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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네 계집질도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이 이상은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의 복수(複數)일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을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강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호리키에게 그런 말을 듣고 문득 “세상이라는 건 자네가 아닐까?” 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말을 삼켰습니다.
요조는 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서투르고 세심하고 여린 자신을 숨기려 ‘익살’스런 가면을 썼지만 그는 능란한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조심스러운 삶에서 고교 시절 호리키를 만나고 그는 일탈을 알게 되고 예기치 않은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되었고 자살방조죄로 갇히게 되며 가정에서 축출됩니다. 물론 하숙이랄까 위탁상황이기는 했지만 그 시대 대개의 동양 사람들이 그렇듯 떨어져 있더라도 가정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신세였을 테니까 그로부터 버림받는 상황은 축출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가 머물던 집의 넙치라는 인물은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오델로의 이아고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요조에게 적선을 하는 듯 위장하고 그의 가정으로부터 오는 지원금을 마치 자신이 내주는 듯하면서 그래도 대학은 가기를 바라는 그의 부모의 뜻을 마치 자신이 도와주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학비를 걱정하는 요조가 대학 생활과 그 이후의 삶의 경로라는 기회비용에서 멀어지고 끝내 막장의 인생경로를 향하도록 했으니까요.
넙치가 자신이 선심을 쓰는 듯 가장하지 않고 요조의 가정에서 학비는 선뜻 내주려 한다고 솔직히 토로했다면 학비를 걱정하며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인생 항로를 요조는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순간의 다른 이가 주는 혼선으로 요조의 삶은 막장을 향해 흘러갑니다. 동거나 술집 여성과의 관계, 장애인 미망인 약사와의 관계 등이 그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 당시의 그를 이후 술집 여성이 떠올리며 그는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는 것으로 보아도 요조 자신이 보는 자학어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외부의 평가는 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래에 그는 정신병원과 약물 중독자가 되는 말로를 맞이하지만 당시 그는 겨우 27세였을 뿐입니다. 생의 몇 막과 몇 장을 암연을 연기했더라도 다른 막을 그는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인생 실격]은 작가가 요조라는 인물의 수기를 입수해 책으로 출간한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작가가 그는 죽었냐는 물음에 지인인 술집 여성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가 어쩌면 이후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열린 결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여리고 민감해서 연약해서 세심한 정서라서 삶의 많은 대목에서 부대끼고 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끝내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전후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의 분위기는, 이 시대 상황과 닮아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시절에 좌절하고 절망하여 자살하는 많은 이들이 어쩌면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의 닮은 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상만으로 세상에 대적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그림자에 희망과 꿈이라는 빛을 비출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감상이 담기는 소설이었습니다.
붓다는 무상(無常)을 이야기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고통과 상처, 세상의 무거움과 짓누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는 벗어날 수도 있으리라는 말일 겁니다. 짙고 치명적인 트라우마도 적절한 대응과 노력으로 끝내 나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괴로움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은 하나의 터널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못 벗어날 것 같아도 결국 벗어나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자신의 터널에서 끝내 못 벗어나리라 스스로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다른 터널이 또 올 테지만 다음번에는 면역력이 작용할지도 모르고요. 모른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 어떤 감상을 남길지는 극이 끝나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곧 지나갑니다. 어떻든 어쨌든 말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무아(無我)와 공(空)을 이야기했지요. 어느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절대적인 정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겁니다. 시절시절마다의 자신의 모습은 언제나 달랐습니다. 유년기의 나와 취학 아동인 시절의 나와 청소년기의 나와 청년기의 나와 직장인인 나가 언제나 일관되기만 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느 시절의 아련한 자신을 그리워 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그래서겠지요. 가정에서의 나와 사회에서의 나와 이웃으로의 나와 갈등과 충돌 상황에서의 나도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한 시절의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 모든 걸 끝내 버리겠노라 판단할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한 시절 자신의 모습은 다음 시절 바뀔 수 있고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집착은 집착의 말로는 헛헛함일 겁니다. 나에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이런 나를 끝내겠다는 집착도 지나고 나면 헛헛함 이상일 수 없습니다. 모든 건 결국 지나갑니다. 어떻든 어쨋든...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세계에 있어서. 단 하나, 진리처럼 느껴진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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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남자의 열 살 전후의 유년 시절의 사진, 성장하여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진, 마지막으로 나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가장 기괴한 모습의 사진, 이렇게 세 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사진들에서 기묘하고 이상하고 으스스함을 느꼈고, 마지막 사진에서는 그 느낌이 점철되다 못해 사진을 봤음에도 얼굴이 생각나지 않고 그저 기괴하다 못해 섬뜩하고 불쾌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일본 도호쿠 시골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오바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해 지옥에 있는 것처럼 괴로웠고, 오히려 자신을 부러워하는 남들이 행복해 보여 부러웠다. 자신의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관념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인해 요조는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우울감과 신경과민을 숨기며 오로지 천진난만함을 가장하여 익살스러운 괴짜가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과는 다른 이미지의 익살을 연기해 낮은 품행 점수를 받으며 장난꾸러기로 보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본성은 그런 장난꾸러기와는 완전 정반대였다.
