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연어’를 떠올리면 그 일생에 대해 대부분 연민이 솟거나 마음이 사무친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연어’를 읽기 전의 나는, 연어라는 물고기에 대해 그렇게 동정심 가득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태어나자 모천을 떠난 치어들은 저 먼 알래스카까지 헤엄쳐 가고 또 산란기가 되면 모천으로 돌아와 알을 산란한다. 그야말로 모천 회귀성 물고기인 연어. 나는 어쩌면 그들의 삶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모천으로 회귀하여 알을 낳는 것을 그들의 삶의 이유로 여기고 사력을 다하여 본능과 싸워 이겨내는 연어들. 그들의 성스러운 행동을 나는 그저 무엇에 홀린 듯 부질없고 가치 없는 짓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연어들에게 있어서는 ‘옆에서 바라보는 눈’이었기보다는 ‘위에서 바라보는 눈’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아름답게 여길 줄 몰랐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아름답게 여기며 바라본다면 위에서가 아니라 옆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위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연어의 행동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연어’를 원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연어들은 위에서 바라보는 눈보다는 옆에서 바라보는 눈에 목말라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연어들의 모천으로 회귀하여 산란하는 행위는 그저 본능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인 줄 만 알았다. 그에 따라 그들의 모천회귀를 그다지 연민이 담긴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안도현’님의 ‘연어’에서는 모든 연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은빛 연어’는 모천으로 회귀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다. 본능적으로 모천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은빛 연어’는 그 이유를 찾고 더 나아가 산란이 자기 삶의 이유라는 것까지 깨닫게 된다. 시험의 연속인 삶에서 연어들에게 삶이 내린 커다란 시험은 바로 폭포였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폭포를 뛰어넘는 것이 삶의 이유를 산란으로 여기고 있는 연어들에게는 굉장히 무모하고 쓸데없는 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어들은 기어코 폭포를 뛰어넘는다. 뱃속의 알들에게 뛰어오를 때의 그 기쁨과 환희를 고스란히 전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삶의 목표를 보다 완벽히 이루기 위해, 즉 산란이 삶의 목표이나 보다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기 위해 쉬운 길을 마다하고 폭포를 뛰어오르는 연어들의 모습에서 나는 여태까지 느낄 수 없던 그 무언가를 느꼈다. 솔직히 ‘연어’를 읽고 나서는 나도 다른 사람처럼 연어의 일생에 마음이 사무치거나 보다 동정어린 눈빛으로 연어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 전에 오히려 부러움 비슷한 것을 느꼈다. 보다 완벽한, 보다 훌륭한 알을 낳기 위해 끝없이 도전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삶의 완벽한 목표 달성에 집착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연어의 삶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그리고 모든 삶은 시험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험에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험은 지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시험이 눈앞에 닥쳐온다. 그런 시험에서 보다 쉬운 길이 있다면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쉬운 길을 마다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쉬운 길을 마다할 이유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탄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험난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험난한 삶 뒤에 얻어지는, 결코 순탄한 삶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교훈의 가치에 대해 사람들은 그다지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험난한 삶을 살고 나서도 잘 느끼지 못하는 교훈의 가치를, 순탄한 삶과 험난한 삶의 선택의 갈래에 놓였을 때 느끼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험난한 길보다는 보다 순탄한 길만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인 나에게 있어 당당하게 험난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연어들의 삶은 부러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연어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일생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는 것을 보고,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인간들보다도 당당한 선택을 하는 자신들에게 동정심을 갖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삶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 대해 ‘삶의 이유’와 ‘삶의 목표’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삶의 이유가 삶의 목표라면, 삶의 목표는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하겠다.