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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존재이다. 시간과 공간에 의해 우리의 존재가 규정된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을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는 것도 선택할 수 없고 죽음 또한 자살이 아닌 한 선택할 수 없다. 시간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반면에 공간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부모나 스승의 영향으로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우리 삶을 규정짓는 것은 공간이다. 어느 공간에 서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가로 세로로 엮어진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선 공간이 바로 곧 내 삶이다. 안재구 선생은 1933년 10월 24일 아버지 안의환(安義煥), 어머니 김태숙(金兌淑)의 장남으로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외갓집에서 태어난다. 그 뒤 고향 밀양에서 항일혁명가인 할아버지 우정(于正) 안병희(安秉禧) 선생 슬하에서 성장한다. 1947년 5월 밀양중학교 1학년 때 노동절 집회를 주도하여 퇴학당한다. 이에 항거해 투쟁하다가 구속되고, 5월 미․소공동위원회 재개를 계기로 정치범을 석방할 때 석방된다. 외갓집에 가 몸조리를 하다가 밀양으로 돌아와 소년선전대 활동을 한다. 7․27 밀양군 인민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지만 탄압을 피해 다시 외갓집으로 피신한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힘을 합쳐 만든 구지중학교에 1학년으로 다시 입학한다. 그렇지만 학생 생활은 100로 끝나버리고 밀양으로 오고 간다. 안재구 선생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지식인이다. 양반이자 항일혁명가의 후예로 태어난 선생은 중학교 시절부터 독서회 활동을 시작으로 인민 해방의 길에 들어선다. 선생이 선택한 공간은 인민 해방의 길에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이 생각하는 인민의 해방은 무엇인가. 일본한테서 해방은 가짜 해방이고 미국한테서 해방이 진짜 해방이라는 인식이다. 이것은 당대 인민들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왜놈이 쫓겨 가고 왜놈 땅을 부치고 있던 농민은 소작료를 면했다. 조선 지주들의 논을 부치고 있는 농민은 3․7제 소작료로 좀 견딜 만했다. 곧 새 나라가 들어서면 토지개혁이 있을 것이고 농민은 이제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그해를 넘기자 신한공사가 생겨가지고 왜놈 땅을 부친 농민에게 ‘지세 고지서’가 날아왔다. 보리 수확을 하자마자 왜놈들이 알뜰히 빼앗아 가느라고 만든 공출령까지 나왔다. 군정 경찰을 데리고 미국 놈이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면서기가 설쳤고, 그래서 농민들은 말했다. “해방이라니 뭐 말라죽은 해방이고?” “왜놈한테서 해방은 1차 해방이고 미국 놈한테서 해방은 진짜 해방, 2차 해방 아이가.” (361쪽) 1945년 해방부터 1947년까지를 다루고 있는 선생의 자서전은 유장하다. 자신의 뿌리인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이 사는 마을과 이웃 마을을 세세하게 그리고 동지들과 함께 오간 산천의 모습과 풍속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해방 직후의 시대상황과 정세를 생동감 있게 설명하고 있다. 미군정의 행태와 친미사대로 옷을 갈아입은 친일세력의 횡포, 우익깡패의 행패를 고발한다. 정판사 사건과 여운형 선생 암살,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 과정, 예비검속 등 굵직한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 보인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은 당대 절대 다수였던 농민 민중의 것이라서 귀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가 친인척은 물론 이웃 사람들과 동지들의 삶도 살피고 있으니 대하소설에 맞먹는 감동을 준다. 이를테면 식민지 봉건조선의 비애가 서려 있는 복란이 아지매와 시청 새아재 부부의 사연은 가슴 저릿하게 아름답고 아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