요조는 어린 나이에 집안의 하녀나 하인에게 범해졌음에도 그 추악하고 잔혹한 범죄를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하고 힘없이 웃으며 참았다. 어차피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쓸데없으니 그저 참으며 계속 익살을 부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요조에게는 인간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가운데 태연하게 살며, 서로 속이는데 누구 하나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그것은 더욱더 그가 인간을 두려워하며 익살로 자신을 숨기게 만들었다.
공부를 잘했던 요조는 동북의 어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먼 친척 집에 맡겨졌다. 그는 타향의 낯선 사람들 앞에서 몸에 밴 익살로 물오른 연기를 펼치며 전보다 심해진 인간에 대한 공포를 숨겼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은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심한 순간, 백치 같다고 생각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다케이치라는 학생으로부터 가장된 익살을 간파당하면서 불안과 공포를 다시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요조는 다케이치의 옆에 달라붙어 환심을 사려 노력하는데…….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다고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요조. 요조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 행복한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익살을 떤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에 항상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는 주인공 요조는 이웃 사람의 괴로움의 성질, 그 정도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요조는 다른 사람의 실제적인 괴로움, 그저 밥을 먹으면 그걸로 해결할 수 있는 괴로움이야말로 가장 심한 고통이라 밝히며, 다른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자신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것임을 말한다. 하녀와 하인들의 가증스러운 범죄에도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쓸데없다'라고 인간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참으며 익살을 부리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게 그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스스로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처 요시코 사건의 상처로 인해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고 다른 사람을 끝없이 의심하며 공포에 떨며 세상에서 영원히 멀어진다.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가 되는가?" 죄의식과 불안과 인간에 대한 공포, 그리고 허위로 가득 찬 세상과 배신이 만연한 삶. 결국에 요조는 인간실격이 되며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통해 불합리한 현실 세계에서 오직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인간실격이 되는 것뿐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로소 평온함을 느끼니 행복도 불행도 없을 따름이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책을 읽으면서 요조의 처절한 투쟁과 고통이 가슴에 와닿으며 다자이 오사무가 느꼈을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과 삶의 번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마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었기에 작가의 의도가 좀 더 깊게 와닿았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역시 책을 읽을 때는 번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는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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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극도로 두려워 하면서도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단념 할 수 없었던 주인공 '요조'는 최후의 구애인 '익살'을 택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무난하게 이끌어 간다.
가족들과 조차도 서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 지 알 수 없어서 두렵기만 한 요조지만 그는 가족들과의 평범한 관계가 깨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가족 내에서도 '익살'스러운 가면을 선택하고 자신을 위장하여 살아간다.
요조는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분노와 무서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본인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상대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을 감추고 살아간다. 요조는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드러내는 그들의 본성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을 이렇게까지 두려워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어린시절의 요조는 소위 나쁜 어른들로부터 추악하고 저속한 범죄를 당했음에도 주위의 어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그리고 요조는 가족의 어른들에게 그런 일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요조는 타인을 늘 그렇게 신뢰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요조에게 관심과 사람을 갖는 여자들은 늘 있었다. 하지만 요조는 그녀들에게도 주체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오로지 여자들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의지나 마음과 상관없이 관계에 이끌려다닌다. 그러다 요조는 문득 불안하고 두려움이 휩싸이게 된다. 가까워지는 관계 속에서 누구라도 요조의 마음을 온전하게 보듬어주는 이가 있었다면 과연 요조는 인간으로서 좀 더 아픔이 덜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진정으로 누구를 사랑할 줄도 할 수 도 없었던 요조는 다른이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인생이었다. 청춘의 아픔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결국 요조는 잠식당하고 말았던 거 같다.
