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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테아이테토스 -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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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episteme:앎   sophia:지혜  arete:덕   doxa:판단)앎이란 무엇인가?1. 앎에 대한 첫번째 정의: 앎은 지각이다(151d-186e)(1)테아이테토스의 첫번째 정의 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의 도입(151d-152c)어떤것의 이름을 이해하고, 정의를 내릴수 있다면 그것에 대해 아는것이다.(등변수, 직사각수라고 이름지은것은 그것에 대해 아는것이므로)그러므로 앎에 관해서도 그것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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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episteme:앎   sophia:지혜  arete:덕   doxa:판단)


앎이란 무엇인가?


1. 앎에 대한 첫번째 정의: 앎은 지각이다(151d-186e)


(1)테아이테토스의 첫번째 정의 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의 도입(151d-152c)

어떤것의 이름을 이해하고, 정의를 내릴수 있다면 그것에 대해 아는것이다.

(등변수, 직사각수라고 이름지은것은 그것에 대해 아는것이므로)

그러므로 앎에 관해서도 그것의 정의를 내릴수 있다면 그것에 대해 아는것이다.

앎은 그것을 지각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이 그렇듯이 여기서도 이런 가장 일반적인 명제로 시작하여 하나하나 쳐내어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을 쓴다.)



(2)비교로서의 프로타고라스의 학설(152c-160e)

1)헤라클레이토스적 학설의 소개 및 예비적 정당화(152c-153d)


<프로타고라스의 학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바람이 불어도 누구는 추워하고 누구는 안추워 하듯이, 지각은 각자가 느끼는 그대로 각자에게 있을수 있다.

그러므로 지각은 있는것에 대한 것이며, 틀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판단의 기준이 다르므로 진리는 상대적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학설: 만물유전설>

하나인건 아무것도 없다.

운동과 움직임 그리고 서로간의 혼합으로부터 우리가 '있다'고 말하는 그 모든것이 생겨난다.

어떤것도 있지 않고, 흐름과 움직임의 소산으로 늘 생성중에 있다.

정지는 부패,소멸되게 하는반면, 운동은 보존시켜준다.


->모든것은 다툼에서 탄생하며, 모든것은 끊임없는 흐름속에 있다.

이 두가지를 대표하는 물질은 불이다.



2)헤라클레이토스적 학설이 함축하는 놀라운 측면들(153d-155c)

그렇다면 지각이란 무엇인가? 변화하는 것인가?

->지각은 나타남이다.

그러나 그것자체가 변하는게 아니라면 다른형태로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자체가 변한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타남들이 도대체 어떤것들인가를 재검토함으로써, 나타남은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명시하고자 한다.


<나타남의 속성>

1. 어떤것도 그것이 자기자신과 동등한 한에서는 부피에서나 수에서나 결코 더 크게 되지도 않을것이며 더작게 되지도 않을것이다.

2. 더해진것도 감해진것도 없는것은 결코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고 언제나 동등하다

3. 이전에는 있지 않던것이, 과거나 현재에 생성됨이 없이 나중에 있는건 불가능하다.



3)헤라클레이토스적 지각설의 체계적 적용(155c-157c)

지각은 있는것인가?

->움직임에는 두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작용을 가할힘을 지닌것이고, 다른하나는 작용을 받을힘을 지닌것이다.

작용전에는 잠재적으로 있다가 작용후에는 실재적인 힘으로 표현된다.


작용과 받음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다르게 지각되므로) 그것자체로 "있다"가 아니라 "생성중에 있다"로 봐야한다.



4)예비적 비판을 통한 헤라클레이토스적 지각설의 극단화 (157c-160e)

특정한 지각성질은 특정한 지각상황에서 특정한 주관과 특정한 대상으로 묶여있어서, 주관과 대상이 인식 뿐만 아니라 존재적으로도 관련이 있다

곧 작용과 받음의 성질에 따라 대상의 질적변화가 일어나므로 그것 자체가 있는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관점에서 있다고 해야한다.


==>1차 결론: 앎 = 지각


 


(3) 프로타고라스를 곱씹어보기(160e-168c)

1)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예비적인 문제제기 (160e-163a)

->1차 결론의 문제점 제시

각자의 판단은 옳다지만 타인의 판단에 대해 판단할수 없게 됨. 그래서 산파술도 성립될수 없다



2)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변호 논변(163a-168c)

->1차 결론의 문제점이 드러났으므로 다른 방향으로 앎과 지각에 관한 2차적 시도:

보는것과 아는것은 같은가 다른가?

