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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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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사서 다시 읽어봄.  카이사르는 인물형이 매력적임..  그러한 인간형이 그시대와 사회의 조건에서만 가능할지, 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가능할지 잘 모르겠음.  실존했다고 하더라도 카이사르는 소설속에서나 있을 운빨의 우연하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일지두.  인상적이었거 한 가지라면 문체였음... 갈리아 전기를 시작하며,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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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사서 다시 읽어봄. 

카이사르는 인물형이 매력적임.. 

그러한 인간형이 그시대와 사회의 조건에서만 가능할지, 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가능할지 잘 모르겠음. 

실존했다고 하더라도 카이사르는 소설속에서나 있을 운빨의 우연하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일지두. 

인상적이었거 한 가지라면 문체였음... 갈리아 전기를 시작하며,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바로 들어가는 문체. 이 책 저자처럼 그러한 글쓰기는 매력적임.  옛날 시간강사 잡놈은 그런 방식을 중학생이나 하는 방식이라고 여겼겠지만,,,그거는 그놈 수준이 그모양이었니.. 그런 놈 눈에는 그리 보이는 거고...

재밌는 책임. 

 

 

YES마니아 : 로얄 e********g 2022.1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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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4(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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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4 율리우스 카이사르(상) 읽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적 배경은 공화정 로마가 원로원파와 민중파가 극한 대립의 시기 였으며 카이사르에 의해 민중파가 권력을 잡는 시기가 되며 카이사르가 원로원파인 봄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 이후에는 카이사르가 독재관이 되어 독재정치가 실시되고 카이사르 사후에는 공화정 로마가 재정로마로 전환된다 가이우스 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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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4 율리우스 카이사르(상) 읽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적 배경은 공화정 로마가 원로원파와 민중파가 극한 대립의 시기 였으며 카이사르에 의해 민중파가 권력을 잡는 시기가 되며 카이사르가 원로원파인 봄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 이후에는 카이사르가 독재관이 되어 독재정치가 실시되고 카이사르 사후에는 공화정 로마가 재정로마로 전환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틴어: Gaius Julius Caesar: 기원전 100년 7월 12일 ~ 기원전 44년 3월 15일) 또는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 공화국의 정치인, 장군, 작가이다. 그는 로마 공화국이 로마 제국으로 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치적으로 카이사르는 민중파의 노선에 섰다. 기원전 60년대 말에서 5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소위 제1차 삼두 정치라는 초법적 정치 연대를 이루어 수년간 로마 정계를 장악하였다. 이들 파벌은 자신들끼리 권력을 분점하고자 하여, 원로원 내에서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등 벌족파의 반대를 받았으며,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이에 가세하기도 하였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기원전 58년 ~ 52년)하여 로마 제국의 영토를 북해까지 넓혔으며, 기원전 55년에는 로마인 처음으로 브리타니아 침공을 감행하였다. 이러한 공훈 덕분에 카이사르는 강력한 세력가로 입지를 굳혀 폼페이우스를 위협하게 되었으며, 카라이 전투에서 크라수스가 전사하면서 삼두정의 두 정치가 사이에 긴장이 높아졌다. 이렇듯 로마 정계가 재편되면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서로 대치하게 되었으며, 폼페이우스는 원로원의 대의를 내세웠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단으로 하여금 루비콘강을 건너게 하는 결단을 내려 기원전 49년에 내전이 일어났으며, 파르살루스 전투, 탑수스 전투 등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로마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등극하였다.

정권을 장악한 뒤 그는 로마의 사회와 정치에 광범위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는 공화정의 귀족 정치를 고도로 중앙집권화하였으며, 급기야 자신을 종신독재관으로 선언하였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에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이끄는 일군의 원로원 의원들이 공화정을 복고하고자 음모를 꾸며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 그러나 또 다시 내전이 일어났으며, 결국 카이사르의 양자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가 영속적인 전제정을 성립하였다. 카이사르가 죽은 지 기원전 42년에,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공식적으로 로마의 신으로 축성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후 그의 공식명칭은 신격 카이사르가 되었다(Divus Caesar). 또한 그 이후부터 로마 황제가 죽었을 경우 후임자가 그를 신격화시키는 것이 관례화되었다.

카이사르의 삶은 본인이 쓴 전쟁 기록(갈리아 전기, 내란기)을 통해 상당 부분 알려져 있으며, 정적임과 동시에 오랜 친구였던 키케로와의 서신과 그의 연설, 살루스티우스의 기록, 카툴루스의 시 등 당대의 다른 사료도 남아 있다. 또 아피아노스, 수에토니우스, 플루타르코스, 카시우스 디오, 스트라본 등 여러 후대 역사가들의 기록도 그의 삶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카이사르는 행운을 타고 났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비범한 인물이 뛰어난 소질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결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며, 악덕과 무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어떤 군대를 이끌어도 승리자가 되었을 테고 어떤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다음 다섯가지 자질인 지성, 설득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인간의 자질로서 천재적인 재능이 타고난 인물인 것으로 보이며 정치, 경제, 군사, 연예 등 모든 분야에 타고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장군으로서 전쟁에 대한 전략과 전술, 군사를 이끄는 지도력, 전장에서의 판단력, 적군에 대한 아량 모든 면에서 이간 이상의 사고를 초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사고에서는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상인을 통한 상업적인 방법으로 축적하여 군사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으로서 적군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하고 사뀌는 여자를 잘 다루어 원한을 사지도 않는 등 대단한 사교성을 갖고 인간의 감정을 잘 교감한 것으로 보인다