읽는 내내 요조의 삶이 안타까웠다. 서글픈 인생을 짧은 불꽃처럼 살아간 요조의 인생을 읽으며,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해 다시 되돌아 본다.
* 이글은 리뷰어스클럽서평단으로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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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돌아온 제이콥입니다! 아직 중간고사가 안 끝났지만! 오늘의 책 인간실격 서평가지고 왔습니다~~!
<인간실격> 정말 많은 사람들한테 읽힌 책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좀 이 책을 읽기 꺼리워졌어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가 작년 친구가 연 독서모임인데요 그때 책을 못 읽고 참석했긴 하지만 그때 느낀 이 책의 우울한 감성때문에 한동안 이 책은 북리스트에서 배제되었다가 이번에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을 탈고한 지 약 한 달이 지난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책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인간 실격은 크게 총 3개의 수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주인공인 요조는 타인과 구별되는 감각을 갖고있기에 더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는 캐릭터에요. 개인적으로 여기서 <향수>에 나오는 나신을 떠올렸어요. 이러한 유별한 특성때문에 요조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정상인으로 보이기 위해 택한 수단이 바로 '광대짓'이에요. 이해는 안되지만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동의)를 이끌어내는 행위. 광대짓을 해보지만 결국 그는 다시 외로움을 선택하게 돼요. 중학생 시절의 나는 앞서 행해진 광대짓을 들킬까봐 두려워 이러한 두려움을 탈피하기 위해 술과 담배, 매춘부, 좌익과 같이 방황의 시간을 갖은 후 한 유부녀와 잠자리후 동반자살을 결심하지만 자신만 살아남은채 상황은 더 악화되기 시작해요. 이후 여럿 방황 후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이 책의 제목처럼 '인간실격'이라고 판단하고 폐인과 같은 삶으로 마무리되고 여기까지가 27살의 인생이었다고 책은 끝나요.
앞서 저자의 자살로 마무리된 인생에서 눈치채셨을 수도 있는데 바로 여기서 작가를 투영한 책이기도 합니다. 해당 도서는 1948년에 출간되었는데 전후 패전국으로서의 일본의 젊은이들이 겪는 여러 우울감과 방황감이 이 책에 많은 공감을 불렀다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우울한 소설을 비롯한 책들을 읽지 않으려고 해요. 그럼에도 제가 이 인간실격을 읽은 이유는 한 번쯤은 꼭 읽어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아직 인간실격이나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께 책 추천드려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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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장의 사진이 가장 기괴하다. 전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머리카락은 다소 희끗희끗한 듯하다. 그런 그가 심하게 지저분한 방(방의 벽이 세곳 허물어져 내린 것이 그 사진에 분명히 찍혀 있다.) 의 한구석에서 작은 화로에 손을 쬐는데, 이번에는 웃고 있지 않다. 아무런 표정도 없다. 말하자면 앉아서 화로에 양손을 쬐면서 자연스럽게 죽은 것 같은 ,그야말로 사위스럽고 불길한 냄새가 나는 사진이었다. (-10-)
또 학교 미술 시간에도 저는 그 '요괴식 수법' 은 감추고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그리는 식의 평범한 터치로 그렸습니다. "너는 위대한 화가가 될 거야." 여자들이 반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과 위대한 화가가될 것이라는 예언, 이 두 예언은 바보 다케이치에 의해 내 이마에 각인되었습니다. 이윽고 저는 도쿄로 나왔습니다. (-46-)
술, 담배, 매춘부 ,이것들은 모두 인간에 대한 공포를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달랠 수 있는 상당히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이윽고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수단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제가 가진 것을 전부 팔아도 후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52-)
저의 눈앞에서 호리키의 키스를 받는, 그 츠네코의 신세를 가엾게 여긴 탓입니다. 호리키에게 더렵혀진 츠네코는 저와 헤어져야만 하겠지요.게다가 저에게도 츠네코를 붙잡을 적극적인 열정이 없어. 아,이제 이것으로 끝이다, 라고 츠네코의 불행에 한 순간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즉시 저는 물처럼 순순히 포기하고, 호리키와 츠네코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싱글싱글 웃었습니다. (-74-)
다케이치의 예언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빗나갔습니다. 여자들이 반할 거라는 명예롭지 못한 예언은 맞았지만 , 분명 위대한 화가가 죌 거라는 축복의 예언은 빗나갔습니다. 저는 겨우 조잡한 잡지의 서툰 무며의 만화가가 되었을 뿐입니다. (-85-)
호리키는 집에 있었습니다.더러운 골목길 안쪽의 2층 빙으로, 호리키는 2층의 다다미 여섯 장이 깔린 방 하나만을 사용하고 있었고, 아래층에는 호리키의 노부모와 젊은 직인 세 명이 끈을 꿰기도 하고 박기도 하며 왜나막신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96-)