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야말로 삶을 지속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며,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삶의 목표 역시 달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이유를 찾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삶은 그 때부터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삶의 목표를 보다 훌륭하게 이루기 위해 보다 쉬운 길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험난한 길을 택하는 연어의 일생에서 앞으로도 내가 연민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시험의 연속일 나의 삶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리보다는 선택 뒤에 내게 얻어질 것들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
| 은빛이 찬란하게 햇살에 비치면 광활한 바다 가운데서 수 많은 위험과 어려움에 찢겨진 지느러미를 다시 곧추세우고 어느새 초록강의 푸근한 품 안에서 붉은 빛 활기를 띄고 마지막 힘을 짜내어 폭포를 뛰어 오른다.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그 곳으로 가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희생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묵묵한 배경이 되길 바라면서... 은빛은 비로소 하얗게 공기 중에 흩어지는 물방울처럼 반짝 빛을 내고는 이내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바로 연어들의 길이다. 안도현의 [연어] 를 읽으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애썼던 은빛 연어의 깊고 깊은 마음이 내 마음에 물음을 던졌다. ' 너에게 삶의 희망은 뭐니?' 초록강이 은빛 연어에게 물었던 것처럼, 그리고 눈맑은 연어가 은빛 연어에게 마음의 눈으로 비춰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다시 묻는다. 단지 알을 낳기 위해서 그 험하고 힘든 여정을 가는 것임을 알았을 때 은빛 연어는 뭔가 좀더 의미있는 것이 있을 꺼라고 믿었다. 다른 연어들과 다른 몸색깔로 인해 어려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외톨이였던 은빛 연어지만 살만한 가치가 있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희생한 누나 연어를 생각하면서 끝까지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은빛 연어였다. 그런 은빛 연어가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던지면서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눈맑은 연어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마음의 눈으로 얘기할 수 있는 눈만큼이나 맑은 마음을 가진 연어를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눈맑은 연어가 말하는 삶의 의미는 알을 낳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폭포에 찢기고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여정 속에서도 기뻐하고 오히려 다른 연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이 진정한 연어들의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과 믿음 때문이다. 눈맑은 연어의 사랑과 초록강으로부터 들은 은빛 연어 아버지의 이야기는 은빛 연어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에게 연어들의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그가 연어로 태어난 삶의 이유이며 가치 그리고 의미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준다는 것... 비록 이름없이 사그러들더라도 누군가를 비춰줄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아름다움이 아닐까. 연어들은 진정 아름답다. |
| 은빛 연어가 상류로 회귀해 가는 이야기다. 연어에게는 연어의 길이 있다. 그래서 쉬운 길이 있지만. 폭폭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나만의 길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길이라는 것도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은빛 연어에게 강물이 배경이 되어주었고, 그를 위해 대신 죽은 누나 연어가 있고 그리고 '네가 아프지 않으면 자신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눈맑은 연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 수많은 배경들이 결국은 은빛 연어의 삶을 구성하는 게 아닐까? 은빛 연어는 근원적이 삶의 목표. '희망'이라 이름하는 것을 찾고자 했으나 결국 자신 또한 여느 연어들과 마찬가지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서 알을 낳고 죽는 그렇나 삶을 산다. 그러나 눈맑은 연어는 은빛 연어가 언제나 그 '희망'이라는 것을 품었다. 나 또한 어쩌면 그 '소망'이라는 것 발견하지 못하고 온전히 붙잡지 못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을 추구할수 있을까? 끊임없는 노력을 할수 있을까? |
|
성년식때였던 거 같다. 사랑 때문에 아파하던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해준 것이... 힘들때마다 읽곤 했었던 그 책이 또한 친구에게도 그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친구는 그 책을 읽으면서 울었다 했다.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한없이 울었다 했었다. 내가 책을 선물하면서 써 주었던 글귀가 생각난다.
