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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도 논의의 기본 전제로 사용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에 일본계 미국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저서를 내어서, 신뢰가 경제 작동의 기본이 되고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로 세계의 국가들이 이대별될 수 있다는 논의를 발표하여, 전세계를 한때 치열한 논쟁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그 구성분자들의 자격을 평가함에 있어서, "신용불량자"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활동자로 나누는 데서 알 수 있듯, 현행 자본주의 경제는 철저히, "신용'이라는 추상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 신용을 공여받은 자와 부여한 자 사이에, 물리적 족쇄나 법적 강제(많은 비용 지출이 수반됩니다) 없이도 원활한 거래, 혹은 계약 관계 안의 급부 교환이 가능하다면, 그 사회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 소비에만 신경을 기울이면 되고, 별도의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예를 들어 채무자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다든가, 계약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매 단계마다 별도의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면, 시스템의 공적 인력을 통한 이행 확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이 지출될 것입니다(예전에 "좋은나라운동본부"같은 TV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세요. 체납자, 채무불이행자의 추적과 처벌에 적정 수준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면, 그 사회는 세금 징수 단계에서 붕괴할 수 있습니다.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가진 자들은 더 이상 저축 섹터에 자신의 부를 노출하지 않고 "장롱"속으로만 은닉해 두거나, 신뢰가 확보된다고 판단하는 해외 경제 단위로 돈을 빼돌릴 것입니다).
저자 오영호씨는 행정고시 재경직 출신으로, 평생을 경제관료 생활을 통해 커리어를 다진 분이고, 서강대 교수, 무협 부회장을 거쳐, 현재는 KOTRA 사장에 재직 중인 분입니다. 이분이 1952년생이시고, 대략 20대 중후반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고 보면, 한국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를 갓 해결하려는 단계에서 벗어나 원자재 가격 폭등, 중화학 공업 위주 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극심한 성장통을 알던 시기인 1970년대말, 그리고 이른바 "3低의 호황"을 누리던 최전성의 도약기 1980년대를, 아직은 국가가 그 컨트롤타워를 관장하던 시절 정책 결정 관료로서 지켜 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분처럼, 한국 경제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 없는 기적 같은 도약을 맞이하던 시기를 회고하며, "현재의 교훈과 자율성 등은 충분히 살리되, 그 시절의 장점과 희열을 다시 살릴 수는 없을지?"를 담담히, 혹은 안타깝게 저술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정구현 자유기업원 이사장이 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있었구요.
베테랑, 원로들이 현 경제의 건강성과 실태를 활력 부족의 관점에서 걱정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성장하고 인생의 최절정기를 보내던 방식과는 달리, 현 경제의 성장과 건설을 담지하고 나가야 할 젊은 세대는 이른바 "3포"의 함정에 빠져 자활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추 세대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실정을 정확히 반영이라도 하듯, (비록 24000$의 사상 최고 규모의 국민소득을 달성했다고는 하나) 거시 실질경제 지표는 도무지 살아날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오영호 저자는 우선 1부와 2부에서 과거 회고담을 펼치고 있습니다. 1부의 1장은 1960년대, 그야말로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아 외화획득원의 주요 수단으로 삼던 시절의 눈물겨운 사연이 주를 이루고 있고, 2부로 넘어가면 때맞춰 발발한 월남전의 특수 덕에, 한국으로 대거 달러가 유입되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한국 장병들이 한사코 일제군수품 사용을 거부하여("일제 마크가 찍힌 제품을 입고 착용하면 싸울 사기가 살아날 수 없다!") 말단 병에 이르기까지 강력 항의하여, 미군도 공급선을 (가까운) 국내 업체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도 나오네요. 박정희가 당시 서독 대통령 뤼브케에게 충고를 받아 "산과 강이 많은 한국에서는 철도보다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독일의 아우토반을 염두에 두고)"라는 말을 귀에 새겼다는 대목도 흥미로웠고, "산업 전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깡다구 하나로 열악한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노동자들,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며 사우디의 사막에서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고 파이잘 국왕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거리라도 배려하여 할당하라."고 명령을 내렦다는 이야기에선 잠시 눈물이 돌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다시 오랜 화두를 꺼냅니다. "과연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우리는 저신뢰사회가 맞는가?" 이 보람찬 고도성장기에는, 사회가 온통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진만을 마음에 채우고, 다른 구성원을 향한 신뢰의 충전에 여념이 없었다는 거죠. 저자는 이 기저에 동아시아 한국 특유의 유교 윤리, 공동체 우선 사상, 연장자는 부모나 형, 누이처럼 대접하고 손아랫사람을 자식처럼 아끼는 풍조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적 같은 성장이 불가능했으리라 단정합니다. 유교 윤리는 당시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가장 순도 높은 신뢰를 제공하는 원천이었으며, 후쿠야마 교수가 주장하는 "신뢰"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우리 독자의 신뢰가 폭발적으로 발생하여, 성장과 번영의 가망이 보이지 않던 최밑바닥에서 여기까지 발전을 이뤄왔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현 시점에서 유교 정신의 복원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만(아마 저자와 비슷한 정치 경제관을 갖고 있을 리콴유, 마하티르, 또 홍콩의 재계 거물들도 같은 논리를 펴긴 합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에 족쇄매이지 않고 도약을 감행하려면, 구체적인 방법론이 따라붙는 "신뢰 재구축"의 컨센서스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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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경제의 귀환』을 읽고 우리 대한민국이 정말 자랑스럽다. 문외한인 내 자신이 생각해보아도 예전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지금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경제에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정부는 물론이고 전 국민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일의 과거의 놀라운 변화를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웠듯이 우리 한국의 모습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 웠을 정도니 말이다. 내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내 자신이 태어난 시기가 바로 한국전쟁이 끝난 지 2년 후였다. 정말 전쟁 이후에 모습은 상상만 해도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었고, 특히 시골에는 아주 전기시설은 물론이고 도로 등 모든 것이 과거의 모습을 유지한 마치 옛 왕조시절의 모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도 다니었던 60 여년대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70년도 초반의 고등학교 시절에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힘들었던 주변의 여건이었다. 그런 가운데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었고, 이것이 계속 이어지면서 오늘날의 우리 한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도 어려운 가운데에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저축하고 하면서 당당하게 한 국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이고 내 자신이라 확신해본다. 그런 우리 한국의 현황을 보면 앞으로의 낙관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였지만 여러 경제난관 등에 직면해있고, 경제 및 소득 양극화에 따른 사회갈등이 심화되어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 판단한다. 바로 이 분야의 여러 직책을 역임하였고 전문가 역할을 한 저자가 내리는 판단은 매우 시의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냉철하게 이 시점에서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냉철하게 짚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쪽으로 합심 단결하여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경제 50년을 시대별로 구분해 주요한 경제현안과 성과들, 사회적 자본의 변동과정을 통해서 신뢰와 경제성장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꾸 잃어버려 가고 있는 우리의 성장 DNA를 찾기 위해서는 저자는 바로 ‘신뢰경제’를 강조한다. 자꾸 잃어가고 있는 경제 분야에서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새롭게 도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세계 경제 있어서 우리 한국의 경제가 선도자적인 역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한국경제의 기적을 만들어 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확신해본다. 예전에 모든 것이 불리했을 때도 훌륭히 해냈기 때문에 지금 다시 도전한다면 훨씬 더 당당하게 그 임무를 해낼 수 있는 힘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