저의 주량은 서서히 늘어갔습니다.고엔지역 부근뿐만 아니라, 신주쿠, 긴자 방면까지 나가서 마시고, 외박하는 일조차 있었습니다. 단지 '관례'에 따르지 않기 위해,방에서 불한당인 척하거나, 닥치는 대로 키스를 하거나 했습니다. 즉, 그동반 자살 사건 이전이 아닌, 그 무렵부터 더욱 거칠어지고 야비한 술꾼이 되어, 돈에 쪼들려 시즈코의 의류를 들고 나가 처분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111-)
여러 판본으로 번역되어 있는 일본 소설가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 이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던 다자이오사무는 1909년 6월 19일에 태어나 1949년 6월 6월 13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딸이자 소설가인 쓰시마 유코가 있다. 주인공 오바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분신이며,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오바 요조의 친구 다케이치,호리키가 있으며, 오바 요조와 함께 한 여자주인공, 관계를 나눈 쓰네코, 시즈코, 요시코가 있었다. 회의주의자이며, 염세주의자였던 오바 요조는 불안과 걱정 속에서, 광대짓,광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전교 1등을 밥먹듯 하였던 다자이 오사무는 불안 속에 자신을 숨기게 된다. 친구 다케이치와 친구가 되었던 이유는 오바 요조의 숨어있는 행동의 특징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 후 오바 요조는 호리키와 만나서,매춘부, 퇴폐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쓰네코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 과정에서, 쓰네코의 죽음 ,그 죽음에 대해서 방조죄로 인해 요조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되는데, 위대한 화가가 되긴 커녕, 무명의 만화가로 겨우 풀칠을 하게 된다. 여기서 두번째 여자 시즈코가 나오고, 시즈코의 딸을 알게 된다. 요시코와 또다른 관계를 맺게 되는 요조의 죄책감과 무심함 속에서, 그는 자신의 무능과 무력함으로 인해 점점 더 파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 『 인간실격 』 은 오바 요조의 광대짓 뒤에 숨어있는 다자이 오사무의 페르소나,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실제척인 접근 뿐만 아니라, 전후 일본 사회의 불안한 존재감이, 오바 요조에게 노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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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자기 고백과 극단적 파멸이 돋보이는 자화상! 20세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디자이 오사무의 삶은 한편의 영화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유복한 집에서 병약하게 태어난 그는 수치와 자학으로 점철된 우울한 인생을 살다 갔습니다. 몇년전 원작은 아니지만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어 시청하면서 다시 읽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이번에는 원전으로 읽는 새움 세계문학으로 읽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디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통해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저에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p.11
39년이라는 짧은 인생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다섯 번째 시도만에 생을 마감한 작가는 무엇이 그를 이토록 처절한 자기 파멸로 이끌어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까요? 디자이는 고교 진학 후 당시 시대적 사조였던 공산주의 사상에 접하면서 1929년 처음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돈 없는 천민만이 옳다. 그러나 그는 천민이 아니었습니다. 작품은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 줍니다. 인간 세상과 사회 질서의 허위성이 그를 아프게 한 이유가 될까요?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세계에 있어서, 단하나, 진리처럼 느껴진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 머리가 부쩍 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마흔이상으로 봅니다. ---p.156
유일한 희망이었던 미덕에조차 의문을 품고, 이미 이것도 저것도 영문을 모르게 되어 향하여 갈 곳은 그저 알코올 뿐이었습니다. 얼굴 표정은 극도로 아비해졌고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고 이빨은 군데군데 빠졌으면 만화도 거의 외설적인 그림만 그리게 되면서 삶은 자포자기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책을 읽을 때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역자는 말합니다. 첫째는 공감, 둘째는 발견 이 둘 모두를 충족한 작품이 <인간실격>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주인공 오바 요조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과 슬픔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점이 독자로서는 마음이 아픕니다.