 

볾   = 앎(=지각), 보지못함, 그러므로 알지못함

기억 = 앎(=지각), 보지못함, 그러나 앎

-> 두 경우가 맞지않음.


==>2차 결론: 앎 ≠ 지각 



->3차 시도:

동일한 사람이 어떤것을 알면서 바로 그것을 알지못할 수가 있는가?


동일한 주체이더라도 주체 자체가 변화하므로 대상에 대한 기억은 경험과 동일하지 않다

(내가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옛날에 먹던 그맛이 아니다는것)

그러므로 동일한 사람이 어떤것을 알면서 그것을 알지못할수도 있다


==>3차 결론: 앎 ≠ 지각




(4)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첫번째 실질적 비판(168c-171d)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변증적(대화적) 자기논박 

인간은 참된 판단도 하고 거짓된 판단도 한다. 그러므로 만물척도설은 옳지않다.




(5)정의의 문제와 관련해서 변형된 프로타고라스 주의 (171e-178b)

자신의 본질이라는것은 없으며, 그것이 그렇게 여겨질때 "그 순간에만" 참이다




(6)여담(곁가지 이야기): 연설가의 삶과 철학자의 삶 대조(172c-177b)

인간의 판단은 경험의 영향을 받을수밖에 없으므로 자신의 주관으로는 옳다고 하지만 실제 옳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한 나쁜것들은 항상 있으므로 그것을 없애는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쁜것을 피하고 좋은것(신=정의, 경건)에로 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신에 동화, 이것에 대한 인식이 지혜요, 참된 덕인 반면 이것에 대한 무지는 어리석음이요 명백한 악덕이다.

그런데 철학자는 이러한 정의 및 불의에 대한 고찰의 노력을 하므로 그나마 참된 덕에 이르는 자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이 정치하는 나라는 정의로울 것이다.




(7)프로타고라스에 대한 두번째 실질적 비판 (177b-179b)

인간은 판정기준을 갖고있고 경험한것에 대해서는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판정기준은 경험하지 않은것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8)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에 대한 비판(179c-183c)

1)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179c-181b)

->프로타고라스의 이론대로 해보니 결론이 나지 않으므로 이제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으로 다시 분석해보자


<헤라클레이토스>

모든것은 움직인다. 그러므로 운동과 변화가 일어난다,


(내재된힘)   성질           지각

운동에 의해: 작용을 가함   작용을 받음

변화된다   : 성질의 것     지각하는것  으로 된다



2)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비판 (181b-183c)

운동을 하면 변화도 같이 이루어지므로 운동전의 그것은 운동후의 그것이 아니다. 

즉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알수있지만 변하므로 알수없다.

모든것이 움직인다면 그것의 정의를 규정지을수 없다.



그렇다면 1차결론인 앎=지각 도 성립하지 않는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고찰하기 위해 지각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살펴보자


(9)테아이테토스의 첫번째 정의에 대한 비판(183c-186e)

수단과 기능을 설명하면서, 몸의 수단(경험의 내용)을 총괄하는 기능을 하는 어떤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통해서와 의해서의 차이>

통해서: 수단(입으로 먹다)

의해서: 기능(입의 먹는 기능을 써서 먹다)   *입은 말하는 기능도 있음


<지각을 총괄하는것>

눈으로는 색깔을 지각하고 귀로는 소리를 지각하지만, 눈으로는 소리를 지각 못하고 귀로는 색깔을 지각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리와 색깔이 있다는 것을 지각한다

->곧 몸의 각 기관이 지각하는것을 총괄하는것이 있다. 그것은 영혼이다.


이렇게 지각을 총괄하는 영혼의 기능을 추론이라고 할때 앎은 경험과 관련된 추론속에 있다.

지각은 있음을 파악하지 못하므로 진리(앎)을 파악하지 못한다.


==>4차 결론: 앎 ≠ 지각 




2. 앎에 대한 두번째 정의:앎은 참된 판단이다(187a-201c)


(1)두번째 정의의 도입(187a-d)

판단이란 영혼의 작용 중에서 지각이 아닌 이미 인지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작용.

판단에는 참된 판단과 거짓된 판단이 있다.




(2)거짓된 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이분법적 난제들(187e-189b)

거짓된 판단은 왜 일어나는가?


1)첫번째 난제:앎과 알지못함의 난제(187e-188c)

자기가 아는 것들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여기는 경우는 없으며,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아는 것들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없으므로

이 경우에는 거짓된 판단이 불가능하다.


