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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남자』도서관 소년이었던 작가의 새로운 글쓰기를 접하다
"『혀끝의 남자』도서관 소년이었던 작가의 새로운 글쓰기를 접하다" 내용보기
새로운 작가를 알아가는 기쁨이 크다.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읽는 일, 그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난양 설렘이 가득하다. 백민석 작가의 이름을 신작의 제목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10년간 절필했다가 새로이 발표한 작품이라고 해 어떤 작가이길래 10년간이나 글쓰기를 멈췄을까 궁금함이 컸다.   『혀끝의 남자』에는 총 아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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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가를 알아가는 기쁨이 크다.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읽는 일, 그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알아가는 일은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난양 설렘이 가득하다. 백민석 작가의 이름을 신작의 제목을 보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10년간 절필했다가 새로이 발표한 작품이라고 해 어떤 작가이길래 10년간이나 글쓰기를 멈췄을까 궁금함이 컸다.

 

『혀끝의 남자』에는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중 두 편은 새롭게 쓴 작품이고, 일곱 편의 작품은 전에 쓴 작품을 새롭게 다시 쓴 작품이라 했다. 내게 『혀끝의 남자』의 아홉편의 단편들은 모두 다 생소한 작품이었다. 작품을 읽으며 이 작품의 제목으로도 쓰인 「혀끝의 남자」에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작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자 집중을 다했다.

 

아홉 편의 단편들은 거의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여행기, 작가의 어떠한 생각을 말하는 에세이 느낌이 강했다. 그의 작품은 소년 시절의 느꼈던 일들을 글로 써낸 느낌이었고, 아이들 만이 가지는 그런 생각들, 어쩌면 아이들도 이런 폭력적인 단어들을 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혀끝의 남자」에서는 인도를 여행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비슷한 여행을 하는 한국여자와 한국 남자를 만나 인도의 속을 들여다보는 여행기를 담았다. 인도 여행에서 만났던 남자가 혀끝의 남자인가. 머리에 불을 붙인 채 혀끝을 걷고 있는 남자라, 머리에 불을 붙인 인간을 못봤기 때문에 그는 신 일수도 있었다.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는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신데렐라 책의 여러 판본을 보유하고 있는 신데렐라 서점을 배경으로 한 내용으로 한때 도서관 소년이었던 주인공 '나'가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한두 권씩 책을 구입하고 다시 책을 읽게 되는 이야기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누가 떠민 것처럼 유리문을 열고 책방 안으로 반보쯤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아니면 누군가 손목을 잡고 안에서 당긴 것처럼. (117 페이지) 서점을 이용하는 젊은 여성들은 모두 신데렐라 책을 구입해가고,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가는 이야기여서 비밀의 서점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여자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때 신데렐라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여자들의 생각을 반영한 드라마도 많이 방영이 되고, 영화로도 나오는 걸 보면, 영원한 로망이 아닐까. 이런 여자들의 감성을 남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 같았다.

 

또한 「재채기」에서는 어느 집앞을 지날때마다 재채기를 하는터라 당연히 그 집에,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하지 않던, 자신의 직업과는 무관한, 그림 전시회를 다닌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도산한 가게나 집에 들어가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하는 한 남자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재채기를 했던 것도 한때의 꿈처럼 물거품처럼 사라져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마음을 담았다.

 

여러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작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뭔가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혀끝의 남자」에서도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 인도에서 만난 어느 소년의 모습을 보며 약간 환상적이거나 추상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10년간이나 절필하며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일을 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절필하는 중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한때 도서관 소년이었던 이가 작가로서 자신을 죽이면서도 책은 계속 읽었다는 것을 말했던 단편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은 작가 자신의 독백이었다. 작가로서 글쓰기가 숙명처럼 느껴졌을텐데도 글쓰기를 중단하고, 그 와중에서도 책을 계속 읽었던 작가는 이모티콘을 바라보는 이야기 속에서 글쓰기와 전혀 다른 삶을 살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했다.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다. 라고 말했던 작가의 맨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12.16. 신고 공감 8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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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남자》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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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백민석의 이번 소설집에는 신작 두 편과 십 년 전 이미 발표했던 작품을 다시 고쳐 쓴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우선 "10년 만에 돌아온"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자면, 신작 두 편에 대해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혀끝의 남자' 와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 콘' 두 편이 신작인데, 전자는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가, 후자에는 그가 글을 멈추게 된 과거의 정황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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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백민석의 이번 소설집에는 신작 두 편과 십 년 전 이미 발표했던 작품을 다시 고쳐 쓴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우선 "10년 만에 돌아온"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자면, 신작 두 편에 대해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혀끝의 남자'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 콘' 두 편이 신작인데, 전자는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가, 후자에는 그가 글을 멈추게 된 과거의 정황에 대해 드러나있다.