인간실격은 디자이가 평생 동안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들을 허구화한 유명한 작품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해명의 책으로 불리고 있고 그가 죽음, 자살을 지향한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스스로의 죄의 무게를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친가에 상황을 설명해 돈을 원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가족의 연락을 받은 듯한 인수인 남성과 호리키가 와서 "나"에게 병원에 가라는 말을 합니다. "나"는 행선지가 요양소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으나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미친 사람으로서 평가를 받아진 것을 느끼고, "나"는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고 평가합니다. 수개월의 입원 생활 후 고향에 간 "나"는 거의 폐인이 됩니다. 인생에는 불행도 행복도 없으며 모든 것은 단지 지나갈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디자이는 죽는게 최선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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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은 드라마로도 나온적이 있고, 아이유가 효리네민박에서 읽었던 책이기에 이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을 보며 처음엔 이렇게 추측했어요. 인간으로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술, 마약, 폭력 등 범죄를 일으키며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수준 이하 사람의 이야기. 책을 읽고 나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은 너무나도 순수하기에, 오히려 사람들의 양면성과 그 관계를 두려워하여 술,마약,여자를 가까이 하게 됩니다. 고등학생 때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 하숙집 생활을 하면서부터 누군가 쳐들어 올 것 같은 불안한 분위기에 휩싸여 싸구려 술을 먹게되면서 학업도 그림공부도 포기하게 됐으니까요.
주인공 요조의 이야기 어린 요조는 순수하고 착합니다. 다른사람이 주는 물건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아도 거절하지 못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도 것도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우물쭈물하며 공포감에 몸부림 칠 정도'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다른사람'에는 자신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차적인 가족과의 관계가 잘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유모의 손에 길러진 요조는 온실속의 화초 같다고나 할까요. 이 책의 결말을 보면, 차라리 버릇없는 반항아로 자랐다면 슬픈 결말은 아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책 후반부에서 자신의 3번째 여자인 요시코가 다른남자와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고도 요시코를 신뢰의 여자라고 표현하며 혼자서 고뇌하는 모습은 요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사실 요조가 이렇게까지 술,마약,여자에 의존하는게 쉽게 이해되진 않았습니다. (여자에게 쉽게 키스해주고 마음을 내어주는 헤픈 모습이 지금시대에는 이해되는게 더 이상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쓰여진 1948년이라는(2차 세계대전 패전)시대적 배경과, 주인공 요조의 상처받기 쉬운 감수성 등을 종합해 보면 어느정도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정신병원을 거쳐 한가한 시골에서 요양중일 때의 나이가 27살이었다는 사실. 평범한 생활로부터 멀어진 요조의 삶은 대체 얼마나 피폐한 일상이었을지 안타까웠습니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을 읽고서 작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있을까요?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는 너무나도 닮아있습니다. 책 뒷장의 작가연보에서 요조와 닮아있는 부분을 추려보았습니다. 부잣집아들로 태어난 점, 청소년기에 매춘부 여성을 만나게 된 점, 연인과 자살시도를 했지만 본인만 살아남은 점, 여러번의 자살미수, 남편이 있는 여자들과 복잡한 관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듯 합니다. 실제로 작가가 이 소설을 쓰고 한달 후 미망인과 투신자살했다는 글귀를 보고서 책에서 실현되지 못한 요조의 삶의 마지막 줄이 작가에 의해 실현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조의 한 친구, 세 여자 아래 인물에 중점을 두고 읽으면 요조의 감정선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듯 합니다.