"지금 힘들구 괴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거야. 그 때마다 이 책을 한번씩 읽어봐. 아니 이 책을 읽고 마음이 편해질 때 까지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봐. 내가 힘들 때 이 책을 읽으면서 힘을 얻었던 것처럼.. 너도 그랬음 좋겠다. 그래도 세상은 사랑이 있기에 아름다운 거야..."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단지 알을 낳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며 방황하던 은빛 연어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삶에 대한 인간적인 번뇌는 위험하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마침내,"쉬운 길은 길이 아니야" 라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외치던 은빛연어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인상깊은구절] '꽃은 꽃대로 아름답고 별은 별대로 아름답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이다. 등굽은 연어는 비틀어진 등으로 어떻게든 헤엄을 치려고 한다 그 고통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 그 상처가 왜 아름다운 것인지 선생님은 모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
|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간직된 말이다. 은빛연어와 그를 사랑하는 눈맑은연어 함께 고생하며 폭포를 거슬러 오르기까지의 주변의 다른 연어들의 삶이 결코 평탄하거나 쉽진 않았지만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고 무지개를 쫓는 헛된 꿈에서 깨어나서 현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은빛연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초록강의 아버지같은 넓은 마음과 포용력을 바탕으로 점점 성장한 은빛연어- 마지막 눈맑은연어와 자신들의 알을 낳으면서 그들이 느꼈을 행복이란 거창한것이 아니였던거 같다. [인상깊은구절] 그래,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 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
| 이 이야기는 모천회귀성을 가진 연어가 바다에서 초록강으로 알을 낳으러 거슬러 올라가며 일어나는 일을 쓴 글이다. 연어들 사이에서는 별종이라 불리는 은빛연어 곁엔 언제나 누나연어가 따라 다니며 그를 감싸준다. 은빛연어는 몸이 은빛인지라 다른 연어들보다 튀기 때문에 초록강으로 이동하는 중에 전후사방에는 다른 연어들이 그를 에워싸고 헤엄을 친다. 그러나 어느 날 바다 바깥 세상을 보고 싶어 수면 가까이로 떠오른 은빛연어의 목숨을 구하려 누나연어는 주위를 맴돌던 물수리에게 잡혀 죽게된다. 은빛연어는 누나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눈맑은연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면서 ‘보고싶다’ 라는 감정도 생긴다. 눈맑은연어는 곰의 위협을 받은 은빛연어를 구해주고 대신 자신이 피를 흘리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는 은빛연어를 위한 눈맑은연어의 마음이 정말로 따스해서 감동을 받았다. 거의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 처음에는 다들 쉬운 길로 가려고 했지만 폭포를 만난 연어들은 대장연어였던 은빛연어의 아빠처럼 인간으로 인해 기형이 되어 버린 등굽은연어를 제외하고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후에 태어날 연어들에게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모든 역경을 이기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납게 내려치는 그 거센 물살을 가르며 폭포를 뛰어 오른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초록강의 상류에서 은빛연어는 강물이 말한 카메라를 든 인간을 보고 구경 나온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카메라를 든 인간이 되어주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눈맑은연어가 상류 여울에 자리를 잡아 알을 낳고 은빛연어가 하얀 액체를 그 알들에게 뿌림으로써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마침내 그토록 힘들고 고된 여행을 마친 것과 동시에 연어들은 자신의 생을 마친다. 연어들은 이런 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스스로 마음이 성장하고 그로 인해 마침내 너그럽고 넓은 마음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점은 이 작품에서 ‘깊은 강일수록 흐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자신이 완성돼 갈수록 요란스럽지 않다는 의미인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게다가 이 책에 나온 징검다리는 자신을 사람들이 짓밟지만 그로 인해 행복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자신의 본 일에 충실하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자기의 위치에서 삶에 대한 만족을 느끼며 살았는가 생각해 보았다. ‘아,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하고 생각은 해본 적이 있지만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자신을 탓한 반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은빛연어처럼, 맑은눈연어처럼, 그리고 징검다리처럼 되기엔 너무나 멀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덮으면서 그것에 스스로 반성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모천을 찾기 위해 힘든 여행을 하고 알을 낳은 후 생을 마감하는 연어에게서는 작가의 말처럼 강물 냄새가 난다. 하루빨리 나도 강물 냄새가 나는 연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알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희생정신을 아는. |