 

나는 백 년도 더 전의 한 남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백 년도 더 전의 그는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갔다고 했다. 장바닥의 구경꾼들은 그에게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한다.

우리가 신을 죽였으므로,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냐고.

우리를 두려워하냐고.

그런데 신 없이 살아간다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어제 누군가 신을 죽였다면 오늘 누군가 새 신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겐 서로 다른 이름을 지닌 신이 일억이나 된다.

-혀끝의 남자 중에서-

 

'혀끝의 남자'는 인도 여행기의 형식을 띠고 있다. 실제로 작가는 15년 전에 인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10년의 공백을 여는 작품으로 인도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도란 여타의 나라와는 달리,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순례라는 의미로 더욱 많이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아그라, 바라나시, 보드가야 등에서 뉴델리로 이어지는 그의 여정은 일종의 개인적인 순례기로 보인다. 작년 한해 하루키를 시작으로 출판계에 마치 '순례' 열풍이라도 분 것처럼 많이 출간이 되었었다. 하루키의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서기 위해서 16년 만에 헤어졌던 네 명의 친구들을 찾아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한 순례를 떠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레이첼 조이스의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서는 20년 전 회사 동료의 편지 한 통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떠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처럼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수잔 최의요주의 인물에선 주인공 리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속죄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김정남의여행의 기술에선 아들과 함께 죽기 위한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모두 색깔과 분위기는 다르지만, 과정이 어찌되었든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순례'란 보통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며 방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혀끝의 남자'에서의 나도 결국은 순례를 하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도 여행을 거쳐서 다시 돌아온, 2013년의 서울 사당동에서 머리에 불을 붙인 채 혀 끝을 걷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던 나는 신이 없는 삶이 어디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한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의 존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스스로 만들어낸 신일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 자신의 혀끝이 종교의 발상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종교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은 다시 씌어져야 한다는 일종의 선언문 같은 문장은 그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신작 두 편 외에 기존 발표 작들도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지금 여기의 시점으로 모두 고쳐 쓰여졌다고 한다. '신데렐라의 게임을 아세요?' '재채기' 정도만 술술 잘 읽혔지만, 사실 나머지 작품들은 한 번에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두어 번을 읽어야 했다. 여전히 어렵고, 통렬하고, 직설적인 그의 작품들은 대중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의 작품은 첫 번째 읽었을 때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문장의 맛이 더 살아나곤 한다.

 

그날 나는 벤치에 ' . ' 의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것이 감정을 띤 형태의 것은 아니었다. 딱히 슬픈 것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기본형 ' . ' 는 표정 없음이다. 정서적 반응이 없으니 표정도 없는 것이다.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 콘 중에서-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 콘' 10년 전 그가 절필을 했던 상황이 오롯이 담겨 있는 작품이라 어조는 가볍지만, 사뭇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도 나는 어딘지 ' . ' 의 표정을 하고 있다는 문장이 작가의 진짜 얼굴과 오버랩 되면서 자꾸만 웃음이 비져 나오고 말았다. 어쩜 이리 절묘한 표현이 있다는 말인가. 이모티 콘을 나도 문자든, 웹에서든 자주 사용하는 세대이지만, 사람의 표정과 그의 감정을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구나 싶어 이모티 콘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가 그렇게 절필을 선언하게 된 그 무렵 그의 몸무게는 거의 백이십 킬로그램에 육박해 있었고, 거의 말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고 한다. 기본형 ' . ' 에서 입까지 사라진 ' ' 가 되었다고.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여서, 그의 나머지를 살게 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다시 글을 쓰기 위해서 10년 이라는 시간이 왜 필요했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는 그런 와중에도, 책은 계속 읽었다. 왜냐하면 그는 작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도서관 소년이었고, 죽고 죽이는 와중에도 또 하나의 자신인 도서관 소년은 살아 남아 하던 일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인 것이다.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 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가 자신을 위해서도 더 이상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바래본다