1) 화실에서 만난 '호리키' - 이 친구로부터 술, 담배, 매춘부, 좌익사상을 배웁니다. 호리키는 늘 얘기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요조는 무시무시한 침묵에 빠질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며, 술 등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달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히로시마에 남편이 있는 매춘부'츠네코' 동반자살하지만 결국 요조만 살아남습니다.
3) 호리키 집에서 우연히 만난 여기자 '시즈코' - 모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요조는 스스로 떠납니다.
4) bar 맞은편 담배가게 '요시코' - 요조가 정신병원에 갈 때 까지 짐을 챙겨주는 인물이죠. 이 장면을 보며, 요시코가 다른남자에게 겁탈을 당했던 건지 스스로 관계를 맺은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지만, 후자쪽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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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로 속이면서 맑고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인간이 난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끝끝내 저에게 그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p27
저 자신도 섬뜩할 정도로 어둡고 참혹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가슴속에 기를 쓰고 숨기고 있던 내 정체야, 겉으로는 쾌활하게 웃고, 또 다른 사람을 웃기지만, 실은 이렇게 어둡고 참혹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야. 어쩔 수가 없어, p44
무서워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면 할수록 나는 무서워서, 모두로부터 멀어져 가야만 하는, 이 불행한 병적인 버릇 p10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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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인간실격'의 첫 문장입니다. 실제로는 서문이 추가 되어 있기에, 진짜로 저 문장이 소설의 첫 문장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강한 시작의 문장이 저 문장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저는 프로 문장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쓰는데에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마음가는 대로 쓸 뿐이지요. 평소에는 반말로 쓰는 평어체를 주로 사용하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존댓말로 쓰는 경어체를 쓰고 싶어지는 마음입니다. 방금 읽은 '인간실격'을 흉내내보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경어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보고 저 스스로 놀라야 했습니다. 존댓말이 낯설게 느껴지다니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평어체를 계속 접했나봅니다. 요새 인터넷 웹소설이라는 데에 푹 빠져서 계속 웹소설만을 읽고 있었거든요. 최근에는 소설속에 빙의되는 내용이 유행인지라, 주인공에게 처단받는 악역으로 빙의한 내용의 소설을 하나 북마크해두는 참이였습니다. 최신 웹소설을 전부 다 읽어버릴 기세로 인터넷 세상에 빠져서 숨도 못쉬고 얕은 호흡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서평이벤트 게시판에 '인간실격' 이라는 글자가 타이밍 좋게 보인 겁니다. 마치 잠시 고전의 어깨 위에 올라 제대로 숨쉬면서 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인간실격' 책을 산소 호흡기라도 되는 것처럼 간절하게 붙들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뜁니다. 저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은 '문호스트레이트 독스'라는 애니의 다자이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혀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실제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의 설정을 캐릭터로 가져왔기 때문에 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애니속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추측이 가능해지고 그를 진정으로 알고싶어지다고 하는 심한 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인각실격' 책을 처음 읽는 것임에도, 제목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간실격' 책을 받았을때, 새움출판사가 낯이 익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떠오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저 예전에 읽었던 책중에 새움출판사의 책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만 해보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인간실격'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니, 최근에 출판된 책 치고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번역되는 책들은 읽기쉽게 매끄럽게 번역을 할텐데 굉장히 옛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책의 날개로 돌아와서 번역자를 살펴보고 뒷날개도 살펴보니, 이 새움출판사 책을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리즈는 '위대한 개츠비' 책을 읽을때 접한적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번역이 어려워 정말 읽기가 힘들어 고난에 빠진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책의 뒷날개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원전으로 읽는 세계문학- "쉼표 하나까지 살리는 정확하고 바른번역을 추구합니다. 