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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옥탑방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성과 어느 외판원의 만남을 주된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올라가기를 꿈꾸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일 뿐, 그녀의 현재 삶을 피폐하게 붕괴시키는 배경 노릇밖에 하지 못합니다.
가난이 싫은 이 시대의 나약한 인간 군상들의 헛된 꿈을 박상우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대단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작품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한 번에 와 닿는 스토리와 달리,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철학적 물음과 대답들이 이 작품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명확하게 일치하여 작품의 밀도를 한층 높여주고 있습니다. 꼭 어떻게 해야 한다기 보다,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배수아의 '은둔하는 북의 사람'은 고향을 잃고, 제 나라에서 실향민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 땅의 현실을 허구적인 설정과 함께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탄생함으로써 자궁을 벗어나야만 하는 우리는 모두 다 실향민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 모르나, 은둔하는 북의 사람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적 현실과 그것의 해결 실마리를 제시하는 고차원적 작품이라 생각하며, 이미지적 글쓰기로 굳어진 그녀의 면모가 다채로움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변하든, 지금 내가 당신에게 분며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은 있습니다. 나의 옥탑방에 발을 들여놓았던 유일무이한 사람, 그리고 나의 찌든 가난을 속속들이 들여다본 첫 번째 남자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당신은 나에게 첫 번째였지만, 첫 번째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의 인생을 나의 옥탑방게다 가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평생 옥탑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과 나의 인생. 상상해본 적 있나요? 이렇게 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옥탑방은 당신과 나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헤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은 나에게 영원히 첫 번째 남자로 남겨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나도 또한 당신에게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는 여자로 남고 싶습닏가. 당신이 설령 나를 원망한다고 해도, 나도 또한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런 바람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내게 선물한 <시지프의 신화="">,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읽고 또 읽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옥탑방, 오래오래 세상에 남아 있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 어쩌다 이 부근을 지나치게 될지라도, 아름다운 추억의 성전으로 그곳을 올려다보고 싶기 때문입니다시지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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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옥탑방은 자본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다룬 단편 소설이다. 저자는 나와 '주희'라는 인물들을 통해 한 번쯤 누구나 느껴봤을 삶의 고통, 빈부격차에서 오는 박탈감 등을 다루고 있다. '형'의 집에 얹혀 살며 변변찮을 일자리도 가지 못하는 나와, 어느 달동네의 옥탑방에 살면서도 매일 백화점으로 출근하는 '주희'. 주인공인 '나'에게 지상은 그저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자본주의 세상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신화속 시시포스가 돌덩이를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밀어 올라가는 것처럼, 지상에 섞이지도 못한 채 매일 '백화점'이라는 풍요의 표상으로 영업 실적을 보고하러 가야만 한다. 아등바등 살면서도 지상으로 편입할 용기는 없는 나에게 어느 날 '주희'라는 여자가 눈에 보인다. 그는 '나'와 반대로 매번 반복되는 삶 속에서 평범함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부모님에게도 기댈 수 없고, 소아마비 동생이 있으며, 그저 옥탑방에 살면서 하루하루 연명할 뿐이다. '나'는 그런 그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끌리게 되어 '주희'를 항상 찾아가게 만든다. 지상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나'와 어떻게든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주희'의 아이러니. 두 사람의 간극과 애틋한 그 감정을 보면 모두 이 글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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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상우라는 남자를 처음 만난것은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때였다. 그때 그는 까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약간은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진 청년- 그때 그는 이미 30때 후반이었지만 나는 청년의 느낌을 받았다-이었다. 그 반항적인 이미지에 가슴이 설렸지만 나는 그에게 아무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마음의 옥탑방'을 통해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마음의 옥탑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하다.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그녀와 살고 싶어하는 남자와 가난하기 때문에 그를 떠나야 하는 여자가 이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하늘과 가까운 옥탑방에 살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현실과 멀수밖에 없다. 그녀는 현실과 가까이하기 위해 그를 떠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도 다른 여자를 만나 일상을 살아간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것은 '사마귀처럼 안는다'라는 구절이다. 사랑하지만 서로 마주 안지 못하고 서로 등을 안고 있어야 하는 연인들. 결국 암사마귀는 숫사마귀를 떠나지만 아무도 암사마귀를 욕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암사마귀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귀처럼 안는다'라는 짧은 구절은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모든 행동이 용서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그리고 이 구절은 사랑의 행위는 책임질수 있을 때에만 행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한것같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모든..수많은... 암사마귀들에게 감히 힘을 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 말은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상깊은구절] '사마귀처럼 안는다' 정확한 구절은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