k*******3 2024.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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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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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본 도서를 완독하고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평이 들어있습니다.여기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구매 후 리뷰를 참고해주세요 어릴적에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북으로 재구매 했어요 잊었던 내용이나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생각나서 옛 생각 나고 좋네요 역사서로 구분이 되어 있지만 사견도 들어있고 내용이 딱딱하지 않아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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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본 도서를 완독하고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평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구매 후 리뷰를 참고해주세요 어릴적에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북으로 재구매 했어요 잊었던 내용이나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생각나서 옛 생각 나고 좋네요 역사서로 구분이 되어 있지만 사견도 들어있고 내용이 딱딱하지 않아서 역사에 흥미를 잃으셨던 분들이 다시 한번 되짚어 읽어보기에 좋은 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y******i 2023.1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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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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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4 - 시오노 나나미 <김석희 옮김>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 건국 653년, 기원전 100년 7월 12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났다. 카이사르의 율리우스 가문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어머니가 속한 알바롱의 명문 가문이었으나 그리 주목받는 가문은 아니었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학자 집안 출신으로 자식을 위하여 교육에 많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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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4 - 시오노 나나미 <김석희 옮김>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 건국 653년, 기원전 100년 7월 12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났다.

카이사르의 율리우스 가문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어머니가 속한 알바롱의 명문 가문이었으나 그리 주목받는 가문은 아니었다.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는 학자 집안 출신으로 자식을 위하여 교육에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청년 시절까지 평범한 로마 귀족의 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으나 때를 기다리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야망을 가진 젊은 이었다. 술라가 집권을 잡았을 때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있어서 해외로 도망을 나갔다가 술라가 죽은 후 로마로 돌아오기도 했다. 여느 영웅들과는 달리 카이사르에게는 좀처럼 출세길이 열리지 않았다.

외삼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사장을 대신 맡기 시작하면서 37세에 로마의 최고 제사장, 39세에 법무관, 그 이후 집정관이 되어 에스파냐 속주의 총독으로 부임을 한 경험이 있는 카이사르는 집정관 출마를 결심하지만 당선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군사력과 크라쿠스의 경제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기원전 60년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쿠스와 협력하여 집정관에 당선이 되었는데 이를 '삼두정치'라 한다.

카이사르는 딸 율리아(22)을 폼페이우스(47)에 시집을 보내면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놓고 카이사르는 전직 집정관 자격으로 갈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북쪽 국경을 불안하게 했던 갈리아 부족과 게르만 부족을 평정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8년부터 기원전 51년까지 8년 동안 갈리아 전쟁이 계속되었다. 카이사르는 군사적 재능과 군주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갈리아 전쟁에서 승리를 이어나갔다. 알프스 북쪽의 갈리아 지방(현재 프랑스 북부, 벨기에 지역, 독일 서부)를 평정했고, 라인강 동부에 있는 게르만족을 진압하면서 라인강을 로마의 경계로 정하게 된다. 이때 브리타니아(현재 영국) 원정도 함께 이루었다.

갈리아인들의 대규모 봉기로 위험에 처해진 적도 있었으나 결국 승리로 이끌었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 보고서로 보내기 위해 쓴 <갈리아 전쟁기>는 책으로 출판되어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카이사르의 행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카이사르가 실패를 했던 경험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객관성을 가지고 간결하게 쓴 글이기에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기원전 56년에 루카에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 크라쿠스는 '회담'을 하게 되는데 회담의 내용은 공표되지 않았으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와 크라쿠스의 역할을 정한 듯하다.

기원전 55년도 집정관 선거에서 폼페이우스와 크라쿠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되었고

기원전 54년도에는 폼페이우스는 에스파냐 총독으로 부임되었고 크라쿠스는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폼페이우스가 에스파냐 지역을 지배하면서 북아프리카도 함께 지배하는 것이었고, 크라쿠스가 시리아를 담당하면서 대국 파르티아를 제압함으로써 유프라테스 강을 지역의 방어선으로 확립하는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라인강이라는 북방 방어선을 직접 담당하면서 영토를 넓혀 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계획은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된 크라쿠스가 파르티아의 전쟁에서 전멸을 하면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크라쿠스가 죽자 원로원은 삼두정치를 무너뜨리는 기회라 여기고 폼페이우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카이사르는 8년에 걸친 갈리아 전쟁을 끝내고 전후 처리도 끝내고 로마로 귀환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원로원 파는 원로원 주도의 공화정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고 현체제를 타도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카이사르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각시켜야 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에서 얻은 명성을 배경으로 집정관에 당선이 되어 현 체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에게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카이사르를 대적하라고 요구를 했다.

폼페이우스의 아내가 된 율리우스는 죽은지 오래 되었고 원로원의 딸과 결혼한 상태였기에 카이사르와 맺은 사돈관계는 관계가 없는 상태였다.

8년에 걸친 갈리아 전쟁은 없었던 것처럼 '원로원 최종 권고'를 통과시켰다.

카이사르가 '원로원 최종 권고'에 복종하지 않으면 역적으로 몰리게 되고, '원로원 최종 권고'에 굴복하면 카이사르가 50년 동안 꿈꾸어왔던 새로운 질서 확립은 끝나게 된다.

갈리아 지역을 평정하고 게르만족을 몰아내어 국가에 지대한 공훈을 세운 카이사르.

그런데 원로원은 폼페이우스를 앞세워 카이사르를 제거하려고 하고 있다.

로마의 상징적인 국경인 루비콘 강 앞에서 카이사르는 망설인다.

루비콘 강을 건너느냐, 마느냐!

건너면 내전이고, 건너지 않으면 카이사르는 파멸한다.

기원전 49년 1월 12일 카이사르 50세 6개월.

m****8 2024.01.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