원전의 표면적인 의미와 감추어진 매락을 최대한 살리고자 원전 그대로의, 작가가 원래 쓴 서술구조 그대로의 번역을 지향합니다. 독자들은 '원서'를 접하는 듯,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작가가 일본사람이라 우리나라와 어순구조가 같아서 다행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첫 문장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부끄러움. '인간실격'을 읽는 내내 주인공인 요조는 뭐가 문제일까? 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요조는 어떤 아이였을까요? 대인기피증? 대인공포증? 저는 요조가 사람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거부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가볍게는 예민하고 우유부단한 아이, 좀더 나아가서는 사람과 교류를 어려워하니 이것도 자폐의 일종이라고 봐야하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읽어보니 요조는 사람은 물론 세상 그자체를 강하게 불신하는 아이였더군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는 꽁꽁 쌓여진 아이였던 겁니다. 그런 내용이 가장 강하게 표현된 부분이 마지막 부인인 요시코에게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웹소설을 읽을때에는 글 읽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어디가서 '저는 속독을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저의 글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강조하곤 하는데, 웹소설 읽을때만큼은 없던 속독 스킬이 생겨나 글을 그냥 후루룩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전소설, 특히나 유명하고 명작이라고 소문난 책이라면 글 읽는 속도가 하염없이 느려집니다. 한글자 한글자를 정독으로 읽어버리기 때문에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인간실격'은 제일 뒤에 작가의 연보까지 다 합쳐도 총 페이지가 171페이지가 나오는 아주 작고 얇은 책입니다. 책을 빨리 읽으시는 분들은 단 몇시간만에 책을 다 읽어버릴 정도로 가벼운 책이지요. 하지만 저는 책을 정독으로 느리게 읽고, 또 일부러 중간중간 멈추면서 틈을 들여서 읽었습니다. 내용이 증발해나가는 것을 잡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읽다가 문득 자연스레 읽음이 멈춰지고 명상에 들어가듯 '인간실격' 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구간이 바로 마지막 부인인 요시코가 나올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요조라는 인간은 왜 저모양일까? 혀를 쯧쯧 차면서 읽었는데, 요조가 자기 부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아파했을때 무언가 다른 느낌이 온것입니다. 요조와 요시코는 정반대의 인물로, 요시코는 요조에게 없는 심성을 가진 인물임과 동시에 단하나의 희망, 그저 신 그자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요조가 인간불신 그 자체라면, 요시코는 무구의 신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요시코가 신뢰했기 때문에 더럽혀졌을때, 그 신뢰가 더렵혀졌을때, 요조는 차라리 몸이 더렵혀졌더라면...이러면서 신뢰가 무너진것을 마음아파합니다. 차라리 마음이 동해서 그런거였더라면 마음이 안아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요조를 보며, 과연 무구의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 라고 묻는 대목에 마음이 아파지기 까지 했습니다. 정말...죄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처음에 책을 받았을때에만 하더라도 11월 독서모임은 '인간실격'으로 해야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이 작고 가벼운 책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져버립니다. 책이 무겁게 느껴질때, 어쩐지 손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런 책이 저에게는 '싯다르타','칼의노래','프랑켄슈타인' 입니다. 여기에 이제 '인간실격' 도 포함시켜야겠군요. 정말 죄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책 속에서는 죄에 반대는 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제일 마지막에 요조는 신과같은 아이였다고 하죠. 인간실격은 인간에서 실격되어 타락해 나가는 이야기가 아닌, 어쩌면 신이되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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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을 조금이라도 접해보고, 관심을 가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이자 다자이 오사무 소설가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라고 불리울 만한 '인간실격' 제가 이 소설을 읽기전에 다자이 오사무란 소설가에 대해서 많은 정보들을 인터넷을 통해 얻다가 직접 읽게 되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일생에 관해 쭉 읽어보고 이 소설을 접해보니,, 소설에서의 주인공 ' 오바 요조'의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마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그의 가족과 본인의 사회적인 위치 , 겪었던 일들이 90%이상 비슷한 점들이 많았죠. 그래서 160여쪽밖에 안되는 짧은 내용이지만 , 안에 들어간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겪어보지 못했을 듯한 사건들에 온 집중이 되며 감탄하게 되었죠. 오바 요조 본인은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재력을 가진 가족의 일원이지만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서 ,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들 눈에 어떻게 자신이 보이는지에 대해 상당히 신경쓰고 , 남들 눈치를 보며 ,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예의상 상대방 비위를 맞춰주고, 남들을 웃기게 하는 '익살'을 많이 보여주는 가면을 쓴 연기를 하며 지내죠. 