| "수호"에게 갑작스레 나타난 "기숙"의 등장은 얼핏 소설 전체의 유기적 구성을 헤치는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그 이유를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 그녀가 왜 커피를 블랙으로 진하게 마시는지, 중학교도 못들어갔을 아이가 왜 E.H.Carr의 원서를 가지고 왔는지, 하필 왜 나(수호)를 만나러 왔는지... 사실 전반부의 수호의 돌발적 행동과 상사와의 대화장면은 서론이 불필요하게 길었다고 볼수 있다. 게다가 아무런 복선 없이 끝부분에 기숙의 입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이야기는 큰 충격과 황당함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을 읽은 후 내내, 그녀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암울했던 시대와 어려운 환경이라는 커다란 물결에 휩싸이고 만 한 여성의 가련한 삶은 그 자체로 우리를 멍해지게 한다. 늙고 돈많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앞둔 그녀가 수호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천릿길을 달려왔다. 우리는 과연 그녀에게 도덕적 양심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
| 길을 걷는다. 걷고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다. 내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생각을 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내 안의 시간이 멈췄다.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기계적인 반복의 틀 안에 나는 갇혀 있다. 어지럽다. 고개를 들어 문득 하늘을 본다. 파랗다. 참으로 파랗다. 얼마 만에 본 하늘인가. 높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니 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없도록 높다. 높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 그 곳에서는 지상의 우리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와 같은 사람을 두고서 우리가 구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별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누구도 하늘과 맞닿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없으니까. ‘싫다‘라는 말보다 무서운 것이 ‘관심 없다’라는 말이라던가. 싫다는 것은 적어도 관심이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옥, 탑, 방...이 세 음절을 발음할 때의 느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내게 느껴지는 것은 경쾌함, 그것이다. 옥, 탑, 방...똑똑 끊어지는 듯한 분절음이 오히려 가볍게 느껴진다. 옥탑방에 대해서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지상의 인간 족속에 포함되는가 보다. 실로 그렇다. 옥탑방은 내게 삶의 문제가 아닌 그저 낭만적인 공간에 지나지 않는 곳이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그래서 하늘을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곳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어떤 문제도 내 안에 다가오려면 나의 삶이 되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체험만이 진정한 앎이라는 그런 피상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어디까지나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내 안의 틀을 거친 것들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옥탑방, 그곳은 실로 두 가지의 삶이 만나는 곳이다. 내가 가장 먼저 발견했던 것은 하늘을 향한 몸짓이다. 비록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동시에 지상을 향한 몸부림도 그 안에 존재했었다. ‘몸짓’, ‘몸부림’ 이 두 단어를 보고 당신은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내게 있어 옥탑방을 설명하기에 이 보다 좋은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실로 하늘을 향한 몸짓이 몸부림이 될 수 없으며, 지상을 향한 몸부림이 몸짓이 될 수 없다. 그녀는 지상의 인간이 되고자 몸부림을 친다. 그것은 처절한 아우성이며 절규이다. 하루 두 번 아니 그 이상 옥탑방을 오르내리면서 그녀는 떠올렸을 것이다. 백화점의 그 화려함,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한 남자...‘나’. ‘나‘는 그녀가 원하는 낮은 곳에 있다. 하지만 높은 곳에 거하길 원한다. 하늘과 맞닿으려는 꿈, 정신적 이상... 모르겠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그녀가 바랬던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에 묻혀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은지..아니면 하늘을 찾아 헤매기를 원하는 것인지...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꿈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모두들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를 꺼려한다. 꿈,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애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변해버릴 것이 조금은 두렵기까지 하다. 아직은 내 안에 하늘이 숨쉴 곳이 있음이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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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친구가 무지 읽어 보고 싶어했던 책이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가 이 책을 읽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던 다른 때보다 책 내용이 별로 였던것 같다.(대상받은 내용이) 아마 내가 좋아 하는 류의 이야기들이 아니 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던 옥탑방이 어떤 방인지 나도 주인공처럼 알지 못했었다. 지하방이란 소린 들어 보았는데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옥탑방의 존재아니 그 방의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책 첫부분은 인상적이었다.
