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증폭되고 있는 증오와 양극화의 위험성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고문서를 하나씩 발견하면서 자신들의 소명을 알게 된다. 첫 번째 통합은 동시성의 흐름을 유지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두 번째 통합은 의식의 대화에 참여하면 영성이 작용하는 방식에 관해 언제든지 한층 더 큰 진실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 통합은 진실에 입각해 행동할 때 우리는 진실의 법칙과 나란히 줄을 맞추게 되고, 이 흐름을 뒷받침해 주는 연결의 법칙이나 카르마의 법, 봉사의 법칙 등 다른 법칙들도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심원한 영적 연결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탐구에 관련된 이해관계를 보여준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통합은 우리가 얼마나 신과 깊이 연결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일곱 번째 통합은 우리가 채널을 맞추고 있으면 인도되고 그 인도를 따를 때 동시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덟 번째는 우리가 또 다른 수준으로 서로 연결될 것이고, 그러면 의식의 대화에 대한 이해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아홉 번째 통합을 통해 우리 의식이 천국의 수준에 가깝게 되는데 모든 사람에게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내세에 가깝게 고양된 의식 수준이다. 열 번째 통합은 계속 채널을 맞추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하늘이 아는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내용이다. 열한 번 째 통찰은 의도와 기도의 사용이 현실화 될 것이며, 이 힘을 사용하는 비밀을 배우게 되리라는 것이다. 마지막 열두 번 째 통찰은 우리 뇌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높은 경로들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통합들을 전부 한데로 합친다, 즉 통합들을 통합한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영성에 대한 전체 그림을 이해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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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번째 예언!! 세계는 지금 종교전쟁을 두려워한다. 아마도 지구종말은 종교전쟁으로 인한 아마겟돈이 결말이 되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양극단으로 치닫게 되고 어느새 주위를 둘러볼 사이도 없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열두번째 예언은 그러한 경향에 대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언들 속에서 속속 드러나는 인간의 신성에 접근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즉 예언서로 나타내었다. 동시성을 지속하며 우리는 삶 속에서 우연이란 것을 느낀다. 과연 우연이란 것이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면 이제는 관심을 가질 때이다. 그것이 첫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을 가졌다면 의식의 대화에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줄 맞추기.. 이 개념이 애매하긴 하였지만 내 줌심에 나 자신을 오롯이 가져다 놓기라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후 신과의 연결이 시작된다. 우리가 중심을 가지고 내면과의 연결이 되었을 때 비로소 삶에서의 우리의 역할이 보인다. 그것은 개개인마다 다를것이지만. 그리고 채널을 맞추는 기술을 우리 안에서 끄집어 낸다. 채널링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채널은 중심에서 부터 주변으로 시선을 옮겨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하나 되려는 마음이며 바로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이 열린다. 이제 중심에서 부터 밖으로 나가다가 마침내는 나와 남이 구분이 필요없는 완전한 현존상태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는 줄거리였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함께 이 단계들을 경험을 하는 것을 느꼈다. 특히, 나의 의식도 함께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고양되는 것을 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별다른 장치도 없이 인류의 의식을 올려주는 듯하다.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를 아우르는 책이며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것보다는 오히려 읽으면서 각 단계들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을 안겨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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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레너드의 책은 처음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이 소설은 종말론에 따라 세상을 리셋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막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내적 여정을 위한 12개의 과정을 풀어냄으로써 독자들도 한 번쯤은 같이 동참해 보는 것도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 문서의 내용은 동시성 흐름에 머무는 방법에 관한 것으로 주인공이 식당에서 처음보는 손님과 대화를 하면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주인공은 거짓말을 이야기함으로써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다. 파트너인 윌은 주인공에게 “자신을 방어하라거나 그를 설득하라는 게 아니야 다만 자네가 보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진실하게 그에게 알려야 했다는 거야 자네 스스로 흐름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도록말이지.....중략 게다가 그가 자네에게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면 그걸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이런식으로 각 단계마다 문서의 내용이 나오고 주인공은 그걸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시행착오를 보여줌으로써 문서가 전하는 내용을 알기쉽게 독자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12번째 예언까지 설명되어진다. 소설을 읽다보면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과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두려움과 분노로 상황을 본다면 결국은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것이고 이 상황을 바꿀려면 내가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로부터 동심원이 퍼지듯 점점 더 퍼져간다면 아마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글 솜씨가 부족해서 소설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것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직접 읽어보시면 뭔가를 얻을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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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 제임스 레드필드의 천상의 예언을 그의 표현대로 정말 우연에 우연을 겹쳐 접하고 난 후 나는 그의 책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내다, 대인 관계의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천상의 예언을 다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속작이 궁금해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두 책을 연속해서 읽어서 그런지, 이책이 천상의 예언인지 열두번째 예언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 책은 비슷하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비슷하고, 내용을 실어나르는 이야기 구조 또한 매우 흡사하다. 단지 배경만 페루에서 이집트로 옮겨왔을 뿐. 그의 상상력의 부재에 다소간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한 책인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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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레드필드의 전작 『천상의 예언』은 읽기가 수월했다. 내용들이 갖는 상징성이나 비유가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되었고 그것들을 풀어내기 위한 ‘소설적 형식’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열두 번째 예언』은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전작이 ‘개인’을 상대로 영적인 가르침을 주는 것이었다면, 이책은 ‘집단’에 대한 지혜가 숨어 있다. 종교가 다른 집단들이 세계의 끝-종말을 도모하고자 하고, ‘나’와 ‘우리들’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려 한다. 우리는 모두 내면의 에너지 수준을 유지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높여 갔다. 그리고 윌의 말을 완벽하게 따라가며 이해했다. 우리 그룹은 이제 단순히 다양한 종교를 가진 자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역사를 세우는 일을 돕기로 한 영적 모임이었다. (p.171)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는 영적 체험을 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의 통합을 겪는다. 때로는 사랑을 느끼고 죽은 자와의 소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곁에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나아지도록 돕기도 한다. 놀랍고 신기한 상황들이라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중요한 3대 종교의 ‘예언‘이 동일한 구조를 가졌다고 언급하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첫째 내가 아는 상식에서 ’세계 3대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과 불교 이지만 이 책에서 불교는 상대적으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둘째, 그 종교들이 예언하는 ’마지막 때‘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하였다. 아마겟돈과 메시아, 각각의 종교가 말하는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오직 그것을 생각하느라 소설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동시성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면 명료함과 생기를 얻는다네.(p.29) 아가페를 통해 집단적으로 통합을 함께 한다는 사실이 충분히 매력적이고 가슴 떨리는 체험이었으나 책을 통한 경험은 -나로서는- 거기까지였다. 책의 전체를 온전히 읽어내지 못해서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앞으로의 독서 방향을 잡았다. 종교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가 무엇인지, 여기에서 불교 대신 밀도 있게 다루어진 ‘인디언의 종교’ 혹은 ‘유대교’는 어떤 흐름인지 ‘이슬람’ 종교와 문화는 무엇을 주로 논하려 하는지 -작가, 서양인의 눈에서 본 것과는 달리- 내가 동양인이어서 놓친 ‘세계사’의 흐름은 무엇인지 알아볼까 한다. 그 모든 것이 이해되고 난 후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온전히 ‘통합’과 ‘집단적 의식’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인류가 겪는 ‘종교’의 갈등이 결국 사람들의 믿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본질을 깨우쳐야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