| 이 책은 주둥이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으면서도 강물을 거슬러오르려는 은빛연어의 이야기다. 자유롭게 세상을 헤엄치고 싶었던 은빛연어, 알을 낳는 것 이상의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던 은빛연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난날 지도자였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연어들이 편한 길로 가는 것을 좋아할수록 연어들은 해가 갈수록 차츰 도태되고 만다는 거야. 인간들에게 서서히, 조금씩 길들여지다 보면 먼 훗날 폭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연어는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게 네 아버지의 생각이었지." 은빛연어는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새끼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거야. 그러나 우리가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그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지 않을까?" 연어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눈맑은연어에게서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은빛연어에게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힘겹지만 거슬러오를 줄 아는 용기와 인내를,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는 연어떼의 아름다움을... 또한 턱큰연어, 빼빼마른연어, 주둥이큰연어, 지느러미긴연어, 쪽집게연어 등 다양한 모습의 연어들에게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본다. 이젠 연어라는 말 속에 강물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 작가 안도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연어를 옆에서 볼 줄 아는 착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내 꿈을 향해 오늘도 거슬러오르는 삶을 기쁘게 살고 싶다. |
|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 '연어'는 시인 안도현씨가 쓴 첫 번째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사실 책 속에도 나와 있듯이 이 문장은 어떻게 보면 틀린 문장이다. 연어는 태어날 때는 강에서 태어나지만 일생의 대부분은 바다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강으로 돌아올 때는 알을 낳기 위해서이고 알을 낳은 직후에 연어는 죽고 만다. 하지만 이 문장은 틀린 문장이 아니다. ‘연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가 기억해내는 장면은 대부분 알을 낳기 위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모습일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폭포를 힘겹게 올라가는 연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장엄한 자연의 신비이자 인간에게는 말없는 자연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연어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일종의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자신이 태어난 초록강으로 되돌아가는 은빛연어의 여정을 담고 있다. 여행 도중 누이를 잃기도 하고 불곰에게 희생될 뻔한 자신을 구해준 눈 맑은 연어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숙명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폭포 앞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편한 길 대신에 폭포를 선택하고 마지막으로 알을 낳은 후 죽음을 맞이하는 은빛연어를 통해 결국 저자는 삶의 의미와 사랑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죽은 누이를 통해 희생을, 자신을 구하고 상처를 입지만 ‘네가 아프지 않다면 나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눈 맑은 연어를 통해 사랑을, 자신이 품고 있는 것들의 배경이 되는 초록강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통해 다음 세대를 이어갈 알을 낳는 연어들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또한 ‘등 굽은 연어’, ‘수염이 긴 연어’ 등 각자 개성 있는 이름을 갖고 있는 연어들을 통해 인간세계를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연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연어를 옆에서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마음의 눈을 갖는 것이다." 이렇듯 사색적이면서도 쉬운 문장, 교훈적이면서도 강요하지 않는 서술과 간결한 표현, 연어를 통한 우화라는 선택은 이 책이 가진 장점이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와 삶의 의미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
| "그래도, 아직은, 사랑이, 낡은 외투처럼 너덜너덜해져서 이제는 갖다 버려야 할, 그러나, 버리지 못하고, 한번 더 가져보고 싶은, 희망이, 이 세상 곳곳에 있어, 그리하여, 그게 살아갈 이유라고 믿는 이에게 바친다."라는 작가의 말로 시작하는 '연어'는 예전에 읽어서 감동을 받았던 조금 더 커버린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으면 느낌이 달라졌을 테고, 그 달라졌을 느낌도 알고 싶어서 다시금 이 책을 들었습니다. '연어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말만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 머리 속을 떠다녔습니다. 이 단 한 문장의 말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단지 연어의 일부분일지도 모르는 지식의 틀 속에 박혀서 연어가 강을 거슬려 올라가면서 무엇을 느끼며, 자신의 생명이 꺼져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을 놓고 죽어 가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고, 모천회귀성 어류라는 단어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나 역시 그런 분류와 분석에 얕은 지식만을 생각하던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러나 이 연어라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의 가슴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에 가슴이 복받쳐 올랐다.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풀리는 느낌 이 책을 읽어본다면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은빛연어는 다른 연어와는 다른 모습으로 등이 푸르지 않고 은빛을 띄는 연어였다. 그는 강으로 돌아오며 자신에게 중압감인 듯 했지만 사랑으로 자신을 감싸던 누나를 잃은 후,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절실함을 느끼지만, 무리 속의 생활은 그에게 답답함이어서 그는 마음으로 느끼는 누군가를 보기를 원했고, 자유를 갈망하는 이상주의적이지만 소극적인 연어였다. 그런 그에게 사랑은 운명인 듯이 다가왔다. 자신의 등 비늘과 닮은 알래스카를 넋을 잃고 보고 있다가 곰에게 습격 받을 뻔한 것을 한 연어가 구해준 것이었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너만 아프지 않으면 나는 괜찮아"라고 외롭고 쓸쓸한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눈맑은 연어를 만나게 된다. 초록강의 어귀까지 그녀를 그리워하며 강으로 돌아오던 그는 다시 그녀를 만나고 함께 강을 따라 올라간다. 초록강에게서 삶이란 무엇이며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눈맑은 연어에게서 자신들이 태어나서 이렇게 힘겹게 강물을 헤쳐나가는 모든 이유가 알을 낳기 위해서라고 듣습니다. 그러나 은빛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겨우 알을 낳기 위해서가 아닌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합니다. 