그런 방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 하지만 현실과 도피하고싶은 자신과의 이야기 구조가 읽기가 좀 지루하였다. 그리고 옥탑방의 내용 자체가 약간은 몽환적인 내용인 듯하고 이해하기도 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맞는 배수아의 '은둔하는 북의 사람'이나 최일남의 '우리말 역순사전'등의 내용은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내용들이었다. 어쨌던 다른 년도에 비해서 이번 내용은 나에게는 맞지 않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기억 속에는 세월이 흘러도 불이 꺼지지 않는 자그마한 방 한칸이 있다.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을 때, 나는 삼층 건물의 옥상에 위치한 그것을 처음 목격했었다. 목격했었다, 라고 말하는 건 당시에 내가 받았던 기이한 충격감이 반영된 결과일 터이다. 삼층씩이나 되는 번듯한 양옥 건물의 옥상에 그렇게 허름한 주거공간이 얹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을 나는 일종의 파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지고 사람들이 거처할 공간이 줄어든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옥상에까지 방을 들이고 세입자를 받아들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 그래서 어느날, 나는 삼층 건물 옥상에 위치한 그 공간을 '공중에 떠 있는 방'으로 명명했다. 그곳을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내 나름대로는 꽤나 고심한 뒤에 얻어진 표현이었다. |
| 쾌쾌묵은 책장에 있던 내마음의 옥탑방 읽다 말다했던 이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짧은 단편의 내마음의 옥탑방은 실로 한 번도 내가 살아오면서 물질,지상주의에 빠진 사람들도 주변에 없었고 나 또한 일찍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난 주희처럼 그런 상황이 아니였기에 상상도 안했다 높은 이상을 꿈꾸는 주희라는 여성을 느끼면서 그래 참으로 가난이 싫었겠다 가슴보다 물질을 채워줄 남자 만나서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그래도 화려하다거나 자기 치장에 빠져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상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래 그것도 하나의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는거니까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구 나 또한 그런 구닥다리 표현과 생각을 버리고 싶어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고 여자도 남자하기 나름인 세상이지만 그렇게 말들하지만 아직도 여자 팔자는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거 변함없다고 난 생각한다 그 여자를 사랑했어도 그 남자를 사랑했어도 그 높은 이상의 꿈을 가진 자신과 그녀를 알기에 보낼 수 밖에없던 그 남자가 참 대단하다....................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올지 모를 필연이 그들에게 온다면 아~ 그들은 웃을 수 있겠지......... 영화같다 ㅎㅎ |
| 사실 박상우의 내마음의 옥탑방은 예전부터 내가 꼭 읽고 싶었던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많은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인과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꺼리는 주인공이 서로 교차하며 이상의 공간으로써의 옥탑방이라는 설정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생각하는 단순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이유를 읽어 보니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작 작가가 이런 생각을 다하고 글을 썼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가 남기고 간 편지를 읽는 장면은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옥탑방이라는 공간에 커다란 의미를 두었다는 것이 새롭고 철학적의미를 두었다고 하니 그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하다. |
| 어떤이에게 세월이 흘러도 불이 꺼지지 않는 자그마한 방 한 칸이 있다. 인간들이 북적대는 지상으로부터 아득하게 유배된 공간......옥/탑/방. 90년대 마지막을 장식하며 우리 앞에 의미 있게 펴 보인 박상우의 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이 이번 23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옥상(上)이 옥탑(塔)으로 한 글자가 바뀐 옥탑방이라는 조어(造語), 가난이 낳은 초라한 주거의 공간인 옥상 위의 방에서 인간의 내면적인 상황과 시대적인 속성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려 보여 준 이야기. 