r*******n 2014.01.23.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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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백민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동안 백민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용보기
'문화 소비 주체의 괴물적 상상력' 아마 이런 제목으로 백민석의 소설을 평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한창 엽기 문화가 주류 문화의 언저리에서 부상하던 때라, 자연스럽게 백민석의 소설은 그러한 문화 코드의 범주 안에서 평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붙힌 '괴물적 상상력'이라는 제목은 이런 '엽기적 상상력'을 조금만 비튼, 하지만 큰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않은 제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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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비 주체의 괴물적 상상력' 아마 이런 제목으로 백민석의 소설을 평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한창 엽기 문화가 주류 문화의 언저리에서 부상하던 때라, 자연스럽게 백민석의 소설은 그러한 문화 코드의 범주 안에서 평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붙힌 '괴물적 상상력'이라는 제목은 이런 '엽기적 상상력'을 조금만 비튼, 하지만 큰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않은 제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10년도 넘게 지났다. 그동안 문학은 내 삶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중심축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공부해서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생활이라는 중심 축 속에서 문학은 항상 내 주변에 있었지만,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가끔 신간을 읽고,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소설을 챙겨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소설은 읽지만 그 소소설에 대한 감상평 남기는 것도 힘들어,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문장을 메모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왜 백민석의 신간은 나오지 않는 것이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런 의문도 그만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백민석의 소설 <혀끝의 남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주문하고도 그의 소설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젊은 시절 그의 소설들이 가진 불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목화밭 엽기전>의 그 선명한 피의 향연을 기억하는 나에게 '백민석'이라는 이름은 어딘지 불편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며 그 불편함 속으로 행진하던 나는 어느듯 불편함보다는 편함이, 비극적 결말보다는 행복한 결말이 더 좋아지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펼친 백민석으로 소설들, 읽으면서 든 의문, '과연 백민석에게 소설을 쓰지 않았던 시간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소설은 일상을 다루고 있었다. 그 일상을 기록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니 백민석의 소설같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소설 같기도 하고, 그 경계가 매우 흐려진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백민석의 변화를 보고 좋았다. 그리고 깊어졌다는 생각도 했다. 그 변화가 2010년의 현실이 아니라, 절필할 당시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소설의 시간 공간적 배경 속에서 공유하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찾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처럼의 휴식이 찾아온 날, 찜질방에서 백민석의 소설을 읽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나의(그의) 소설을 가져가 버렸다.  백민석은 새로운 독자를 얻었고, 그 독자는 이 소설집의 내용으로 백민석을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아직 다 읽지 않은 세 편의 단편을 위해 다시 소설책을 사야할 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하는 나에게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2 2014.01.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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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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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신작과 일곱 편의 기발표작이라고 하는데, 아홉 편 모두 새롭다. 그의 복귀라기보다는 '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끝말이 그가 10년간 사색한 시간을 함축한 말 같다. 이번 혀끝의 남자를 읽어보면서, 많은 기대를 한 만큼큰 의미와 문학적 새로운 지성을 여러곳에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이눈여겨 볼 만한 책이다.새로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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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신작과 일곱 편의 기발표작이라고 하는데, 아홉 편 모두 새롭다. 

그의 복귀라기보다는 '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끝말이 그가 10년간 사색한 시간을 함축한 말 같다. 


이번 혀끝의 남자를 읽어보면서, 많은 기대를 한 만큼

큰 의미와 문학적 새로운 지성을 여러곳에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이

눈여겨 볼 만한 책이다.