2)두번째 난제:있음과 있지않음의 난제(188c-189b)

있지 않은 것들을 판단하는자는 거짓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있지않은 것들을 판단할수는 없으므로 거짓된 판단이 불가능하다.




(3)난제에 대한 대안들(189b-200d)

참으로 거짓된 판단은 자신이 인지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1)첫번째 대안:착오 판단의 모델(189b-190e)

판단은 선입관이나 편견으로 치우치기도 하는데 그것을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므로 거짓된 판단으로 볼수 없다.


*생각한다: 영혼이 무엇을 고찰하든 그것과 관련해서 영혼 자신이 자신을 상대로 이루는 말

*판단:자기 자신을 상대로 하는 말



2)두번째 대안:밀납 서판의 모델(190e-196c)

기억은 일부 지워지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남아있기도 하는데, 그 지워진 것과 남아있는 것을 인지못하게 되면 부정확한 지각을 이성으로 끼워맞추게 되어 판단착오를 일으킨다.

그런데 이또한 인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므로 거짓된 판단으로 볼수 없다.


->다시 말해 지각의 상은 기억되기도 하지만 일부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워졌다는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또는 반대로 지각이 기억속에 있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여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다.

곧 부정확한 지각(나의 기억에 있는것과 없는것 중 내가 인지하는 것만으로)을 이성으로 끼워맞추게 된다


->지각과 기억에 대한 이와 같은 내용을 영화<라쇼몽>에서 다루고 있다.

근대 뇌이론에서는 뇌는 의식하기 전에 처리하므로 우뇌가 받아들인 현상에 대해 좌뇌는 왜곡한다고 한다.




3)세번째 대안:새장의 모델(196c-200d)
우리가 앎이 어떠한 것인지 논의 하는것은 앎을 모른다는 상태인데, 그렇다면 알지못하면서 안다는것을 정의한다는건 말이 안된다.

그러므로 앎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앎을 소유하고 있는지와 앎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할거 같다.


앎을 소유하고 있다는것은 새를 잡아서 새장에 가두어 놓는것과 같다. 곧 앎을 배우는것-> "학"

앎을 지니고 있다는것은 새를 잡아서 내 몸과 같이 조련할수 있는것과 같다. 곧 이미 소유한 앎을 운용가능하게 익히는것-> "습"


이 경우에 잘못된 앎을 소유하게 되면 ( 즉, 잘못된 앎을 옳은 앎으로 알고 배우게 되면) 거짓된 판단이 일어날수 있다.




(4)두번째 정의에 대한 직접적 비판(200d-201c)

부정확한 지각에 의한 착오의 문제점은 자신이 모른다는 걸 모르는데(인식하지 못함) 있다.

그러므로 앎을 인식하려면 앎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먼저이다.




3.앎에 대한 세번째 정의:앎은 설명을 동반한 참된 판단이다(201c-210a)

앎이 무엇인지 알기위해 참된판단이 앎이라는것에 대해 다시 논의해보자


(1)세번째 정의와 꿈 이론(201c-202d)

설득은 판단에 영향을 미치므로 

설득을 위해선 알려질수 있어야 하고, 알려질수 있으려면 설명이 가능해야 하므로

설명을 동반한 참된 판단이 앎이다.




(2)꿈 이론에 대한 비판(202d-206b)

1)부분과 전체의 딜레마를 통한 비판(202d-205e)


알려질수 있는것과 그렇지 않은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개별적인 요소는 알려질수 없고, 그것에 관련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서술되어야 알려질수 있다.

->ooo라는 이름만으로는 나를 설명할수 없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무슨일을 하는지 등의 나와 엮여있는 것들에 대한 서술이 필요하다는 뜻 같음


그렇다면 요소들은 인식될수 없는것들이지만 복합체의 부류는 인식될수 있다는것이 무슨뜻인가?

음소는 인식될수 없는것이지만, 음절은 인식될수 있는것이다.

->단어의 뜻을 모를때 사전을 보는것과 같이 "연필" 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할수 없다.

"입자가 달라붙을수 있는 표면에 무엇을 쓰거나 자취를 남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설명이 있어야 인식할수 있다는 뜻 같음


그렇다면 요소들과 복합체는 같은것인가 다른것인가?

양적 변화만 있는경우 (수): 같은것이다

질적 변화가 일어난경우(음절): 다른것이다.