간간이 인용하고 있는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언급하면서 작가는 산다는 것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의 힘겹고 절망적인 삶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관성으로 살아가고,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견디는 가련한 시지프인 남자와 온전한 지상의 주민이 되어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어하는, 가난에서 벗어 나기 위한 꿈을 가진 여자의 슬픈 이야기가 이 소설의 테마이다. 미물스럽고 속물스런 세계에 안주한다는 것, 어쩌면 누구나 꿈꾸는 인간의 속성을 옹색한 옥탑방에 기거한 여자의 꿈으로 대변함으로서 작가는 나에게 의미 심장한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었다. '세상을 올바르게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이렇게. 화려함과 인간의 욕망이 응집된 곳, 젖과 꿀이 흐르는 현대판 가나안으로 묘사한 백화점에서 가장 화려한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상징적인 존재, 백화점 안내사원인 주희에게 있어서 옥탑방은 속물스런 지상(地上)으로 내려가기 위한 잠시동안의 대기 방이다. 엄마는 돌아가시고 소아마비의 동생은 이모집에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의 꿈은 지상의 주민이 되는 것. 지상의 속물 속에서 안주하는 꿈을 가진 여자의 삶은 어쩜 치열한 우리들의 고달픈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건지도 모르겠다. 반면 레포츠 용품 영업사원이던 민수에겐 사장의 닦달과 형수의 눈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편안한 도피처였다. 항상 수치(數値)와의 전쟁으로 백화점의 5층, 6층이 있는 매장과 그 실적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11층에 오르락 거리며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형네 17층 아파트로 귀가해야 하는 게 남자의 현실이다. 5-6-11-17층을 벗어날 수 없는 고소공포증의 이방인은 지상의 공간 자체가 괴로움이였고 지상에 편입하지 못하기에 자꾸만 위로 올라가고자 했다. 올라가고자 하는 남자의 꿈과 내려가고자 하는 여자의 꿈이 어긋남으로 해서 사마귀처럼 등을 껴안는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공중에 떠 있는 방이 아니라 땅에 발붙이고 살려는 소망을 진실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직 목적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기리지 않는 파렴치한 꿈으로 매도 해버린 비루한 시지프....사랑하는 여자의 꿈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물질적으로 해결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현실에 아파하는 가련한 남자의 절규는 차리리 인간적이기에 진심을 아는 여자는 한때 자기의 꿈마저 흔들였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희망을 일순 무너뜨리고 말 자신을 감당할 수 없는 거세당한 시지프는 결국 지상을 꿈꾸게 하는 옥탑방을 조용히 떠난다. 불완전한 지상의 주민이 살던 터전, 햇살 한 점 밀려들지 않는 그녀의 옥탑방에는 이제 깊은 정적과 냉기, 그리고 비현실적인 공허감만이 있을 뿐....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한 쌍의 사마귀 이야기를 누가 만들어 낸 동화였을까.....이런 의구심을 가진 채. 그녀와 헤어진 후 형의 중매로 무난한 상대와 결혼하고 대기업 홍보실로 직장을 옮겼어도 남자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십년 세월이 지난 지금, 여자를 생각할 때마다 남겨진 시간에 대해 깊은 두려움을 느끼는 남자. 지나간 시간 보다 남겨진 시간이 두려운 건 변화가 아니라 불변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끈끈한 채무감 때문이리라.. 끊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끔찍스런 형벌에 처한 인간의 이야기. '시지프의 신화'을 통해 신과 인간, 이상과 현실 그 속에 감춰진 온간 인간적 고뇌를 드러내 보이며 여자는 편지를 남겼다. '당신이 내게 선물한 '시지프의 신화'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읽고 또 읽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옥탑방, 오래오래 세상에 남아 있기를 빌겠어요. 어쩌다 그 부근을 지나치게 될지라도 아름다운 추억의 성전으로 그곳을 올려다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주 우연히 지상에서 다시 마주치게 될지라도, 부디 행복한 시지프의 표정을 당신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시지프여 안녕.... 마지막 남겨진 그녀의 편지.... 오랜 시간이 흐름에도 여전히 지속력을 느끼게 하는 주시(注視)의 언어로 남자의 기억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과연 현대인들은 신의 노여움으로 형벌을 받아 산정(山頂)으로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도로(徒勞)의 존재들인가? 희망 없는 노동을 죄악시하고 도로를 무능의 결과로 치부해 버리는 시지프의 세계에 안주하며 살고 있지 않는지. 