그런 그에게 초록강은 속삭여 줍니다. 모든 생물이 태어난 것은 어떤 것의 배경이 되기 위해서라고. 별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기 때문이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만났던 계곡을 만났을 때 자신의 사명을 알고 알을 놓으러 높은 도약을 하게되죠. 알을 놓은 후 그와 그가 사랑하는 눈맑은 연어는 운명을 달리 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기의 연어처럼 자신의 인생에 희망이라는 것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지켜 나가야 하고 얻어야 하는 것을 갈망한 적은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어도 그 목표를 외면한 적은 없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내가 어리기에 잘 모르지만 앞으로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창창한 앞날은 순풍에 의해 돛배가 떠가듯 편안하고 쉬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바람도 심하게 불고, 파도가 심술을 부려 내 앞길을 막고 주저앉아 울어 버리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어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겠다. 그리고 "우리 연어들이 알을 낳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알을 낳고 못 낳고 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고 좋을 알을 낳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새끼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거야. 그러나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그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의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쉬운 길 대신에 폭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 뿐이야." 라고 말하는 눈 맑은 연어처럼 자신의 알들을 위해 용기를 내어 폭포를 뛰어 넘는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도 위험한 행동을 나는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엄마도 눈맑은 연어가 느낀 마음으로 나를 낳고 나를 지켜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엄마가 보여준 헌신적인 모성애도 나는 연어가 누나를 구속으로 보았듯이 나의 자유를 막는 하나의 장벽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어를 읽으면서 진하게 풍기는 모성의 향기를 느꼈다. 지금부터라도 엄마의 사랑의 반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순간의 편안함을 위해 쉬운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그 다음 단계를 위한 도전, 나 자신에 대한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생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거라고들 하지만 조금 힘든 것, 아픈 것도 참고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알들을 낳고는 흐뭇한 미소를 띄운 채 눈감을 수 있는 그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모성애와 회귀적인 본능, 도전정신을 을 나타내어 우리의 마음에 하나의 감동을 주신만, 이 책에서 작가는 여러 각도에서 여러 관점으로 인간세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 연어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무지개에서 막연한 희망을 발견하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은빛 연어, 지식이 아닌 총명한 지혜로 은빛 연어를 사랑으로 이끌어 주는 눈맑은 연어, 삶이라는 것을 숫자로만 제시했었지만 결국엔 연어들의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빼빼마른연어, 인간세계의 정치 지도자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해 놓은 턱큰연어, 무당을 상징하는 쪽집게 연어, 지식의 한계성을 그대로 노정하는 지느러미긴연어, 실속은 없고 요란하기만 한 주둥이큰연어 등은 세상을 나름의 사고와 주관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아주 재치있게 의인화시켜 놓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작가는 사람을 보는 방법에 따라서 사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과 옆에서 나란히 바라보는 방식 두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예컨대 연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은 낚시꾼 과학자 같은 이들입니다. 이들은 연어를 먹이감 정도로 보거나 관계맺음 없이 객관적 사물로 연구할 뿐입니다. 그러나 옆에서 나란히 보는 사람들은 어린이와 사진작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연어와 관계 안에서 바라봅니다. 전자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적이 |
| 솔직히 책의 앞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입되고 동화되기 보다는 책의 유명세 때문에,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뭐랄까. 어떻게 보면 뜬금없는 시작 때문이었고, 어떻게 보면 그간 나의 상상력이 빈곤해졌기 때문일까. 여하튼, 옛날에 안도현의 책을 한 번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쉽게 친화될 수 없고, 조금은 유치해보이는. 그러나 옛날의 그 책이 그렇게 단숨에 읽혔듯이, 이 책도 물살을 타니 쉽게 읽혔다. 책의 끝무렵에서는 나 역시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 그리고 초록강 등을 상상할 수 있었고, 그들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기했다. 나는 그점이 이 책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책을 읽는 법. 영혼으로 책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독특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영혼, 정신, 마음은 현재의 '자연주의적 인식론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길들임 속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선천적인 실체가 아닌가 생각도 된다. 이전에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던 영혼의 무게를 이 책은 다시 되살려준다. 마치 플라톤이 상기설에서 이데아의 세계는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되살려낼 수 있는 우리 안의 선천적인 무엇이라고 했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