그러한 결과 ,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학업성적도 꽤 괜찮았고(호리키 마사오를 만나 매춘,알콜,담배등 안 좋은거에 대해 배우기전엔) 주변 지인들에게 웃음을 주는 광대 혹은 코미디언같은 선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잘 지내왔지만, 내면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여전히 안절부절 하였죠.. 그러는 와중에 위에서 얘기한 호리키 마사오를 만나고 인생이 아예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나쁜것에 물들어서 매춘부를 만나러가고, 맨날 알콜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본인은 그때만큼은 남들 눈치 안 보고 편안하다고 생각하죠.. 그의 익살과 잘생긴 외모 덕분에 많은 여자들과도 만나 다양한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데 사랑이라고 느낀 첫 여자 쓰네코와의 첫날밤 이후 같이 어울리다 동반 자살까지 했지만 그녀만 목숨을 잃게되면서 본인은 더욱 붕괴해져가는데,,
그 다음에 만난 두번째 여자 잡지사 직원 시즈코와 그녀의 딸 시게코와 같이 살면서 알콜중독같이 술만 먹고 지내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면서 더욱 초라해져만 가게되죠.. 소설의 전체적인 우울하고 우중충한 분위기처럼 마지막엔 오바 요조의 삶이 붕괴 되면서 끝나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제 눈길을 끌었던 건 인간의 위선적인 행동들을 뭔가 아름답게 묘사한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인간실격#다자이오사무#새움출판사#리뷰어스클럽#일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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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이라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을 통해 만난 다자이 오사무는 퇴폐와 허무, 삶과 죽음,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패전 후 일본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대표적인 작가이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느낌이 음산해진다. 다자이 오사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는 허무와 격정, 비관과 간절함, 죽음과 삶에 대해 쏟아내는 그 절절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부를 축적하는 불합리함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간극은 점점 더 멀어지는 빈부의 격차에 환멸을 느낀 그와 소설속 주인공 요조는 너무도 흡사하다.
본인 혼자만 다른 인간인듯한 불안과 공포로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그가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로 생각해 낸 '익살'로 필사적이면서도 위기일발의 줄타기 같은 진땀나는 서비스를 해야하는 요조, 그는 어쩌면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살기 위해,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가족을 위해 등 어떠한 이유에서도 지금의 우리도 가장된 '익살'을 내뿜으며 살고 있다. 요조는 서로 속이면서도 맑고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인간이 난해했기에 필사적인 익살 서비스를 퍼부었으며 그로인해 풍겨지는 누구에게도 호소 못한 고독한 냄새가 본능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의 후각을 자극하고 추문의 대상이 된다. 어쩌면 그런 그에게 '가면'은 자유와 해방일지도 모른다. 마치 진짜 자신은 짙은 화장 아래로 감춘 채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맞는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 마냥 우리 역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세상 속에 존재한다. 요조의 연기는 절망감 속에 바다로 뛰어 들었으나 다행히(?) 그만 살아남아 자살 방조죄로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그를 심문하던 순경에게 진술한 후 스스로 '신들린 연기였다'라고 말하며 절정을 이룬다.
인간실격을 상징이라도 하려는 듯 소설의 말미에는 허무와 죽음이 가득하다. '아버지가 돌아 가셨음을 알게 된 후 '그야 말로 폐인'이라고 읇조리는 장면이나, 정신병동에 갖힌 그의 '인간 실격, 이미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다'라는 주문이나, 늙은 식모 데쓰가 사온 칼모틴(진정 최면 성분이 있어 불면증, 신경쇠약, 구토 등의 치료제로 사용함)이 설사약 헤노모틴임을 알았을 때 관조적으로 말하는 '지금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다'등은 다자이 오사무의 정신 세계를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다. 단지 모든것은 지나가 버렸고 그는 그렇게 갔다. 죽음은 무료하다. 죽음은 죽음이다. 죽음을 미화할 생각도 포장할 생각도 없다. 다만 죽음이 죽음 그 자체로 끝나버림이 아쉽다. 그래서인지 오쿠노 다케오는 '인간실격이라는 작품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을 읽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스스로를 실격시켜버린 이 땅의 모든 실격자들을 위한 책이다. 그저 인간이 느끼는 허무를 노래하는. 끝으로 다자이 오사무가 말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적어 본다. '나는 확신한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쩔 수없이 우리는 '인간미'와 '인간실격' 사이에서 작두를 타야 한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つかないので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