어느 누구도 도로의 절망을 숙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도로(徒勞)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지만, 그 형벌을 수행 할 때 인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실존주의 철학의 명제를 이 작가는 옥탑방을 통해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가난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듯이 빈곤에 처해보지 않고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족쇄가 얼마나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지 감히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지상의 주민이 되어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어하는 여자의 꿈은 현실적으로 도덕적 희생을 담보함으로서 가능할 지 모른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적 타락으로까지 추락했다 치더라도 그 누가 그녀의 꿈에 돌팔매질을 할 수 있으리오? 언젠가...... 헝컬어진 내 마음에도 부드러운 불 밝힌 옥탑방을 마련해두고 싶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초연히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내 마음 속에 촉수 낮은 불일 망정 조그마하게 자리잡고 있었음 좋겠다.. 편견과 모순에 사로잡힌 불행한 시지프의 얼굴이 아니라 자기 운명에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행복한 시지프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남자처럼 내게도 언제 찾아올지도 모를 어떤 운명과 익숙치 않는 얼굴들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시지프의 얼굴이 되었음 한다. 무심히 지나치는 세월 따라 우리들은 이 다음 어떤 시지프의 얼굴들을 하고 있을까? |
| 건물의 옥상에 허름히 지어놓은 주거공간, '용산'이 고향인 사람. 이러한 도시 환경에 황당함을 느끼는 서술자의 모습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을 보고 놀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거세당한 시지프처럼. 서울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서술자는 원하지 않는 자신의 삶을 강요당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이었지만 그는 5층, 6층, 11층으로 올라가야 했고, 자신을 경원시하는 형과 형수였지만, 어쩔 수 없이 17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포기하고 싶지만 저항하지 못하고 지속해 나가야 하는 신세. 그러던 중 그는 인간의 미물 적이고 속물적인 삶으로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지상도, 공중도 아닌 그저 '옥탑방'에 사는 그녀. 불완전한 삶에서 그녀는 탈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탈출하도록 도와줄 수 없다. 그리하여 서술자와 그녀는 그녀의 '삶'만큼이나 불완전한 관계를 유지한다. 시지프는 바위가 끊임없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신화 속의 인물이다. 신과 신의 형벌을 멸시하면서, 그의 운명을 계속적인 의지와 실천으로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거세당한 시지프라고 서술자는 외친다. 바위를 밀어 올리려는 의지를 상실한 채, 그저 지상에 안주하는 가련한 시지프들. 그녀는 '거세당한 시지프'를 꿈꿨다. 지상에 안주하여, 지상의 주민으로 편재되고 싶다는 꿈. 하지만 '거세당한 시지프'는 꿈을 가지지 않는다. 오직 체념과 비관으로 일관해 꿈마저 상실한 시지프가 '거세당한 시지프'인 것이다. 그녀는 자기 형벌의 바위를 매일 옥탑밥으로 밀고 올라갔기에 '행복한 시지프'였다. 그렇지만 '거세당한 시지프'를 꿈꿨기에, 그녀는 불완전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는 상태. 그랬기에 그들은 더욱 비참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꿈을 이뤄줄 수 없었고, 결국 그들은 헤어진다.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한 쌍의 사마귀처럼. 함께 한다면 불행해 지는 것이 필연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옥탑방'은 서술자나 그녀같이 불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거세당한 시지프처럼 산위로 바위올리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일에 자신의 운명을 걸지는 못하는 사람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지도 모른다. 글에서처럼 '거세당한 시지프'가 아니라, 우리 거의는 '옥탑방'에 오르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추억을 '옥탑방'이라는 공간을 매개체로 하여 마음속에 간직하지만 서술자는 '행복한 시지프'가 되어 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시지프'는 과연 무엇인가. 의지를 상실해 버린 시지프, 관성으로 세상을 견디는 시지프, 체념과 비관으로 뒤틀린 시지프... 이런 모습들은 현실이다. '행복한 시지프'의 모습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한 시지프'가 아름다운 건, 그것이 다만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상으로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과연 '이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가? |