새로운 시도로 적잖이 놀라게 했던 이 남자의 매력이 넘친다는 것

새삼스레 다시 느껴본다.



m***p 2013.12.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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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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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어둡고 어렵다. 빈 총을 들고 허공의 적을 향한 채 (평화롭기 그지 없는) 무료함을 달래야 하는 어느 예비군 훈련의 한 토막의 이야기, 일종이 기록이기는 하나 무엇을 기록하려고 하는지를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기록의 이야기, 최루탄의 추억의 이야기, 쓰는 이야기의 일종의 은유 같은 이야기. 어렵고 어려운 이야기들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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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어둡고 어렵다. 

빈 총을 들고 허공의 적을 향한 채 (평화롭기 그지 없는) 무료함을 달래야 하는 어느 예비군 훈련의 한 토막의 이야기, 일종이 기록이기는 하나 무엇을 기록하려고 하는지를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기록의 이야기, 최루탄의 추억의 이야기, 쓰는 이야기의 일종의 은유 같은 이야기. 어렵고 어려운 이야기들의 연속

YES마니아 : 플래티넘 t*******j 2015.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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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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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은 모험이 가득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이 당연하게만 생각되었다. 지금 어른이 되어 읽는 신데렐라는 신데렐라, 그녀가 맞는 행복한 결말을 보며 흐뭇하기도 하지만 신데렐라 앞에 나타난 멋진 왕자님의 모습은 나의 가슴도 두근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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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은 모험이 가득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이 당연하게만 생각되었다. 지금 어른이 되어 읽는 신데렐라는 신데렐라, 그녀가 맞는 행복한 결말을 보며 흐뭇하기도 하지만 신데렐라 앞에 나타난 멋진 왕자님의 모습은 나의 가슴도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런 멋진 왕자님이 나에게도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지만 멋진 주인공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동화 앞에 '잔혹'이라는 단어가 붙어 잔혹동화라는 말도 있지만 단편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끔찍한 상상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바꿔 버린 아주 슬픈 이야기였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신데렐라 책방> 주인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슬픈 잔혹동화였다. 가까운 곳에 <신데렐라 책방>이 있다면 나도 한번쯤 들여다 봤을 것이다. 몇 번 오고가다 책을 샀겠지. 왜 유독 예쁜 여자들이 신데렐라 책들이 있는 곳에만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겠지만 이 책방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거기에만 있나보다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 나도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가득찬 책장 앞에 서 봤겠지. 그리고 그곳은 나에게 그저 스쳐지나가는 책장일 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저 그렇게 끝을 맺는 것도 괜찮았을텐데, 몇 명은 신데렐라 이야기의 결말을 그들 자신의 이야기로 바꿔 버리고 말았다.

 

각 단편들을 완전하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혀끝의 남자], [폭력의 기원], [연옥 일기],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 [일천구백팔십 년대식 바리케이드], [재채기] 등 거의 모든 단편들은 어느 장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이야기들이었다. [연옥 일기]는 얼마전에 읽은 위화의 '제 7일'을 생각나게 했는데 죽고난 후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한 7일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연옥 일기]의 규칙이 없는 세상에 떨어져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피비린내가 나는 이곳에서 떠나지 못해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위화의 '제 7일'을 떠올리게 했다. 위화의 '제 7일'은 이승을 떠난 후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한 상태였긴 하지만 [연옥 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였다. 타인에 의해 삶이 바뀌었고 하늘을 나는 피가수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지만 1년 동안 먹지를 못한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없으니, 딱히 이들이 살아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내가 처한 상황대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단편들을 읽을때마다 하는 생각은 단편들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을까 고민한다는 것이다. 각 단편들은 그것대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들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그래도 대표 제목을 걸고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면 어떤 주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모호한 결말, 갑자기 끝맺는 이야기,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로 인해 단편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져 있는 대부분의 단편들은 '이 의미는 뭘까?'하는 고민을 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는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던 그녀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를 떠올리면 쉽게 마음을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황태자들에게는 신데렐라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여자들일 뿐이었을 것이다. 황태자들이 움직이는 세상속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가슴 아프지만 나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y*****6 2014.05.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