2)경험적 사례를 통한 비판(206a-206b)

요소들 및 복합체에 대해 다른 경험이 있다면, 설명이 있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3)설명에 대한 해석:설명의 세가지 의미와 난관(206c-210a)

그렇다면 "설명"은 무엇을 뜻하는가?


1. 소리 속에 반영된 생각의 모상(각각의 것과 관련해서 자신에게 무슨 생각이 드는가를 드러내는 것)

2. 요소를 통해 전체에 이르는 방법

3. 다른 것과의 차이점을 말할수 있게 해주는 징표


-3번의 문제점 : 차이점을 기준으로 두게 되면 비교 대상에 따라 다른 개체로 인식될수 있는 오류가 있다.

연필은 지우개에 비해 긴것이 되고, 나무에 비해 짦은 것이 되듯이.



4. 결말-정의의 실패(210b-210d)

자신이 안다고 하는게 아는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앎에 대한 시도는 하는것이 좋다.

훌륭함으로 채워지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앎을 찾을때 차이성이 되었든 그 어떤것이 되었든 그런것에 대한 앎을 동반한 옳은 판단을 앎이라고 말하는건 전적으로 어리석은 일일세.

...그렇지만

이후에 자네가 다른것들을 잉태하고자 시도한다면 그러다 실제로 잉태하게 될 경우도 속이 비어있을경우도 지금보다 더 낫게 될것이네.

잉태하게 될 경우엔 지금의 탐문 덕에 자네는 더 훌륭한 것들로 가득차게 될것이고, 속이 비어 있을 경우엔 분별있게도 자네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안다고 여기지 않는 탓에 함께 하는 이들한테 덜 모질고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될것이네


m******5 2020.0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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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아이테토스-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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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학당에서 출판한 플라톤 전집 시리즈의 16편 째인 테아이테토스입니다.정암학당만의 특징인 자세한 작품해설과 주석은 고전읽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도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고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테아이테토스는 "앎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를 정리한 책으로써 앎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그 구성을 보면 1. 앎에 대한 첫 번째 정
"테아이테토스-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6" 내용보기

정암학당에서 출판한 플라톤 전집 시리즈의 16편 째인 테아이테토스입니다.

정암학당만의 특징인 자세한 작품해설과 주석은 고전읽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도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고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테아이테토스는 "앎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를 정리한 책으로써 앎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구성을 보면

 

1. 앎에 대한 첫 번째 정의 : 앎은 지각이다.

(1) 테아이테토스의 첫 번째 정의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의 도입

(2) 비교(秘敎)로서의 프로타고라스의 학설
       1) 헤라클레이토스적 학설의 소개 및 예비적 정당화
       2) 헤라클레이토스적 학설이 함축하는 놀라운 측면들
       3) 헤라클레이토스적 지각설의 체계적 적용
       4) 예비적 비판을 통한 헤라클레이토스적 지각설의 극단화
(3) 프로타고라스를 곱씹어 보기
       1)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예비적인 문제제기
       2)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변호 논변
(4)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첫 번째 실질적 비판 :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변증적(대화적) 자기 논박
(5) 정의(正義)의 문제와 관련해서 변형된 프로타고라스주의
(6) 여담(곁가지 이야기) : 연설가의 삶과 철학자의 삶의 대조
(7)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두 번째 실질적 비판
(8)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에 대한 비판
       1)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
       2)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비판
(9) 테아이테토스의 첫 번째 정의에 대한 비판

2. 앎에 대한 두 번째 정의 : 앎은 참된 판단이다.
(1) 두 번째 정의의 도입
(2) 거짓된 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이분법적 난제들
       1) 첫 번째 난제: ‘앎과 알지 못함’의 난제
       2) 두 번째 난제: ‘있음과 있지 않음’의 난제
(3) 난제에 대한 대안들
       1) 첫 번째 대안: ‘착오 판단’의 모델
       2) 두 번째 대안: 밀랍 서판의 모델
       3) 세 번째 대안: 새장의 모델
(4) 두 번째 정의에 대한 직접적 비판

3. 앎에 대한 세 번째 정의 : 앎은 설명을 동반한 참된 판단이다.
(1) 세 번째 정의와 꿈 이론
(2) 꿈 이론에 대한 비판
       1) 부분과 전체의 딜레마를 통한 비판
       2) 경험적 사례를 통한 비판
(3) 설명에 대한 해석: ‘설명’의 세 가지 의미와 난관

 

4. 결말 : 정의의 실패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말 앎이란 무엇일까요?

d******n 2018.0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